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1화 (31/346)

31화

윤승철이 달려와 말리고 나서야 둘 다 팻말에서 겨우 손을 뗐다.

“카메라 판독 결과 나왔나요?”

“네.”

“누가 먼저 팻말을 잡았죠?”

“다 같이 확인하겠습니다.”

스크린에 카메라 판독 장면이 나왔고, 간발의 차로 내 손이 먼저 팻말에 닿았다.

“네, ‘청춘예찬’은 문승빈 연습생이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정유현 연습생은 아쉽지만 남은 곡인 ‘상상’ 팻말 앞에 서 주세요.”

노래 선정이 가장 고비였는데 무사히 넘어갔다. 사실, 어떤 노래건 보컬 포지션을 사수하는 것이 1차 목표였는데 잘된 일이었다.

“이제 1위인 강도현 연습생부터 팀원을 뽑겠습니다.”

“저는 박선우 연습생 뽑겠습니다.”

강도현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선우 형을 뽑았다. 저 둘의 목소리가 잘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도현은 톤이 가볍고 높은 편에 속하는데, 선우 형은 완전 묵직하고 낮은 음색이니까. 거의 극과 극의 조합이었다.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해요!”

다행히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지운이 형을 호명한 연습생은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마이크를 넘겨받자마자 바로 뽑았다.

“저는 차지운 연습생을 뽑겠습니다.”

“차지운?”

“갑자기?”

“의외인데?”

모두 내 선택에 놀란 눈치였다. 다들 지운이 형을 당연히 랩 포지션으로 알고 있었을 거다. 게다가 ‘청춘예찬’이 힙합이나, 빠른 템포의 노래도 아니고 발라드에 가까운 노래였기 때문에 더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일 놀란 건 지운이 형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나서도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도 입 모양으로

‘나? 진짜 나? 왜?’

하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뽑아 줘서 고마워. 근데 나를 왜?”

“제가 말했잖아요. 형 노래에 재능 있다고.”

이제 나름 친해졌다고 아프지 않게 어깨를 치는 형이었다.

“나 근데 노래는 많이 안 해 봐서 네가 고생할 텐데-”

“걱정하지 마요. 제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래. 나도 열심히 할게.”

이제 인원이 50명밖에 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번에 완성된 팀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팀 선정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그럼, 이번 경연의 평가 방식과 베네핏을 공개하겠습니다.”

2차 경연 베네핏은 1차 경연보다 훨씬 컸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때 견제표 논란이 가장 큰 이슈였지.

“우선 각 팀의 1등 연습생에게는 베네핏 만 표가, 포지션 전체 1위 팀에게는 베네핏 이십만 표가 차등 분배됩니다.”

“이십만 표?”

“대박, 만 표도 엄청난데.”

팀 1위와 포지션 1위를 동시에 하면 베네핏만 최대 110,000표다. 내 기억대로면 전우치 조였던 성민호가 댄스 포지션 전체 1위를 해서 베네핏 덕분에 가까스로 생존했었을 거다. 그만큼 파급력 있는 베네핏이었다.

* * *

지난 두 달 동안 오가며 꽤 친해진 사이라 1차 경연만큼 어색하지는 않았다. 특히 연습생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이성재 연습생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 이번엔 진짜 진지하게 할 거야.”

그 말이 민망하게 고음 파트를 힘겹게 올리다가 감전된 몸짓으로 웃어넘겼지만.

“형은 진짜… 운명인가 봐요.”

“그러게 말이다.”

“다음이 승빈이인가?”

“응.”

[할 수 있을까 내가

수없이 의심했던 시간들

언젠가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까]

“역시-”

“깔끔하다, 진짜.”

“아, 문승빈- 이렇게 하면 내가 뭐가 되냐고오.”

안정적인 고음 처리로 이번에도 메인 보컬 자리는 큰 문제 없이 가져갈 수 있었다. 순조롭게 파트 분배를 하던 중, 연습장을 가득 채우는 쩌렁쩌렁한 고음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쟤 누구야?”

“박현수요?”

“대박이다. 목소리 힘이 무슨-”

“1차 경연 때도 메보하지 않았어?”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박현수. 뛰어난 보컬 실력으로 2차 경연에서 포텐이 터졌지만, 데뷔에는 성공하지 못한 연습생이었다. 데뷔조는 아니더라도 팀의 우승이 중요한 경연이기 때문에 견제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우린 승빈이가 있으니까!”

“그래, 꿀릴 거 없지-”

“최선을 다할게.”

얼핏 확인해 본 박현수의 보컬 스텟은 확실히 나보다 한 단계 높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래 포인트를 높였던 방법으로 연습한다면 큰 무리 없이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파트 배분은 마친 것 같고, 편곡은 어떻게 할까?”

“화음을 강조하는 건 어때?”

“화음?”

“응, 원곡은 화음이 별로 없는 곡인데 화음을 넣으면 신선할 거고, 무엇보다도 우리 5명 음색이 다 달라서 잘 만들면 되게 좋게 들릴 거 같아.”

“괜찮을 거 같아.”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배경 소리 다 빼고 화음만 넣어도 임팩트 있겠다.”

“나도 그 생각 했는데!”

다행히 팀원 모두 의욕이 넘쳤고, 편곡 방향까지 속전속결로 정해졌다. 팀 대결이기 때문에 파트는 최대한 공평하게 나눴다. 다 같이 돋보이는 게 중요하니까. 이제 지운이 형의 보컬 역량을 돋보이게 할 방안을 고민해야 했기에 우선 형의 보컬 특성에 대해 생각해 봤다.

티벡스 시절, 놀랍게도 형은 보컬 라인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이 나랑 형밖에 없었거든. 랩은 어떻게든 박자에 맞춰서 읊조리기라도 할 수가 있는데, 노래는 애초에 음을 못 맞추면 부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그룹은 힙합 그룹도 아닌데 보컬멤 둘에 랩멤 셋이라는 말도 안 되는 멤버 구성을 자랑했다. 곱씹을수록 정말 망할 수밖에 없었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항상 형과 화음을 맞췄다. 맑으면서도 듣기 편안한 목소리인 나와, 유니크하지만 의외로 단단한 지운이 형의 목소리는 합이 좋았다. 투마월도 일반인으로 나갔었고, 티벡스 데뷔하고 활동하면서까지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아 본 적이 없었음에도 형은 노래를 꽤 잘했다.

[이름: 차지운]

외모: A

끼: C-

보컬: B-

댄스: A+

프로듀싱: ??

전에는 그게 연습의 힘인 줄 알았는데 지난번에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그냥 타고난 거였다. 보컬 스텟이 B-인데 써먹을 생각을 안 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특히 영상 평가를 도와주면서도 느꼈지만, 랩을 해서 그런지 박자감이 좋았다. 거기에 음색이 유니크하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다.

“여기 혹시 화성학 할 줄 아는 사람 있어?”

“…….”

“없, 없나?”

화성학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 지운이 형이 화음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내거든. 티벡스 활동 때 노래를 둘이서만 하다 보니 나도 화음에 도가 텄다. 근데 지운이 형은 처음부터 화음을 잘 맞췄다. 오죽하면 예능 나가서 개인기로 화음 쌓기를 했을까- 아무리 기상천외한 음으로 노래를 불러도 찰떡같이 화음을 쌓아서 [화음 장인 아이돌]로 소소하게 SNS 아이돌 이슈 페이지 같은 곳에 나오곤 했다.

“음, 화음은 보컬 쌤한테 물어볼까? 일단은 개인 파트 연습부터 하자.”

“좋아요.”

우선 각자 맡은 파트를 연습하기로 하고, 나는 지운이 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이 한번 화음 쌓아 볼래요?”

“내가?”

“네. 지난번에 시그널 송 때랑, 1차 경연 때 보니까 형이 음정 잡는 데 탁월해 보여서.”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않나?”

왜 이렇게 본인 능력에 확신이 없는 건가- 약간의 답답함을 느낄 무렵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본인도 모르는 재능을 내가 말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지. 회귀자로 많은 걸 미리 알고 있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앞서 나간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냥 부담 갖지 말고 한번 해 봐요.”

“알았어.”

“제가 부를까요, 아니면 음원에 맞춰서 해 볼래요?”

“네 목소리에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알았어요.”

[언제쯤 그칠까

여름이 지나면

끝나는 장마일까]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형이 화음 만드는 것을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습하면서 좋아진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타고난 게 더 컸다. 목소리 합도 여전히 좋았다. 내 목소리가 비교적 숨이 많이 들어간 가성이라면, 지운이 형은 진성에 가까운 진한 소리였다. 색으로 치면 백과 흑의 조합 같다고 할까. 각자 가진 장점을 돋보이기에 최적의 조합이었다.

“헐.”

“뭐야?”

각자 연습을 하던 팀원들 모두 화음 소리에 놀란 듯했다. 지운이 형 본인도 놀란 눈치였다. 하긴, 살면서 자기가 화음 쌓는 거에 특별한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화음 너무 좋은데?”

“이거 원곡에도 없는 화음인데 어떻게 잡았어요?”

“대박이다-”

“형, 저하고도 맞춰 봐요!”

이렇게 된다면 방송에서도 분명 지운이 형이 화음을 잘 쌓는 게 나올 것이다. 시즌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다크호스를 발굴해 내는데, 부디 그 주인공이 형이 되길 바랐다.

화음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이후 연습은 걸림돌 없이 순조로웠다. 노래 포인트를 높이는 방법을 알았으니 ‘청춘예찬’의 소화력도 문제없었다.

[제목: 청춘예찬]

-노래: ■■■■□

포인트를 4개까지 채워 넣었고, 서바이벌하면서 처음으로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전체 1위도 문제없겠어.’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 * *

“고음이 무슨…….”

“작정했네 진짜-”

“보컬 팀 전멸이네.”

[This is our show time!

남들 눈치 따위 신경 쓰지 마

한번 사는 내 인생 누구보다

Shining Beautiful!]

박현수가 고음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성량 자체도 큰 연습생인데 허파가 아니라 아가미라도 달린 건지, 쉬지 않고 고음을 이어 가는 거다. 음 이탈의 불안함도 없고,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고음을 발사하는데 무서울 지경이었다.

“저게 사람이야?”

“나 좀 무섭다, 승빈아…….”

성재 형이 흡사 뭉크의 절규와 같은 얼굴로 경악하고 있었다.

“와… 허허, 와-”

“현수는 정말, 데뷔가 하고 싶구나?”

“이게 몇 단 고음이지?”

“4단입니다.”

아니, 저게 사람이냐고. 고음 기계가 아니고? 하필이면 다음 평가 팀이 우리 팀이었다. 그래도 노래 스텟창과 내 실력을 믿어 보자.

[우리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야

숨죽여 기다려 온 시간은

청춘이란 이름으로

빛날 테니까]

“오~”

“지운이 형이 보컬이었어?”

“지운이 형 노래 원래 이렇게 잘했었나?”

역시 연습생들 반응은 지운이 형의 보컬 실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트레이너 선생님들도 형의 노래에 대한 평가가 많았다.

“승빈이네 팀은 역시 잘하네.”

“맞아. 승빈이는 이번에도 곡 소화력이 가장 좋았어.”

“근데 이 팀은 진짜 지운이의 재발견인데?”

“지운아, 원래 노래를 배웠었어?”

“아니요.”

“여태 왜 몰랐지? 화음을 너무 잘 넣던데?”

“그니까요. 음색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랩 할 때랑 또 다르네?”

그런데 정작 전체적인 무대에 대한 평가는 미적지근했다.

“여기도 너무 잘했는데…….”

“앞 팀이 너무 강했어.”

“응, 사실 아직도 현수 고음밖에 생각이 안 나.”

당황스러웠다. 노래 소화력도 좋고, 화음도 완벽했는데 한 방이 없었다. 박현수의 고음을 이길 만한, 무대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한 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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