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0화 (30/346)

30화

“그래도 전 형 뽑은 거 잊지 마요!”

내 표정이 어떤지 나는 잘 몰랐는데, 굳어 있었는지 박재봉이 제일 먼저 눈치챘다. 사실 나는 어떻게 외모 스텟을 최대치로 높일까를 고민하던 중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알았어, 고마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지운이 형을 뽑은 이유가 잘생긴 것도 있지만 비주얼 순위권에 든다면 임팩트 있는 방송 분량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순위권에 들어온 걸 보면,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긴 게 맞았다.

“날카로운데 잘생겼어요.”

“키도 크고 요즘 되게 잘 먹히는 얼굴인 거 같아서 투표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나오는 장면이 너무 센 이미지 위주로 나온 것은 조금 아쉬웠다. 안 그래도 양아치상으로 불리면서 인성 안 좋을 거라는 프레임이 강한데, 더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2차 경연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형의 반전 매력을 끌어내고 말 테다.

1위 후보인 4명의 연습생이 4분할로 나왔고, 나도 누가 1위를 할지 내심 궁금했다. 정석 미남인 정유현, 대놓고 예쁜 얼굴인 박선우, 섹시하게 생긴 윤빈, 요즘 급식들에게 잘 먹히는 얼굴인 강도현. 방송 전부터 얼굴로 유명했던 대표적인 연습생들이었다.

“와, 진짜 잘 생겼다.”

“쟤네는 그냥 저렇게 데뷔해도 될 듯?”

“살벌하게 생겼네-”

[4위 VM엔터테인먼트 강도현 연습생]

강도현을 뽑은 연습생 중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뭐, 훈훈하게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정유현이 강도현을? 당사자인 강도현도 놀란 눈치였다. 외모에 있어서는 사적인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건가.

“제가 4위요? 우와, 누가 뽑았어요?”

“그건 순발식 날 공개할 거예요.”

“아- 작가님, 알려 주시면 안 돼요? 네?”

“또, 또 애교 부리네. 안 돼요 안 돼.”

[훈훈한 외모만큼이나 애교 만점인 성격으로 작가들의 마음도 사로잡은 강도현 연습생]

VM 때도 매니저나 담당자들에게 싹싹한 걸로 유명했는데, 여기서도 벌써 작가들과 티키타카가 오갈 정도가 되었구나.

3위는 윤빈이었다. 옅은 쌍꺼풀 눈매가 시원하게 트였고, 높은 코에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가 입덕 포인트인 연습생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피지컬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귀신 테스트부터 비주얼 순위까지, 이번 화가 지나면 윤빈은 확실하게 데뷔조 후보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위 후보는 이변 없이 정유현과 박선우였다. 여러 연습생이 블러 처리된 사진을 들고 자신의 픽을 얘기하는 장면이 연달아서 나왔다.

“제가 선택한 비주얼 1위는 삐-입니다.”

“엄청 뜸들이네.”

[비주얼 1위 정유현]

그리고 정유현을 뽑은 연습생 중에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강도현이 있었다.

“유현이 형은 그냥 호불호 없는 정석 미남?”

강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유현을 향해 외쳤다.

“형, 우리 통했네요?”

정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웃어 보였다.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구나- 하던 차에 카메라가 돌아감과 동시에 정유현의 표정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정유현은 잠시 당황한 듯 이마를 찌푸렸고, 시선을 거두었다.

‘뭐지?’

이상하다 생각이 들 찰나, 윤승철이 정유현에게 물었다.

“비주얼 1위로 선정된 정유현 연습생, 소감 한마디 부탁할게요.”

“어… 1위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오~ 1위는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3위 안에 들 줄 예상했다? 안 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정유현이 답했다.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여유롭게 농담까지 하며 웃는 정유현이었다. 그래, 사람이 무표정이랑 웃는 얼굴 차이가 클 수도 있는 거지.

이어지는 순위 발표에서 8위 발표를 앞두고도 아직 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 솔직히 첫 번째 순발식은 8위 아니면 7위를 기대했다. 너무 높으면 최상위권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으니, 데뷔 근접권에서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8위는 김병대 연습생입니다!”

김병대가 8위라니, 편집해도 센터 후보 선발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긴 했나 보다. 게다가 이어지는 소감은 탄식을 유발했다. 나중에 방송에 편집될지 모르겠지만 저대로 나온다면 분명 인성 논란에, 건방지다는 비난을 받을 게 뻔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수습하긴 했지만, 윤 피디가 과연 저 좋은 어그로 소스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분명 사이가 안 좋고,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함에도 안타까웠다. 김병대가 짬이 찬 연예인이라면 어찌저찌 편집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한낱 연습생 신분으로 나왔는데 편집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발언을 생선 뒤집듯 수습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냔 말이다.

“이제 데뷔조 연습생의 순위를 호명하겠습니다. 7위는… 문승빈 연습생입니다!”

“축하해요, 형!”

박재봉의 축하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개인 연습생 문승빈입니다. 먼저 투표해 주신 팔로워분들 감사합니다. 7위라는 높은 순위는 정말… 상상도 못 해서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샷건 팀, 부족한 맏형임에도 잘 따라 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도 성장하는 문승빈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마치고 데뷔권 좌석으로 올라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속이 울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짜릿했다. 어쩌면 내 아이돌 인생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온 거니까.

50위 발표와 함께 순발식 녹화가 종료됐다. 더는 함께하지 못하는 50명의 연습생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 합숙 생활을 함께한 전우애 때문이었을까,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마무리 인사 촬영이 마치자마자 생존한 연습생과 탈락한 연습생은 서로 얼싸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룸메이트 중 한 명이었던 정승훈 역시 탈락했다. 이미 선우 형이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내서 요란한 이별 현장이었다. 혼자 탈락한 것이 아쉽고 분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른스럽게 선우 형을 달래고는 먼저 와서 악수를 청했다.

“꼭 투표할게. 열심히 하고.”

“고맙다. 나도 계속 응원할게.”

“내가 먼저 데뷔할 수도 있다? 꼭 데뷔해. 나중에 방송국에서 보자.”

“당연하지.”

탈락한 연습생들은 그대로 캐리어를 끌고 촬영장을 떠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투마월을 시작한 이후 가장 고요했다. 박재봉과 박선우, 두 박 씨는 눈이 퉁퉁 부어서는 잠이 든 지 오래였다. 긴 연습생과 망돌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이별과 탈락을 경험한 게 처음으로 도움 되는 순간이었다.

* * *

숙소의 빈자리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2차 경연 팀 선정 촬영에 들어갔다. 투마월에 참가하고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았지만, 이번 팀 선정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다. 기필코 지운이 형과 같은 팀이 돼서 떡상시켜야만 했기에.

“이번 포지션 평가는 보컬, 랩, 춤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합니다. 그리고 노래 선택권은…….”

“상위권 애들은 좋겠다.”

“난 남은 노래나 가져야지.”

시즌 1의 방식을 알고 있는 연습생들은 벌써 침울해 보였다. 지운이 형 역시 초조해 보였다. 24위가 낮은 등수는 아니지만, 원하는 곡을 뽑기에는 위험한 등수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등수가 낮아? 오히려 좋다.

“1차 순발식 순서대로입니다.”

“시즌 1이랑 똑같네-”

“단, 1위부터 10위까지만 팀장이 되어 노래와 팀원을 선정할 것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10위까지만 선택권이 있는 거야?”

이게 내가 지운이 형이 등수가 낮은 게 더 좋다고 한 이유였다. 이미 2차 경연 팀 선발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솔직히 1차 순발식의 목표는 딱 10위 안에 드는 거였다.

“각 팀장은 달리기 대결을 통해 노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역시 달리기였다. 이걸 위해 휴가 동안 매일 운동장 뺑뺑이를 돌았지. 촬영장이 넓어 봤자 50미터라는 마음으로 죽어라 달리기 연습을 했다. 윤빈, 강도현은 달리기를 잘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표는 중간만 가서 보컬 포지션만 사수하자-였다. 노래는 상관없었다. 노래 스텟창이 있는 이상, 뭐가 나와도 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팀장이 팀원을 뽑으면, 1차 경연 팀원 선정 방식과 동일하게 한 명씩 이어서 다음 팀원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상위권 팀에만 쏠리는 거 아니야?”

“그니까- 불공평해.”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이어지는 윤승철의 말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웠다.

“1위부터 10위 연습생이 뽑은 후에는 역순으로 팀원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피디의 컷 사인과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연습생들은 1위부터 10위에게 모여 은근한 자기 피알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습생 사이에서도 서로 어떤 노래를 할 건지 얘기하며 동맹을 맺으려는 연습생도 보였다.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도현과 박재봉, 윤빈 등 10위권에 있는 연습생들에게 은근슬쩍 지운이 형 얘기를 꺼냈다. 혹시 지운이 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연습생이 있다면 무조건 그 연습생은 이겨야 하니까.

“나? 선우 형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민호 형이요!”

“나는 정훈이?”

“그렇구나, 하하-”

…하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정말 그 누구도 지운이 형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긴 하나, 조금 분했다. 지운이 형이 뭐 어때서? 두고 봐라, 이번에 완전 보컬로 떡상시켜서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다.

곧 이어 팀장 연습생들의 달리기 대결이 준비됐다. 목표는 보컬 포지션, 선샤인의 ‘청춘예찬’이었다. 잔잔하지만 후반부 고음도 있고, 무엇보다도 화음이 돋보이는 곡이다. 메인 보컬을 한다면 임팩트도 있고, 동시에 지운이 형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곡이었다.

출발선에 서자 긴장감이 밀려왔다. 단기간이지만 속성 달리기 연습이 도움 됐길 간절히 바랐다.

탁!

출발을 알리는 깃발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전력을 다해 달렸다. 눈앞에는 ‘청춘예찬’ 팻말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 때 시야로 누군가 들어왔고, 이름을 보니 정유현이었다. 같은 노래를 노리는 건가?

“오, 문승빈 연습생과 정유현 연습생 완전 막상막하인데요!”

‘저 자식은 무슨 달리기도 잘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청춘예찬’ 팻말에 몸을 던졌고, 사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정유현의 손이 보였다.

동시에 잡은 건가? 정유현이 팻말을 끌어당겼고 나도 질세라 온몸으로 팻말을 붙잡았다. 이미 다른 팀은 노래 선정을 마친 상황이었다.

“이거 이거 카메라 판독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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