43화
이어진 강도현네 팀 분량은 별다른 악편이나 팀원들 간의 불화 없이 비교적 평탄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연 무대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느낀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 박선우의 파트가 시작되었을 때, 강도현의 파트가 끝나고 조금 지루하다는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안 그래도 소멸할 거 같은 얼굴 때문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데, 제복 느낌의 의상도 소위 오타쿠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했다.
[누군가는 내게 말하지
네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미친거 아니야?
-ㅈㄴ동굴이네;;
-현장에서 듣고 기절할 뻔했잖아.
-저 얼굴에 저런 목소리가 가능한 거냐고.
-박선우가 복병이었네;;
-방송이 현장을 다 못 담아냈네ㅠㅠ
┕현장이 더 쩔었어?
┕ㅈㄴ 맹수였다니까?
방송 내내 시큰둥해하던 K도 감탄했다.
“목소리 미쳤네.”
“근데 현장에서가 진짜 충격적이었어.”
방송에서는 후보정이 살짝 들어가서 소리가 깔끔해졌지만, 현장에서 느꼈던 거친 느낌이 줄어든 것은 아쉬웠다.
[거칠게 달려드는
파도도 겁나지 않아
내 나침반과
함께라면]
나침반을 든 손을 올리는 포즈와 함께 무대가 끝났고,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왔다.
“으아, 떨린다.”
“누가 1등 할까요?”
“팀 1등 하면 되지!”
문스트럭과 K는 입을 모아 박선우의 1위를 예상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4위 : 강도현]
[3위 : 박선우]
“엥?”
“뭐야?”
문스트럭은 너무 놀란 나머지, 씹고 있던 오징어다리를 떨어트렸다. 다른 팀원 중 하나는 마시던 물을 뿜어내기까지 했다. 아무리 견제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결과였다. 게시판 반응도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
-??
-뭐야?
-오류 아님?
-ㅅㅂ 견제표도 정도껏 해야지 만족하냐?
-무대에서 저 둘 빼고 볼 애가 없었는데 현장 평가단 단체로 청력 잃었음?
-귀가 있으면 저렇게 뽑진 않았겠짘ㅋㅋㅋㅋㅋㅋ
-정프들 ㅈㄴ 추하다...
┕여기서 정프들 머리채를 잡네?
┕응 이미 옾챗에서 조직적으로 견제표 하자고 한 거 걸렸죠?
┕ㅋㅋㅋㅋㅋㅋㅋ포지션도 다른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함? 출처 어딘데.
문스트럭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견제표에 대해 너무 안일했다. 무대가 완벽해서 당연히 못해도 2위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팀을 보니 더 적은 표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빈이 어쩌지…….”
-이럴거면 뭐하러 열심히 준비함? 실력으로 투표하는 것도 아니고ㅎ
-저 둘이 뭐 얼마나 특출나게 잘했다고 다른 애들 후려치는거임?
┕강도현이랑 박선우는 여기서 표 적게 받아도 어차피 올라갈 애들인데 뭐 이렇게 열을 냄?
┕인기 없는 게 죄지 뭐…
┕양심이 있으면 이런 말도 안 할 텐데?ㅋㅋㅋㅋ
┕ㅇㅇ 인기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둘이 더 잘했는데 결과가 저 모양이니까 화내는거지. 한 처먹지 마
“차지운도 차라리 견제받아서 꼴등 했으면 마음이 더 편할 거 같다.”
“…….”
“하지만, 누구도 우리 지운이를 견제하진 않았을 거야…….”
* * *
이번 화는 경연 순서가 정말 뒤죽박죽이었다. 시즌 1에서는 적어도 같은 포지션의 경연을 모아서 방영했는데 강도현네 팀이 끝나고, 보컬 조인 정유현네 팀이 나왔다. 누가 봐도 급하게 편집했다는 게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뭐야, 이러면 청춘예찬팀도 오늘 가능한 거 아님?
┕차지운이 통편집인데 무슨ㅋㅋㅋㅋ기대 접어라
[문승빈 연습생과의 대결에서 패한 정유현 연습생] 자막과 함께 정유현의 인터뷰가 나왔다.
“정말 하고 싶었던 곡이라서 아쉽지만, ‘상상’도 정말 좋은 곡이니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역시 정유현이네.”
어떤 상황에서도 정석 답변만 하는 정유현이었다. K는 조금 미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난 정유현 뭔가 정이 안 가.”
“왜?”
“너무 AI 같다고 해야 하나? 애가 인간미가 없어.”
“그건 인정. 너무 완벽한 것도 흠인 듯.”
그런데 이 팀은 시작부터 팀원 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여기서 밴드 사운드 들어가는 게 어때요?”
“밴드랑은 안 어울리지 않나?”
그러자 밴드 사운드를 추천한 연습생이 기가 찬다는 듯 답했다.
“원곡이 밴드곡인데 무슨 소리세요?”
“아, 그래? 몰랐지.”
상대 연습생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분위기가 냉랭했다.
[편곡 과정에서부터 긴장감이 오가는 ‘상상’ 팀.]
그때, 정유현이 중재에 나섰다. 연습생들도 정유현에게는 쉽사리 말을 얹을 수 없는지 큰 불만 없이 의견을 수용했다.
“정유현 고생 꽤나 했겠다.”
“무대가 개판이었던 이유가 있었네.”
“맞다. 얘네 완전 노답이었다며.”
“응, 정유현은 잘했어. 정유현만 잘해서 문제였지만.”
K의 말대로 이 팀의 스토리는 ‘정유현 수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습 내내 두 연습생의 기 싸움은 계속됐다. 그렇다 보니 팀워크는 엉망이었고, 중간 평가는 혹평뿐이었다. 그런데도 정유현은 표정 하나 일그러트리지 않고 연습을 이끌어 갔다.
-유현이가 고생이 많다…
-이거 걍 조별과제 잔혹사 아님?
┕정유현이 버스 운전하는데 팀원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넼ㅋㅋㅋㅋ
-정유현 보살인가?
┕해탈의 경지에 오른 거 같은데.
┕눈이 점점 생기를 잃어감ㅠㅠ유현이 눈 원래 엄청 초롱초롱한데ㅠㅠ
┕정유현이 언제 생태였다곸ㅋㅋㅋㅋ동태눈이 베이스 아니었음?
┕ㄲㅈ
그리고 기어코 두 연습생의 갈등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방영돼도 되는 건가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너 혼자 다 해 먹든가!”
“말 다 했냐?”
“X나 뭣도 없는 게-”
“야, 나와. X발.”
-ㅁㅊ
-지금 삐소리가 몇 번 나온거임?
-개싸움났네.
-쟤네는 카메라가 눈에 안 들어오나?
-ㅈ망했네...
[급기야 스태프가 말려 보는데-]
-말렸으면 편집해야 하는 거 아님?
┕씨넷을 그러겠냐?
사건을 일단락시킨 것도 정유현이었다. K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쟤네는 스태프보다 정유현 말을 더 잘 듣네?”
“나 같아도 정유현 말을 더 신뢰할 듯?”
“그런가?”
솔직히 말해서 이쯤 되면 정유현이 메주로 콩 쑨다고 해도 그런가 하고 솔깃할 것 같았다.
정유현의 고군분투로 연습생들은 다시 화해하고 평화롭게 연습을 마쳤습니다- 의 편집이었지만, 무대가 시작되고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었다. 어쩌면 더 큰 어그로를 위한 빌드 업이 아니었을까.
[그대와 함께 있는
상!상을 해 봐
현실보다 달콤한
상!상 속에서]
이 팀의 무대는 박현수네 팀을 능가하는 고음 파티였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본인이 더 돋보일까에 급급한 무대였다. 특히 심하게 싸웠던 두 연습생의 기 싸움이 과했다. 이마에 핏줄이 생기고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고음을 내는데, 방송으로 보니 서로 견제하는 게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아, 귀 아파.”
“현장에서도 다들 귀 막고 난리도 아니었어.”
-저 새끼들 화해 안했네...
-게임하냐?
┕안녕클레오파트라 하는 거임?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사에 안녕 클레오파트라 나와도 안 어색할 듯ㅋㅋㅋㅋㅋㅋ
┕미리 성지글 쓴다. 씨넷 또 이걸로 자체 콘텐츠 낼거임ㅇㅇ
결국 한 명이 우렁차게 음 이탈을 내고 말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싸웠던 다른 연습생이 그 음 이탈을 듣고 웃음이 터진 거다. 여기서 문스트럭은 저 둘의 회생 불가를 직감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비웃는거봐라.
-퉁퉁이 실사화냐고;;
-배틀로얄임? 무슨 한 소절 부를 때마다 애들이;;
┕정유현만 살아남았네;;
“쟤 지금 터진 거지?”
“어, 둘 다 2차 경연까지가 목표였나 봐.”
오히려 혼자 잔잔한 정유현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군계일학도 이런 군계일학이 없다. 투표 결과도 이변 없이 정유현이 1위였다. 내심 견제표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던 문스트럭도 결과를 인정했다.
“하긴, 정유현 1위 못했으면 내가 다 억울했을 듯?”
“맞아, 그리고 저기서 정유현 안 뽑으면 양심이 없는 거지.”
-정유현 1위는 당연하지...
-이런 게 정의구현 아니냐?
-정유현 견제표 받았으면 전국 대학생들 일어났을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
┕학식픽된거냐곸ㅋㅋㅋㅋㅋ
┕조별과제 하드캐리해서?ㅋㅋㅋㅋㅋㅋㅋ
팀은 망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유현에게는 이득인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 팀의 무대를 끝으로 7화가 끝났다. 최근 순위가 나왔고, 차지운이 10위권으로 올라와 있었다. 조금 잠잠해졌던 K의 버튼이 살짝 눌린 듯했다.
“하, 십팔 위라고. X팔-”
문승빈은 5위까지 올라갔다. 강도현이 처음으로 2위로 떨어지고, 정유현이 4위였다. 그리고 새로운 1위는 윤빈이었다. 6화에서 나온 귀신 체험, 씨더스타 콘텐츠에서의 활약, 그리고 1차 경연 직캠이 역주행하면서 순식간에 1위로 치고 올라왔다.
-윤빈1위?
-1차가 6위였었나?
-강도현 정유현 거품 빠졌넼ㅋㅋㅋㅋㅋ
┕거품 빠져서 2윜ㅋㅋㅋㅋㅋㅋㅋ
-순위 변동이 크네...
“미친, 윤빈 완전 떡상했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8화 예고편에 다들 지금까지의 방송 내용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K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 텅 빈 눈으로 문스트럭에게 물었다.
“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는 거냐?”
“미쳤네…….”
예고편 내내 차지운이 나왔다. 그것도 한참 울었는지 충혈된 눈으로 울먹이고 있는 모습이.
[차지운 연습생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개X끼들아-”
“무슨 생각이지?”
게시판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씨넷 작정했네.
-아니 그래서 다음주 청춘예찬 방송 가능한거냐곸ㅋㅋㅋ
-갑자기 왜 이럼? ㅈㄴ 급발진하네;;
-믿는 구석이 있나? 이래도 돼?
┕폭로글 사실 씨넷이 쓴 거 아님?
┕미친놈아;;
┕씨넷이면 충분히 가능함ㅇㅇ
-일진새끼 ㅈㄴ 질질 짜네.
-다들 너무 즐거워하는 거 아니냐;;
┕님이 제일 즐기는 듯?
-이랬는데 하차하면ㅋㅋㅋㅋㅋㅋㅋ
┕악마도 이건 좀;;할 듯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믿을 구석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라고 믿으면 미친놈인 거지?”
“그게 아니면 이럴 이유가 있나?”
K는 머그잔에 남은 소주를 원샷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종이비행기를 줍지 말았어야 했어-”
* * *
8화 예고편은 정말 예상도 못 했다. 제작진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다음 주 방송에 청춘예찬 무대가 통편될 수도 있으니, 일단 다음 주 방송을 보게끔 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도박이었나? 윤 피디라면 그러고도 남았지만, 정말 그런 이유라면 그 악랄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위튜브에서는 이번 예고편에 대한 여러 의견과 궁예가 판을 쳤다. 검색어는 투마월과 지운이 형, 8화로 도배되었고 씨넷의 바람대로 화제성 하나는 폭발했다. 모두 과연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에 주목했다. 오랜만의 자극적인 소재에 모두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형도 충격이 커 보였다. 전학을 와서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는 B가 전부였고, 댄스부 사람들과도 친해지기도 전에 전학을 갔기 때문에 연락처에 남은 동창이 없었다. 당연히 B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하차를 결심하려던 와중에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한 예고편을 봤으니 그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골든 타임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