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윤빈 팀의 방송이 끝나고, 곧바로 우리 팀 방송이 준비됐다. 그런데 누가 잘못 건드렸는지 카메라가 세로로 설정되어서 절반은 잘려 나오는 거다. 앞에 선 스태프들이 당황한 게 느껴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 설정을 바꿨다.
-승빈이 뭐 한거야??
-드디어 카메라가 제대로 잡히네.
-뭐야 문승빈 왜 이렇게 능숙함?ㅋㅋㅋㅋㅋ
-아이돌 2회차 맞는 거 같다니까?
“뭐야, 어떻게 바꿨어요?”
“응? 아, 선배님들 방송 많이 챙겨 봐서-”
-승빈이도 덕후였나봄ㅋㅋㅋㅋ
-데뷔해서 성덕하자 승빈아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청춘예찬입니다!”
“지금 많은 분이 저희가 어떻게 2위가 된 건지 궁금해하시는 거 같아요.”
“자세한 건 이번 주 방송을 통해서 아실 수 있어요.”
“스포를 조금 하자면 수빈이가-”
“아, 너무 큰 스포 아니에요?”
-수빈이가 ㅈㄴ 잘하나봨ㅋㅋㅋ
-아씨 이럴거면 뭐하러 따로 컨텐츠 낸거임?
-동물즈 너무 소중해ㅠㅠㅠ
“동물즈? 그게 뭐예요?”
지운이 형이 댓글을 읽다가 동물즈에 관해 물었고, 댓글창은 다시 불타올랐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아는 티는 내지 않았다. 너무 서치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자체로 이미지 소비가 심할 테니까.
-뭐긴 뭐야 너지
-너랑 승빈이랑 재봉이 선우!
“형이랑 제가 동물즈에요?”
“개랑 여우인가?”
“개라니요. 강아지예요, 형.”
“어이구, 승빈아. 멍멍해 봐 하면 멍멍하겠다.”
-앜ㅋㅋㅋㅋㅋㅋ
-우리 승빈이 개 아니고 강아지라구요!
-아이돌 쉽지 않다...
-고생이 많다.
연습생이라면 이런 부탁에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지둥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인생 2회차, 이 정도 주문쯤이야. 애교나 개인기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한때는 기계적으로 애교부리는 내 모습에 놀란 적도 있었다.
“팔로워분들이 원하시면 그 정도쯤이야.”
-헐
-ㅁㅊ
-진짜??
-승빈아 멍멍해주세요!
-승빈아 짖어!!!!!!!
-짖으랰ㅋㅋㅋㅋㅋ
“아니, 짖으라는 건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아지가 짖는 건 맞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카메라 앞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뭐 해?”
그러고는 두 손으로 귀를 만들고 나지막이 한 음절 내뱉었다.
“…멍.”
순간, 정적이 오갔다. 팀원들은 경악했고, 성재 형은 흡사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형도 진짜 얼굴 막 쓰네.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나만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거 부끄러워하면 아이돌 못 하지. 나도 처음엔 엄청나게 어색해하고, 부끄러웠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팬들이 쓰는 돈이나 애정이 얼마인데 이거 하나 못 한다? 눈치 빠른 팬들은 이미 눈치채고 탈덕각 잡는다고.
-ㅁㅊㅁㅊㅁㅊㅁㅊ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ㅁㅊㅊㅁㅊ
-팬이 당신의 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
-동물이 에이앱 할 수 있는거임? 강아지도?
“미친.”
“좀 귀여운데?”
“빼지도 않고 잘하네.”
-승빈이 아이돌 2회차야? 왜 이렇게 자연스러워?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효자깅ㅠㅠㅠ
“형보고 아이돌 2회차래요.”
“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지운이도 애교 가보자고
-지운아 예고편에서 왜케 부어있었어?
-TMI 알려줘!
-점심 뭐 먹었어?
“질문이 너무 많아요!”
“TMI? 지운이 형 오늘 청심환 먹고 왔대요.”
-청심환ㅋㅋㅋㅋㅋㅋㅋㅋ
-긴장 많이 됐나봨ㅋㅋㅋㅋ
-아니 긴장 같은 건 모르게 생겨가지고ㅠㅠㅠ
-얼굴값 못하넼ㅋㅋㅋ
“얼굴값 못 한다는 댓글도 있는데, 진짜예요.”
“맞아, 지운이 형 생긴 거랑은 다르게 엄청 섬세해요.”
-생긴거랑 다르겤ㅋㅋㅋㅋ
-너무햌ㅋㅋ큐ㅠㅠㅠ
-세찬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네;;
댓글을 보던 정세찬이 다급하게 해명을 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지운이 형이 아주 조금, 진짜 조-금 세게 생겼잖아요?”
“이미 늦은 거 같다, 세찬아.”
“세찬이가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세찬아.”
“울지 마! 지운아!”
“흑-”
우는 시늉을 하며 자리를 이탈하는 지운이 형의 능글맞은 반응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성격을 보여 주기 충분했다. 게다가 제삼자의 입에서 나오는 캐해는 또 팬들끼리 하는 거랑은 다른 재미니까.
-세찬몰잌ㅋㅋㅋㅋㅋ
-지운이 귀여웤ㅋㅋㅋㅋㅋ
-지운이 편한 애들이랑 있으니까 완전 깨발랄해.
-세찬이 울겠닼ㅋㅋㅋㅋ
“형들 진짜 못됐죠! 연습할 때도 맨날 놀려 먹고-”
“아니, 세찬이 놀릴 때 반응이 너무 재밌다니까요?”
“맞아. 리액션이 아주~”
“진짜 귀여운 동생이에요.”
“‘병 주고 약 주고’예요, 형!”
나를 제외하고는 다 처음 하는 라이브 방송이어서, 진행에 문제가 생기거나 너무 노잼이면 어쩌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 평화로운 방송이었다.
“시간이 3분 정도 남았대요.”
“가기 싫다…….”
“아쉬워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마지막으로 댓글 몇 개 읽고 갈까요?”
“좋아요!”
“‘성재야, 감전춤 춰 줘’라고요? 자, 보세요!”
‘눈부셔’ 안무를 보여 주며 현란한 감전춤을 보여 줬다. 댓글창이 웃음으로 가득했고, 지운이 형도 이수빈의 뒤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웃었다.
“지운이가 제 감전춤 엄청 좋아해요.”
“지운이 형 울엌ㅋㅋㅋㅋㅋㅋㅋ”
-차지운 오열쇼ㅋㅋㅋㅋ
-지운아 울다가 웃으면...더보기
“우리 캡처 타임도 해야 해요.”
“캡처 타임?”
“1분 남았다, 다들 화면 보고 포즈 취해요.”
-승빈이를 국회로
-잘한다 승빈아!!!
-승빈이 프로 아이돌이야ㅠㅠㅠ
-애들아 볼하트해줘어어어
“자, 다음은 볼하트!”
그렇게 몇 가지 포즈를 더 하고 방송이 종료됐다. 마지막 팀의 방송까지 마치고 난 후, SNS와 팔로워 반응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우리 방송이 가장 유잼이었다는 반응이었다.
짜릿했다. 사실 티벡스 시절 했던 에이라이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반응을 해 주는 모습을 보니, 정말 못 할 게 없었다. 내가 이렇게 관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조차도 매번 새로운 내 모습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 * *
방송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다들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평소보다 텐션이 한 단계씩 올라가 있었다.
“나 아직도 꿈같아.”
“저도요. 현실감이 안 들어요.”
“데뷔하면 꼭 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게 되니까 너무 감격스러워요.”
“아우, 근데 15분 진짜 너무 짧아! 나중에 데뷔하면 나 혼자 최장 시간 방송 도전한다.”
“하루 종일 하는 거 아니야?”
“성재 형이라면 가능할 듯?”
다들 각자 숙소로 돌아가고, 지운이 형은 우리 숙소로 함께 갔다. 1차 순발식으로 형네 방에서는 2명이 방출되고, 다른 한 명도 부상 때문에 잠시 합숙소를 떠난 상황이었다. 마침 우리 숙소에서는 한 명만 나가서 취침 시간 전까지는 우리 숙소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어, 지운이 안녕!”
“형도 빨리 왔네요?”
“응, 어차피 5분밖에 안 해서!”
또 나왔다, 저 악의 없이 불만을 표출하는 얼굴. 분명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지 않는 얼굴.
“어떤 거 했어요?”
“몰라, 강도현이 밸런스 게임 이해 못 해 가지고 그거 설명하다가 다 끝났어.”
“밸런스 게임 모른대요?”
“어, 토마토맛 토랑 토맛 토마토 설명하다가 방종해서 스태프분들도 어이없어하셨잖아.”
“그 정도였어요?”
“야, 토마토맛 토랑 토맛 토마토 중에 뭐 고를 거냐고 하니까 그걸 왜 먹냐고 묻더라? 진심으로 꿀밤 때릴 뻔했잖아.”
“형은 알죠?”
“그게 뭐야?”
누가 봐도 모르는 사람인 지운이 형의 반응에 선우 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애써 분노를 삭이는 표정이었다. 강도현에게 설명하던 순간이 떠오른 모양이다.
“지운아, 미안하다. 평소였으면 내가 설명해 줄 텐데 그냥 검색해 봐. 나 지금 완전 기 다 빨리고 왔으니까.”
“형이 기가 다 빨리는 날이 오네요.”
“그나저나 내일 2차 경연 방영하네.”
“그러게, 우리 이제 5회밖에 안 남았어.”
“이번 경연 때 지운이는 완전 떡상하겠던데?”
“고마워, 너도 무대 엄청 잘했잖아.”
“맞아요, 형 이번에 완전 반전이었어.”
칭찬을 받으니 조금 전에 강도현 때문에 찡그리던 얼굴은 어디 가고, 다시 입꼬리를 씰룩인다. 하여간 단순하기로는 원탑이다.
“내가 좀 멋있긴 했지?”
“하여간, 칭찬하는 족족 낚아채네.”
하지만 선우 형의 이번 무대는 정말 멋지긴 했다. 평소에도 낮다고 생각한 저음에서 더 내려간 소리는 내가 들어도 충격이었다. 사실, 선우 형의 진지한 모습을 거의 처음 봤기 때문에 더 인상 깊었던 거일지도 모른다.
항상 나사 하나 풀린 거 같았는데, 무대에서 보여 준 눈빛이나 범접할 수 없는 포스 때문에 무대 뒤 형이 적응 안 되긴 했다. 물론,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는 바로 내가 알던 형으로 돌아왔지만.
회귀 전에도 데뷔에 성공한 형이었지만, 강도현이 출연하면서 전보다 더 좋은 무대가 나올 수 있었다. 어쩌면 더 높은 등수로 데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차 순발식이 끝나고 절반이 지났다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드디어 내일이면 7화가 방영한다. 아마 큰 변수가 없다면 우리 팀 무대가 첫 주차에 방송되겠지. 지운이 형의 무대가 세상에 공개될 순간이 이렇게 기대될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보다도, 지운이 형의 보컬 실력을 보고 놀랄 사람들의 반응이 더 궁금했다. 아마 이번 무대가 방송되고 나면, 지운이 형도 나도 데뷔 안정권에 들 거 같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모여서 어떤 불안함도 없이 웃고 있다는 게 새삼 비현실적이었다. 계획한 대로 하나하나 이루어 간다면, 형과의 데뷔도 멀지 않은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과거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변한 것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이었기에 서로 무대에 대한 이야기, 고민거리, 시답잖은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12시가 넘어갔다. 지운이 형은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오늘 재밌었어.”
“나도. 오랜만에 얘기 실컷 한 거 같다.”
“잘 자!”
“형도 잘 자요!”
방을 나서는 형의 뒷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제는 저 뒷모습을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앞으로 더 올라갈 형의 미래와 그 옆에서 함께하는 내 모습에 확신이 들기 시작한 거겠지. 숙소에 들어온 후로, 가장 편안한 밤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씨넷 홈페이지엔 글 하나가 올라왔다.
[투마월 시즌 2 차지운 연습생의 과거를 폭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