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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2화 (32/346)

32화

지운이 형을 돋보이게 하고, 전체의 그림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했던 공평한 파트 분배가 오히려 독이 됐다. 각자 잘하는 것을 더 돋보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보컬 실력 자체에 대한 강화도 필요했다. ‘청춘예찬’에 대한 소화력이 높아졌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내 보컬 등급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B등급이 보컬 소화력을 100%로 올려서 5칸을 다 채운다고 한들, A나 S와 비교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거다.

중간 평가를 마치고 긴급 회의를 했다. 모두 박현수의 무지막지한 고음에 의욕을 잃어버린 듯했다.

“큰일이네.”

“너무 잘해요, 현수 형이.”

“우리도 뭔가 특색 있는 게 필요해.”

다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찰나,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뭐지? 오랜만에 타임 어택 미션인가?

[3명의 가능성 발견] +1

[제한 시간 : 48시간]

[성공 시 포인트 2 획득]

높이고 싶은 스텟이 한두 개가 아니라 얼른 미션이 뜨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애매한 내용이라니. 시도하기도 전에 의욕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가능성? 대체 가능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데-

그때, 성재 형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우선 파트 분배를 다시 하는 건 어때?”

“파트 분배를요?”

“응. 지금 약간, 공평하게 나뉘긴 했는데 각자 맡은 파트가 최상인지는 모르겠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화음도 목소리 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자. 지금 너무 지운이한테만 의존하고 있어.”

마냥 재밌기만 한 형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5년의 연습생 기간이랑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거였다.

“좋아요!”

“다음 평가 때는 꼭 칭찬받자고요!”

다행히 모두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심각한 분위기는 얼마 가지 않았다. 한시름 놓았다.

‘3명의 가능성? 지운이 형 화음 특기 카드를 너무 빨리 꺼냈나.’

미션을 받고 나니, 나머지 팀원에 대해 더 자세히 탐구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전은 각자 1인분은 해낸다고 생각했고, 지운이 형의 떡상이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다른 팀원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었다.

가능성을 어떻게 발굴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생각해 낸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정반대의 것을 시도하게 해 보기. 지운이 형의 보컬 능력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한 포인트에서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음 파트 하나도 없는 사람?”

“나.”

“고음 파트 안 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난 고음은 진짜 쥐약이야.”

“혹시 이 파트 한번 불러 볼 수 있어?”

원래 가진 목소리 톤이 낮은 연습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음을 부를 때마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었는데, 고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충분히 고음 파트도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볼 땐, 저음 파트를 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낮지 않아.”

“그건 그렇지-”

“고음은 내가 도와줄게. 나 믿고 한 번만 이 파트 연습해 보자. 어때?”

“승빈 스쿨에서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 드물어~”

“그래, 한번 해 봐-”

상태를 점검해 보니, 고음만 하려 하면 겁을 먹고 목에 힘을 주는 것이 문제였다. 문득, 티벡스 멤버들이 떠올랐다. 사실 내 실력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었다. 뭐든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노래의 ‘노’도 모르는 멤버들을 어떻게든 무대에 세우기 위해 가르치던 지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지금 팀원들은 걔네보다는 수월하지 뭐.

“자, 저기 50m 앞에 지운이 형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뱉어 봐.”

“…지운이 형!”

몇 번은 웅얼거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성급할수록 더 긴장할 테니,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시켰다.

“급하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해 봐.”

“지운이 형!!”

“오”

“오!”

“대박- 완전 잘 들려!”

“방금 한 거대로 이 부분 한번 불러 봐”

효과는 생각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그래, 아마 고음을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절대 고음을 못 한다고 단정 지었을 거지만, 가지고 있는 보컬 능력치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음정이었다. 상태창을 볼 수 있는 자의 엄청난 특권이었다.

“소리 너무 좋은데?”

“우와…….”

“거봐, 하니까 되잖아~”

거울을 보니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다.

[3명의 가능성]+1

[1/3]

[남은 시간 : 40시간]

8시간 만에 가능성을 발견해 주다니. 이런 동료가 어디 있냐고, 나도 나 같은 동료 만나서 내 잠재력이랑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맞춤 비법 좀 얻고 싶다.

* * *

다시 오픈한 승빈 스쿨을 통해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고음에 대적할 수 있는 우리 팀만의 무기를 뭐로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노래 분석으로 다시 돌아갔다.

‘청춘예찬’은 상처와 함께 성장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다. 이 노래가 대히트 치고,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들려줄 정도였으니까. 상대적으로 밝고, 에너지 넘치는 박현수 팀의 노래보다는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은 노래였다.

‘그래, 연기 경험 이럴 때 써먹는 거지.’

안무가 없는 보컬 무대인 만큼, 임팩트를 주기에는 뮤지컬적인 무대가 좋을 거 같았다.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하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 뮤지컬처럼 무대를 구성해 보는 건 어떨까?”

“뮤지컬?”

“응, 노래가 감성적인 만큼 관객들이 몰입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할 거 같아서.”

“뮤지컬은 좋을 거 같은데, 그럼 무대를 어떻게 구성하지?”

“내가 잠깐 생각해 봤는데, 우리들의 상황에 맞게 가사를 조금 바꾸는 건 어때?”

“아이디어 좋다. 우리 모두 연습생 생활 했으니까, 그때 경험을 되살려서 해 보는 거 어때?”

“와, 대박. 그래, 우리도 지금 청춘인 거잖아.”

청춘과 연습생, 완벽한 조합이었다. 각자의 연습생 시절 얘기를 하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도 오랜만에 연습생 시절을 떠올렸다. 짧게는 몇 달 전이고, 길게는 몇 년 전 기억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아서 시작한 연습생 생활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데뷔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지고 불안감만 늘어 갔다.

“나 연습생 하면서 제일 서러웠던 게, 학교 갔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그래서 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날 수학여행 날이었더라고. 학교 진짜 오랜만에 가본 거였는데, 연습 때문에 수학여행 날인지도 까먹었던 거였어.”

“열여덟 살 때 시작했는데, 벌써 7년이나 지났더라. 그래서 난 진짜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청춘이라고 할 게 있나? 연습실에서 보낸 시간밖에 없지 뭐.”

조금씩은 다르지만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연기할 때 감정을 구체화할 대상이 있다면 몰입이 훨씬 잘된다. 이제 조원들이 그 대상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사가 대사라고 생각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떤 감정일까- 상상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도 효과적일 거야.”

“응.”

“관련된 영상이나 책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

“너,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전 소속사에서 연기 수업 받았었어.”

역시 대기업이라 다르다는 성재 형의 호들갑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런데 지운이 형 혼자 조용했다. 표정도 묘하게 시무룩했다.

“지운이 형,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나는 연습생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

“그러네, 여기 나오기 전에는 계속 댄서 했다고 했지?”

“네.”

“형, 근데 댄서 하다가 다쳤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아뿔싸, 이것도 티벡스 데뷔하고 알게 된 정보인가?

“형이 지난번에 무릎 막 쑤신다고 했잖아요. 다친 곳이라.”

“아, 내가 그랬었나?”

“네! 하하…….”

회귀하고 나서 임기응변만 늘었다. 과거의 정보와 현재의 정보를 구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습생 생활은 아니지만, 한 가지에 몰입해서 청춘을 보낸 건 똑같잖아요.”

“맞아.”

“그런 거 때문이라면 기죽지 마!”

“고마워요, 형.”

지운이 형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고, 본격적인 파트 재조정과 개사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화음 들어가는 부분에서 성재 형이랑 수빈이랑 하고 나랑 지운이 형, 그리고 여기 부분은 수빈이랑 세찬이가 하자. 대신 성재 형은 여기 솔로 파트 하시는 거 어때요?”

“좋아!”

각자의 목소리 색이 맞는 사람들끼리 화음을 조정하니 확실히 전보다 더 풍부한 소리가 났다. 지운이 형도 이전보다 화음 파트가 줄어들긴 했지만, 킬링 파트 구간에 더 감정을 실을 여유가 생겼다.

그때, 상태창의 숫자가 변한 것이 보였다.

[3명의 가능성]+1

[2/3]

[제한 시간 : 35시간]

‘뭐지? 파트 재조정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나?’

아무래도 화음 조합을 다시 짜면서 새로운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 영향을 준 듯했다. 이제 한 명 남았는데, 어떻게 가능성을 발견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옆방 연습실에서 고성이 오갔다.

“그럼 너 혼자 다 해 먹든가!!”

“말 다 했냐? 넌 더 좋은 방법이 있냐고!”

“둘 다 진정해!”

아무래도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나 보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격렬한 싸움이 오가고 있었는지 벽이 울릴 정도였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옆방에서 누가 연습하고 있는 거지?”

“제가 잠깐 갔다 올까요?”

“같이 갔다 오자, 혼자 가다가 괜히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성재 형과 나와서 보니, 두 연습생이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거리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큰소리가 오갔다. 결국 몸싸움하려 드는 두 연습생 사이를 가로막는 정유현. 흥분한 둘은 제작진이 말리러 오고 나서야 조금 진정된 듯했다. 팀원들이 모두 격양된 와중에도 정유현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1차 순발식 때는 역시 내가 오해한 거였네.’

“연습하다가 다들 감정이 조금 격해졌나 봐요. 제가 잘 진정시키겠습니다.”

제작진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며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했다.

‘저런 것도 완벽하네. 쟤한테 빈틈이란 게 있긴 할까?’

인간이니 당연히 허점이 있을 텐데도 괜히 이런 의심이 들었다. 가끔은 AI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유현에게 오점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싸우던 연습생 2명도 정유현의 중재에 더는 난리 부리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된 듯했고,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누가 싸운 거예요?”

“정유현네 팀.”

“그럼 유현이 형이 싸운 거예요?”

“아니, 같은 팀인 애들.”

“하긴, 유현이 형이 저럴 리가 없죠.”

정유현에 대한 인상은 다른 연습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완벽을 추구하는 애가 저 팀에서 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저 이어서 연습할까?”

갑자기 우리 팀원들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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