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야, 근데 승빈이는 화면 진짜 안 받는다.”
씨더스타 자컨 영상이 올라오길 기다리면서 위튜브를 둘러보던 이수정이 동생에게 말했다. 문승빈의 1차 경연 직캠이었다. 메이크업을 하고 선 무대임에도, 쌩얼로 마주했던 그날의 충격적인 얼굴과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저것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잘생겼는데. 방송국 카메라가 구린 건가. 어떻게 저 얼굴을 저렇게 밖에 못 담는 거지?
“맞다, 언니 문승빈 실제로 봤었지?”
“응, 그때 모자 썼는데도 이목구비가 안 가려지더라. 엄청 말랑하게 생긴 거처럼 나와서 실제로도 맹숭맹숭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대박, 그럼 윤빈이는 얼마나 빡세게 생긴 거야?”
“넌 모로 가도 윤빈이냐?”
“솔직히 말해서 언니도 재봉이 대입해서 생각해 봤잖아.”
이수정은 동생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티비에서는 오밀조밀하고 아기같이 생겼다 해도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남자답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 건 사실이니까. 언제쯤 재봉이를 실제로 볼 수 있으려나. 입덕하고 나니 그날 문승빈을 마주한 게 정말 기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올라온 [투마월 연습생 배 씨더스타 대전]을 보던 이수정과 그녀의 동생은 각자 자신의 최애가 상위권 팀이 되어 에이앱 방송을 하길 손 모아 기대하고 있었다. 여러 연습생의 대결 장면이 지나갔고, 게임 방송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도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뭐지, 마지막 대결이 시작되는데 영상 시간이 겨우 30초도 안 남았다. 설마 결과를 안 보여 주고 끝내는 건가 의아해하는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화면이 까매지더니 자막이 떴다.
[과연 우승 상품을 얻을 세 팀은?]
-뭐야?
-안 나와?
-내놔ㅅㅂ
[영상이 끝나고 1시간 뒤 에이앱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 이게 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한시간 기다려야 하는거임?
-최애 안 나오면 그냥 에이앱 1시간 기다린 사람 되는거임?
“근데 우리 재봉이네가 우승하기를 바라고는 있는데, 에이앱이 대체 뭐야?”
“에이앱도 몰라?”
“그걸 왜 알아?”
“와- 이 언니 진짜 갓반인이네.”
이수정은 박재봉 덕질을 시작하면서 매일 신문물을 경험했다. 동생이 옆에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봐라-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위튜브나 겨우 보면서 덕질했을 것이 뻔했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취미는 ‘씨더스타’였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그녀는 처음 해 보는 아이돌 덕질에 푹 빠졌다. 첫 아이돌이다 보니 이것저것 해 주고 싶은 것도 많고, 뒤처지는 것도 싫어서 맹연습 중인데 쉽지 않긴 했다.
“실시간 스트리밍 같은 거야?”
“응, 팬들 댓글로 소통하는 거야.”
“그럼 댓글 쓰면 읽어 줘? 막 대화하고 그런 거야?”
“와, 이 머글을 어쩜 좋아, 어디 한번 댓글 써 봐.”
“너, 나 놀리는 거지.”
“그럴 리가요. 근데 운 좋으면 읽어 줄 수도 있어.”
“근데 재봉이가 나올까?”
“글쎄? 윤빈네 팀은 무조건 나올 거 같은데.”
“문승빈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예고했던 1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에이앱 알림이 떴다.
[팔로워님들 안녕하세요!]
-제발 청춘예찬 팀
-도현이 라이브하는 거 보고 싶어.
-재봉이 나왔으면...
아직 화면에 연습생들이 나오기 전부터 댓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누구야?
-안녕 애들아!!!!
-뭐야 언제 나와
-누구 나와?
-나온다
-미친 윤빈아!!!!!
-윤빈아ㅠㅠㅠ
“아, 미친 윤빈이다.”
“역시 윤빈네 팀이 1위 했네.”
예상한 결과였다. 윤빈이 저렇게 게임을 잘할 줄 몰랐거든. 혼자서 하드 캐리하고 연속 클리어하는데, 내 것도 대신 플레이해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수정의 동생 수진은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댓글을 올렸다. 동생의 최애는 윤빈이었다.
“야, 댓글 써도 못 볼 거라며-”
“조용히 해.”
“웃겨, 진짜.”
아직 에이앱 방송이 시작된 걸 모르는 눈치인지 연습생들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도 다들 입꼬리가 저 위까지 승천할 기세였다. 윤빈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는지 자꾸 입을 모으는데, 이수정 동생이 감탄했다.
“아, 이래서 신인 덕질하지.”
“왜?”
“뭐가 왜야, 지금 에이엡 처음 해 봐서 모든 걸 신기해하고 있는 저 똘망똘망한 눈을 봐. 저건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귀한 눈이라고.”
이수정은 의아했다. 원래 아이돌은 다 이런 거 아닌가? 저게 저렇게 감격스러울 일인 건가- 아직 돌판 생태계를 잘 모르는 순수한 그녀였다.
“시작된 거예요?”
“우와, 벌써 300분이나 들어왔어요!”
-귀여웤ㅋㅋㅋㅋ
-300명으로 좋아하는 거야?
-이제 숫자 우르르 올라갈텐뎈ㅋㅋㅋㅋ
“지금 1만 명 넘었어!!”
“5만 명인데?”
“대박…….”
“다 우리 보러 오신 거야?”
“야, 야. 인사부터 해야지.”
“맞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안녕 애들아!!!!
-윤빈아!!
-왼손으로 볼을 찌르고 한쪽 눈을 감을 수 있습니까?
-ENG Plz
-아 뭐야 1시간 기다렸는데
-점심 뭐 먹었어??
“우와, 댓글 속도가 너무 빨라요!”
“신기하다-”
“저희가 씨더스타 대회 1위를 해서 이렇게 에이앱으로 팔로워분들을 만나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소통도 하고, 같이 게임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멘트 하나하나에 두 눈을 반짝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리액션하는 모습을 보자니, 이수정도 동생의 말이 조금 이해 가기 시작했다.
“씨더스타 들어가 보니까 엄청 재밌는 아이디들이 많더라고요.”
-헐
-그걸 봤어?
-ㅁㅊ 상위권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이디 바꾸는 방법 없어?
-내꺼도 봤나?
“언니는 아이디 뭐야?”
“나? ‘재봉아 빨머해줘’.”
“엥? 그거 언니였어?”
“응.”
“X나 능력자였네, 나 좀 도와주라.”
그때 윤빈과 같은 팀인 성민호가 말했다.
“맞아, 막 ‘재봉아 빨머해줘’? 그런 것도 있었고.”
“어머, 미친. 쟤 지금 내 얘기한 거야?”
“재봉이가 그거 보고 자기 빨머 어울리는지 엄청 물어보고 다녔잖아.”
“미친…….”
이런 게 아이돌 덕질의 묘미인가? 최애는 아니지만, 인기 있는 아이돌이 자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말한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이수정이 빨간 머리에 집착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본 재봉의 빨간 머리 보정 사진 때문이었다. 재봉의 뽀얀 피부와 붉은 머리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머리에 불꽃이 피운 것 같았다. 실제가 아니었음에도, 그 머리가 찰떡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나 그것도 감동이었어.”
“어떤 거?”
“‘와우 엔터테인먼트 성민호 투표해주세요’ 님이었는데, 내가 볼 때마다 순위가 올라가 있어.”
-ㅁㅊ 내꺼 본거임?
-맞아, 저 사람 나도 기억함ㅋㅋㅋㅋㅋㅋㅋㅋ
-하루종일 씨더스타만 하나봄
-강도연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뒤에 무언가 있습니다.
“근데 한국어를 왜 저렇게 해?”
“해외 팬들이 번역기 돌린 거라서 그럴걸?”
“해외 팬들도 볼 수 있어?”
“와, 머글 냄새에 질식할 거 같아.”
“이거도 되게 센스 있다. ‘윤빈아 네가 내 끝사랑이다’.”
이번엔 이수정 동생이 자리에서 말 그대로 뛰어올랐다.
“아, 미친 쟤 누구야. 영진이, 그래, 영진아, 고맙다!!”
“뭐야, 네 아이디야?”
“어!!”
윤빈이 아이디를 천천히 읽어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곤 민호에게 물었다.
“근데 끝사랑이 뭐야? 끝이 end고 사랑이 love니까, 사랑이 끝나? 그럼 나랑 사랑이 끝났다는 거야?”
“네?”
“뭐? 무슨 소리야, 윤빈아!”
-아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ㅈㄴ귀여워 미쳤나봐
-누가 저걸 저렇게 해석햌ㅋㅋㅋㅋ
“형 끝사랑은 사랑이 끝난다는 게 아니라, 끝이 마지막이잖아. last! 그니까 형이 last love라는 거지.”
“음, 그럼 내가 허즈밴드인 거야?”
윤빈의 허즈밴드 발언에 동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더니, 이수정에게 뺨 한 대만 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거 꿈 아니냐고.”
“진짜 때리기 전에 정신 차리세요.”
“X발 허즈밴드래… 남편이래…….”
-허즈밴드?? 지금 쟤 허즈밴드라고 한거임??
-나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윤빈 도랐나......... 이 FOX................
댓글 반응도 엄청났다. 안 그래도 특유의 쾌남 바이브와 훌륭한 피지컬, 훈훈한 외모로 투마월에서는 남친 롤로 가장 잘 먹히는 연습생이었는데 허즈밴드라니. 이건 그냥 대놓고 윤결단 만들겠다는 거였다.
“나 이제 유부녀다.”
“뭐래, 진짜.”
“내가 되고 싶어서 유부녀야? 윤빈이 내 허즈밴드, 남편이라잖아!”
이수정은 지금껏 동생이 영원을 약속했던 수많은 최애들을 떠올리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윤빈의 충격적인 발언을 뒤로하고, 이어서 연습생들끼리 각자의 추천곡을 게임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 윤빈이 월등한 실력이었다.
“쟤는 밥 먹고 게임만 하나?”
“뭐래, 윤빈이가 얼마나 연습 벌레인데.”
손도 다른 연습생들보다 1.5배는 큰 거 같은데 놓치는 것 하나 없이 빠르고 섬세하게 클리어했다.
-게임 개 잘해;;
-게임하는 만큼 연습 좀 해 윤빈아.
-어그로 끄는 새끼들은 뭐임?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축하해보십시오.
“벌써 5분밖에 안 남았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쉬워.”
-30분이 뭐냐 진짜;;
-당장 1시간으로 늘려
-가지마아아아아아아
“저희도 진짜 가기 싫어요-”
“맞아, 하루 종일 하고 싶어요!”
-데뷔시켜줄게ㅠㅠㅠㅠㅠ
-데뷔하면 하루 종일 해주기다 애들아.
“데뷔하면 몇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면 진짜 좋겠다.”
데뷔 얘기가 나오자 미묘하게 분위기가 다운됐다. 윤빈은 상위권이니 데뷔를 노릴 만하지만, 나머지 연습생들은 3차 경연도 간당간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수정의 동생은 조금 피가 말렸다. 자칫하다가는 하위권 연습생들 사이에서 혼자 상위권이라 이유 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습생들이 팬들 한 먹인다는 말까지 나오면 더 최악인 거다. 다행인 것은 연습생 본인들도 바로 눈치를 챘는지, 대화 주제를 빠르게 바꿨다.
“곧 2차 경연도 방송되잖아요!”
“맞아, 저희 진짜 열심히 준비했어요.”
“우리 무대 엄청 멋있었잖아.”
-뭐야 궁금해.
-스포 좀 해줘.
무대에 대해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시간이 다 됐다는 스태프의 사인이 떴고, 마지막 인사와 함께 방송이 종료됐다.
“이제 2등 팀 나오는 거지.”
“재봉이, 제발.”
[보고 싶었어요, 팔로워님들! (강아지 이모티콘) (여우 이모티콘)…….]
“강아지? 문승빈인가?”
“승빈이?”
“그런 거 같은데?”
동생의 예상대로 ‘청춘예찬’ 팀이었다.
“의외네, 차지운이 너무 못해서 당연히 아닐 줄 알았는데.”
“마지막 곡에서 점수 엄청 따 왔나 봐.”
-승빈이다아아아아
-지운아!!!!!!!
-얘네 어떻게 2위한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카메라 각도 무슨일이얔ㅋㅋㅋㅋ
모두의 의아함과 함께 청춘예찬 팀의 에이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