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청춘예찬 팀,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는데요. 성재 군, 괜찮아요?”
“아우, 주책맞게 눈물이. 네, 괜찮습니다!”
“에이, 저는 이미 밑에서 울고 올라온걸요.”
“감사합니다!”
“이런 무대를 보여 줘서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럼 차지운 연습생, 이번 무대 어떤 생각으로 준비했나요?”
차지운이 잠시 망설이자, 문승빈이 재빨리 멘트를 쳤다.
“지운이 형은 연습생 경험은 없었지만, 댄서 생활을 하면서 저희랑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오직 춤이 좋아서, 미친 듯이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준비해 봤습니다.”
팀원을 배려하는 자세까지 갖췄다니. 문스트럭은 진지하게 내가 쟤를 낳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거쳐 온 모든 최애들을 내일 없이 사랑했다고 자부했지만, 이런 감정까지 들게 한 것은 문승빈이 처음이었다.
“저희 청춘예찬 팀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선물해 주신 팔로워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여러분의 청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동적인 문승빈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청춘예찬 팀이 퇴장했다. 무대에서는 다음 무대 준비가 이어졌지만, 문스트럭을 포함한 주변의 승프들은 앓는 소리로 가득했다.
“내 새끼 어쩜 말도 잘해.”
솔직히 말해서 바로 앞 무대에서 박현수 연습생이 너무 잘해서 긴장하고 있었다. 현장이 떠나가라 고음을 하는데, 자칫하다간 이번 무대로 메인 보컬 롤로 미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실력으로도 뒤지지 않고, 더 참신한 무대를 준비하다니. 기특한 마음뿐이었다.
애써 정신을 다잡고 바로 청춘예찬 팀에게 투표했다. 성민호 최애인 분도 청춘예찬과 문승빈을 투표하는 걸 보고 나서야 문스트럭은 긴장이 풀렸다. 안 그래도 문승빈이 피디픽이니, 노래를 후보정했느니 하는 악플러들이 생기던 시점이었기에 성공적인 라이브 무대가 간절했다.
몇 개의 무대가 이어진 후, 세트를 교체하는 동안 1차 경연에서 탈락했던 일부 연습생들이 앞으로 나와 시그널 송 ‘눈부셔’ 안무를 췄다. 지루한 대기 시간이 조금이나마 활기를 찾았다.
1차 순발식이 방영되기 전에 방청 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자신의 최애가 떨어졌음에도 차애나 다른 최애를 잡기 위해 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잡은 최애는 쉽게 놓을 수 없는지 문스트럭 옆에 있던 여자가 나지막이 탄식했다.
“승훈이는 여전히 귀엽네…….”
그리고 이어진 무대는 강도현과 박선우가 있는 ‘나침반’ 팀이었다. 인기 연습생의 등장에 현장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 * *
쏟아지는 함성 소리와,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긴장과 함께 다리 힘이 풀렸다.
“괜찮아?”
“네, 긴장이 풀려서-”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팀과 노래 선정, 연습 과정과 리허설까지도 마음 편하게 보낸 순간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고, 마침내 해냈다.
현장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장소로 향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응원해 줄 사람들과 함께한 무대였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도 지운이 형이 높은 등수라면 베스트고.
“이미 와 봤던 곳인데, 올 때마다 적응이 안 돼.”
정세찬이 성재 형의 긴장을 풀어 주며 말했다.
“우리 팀이 1위 할 게 분명해서 개인 등수는 별로 신경 안 쓰이는걸.”
“오~ 그 정도였어?”
“당연하죠!
그때, 투표 수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청춘예찬 개인 순위]
5위 : 정세찬 (50표)
4위 : 이수빈 (65표)
3위 : 문승빈 (100표)
“승빈이 형이?”
“승빈이가?”
“엥?”
다들 놀란 와중에 정작 나는 덤덤했다. 대충 예상했다. 순위가 높아질수록 견제가 심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2차 경연은 특히나 견제표가 난무하는 경연이기 때문이다. 시즌마다 가장 충격적인 경연 결과가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모두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1위는 당연히 나고, 다들 그룹 베네핏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3위를 하니 본인들도 의아하겠지.
“저 진짜 괜찮아요.”
“너 오늘 진짜 최고의 메인 보컬이었어.”
“당연하죠-”
조금은 뻔뻔하게 받아치니 팀원들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1위의 주인공을 가릴 때가 왔다. 사심을 담는다면 지운이 형이 1위를 해서 개인과 팀 베네핏을 모두 받길 바랐다. 하지만 성재 형이 받게 되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할 거다.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까.
“뭐가 이렇게 긴장되냐…….”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누가 1위해도 기뻐해 주는 거예요.”
“당연하지.”
다시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떴고, 3.2.1-
[청춘예찬 개인 순위]
2위 이성재 (130표)
1위 차지운 (170표)
“우와!!!”
“지운이 형, 축하해요!”
“잘했어!!”
지운이 형 주위로 모두 모여 얼싸안고 축하해 줬다. 나도 미션 하나를 완수한 기분이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차지운 떡상시키기 프로젝트’ 말이다. 와중에 지운이 형은 성재 형 때문인지 온전히 1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저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 건지.
“성재 형…….”
“야, 나 2등 했거든? 살면서 얻은 등수 중에 제일 높으니까 분위기 잡지 말고 빨리 축하해, 너네도 뭐 하냐? 빨리 축하해 줘-”
“축하해요, 형”
“형, 최고였어요-”
방송에서는 코믹한 캐릭터로만 나와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어른스러운 형이었다. 회귀하고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몰랐던 사실을 하나둘 알아 간다. 컷 사인을 받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에도 무대와 결과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 내내 눈물 참느라 혼났잖아.”
“형은 결국에 울었잖아요~”
“안 울었거든?”
“지운이 형도 안 울어서 다행…….”
“지운이 형 어디 갔지?”
그새 먼저 대기실로 간 건가? 팀원들과 함께 돌아갔지만, 대기실에서도 형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화장실이 급했나?”
여러 말이 오가는 와중에 지운이 형이 들어왔다. 누가 봐도 울어서 부은 눈으로.
“뭐야- 차지운 또 울었어?”
“이제 무대 끝났으니까…….”
무대 내내 참았던 감정과 1위를 한 것에 대한 기쁨이 한 번에 터진 듯했다.
“어떡하냐, 지운이 완전 찐빵처럼 나올 듯.”
“안 되는데-”
“자자, 다들 그만 놀려요. 형, 부기 빼는 데에는 귀밑에 여기 눌러 주는 게 최고예요.”
“오, 역시 요즘 괜히 잘생겨진 게 아니라니까?”
얼굴 부기 빼는 데에는 도가 텄다. 연습생 시절 식단 관리하다가 몰래 야식으로 라면 먹고 나서 다음 날 안 걸릴 방법을 찾다 보니 별걸 다 해 봤거든.
“고마워.”
“잘 참았네, 그래도!”
“뭐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맞다. 나 이거 궁금해. 다들 뭐 생각했어?”
나는 별생각 안 했다. 울컥할 거 같으면 정말로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 훈화 장면을 떠올렸다. 이건 데뷔 무대 전에도 너무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썼던 방법인데, 언제나 효과 만점이다.
역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다. 성재 형은 자신의 대면식 무대를, 정세찬은 누나의 잔소리, 이수빈은 자주 보는 개그맨을 떠올렸단다. 하지만 지운이 형의 답이 제일 가관이었다.
“난 우리 조카 처음 안아 본 날.”
“조카?”
“우리 조카가 아직 아기야. 근데 순해서 다른 어른들이 안아도 안 울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번 안아 봤는데… 내 얼굴 보자마자 울더라고.”
“그걸 떠올렸다고?”
“울지 말라고 최대한 방긋 웃으면서 안았는데 애는 울지, 나는 당황해서 쩔쩔매고 있는데 가족들은 다 웃고.”
하긴 그 얼굴에서 착해 보이겠다고 분명 인위적인 미소 지었을 텐데, 아기가 안 울고 배기겠냐고.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혼자 아기 달래려고 고군분투했을 형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씨, 상상하니까 웃기네.”
“안 터지고 어떻게 참았음?”
“다른 의미로 울음 참느라 힘들었겠어요.”
다소 엽기적인 조언이었지만, 팀원들 모두 효과를 봐서 다행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났다는 것에 완전히 안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팀의 무대를 응원할 시간이었다.
* * *
충격적이었던 문승빈네 무대 이후로는 눈에 띄는 무대가 없었다. 이건 자신이 콩깍지가 씌어서가 아니라, 정말 처참했다. 포지션 평가가 원래 이런 맛이기는 했다. 한 가지 포지션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거 못하면 끝장이라는 소리였다.
노래를 못하면 춤으로 커버하거나, 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면 노래라 랩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는 등의 요행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포지션 평가는 연습생 개인의 실력이 두드러지는 경연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루해하던 현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랩 포지션 평가가 시작되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강도현네 팀이었다.
“강도현!!!!”
“선우야!!”
강도현은 능숙하게 자기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인사하거나, 포즈를 취하는 등 잔망을 부렸다. 역시 1군 중의 1군이라는 건가. 그런데 문스트럭이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박선우의 얼굴 크기였다. 방송이나 목격담 사진만 봐도 얼굴이 작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했다.
“와, 근데 박선우 얼굴 진짜 작네-”
“그쵸, 저 1차 때는 선우 있는 줄도 몰랐잖아요.”
“저 정도면 얼굴이 예의상 달려 있는 거 아니에요?”
“그니까요. 그래서 선프들이 맨날 우스갯소리로 박선우는 실물을 봐도 봤다고 할 수 없다고 그러잖아요.”
‘나침반’ 팀의 의상은 시그널 송과 비슷한 항해사 컨셉이었다. 하지만 시그널 송 의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강렬한 마린룩이었다. 얼굴에 상처 분장을 한 연습생도 있었다.
“이번에 준비한 곡이 ‘항해의 시대’죠?”
“네! 마침 투마월의 주요 테마가 또 항해잖아요? 그래서 의상도 항해사 느낌이 나게 입었고, 서바이벌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겠다는 저희의 포부를 가사에 담았습니다!”
“오, 기대가 되는데요. 박선우 연습생, 팀 분위기는 어땠나요?”
“최고였습니다!”
강도현과 박선우의 조합에 모두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문스트럭도 둘의 목소리 합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선우의 실력이 가장 궁금했다. 강도현이야 대면식 무대부터 화제였고, VM 에이스라고 알려진 만큼 잘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선우는 대면식 때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1차 경연 때도 파트가 적은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얼굴이 제일 유명한 수준이었다. 목소리는 참 좋은데 말이지.
“그럼 마지막으로 무대를 앞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제대로 한번 놀아 보겠습니다!”
강도현 특유의 활기참이 드러나는 포부였다.
“그럼, 나침반 팀의 무대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