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
“제가 형 믿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혹시 그때 일을 해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봐요.”
“…알았어.”
지운이 형을 진정시키고 숙소로 돌려보낸 뒤, SNS 계정을 찾아다녔다. 회귀 전에 형의 해명을 도와준 친구는 이후 형과 꾸준히 연락을 이어 갔다. 원래 방송 촬영 관련 일을 준비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티벡스 데뷔 이후에는 방송국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나와도 몇 번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교환한 SNS 아이디라도 찾아보려고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아직 없는 계정인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그때, 불현듯 사이트 하나가 떠올랐다. 서로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카메라 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티벡스의 망돌 생활이 길어지면서 언제라도 연예계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플랜B를 준비하려고 할 때였다.
일감은 어디서 구하냐는 질문을 했고, 방송 관련 커뮤니티에 프로필과 경력을 올려 둔다는 그의 답변에 사이트 이름을 메모해 두었던 기억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갔고, 프로필들을 쭉 둘러보는 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찾았다!”
그 친구가 분명했다. 당장 프로필에 나온 SNS 주소로 메시지를 보냈다. 별다른 말이나 설명 없이 폭로글 링크만 적었다. 이 글의 존재를 안다면 분명 회귀 전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링크]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확인이 떴고, 답장이 왔다.
[누구세요?]
[누구시냐고요]
[지운이니?]
[내가 이거 해명하면, 나 용서해 줄 수 있어?]
“용서해 줄 수 있냐고?”
회귀 전에 올라왔던 해명 글로 해결되었다는 것만 알았지 세세한 부분은 몰랐는데 지운이 형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있었다는 건가?
[나 후회 많이 했어.]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는데, 전학 가고 소식이 없어서 못 했어.]
[이번엔 내가 꼭 도울게.]
[미안했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다음 날 지운이 형이 급하게 숙소로 찾아왔다.
“기억났어. 증거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
“그래요?”
“응, 근데 날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생각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었다. 지운이 형은 당시 댄스 동아리가 유명했던 학교로 전학을 왔고,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B와 친하게 지냈다. 생긴 것부터 범접하기 힘들어서 그런지 B를 괴롭히던 무리에서도 쉽사리 형을 건들지는 못했던 거 같다. 그런데 형이 없는 곳에서는 지속적으로, 더 강한 수위로 괴롭힘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하고 멀어지면 그만 괴롭히겠다고 했었나 봐.”
“나쁜 X끼들…….”
결국 괴롭힘의 타깃은 지운이 형에게로 넘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입으면서 댄스 동아리도 그만두게 된 것이다. 더는 그 학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형은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갔고, B와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이제야 어제 한 말이 이해되네.’
“제작진분들은 일단 상황을 보고, 이번 주 안으로 해결이 안 되면 하차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
제작진 입장에서도 아까운 인물일 거다. 2차 경연의 모든 서사를 형한테 때려 부었을 텐데, 이대로 하차시킬 수는 없겠지. 다시 한번 우리의 청춘예찬 무대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름이랑 얼굴은 기억하죠?”
“응, 근데 2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그럼 형은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그 친구 관련된 SNS나 연락처 찾아봐요. 저도 찾아볼게요.”
“알았어.”
일부러 형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지금은 인터넷 반응을 찾아보는 것보다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것이 멘탈에는 더 좋을 테니까. 당장 위튜브만 들어가도 썸네일에 대문짝만하게 형의 얼굴이 나와 있고, 죄다 자극적인 제목과 문구로 가득했다. 방송에 나온 형의 모습을 초 단위로 캡처해서 하나하나 분석하는 영상도 있었다.
폭로 글에도 없는 유언비어와 과장된 내용이 아무런 필터링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조회 수는 백만 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 이슈가 돈이 된다는 것이 조회 수로 증명되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우후죽순 관련 영상이 생겨난 것이다.
-관상은 사이언스다.
-이미지 관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깤ㅋㅋㅋㅋㅋ
-아예 철판 깔고 일진 컨셉으로 나오면 먹히긴 할 듯?
-하차해 가해자 ㅅㄲ야
씨더스타 게시판에서는 7화에서 지운이 형의 분량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7화 어떻게 되는거임?
-시즌1은 보컬-춤-랩 순서로 나왔었잖아.
-아 ㅅㅂ 차지운 때문에 청춘예찬팀 통편집 당하는 거 아님?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라.
┕시즌 1에 병크 터진 애처럼 블러처리 되거나, 없는 사람처럼 편집당하는거지 뭐.
┕근데 연습장면이나 이런 건 통편집될 듯?
-야이 못난 놈아, 이제 좀 뜨는 거 같더니
┕ㅅㅂ나 입덕한 지 일주일 됐어요...
-지팔지꼰이지 누굴 탓함?
-청춘예찬 통편집 당하면 평생 저주할거야.
-이번에 청춘예찬 무대 찢었다며;;
┕ㅇㅇ 무대 보고 감동받은 내가 미워짐.
-쟤 하나 때문에 무대 더럽혀지는 것도 열받음.
오늘 우리 팀 분량이 먼저라면 통편집은 불가피하다. 제발 다음 주로 넘어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편집되어 나간다면, 해명되고 나서도 복구할 수 없으니까.
아직 B로부터 추가적인 연락이 오거나, 해명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B를 제외하고는 지운이 형을 변호해 줄 사람도 없는 듯했다.
* * *
“야, 너 진짜 볼 수 있겠냐?”
“왜. 못 볼 건 또 뭐야.”
“그야-”
“편집되어 있으면 나 그냥 바로 한강 수온 체크하러 가는 거고.”
기나긴 입덕 부정기를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깨닫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문스트럭은 착잡했다. 사건이 터지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을 보자니 빨리 털어내고 새로운 최애를 잡으라고도 부추겼지만, 반쯤 돌아 버린 K의 사랑을 제자리로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혼자 보다가는 정말 혀 깨물고 죽는 시늉이라도 할 거 같아서 함께 방송을 보기로 했다.
“시작한다.”
노래 선정 과정에서 연습생들의 경주 장면이 나왔다. K는 눈에 불을 켜고 차지운의 흔적을 찾았다. 다행히 얼굴이 블러 처리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편집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구석에 있거나, 다른 연습생 옆에 걸려서 나오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하, 그래도 아예 지우지는 않았네.”
“괜찮냐?”
“생각보다는?”
문승빈이 전력 질주하여 청춘예찬을 사수한 모습이 나오고, 문스트럭은 K에 대한 걱정을 잠시 뒤로하고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승빈 참안목
-승빈이 잘 뛰넼ㅋㅋㅋㅋㅋㅋ
┕운동도 잘 하는거냐고ㅠㅠ
승빈이 지운을 뽑는 과정도 편집되었다. 짧게 차지운을 뽑겠다는 문승빈의 얼굴만 나오고 다음 연습생으로 넘어갔다. K의 머그잔에 담긴 소주가 점점 비워지고 있었다.
“야, 지운이 무대 잘했다고 했었지.”
“응.”
“X발, 그래서 더 X같아. 걔가 좀 열심이었냐? 맨날 분량도 개미만 한데 잡히는 장면마다 연습만 하고, 1차 때도 겁나 잘했는데 박재봉네 팀 때문에 묻히고 이제 좀 빛 보나 했는데.”
“어휴.”
“같은 팀이었던 애들한테도 진짜 잘했던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겠냐고오-”
“야, 취했다. 그만 마셔.”
“그냥 먹고 죽을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한다.”
아이돌 덕질로 얻는 기쁨과 그들에게 주는 애정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에도 가끔 이렇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지금껏 오지게 당했으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이 웃기지도 않는 K였다.
“투마월 2차 경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 경연은 강도현과 박선우 팀이었다. 문스트럭은 직감했다. 아, 다음 주로 밀렸구나. 게시판 반응도 동일했다.
-ㅎ..청춘예찬 다음주로 넘어간 거 같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차지운 통편집 할 건가봄?
-아씨 수빈이 보려고 했는데 이번 주 걍 스킵해도 될 부분?
┕ㅇㅇ 걍 넘겨 오늘은.
-개빡치네 걔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민폐임?
-아싸 나침반 팀 먼저 나오네^^
┕눈치 챙겨
┕강프들이 또...
┕만물강프설 지겹지도 않냐?
“여기 준비 과정 궁금했는데.”
“오늘 지운이 분량 따면 몇 초 나올까.”
K는 정말 나노 단위로 저화질의 차지운 컷을 따 놓고 있었다.
“아직 10초도 안 되는 거 실화냐?”
문스트럭은 K의 노고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전부 폭파하거나 레스트 걸어 버린 차지운의 팬 계정들을 대신해서 덕질 인생 처음으로 움짤 계정까지 만들었으니 말 다 했다.
혼자 봤다면 방송이 밀린 것에 불만을 표출했을 텐데, 옆에 K가 있어서 속으로 삭였다. 2주차로 밀리면 방송이 종료되고 이틀 있다가 투표가 마감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대부분 1주차에 나오기를 바라는데, 이제는 다음 주라도 무대가 나올 수만 있다면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와 별개로 방송은 계속됐다. 특히 거의 처음 나온 강도현과 박선우의 관계성이 화제였다. 문승빈과 박재봉, 차지운과 함께 있는 모습은 비하인드나 방송에서 몇 번 봤지만 둘만 나오는 건 드물었다.
-뭔가 둘이 성격 안 맞을 거 같음
-둘이 MBTI도 완전 정반대 아니었음?
┕유사과학 맹신자 등판
┕웃어, 분위기 망치지 말고^^
“항해의 시대잖아, 컨셉도 약간 항해사같이 하는 게 어떨까?”
강도현의 말에 박선우가 해맑게 답했다.
“너무 당연한 말을 이렇게 진지하게 할 줄이야!”
“예예-”
-아 ㅁㅊㅋㅋㅋㅋㅋ
-쟤네 둘이 뭐하냨ㅋㅋㅋㅋ
-박선우 화법 기분 나쁠법도 한 데 강도현 타격 1도 없엌ㅋㅋㅋㅋㅋ
-둘이 ㅈㄴ 친한가봐.
┕이걸 이제야 보여주다니 ㅂㄷㅂㄷ
┕방송국 놈들 지들만 보고ㅡㅡ
둘은 연습 내내 끊임없이 삐거덕거렸다.
“여기에 붐뱁으로 편곡하는 거 어때요?”
“그거보단 트랩으로 가는 게 더 나을 듯?”
“와- 둘이 진짜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니까.”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는 대화에 팀원들도 신기해했다. 저 정도로 안 맞는 성격이면 그냥 무시할 법도 한데, 에이앱 라이브 방송 때도 그렇고 사이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우리 도현이 성격 다 받아 주는 거지.”
“뭐래. 형, 양심은 있어야죠-”
-도현이는 왜 다 이런 관계냐곸ㅋㅋㅋㅋㅋㅋ
-박재봉하고도 투닥거리더닠ㅋㅋㅋㅋㅋ
-다 도현이 성격이 좋아서 그런거지.
하지만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 누구보다 쿵짝이 잘 맞았다.
“그 부분… 좀 더 깊은데 가볍게 해 봐.”
“이렇게?”
“응, 아까보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임팩트 있어.”
-뭐라는거임?
-깊은데 가볍게?
┕이 무슨 따뜻한 아아 같은 소리야
-ㅈㄴ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도현아, 여기 가사 좀 봐 봐.”
“왜요? 가사 괜찮은데.”
“입에 잘 안 붙어.”
“그건 형 발음 문…….”
“도현아, 내가 앞으로 무슨 말만 해 준다고 했지?”
박선우의 나긋하지만, 어딘가 등골이 오싹한 목소리에 강도현이 곧장 반응했다.
“좋은 말만.”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닌듯했다.
“그래, 좋은 말로 할 때 가사 다시 생각해 보자?”
“아, 알았어요.”
-나 박선우 저 표정 나올 때마다 너무 웃곀ㅋㅋㅋㅋ
-^-^ 딱 이거임.
-선우야 그냥 화를 내…
톰과 제리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