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3화 (33/346)

33화

연습을 하는 내내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계속 가능성이 될 법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여러 시도를 해 봤지만,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하기는 어려웠는지 횟수가 채워지지 않았다.

[남은 시간 : 15시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아예 실패한다면 조급하지도 않을 텐데, 하나 남기고 진전이 없으니 목이 타서 물만 연신 들이켰다.

“형, 저 가사 쓴 거 좀 봐주실래요?”

“맞다. 각자 가사는 다 완성했어?”

“나는 아직.”

“저도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요.”

“그럼 세찬이가 쓴 거부터 볼게.”

정세찬이 내민 노트에는 여러 번 썼다 지운 흔적이 가득했다. 천천히 읽어 보는데, 솔직히 놀랐다. 표현이 담백하면서도 시적이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진짜 작사가가 쓴 가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잘 썼는데?”

“괜찮아요?”

“응, 지운이 형한테 조언 얻어서 조금만 수정하면 완벽할 거 같아.”

지운이 형의 작사 실력은 티벡스 시절 타이틀, 수록곡을 자체 제작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괜히 취미가 시집 읽기가 아니었다. 형과 함께 작업하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더 빛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세찬아, 작사 경험 있어?”

“아니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가사 쓰는 거에 소질 있는 거 같아!”

“에이, 이 형 또 과장한다.”

팀원들의 칭찬에 손사래 치는 정세찬이었지만, 기분이 좋은 건 숨길 수 없는지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이후 각자 완성한 가사를 지운이 형과 정세찬이 표현과 글자 수에 맞는 단어를 넣는 등 수정했다. 다들 쪽잠에 든 때에도 둘은 열정적으로 가사를 정리했다. 경연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들 세면 도구를 들고 와서 아예 연습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뜰 무렵, 지운이 형이 나와 다른 팀원을 깨웠다.

“다 완성했어.”

“지금까지 안 잔 거예요?”

“어쩌다 보니……?”

“세찬이도?”

“응.”

밤을 꼴딱 새웠다는 소리에 다른 팀원들을 급히 깨웠다. 빨리 확인하고 저 둘을 좀 재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완성된 가사는 최고였다. 읽다가 연습생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울컥할 뻔했다.

“이거 내가 쓴 가사 맞아?”

“대박이다.”

“원래 가사가 이미 좋아서 많이 안 바꿨어.”

“형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에요.”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려다보니, 상태창이 반짝이고 있었다.

[3번의 가능성] +1

[3/3]

[MISSION CLEAR!]

‘됐다!’

“나 잠깐만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둘은 좀 자요, 이제. 몸 상하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세찬은 바닥에 쓰러져 잠을 청했고, 지운이 형도 안대를 들고 와 잠을 청했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맨 끝 칸으로 달려 들어갔다. 상태창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보컬 포인트 1 추가해 줘.”

[이름: 문승빈]

외모: B+

끼: C+

보컬: B+ →A-

댄스: B-

프로듀싱: C-

언제 오른 건지 프로듀싱도 한 포인트 더 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무대 구성을 짜고, 팀원들을 도운 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박현수의 보컬 스텟이 A-였기에 보컬 자체 실력에 대한 고민도 해소됐다. 스텟이 똑같은 단계라면, 노래를 씹어 먹을 소화력의 내가 훨씬 유리할 테니까. 경연 날까지 노래 포인트를 5칸 모두 채운다면, 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제 2차 경연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 * *

‘To My World’ 6화가 방영하는 날, 문스트럭은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순발식을 지켜봤다. 첫 번째 순발식으로 살아남을 인원은 총 50명. 가장 최근 문승빈의 등수를 떠올렸다. 지난주 방송 마지막에 나온 순위는 8위였다. 상위권이지만, 데뷔 안정권에 들기 위해선 조금 아쉬운 등수였다. 등수가 발표된 후 그녀는 영업 글을 작성하거나, 투표 이벤트를 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자신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등수에 좋은 영향을 주었길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익숙하게 듀얼 모니터를 설정해 실시간으로 반응을 모니터링했다.

-이번에도 소속사 연습생들끼리 들어오려나?

-이번엔 누가 흑역사 만들지 궁금하네.

투마월 시즌 1에서는 순발식마다 같은 소속사 연습생끼리 동시에 입장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때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행동을 하는 연습생도 있었고, 함께 준비한 퍼포먼스를 하는 연습생도 있었다. 그래서 문스트럭의 최대 관심사는 문승빈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였다.

개인 연습생이기에 다른 개인 연습생들과 나올 게 뻔해서 내심 아쉬웠다. 요즘 케미로 반응이 오는 조합으로 나오면 더 임팩트 있는 분량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녀의 아쉬움은 연습생 입장과 동시에 해소됐다.

-왜 이렇게 떼거지로 나와?

-쟤네 ‘달려갈게’ 바운스 팀 아니야?

-팀별로 나오려나 보네?

-지운이 흑발했어!!

1차 경연 팀 조합 그대로 등장하다니! 사제 케미를 보여 줬던 김형석이나, 인지도 최상위권인 강도현과 함께 나오게 될 걸 생각하니 벌써 행복해지는 문스트럭이었다.

바운스 팀은 팀 이름에 걸맞게 한 명씩 통 통 튀어나왔다. 대부분 뻔뻔하게 해냈지만 차지운만이 두 귀가 터질 듯 부끄러워하며 소심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다. 문스트럭은 처음으로 차지운에게 눈이 갔다. 빡세게 생겨서 저런 거 못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귀까지 빨개지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덕후의 마음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차지운 귀 터질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운스라서 저러는거야? 귀엽넼ㅋㅋㅋㅋ

-지운이 부끄러운가봐ㅠㅠ 갭차이에 치이네

-아 차지운 똑바로 뛰었으면... 다른 애들은 안 부끄럽다고 저러는 줄 아나

역시나 실시간 불판은 빠와 까의 콜라보였다. 다음은 전우치 팀이었다. 박재봉이 윤빈의 등에 업혀서 등장했다. 윤빈이 걸을 때마다 박재봉 센터 모자의 깃이 펄럭였다. 아크로바틱을 할 줄 아는 연습생들이 있어서 양옆에서 날아다녔다. 공중제비에 놀란 연습생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고, 마치 개그 프로그램 같은 편집이 웃음을 자아냈다.

-재봉이랑 윤빈이 덩치차이봐

-재봉이 ㅈㄴ 한줌이네ㅠㅠ

-모자 안 떨어지게 잡는거봐ㅠㅠ귀!여!워!!!

-서커스단임?

-ㅈㄴ 잘 돌아 팽이인줄

전우치 팀에 걸맞은 재치 있는 등장이었다. 다음으로 ‘수트의 정석’ 팀이 등장했다. 정유현을 필두로 워킹을 하며 등장했고, 자막으로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드는] 따위의 문구가 나왔다.

-기럭지들 보소

-유현이는 왕자님이야?

수트의 정석 팀이 착석을 마치고, 드디어 샷건 팀의 차례가 왔다. 문스트럭은 움짤을 만들 준비를 마치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강도현과 문승빈을 가운데로 두고 나머지 연습생들은 요원이 된 것처럼 총을 쏘는 시늉을 하거나, 주변을 살피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 무대 맨 앞에 도착해서는 강도현과 문승빈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이번에는 문승빈이 쓰러졌다. 밑에는 [등장에 누구보다 진심인 샷건 팀] 자막이 떴다.

-이게 이렇게 진심일 일이야?

-암살 엔딩이야?

-승빈아 배우하자

-무대 해석본 읽고 왔더니 알아서들 새로운 결말을 가지고 오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가 그 강도현과 아이들인가요?

-그프들은 왜 그러는 걸까?

-문프들이 더 유난인데

-문프아니고 승프, 승빈 프로사랑꾼이라고 ㅅㅂ

실시간 불판은 난리가 났지만, 그녀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샷건의 무대는 여러 가지 해석본이 나오면서 머글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퍼포먼스를 가져온 것은 똑똑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강도현과 함께 투샷이 잡히면서 둘의 케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었다. 일단 3차 투표 전까지는 여러 명씩 뽑을 수 있으니 케미를 활용해서 데뷔 안정권에 드는 것도 좋은 전략이었다. 물론 3차에 가서는 코어가 들통 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승빈이는 스쳐 지나가면서 봐도 코어상이니 걱정할 건 아니었다. 그녀의 레이더는 언제나 정확했으니까.

이로써 모든 연습생이 등장했다.

“본격적인 순위 발표에 앞서 이번 시즌의 데뷔 인원을 공개하겠습니다!”

“오, 드디어 공개하네.”

-9명 아님?

-9명이겠지;;

-근데 이렇게 질질 끈 거 보면 다른 거 아니야?

┕설마 더 줄어들겠음? 난 11명 간다.

그리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순위석이 공개됐다. 문스트럭은 반짝이는 의자 수를 세다가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이번 데뷔조는 7명입니다!”

“7명?”

-미친놈들아 7명?

-장난함?

-7명을 누구 코에 붙여 ㅅㅂ

┕시즌1 9명도 ㅈㄴ 고르기 힘들었는데 7명이 웬 말임?ㅠㅠㅠ

-강도현 정유현 차지운은 확정이고 알아서들 4명 잘 뽑아보쇼.

┕이 무슨 아이미 박유신 그리고 TCN 172 같은 소리임?

역시나 데뷔조 인원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문스트럭은 순간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다가 1차 순발식 데뷔조 못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30위까지 발표된 후 잠시 쉬어 가는 타임으로 귀신 테스트가 나왔다.

-이거 또 함?

-아이디어 고갈났나봄

┕이제 겨우 시즌2인데?

덤덤한 연습생, 너무 놀라서 말을 잃은 연습생 등 다양한 반응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고진감래 끝에 드디어 다음 주자는 문승빈이었다. 튀어나오는 귀신과 아이템에도 멋쩍게 웃어넘기거나, 잠시 몸을 떨긴 했지만 무난하게 지나갔다.

-승빈이 담력 쎄네

-경연날 보면 기존쎄라니까?

흔히들 말하는 아이돌 생태계의 진실. 말랑하게 생긴 애가 제일 겁 없다는 점에서 문스트럭은 다시금 입덕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괜찮은 줄 알았던 승빈의 얼굴이 놀이동산 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게다가 동문서답까지.

“승빈 씨는 별로 안 놀랐나 봐요.”

“네, 근데 오늘 저녁 메뉴가 뭐죠?”

“네?”

-??????????????????????

-저게 대체 무슨 동문서답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동안 참았던 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승빈 찐으로 연기 배운 적 있는 거 아니냐ㅋㅋ 그게 아니면 저걸 어떻게 숨겨?

-저녁메늌ㅋㅋㅋㅋㅋ큐ㅠㅠ큐큐ㅠㅠ요즘 살 빠진 거 같은데 얼마나 배고팠으면 저 상황에서 저녁메뉴나 물어보고 있냐ㅠㅠ

-아 저거 뭔지 안다. ㅈㄴ 술자리에서 자기 안취했다고 멀쩡한척 아무말하는거잖아

┕ㅁㅊㅋㅋㅋㅋ ㅇㄱㄹㅇ

초점이 나간 눈과 잠시 버퍼링이 걸린 문승빈의 모습에 모두 놀란 듯했다. 그리고 문스트럭은 신이 났다. 이런 자투리 코너에서도 분량을 뽑아내는 게 덕후 입장에서는 최고의 효도였다.

“악!!”

“으아아악!!!!”

그릭고 바로 이어진 윤빈의 반응에 급격하게 불판 리젠이 빨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전우치 호랭이 어디감?

-아 ㅅㅂㅋㅋㅋㅋㅋㅋㅋ애를 잡네 잡아

-덩칫값 못 하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큨ㅋ큐큐큐ㅠ큐큐

“지인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ㅁㅊ...

-이거 방송해도 되는거임?

-울지마 윤빈아ㅠㅠㅠㅠ아냐 울어ㅠㅠㅠㅠ아냐 울지마ㅠㅠㅠ

-니가 울 때 내가 웃는다

-우는거 좋다고 하는 애들은 싸패임?

┕네 안녕하세요 김싸패입니다.

-앞으로 윤빈이 모에화는 고슴도치다.

┕동의합니다. 윤빈 호랑이파 강경지지를 철회합니다.

이미 상위권 연습생이었지만, 이번 방송 이후 팬층이 더 두터워질 거라고 문스트럭은 확신했다. 윤빈은 지난번 속보에서 7등으로 문승빈과 가장 근접한 순위였기에,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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