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9화 (29/346)

29화

슬슬 지루해질 찰나, 바이킹 앞에서 박재봉 팀과 문승빈 팀이 만나는 장면이 나왔다. 원래 최애가 나오는 분량이 제일 재밌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심을 제거하더라도 문승빈은 확실히 방송을 아는 연습생이었다. 게다가 이미 케미로 유명한 박선우, 박재봉과 함께한다면 더욱 타율이 높았다.

-난 쟤네 셋이 붙어있을 때가 제일 웃곀ㅋㅋㅋㅋㅋㅋㅋ

강도현에게 깐족거리는 모습을 볼 때는 하도 웃어서 광대가 아플 지경이었다.

-승빈이 맨날 박씨 사이에서 고통받는 롤이었는데 이번엔 같이 강씨 놀려먹넼ㅋㅋㅋ

-강도현 세계관 최약체였냐곸ㅋㅋ큐ㅠㅠㅠ

-키도 제일 큰 애라서 더 웃곀ㅋㅋㅋ

바이킹에 탑승하고 나서도, 역시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박선우 연습생 VS 강도현 연습생 데시벨 대결!]

“으아아아악!! 너무 재밌어!!!!”

“살려 줘어어억!!”

“아우, 귀 아파-”

“어지러워-”

혼이 쏙 빠지도록 소리를 지르는 강도현 옆에 편안함을 넘어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박재봉의 얼굴이 대비되면서 웃음을 더 유발했다.

-재봉이 합성시켜놓은 거 같음ㅋㅋㅋㅋㅋㅋ

-박선우 광기 봨ㅋㅋㅋ

근데 이제 영상이 겨우 5분 남았는데, 아직도 썸네일의 몰골이 된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설마 어그로용으로 쓰이고 편집된 건가? 그런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15분 뒤 놀이공원 광장에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집합 공지에 마음이 급해진 연습생들]

[하나라도 더 타겠다는 필사의 움직임!]

박선우와 팀원들에 이끌려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문승빈의 얼굴이 점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승빈이 얼굴 질린 것 봐;;

-머리보다 얼굴이 더 하얀데?

┕저게 가능함?

┕요정이라서 가능함ㅇㅇ

┕요즘 주접 어렵다.

문스트럭도 움짤 보정을 하다가 당황했다. 머리색에 맞춰 보정을 하자니 얼굴이 완전히 날아갔다.

“이걸 그냥 올릴 수도 없고-”

놀이 기구를 탈수록 생기가 도는 박선우와 비교되면서, 둘의 투샷이 더욱 재밌어졌다.

-문승빈 혼자 유령신부 찍음?

-박선우한테 색 다 뺏겼나봄;;

-선우야 승빈이 죽는다ㅠㅠㅠ

-썸네일은 양반이었네.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겨ㅠㅠㅠㅠ

“완전 촉박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혜성특급 못 타고 끝날 뻔했어-”

“우욱-”

“근데 우리 광장까지 또 뛰어야 해.”

“네?”

박선우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는 문승빈의 머리 위로 살려 달라는 자막이 사라지지 않았다. 썸네일 속 그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광장에 모인 연습생들 앞에 엠시 윤승철이 다시 등장했고, 갑자기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눈부셔 피아노 버전이 아련하게 깔렸다.

“뭐야, 이 분위기는?”

갑자기 변주된 분위기에 문스트럭도 의아했다.

“오늘 모두 즐거웠나요?”

“네!”

“오늘은 1차 순발식 전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네?”

“마지막?”

“무슨 소리야?”

-아니;; 갑자기 이렇게 흘러간다고?

-싸패놈들 아니냐...

-마지막이면 자유롭게 놀게나 해주지ㅡㅡ

-마지막까지도 내 새끼 얼굴 한 번을 안 잡아준 거 실화냐.

┕1차 떨어질 위험임?

┕어 ㅅㅂ

“내일 여러분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휴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1차 순발식을 진행할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퇴소 공지에 대다수의 연습생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어이가 없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는 연습생도 보였다. 하지만 아련한 비지엠과 함께하니 이별 현장을 보는 것처럼 편집되었다.

-저기 뒤쪽 애 눈으로 욕하는데?

-시청자 왕따시키는 편집;;

“그럼 그때 목격담이 휴가 때구나-”

목격담 떴을 때, 앞으로 지하철역에서 텐트라도 치고 있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문스트럭이었다.

* * *

꼭두새벽부터 1차 순발식 준비로 다들 분주했다. 각자 자신의 캐리어가 다시 숙소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메이크업을 받는 공간에서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최근 순위가 중상위권인 연습생들은 비교적 여유로웠지만, 5~60위권에 있는 연습생 중에는 극도의 긴장감에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연습생들 스탠바이할게요!”

“네!”

촬영장으로 향하는 길은 같은 방 연습생과 함께했다. 두 달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

“꼭 네 명 다 붙자!”

“떨어지면-”

“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아니, 떨어지면 꼭 남은 사람 투표해 주자고요.”

“헐, 감동인데?”

“샷건 팀 입장할게요!”

“저 먼저 가 볼게요!”

이번에는 전 시즌과 달리 1차 경연 팀끼리 등장하기로 했다. 무대의 연장선으로 스토리 있는 등장을 구성했다.

기분이 묘했다. 만약 회귀하지 않았다면 연습생이 아니라, 엠시의 입장에서 순발식을 진행했겠지. 그랬다면 이런 떨림도 느낄 일 없었을 테고. 입장하는 연습생들을 부러워했던 두 달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4년 후의 나라고 해야 하나.

먼저 입장을 마친 연습생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각자 지정석에 착석했다. 그 후로도 팀별로 개성 있는 등장이 이어졌다. 모두 잠시 탈락 위기의 불안함에서 벗어난 듯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순발식을 알리는 윤승철의 멘트와 함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To My World 시즌 2, 대망의 첫 번째 순위 발표식. 지금 시작합니다!”

“와!!”

“본격적인 순위 발표에 앞서 이번 시즌의 데뷔 인원을 공개하겠습니다.”

‘드디어 공개하네.’

순위석이 공개되고, 밝게 빛나는 7개의 좌석이 보였다.

“이번 데뷔조는 7명입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어서 새로울 게 없었지만, 연습생들은 꽤나 충격이 커 보였다. 하긴 시즌 1이 9인조였으니 이번에도 9명일 거라고 생각했겠지.

연습생들이 하나둘 호명되고, 채워지는 자리만큼 다양한 반응이 오갔다. 최근 순위를 떠올리며 곧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것임을 예상하는 연습생이 있는 한편,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순위에 불리지 않아 이미 체념한 연습생의 한숨이 들렸다.

30위까지 발표하고, 연습생들의 긴장을 풀어 줄 콘텐츠 VCR이 나왔다. 첫 번째는 귀신 테스트였다. 시즌 4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콘텐츠였다. 나올 때마다 무서워하는 모습 팔아 먹는다고 욕은 먹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발굴해 내는 콘텐츠였다.

이거 촬영할 때 진짜 난리가 났지. 시즌 2에서도 귀신 테스트를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는 건 또 달랐다.

“승빈이 되게 잘 참네?”

“겁 진짜 없다- 전 저거 촬영할 때 기절했잖아요!”

선우 형과 박재봉이 양옆에서 쫑알거렸지만 나는 민망함에 미리 고개를 숙였다.

“하…….”

녹화분을 봤을 때는 저게 뭐가 무섭냐고 내심 비웃었는데 장난 아니었다. 방송에는 정말 거르고 걸러서 나온 거였다. 방송에 나온 장면은 분명 귀신 분장이나, 서랍에서 튀어나오는 정도였다. 아마도 방송 수위 때문에 조절한 거겠지. 그런데 본 촬영에서는 사방이 함정이었다. 밑에서 발목 잡고, 거울에서 튀어나오고, 천장에서 떨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비명을 참았다. 그래서 나도 내가 꽤 무덤덤하게 마친 줄 알았지. 하지만 화면으로 보니 귀가 빨개져 있었고, 주먹을 얼마나 세게 쥔 건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화룡점정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였다.

“승빈 씨는 별로 안 놀랐나 봐요.”

“네, 근데 오늘 저녁 메뉴가 뭐죠?”

“…네?”

초점이 나간 눈과 잠시 버퍼링이 걸린 내 모습에 모두 놀란 듯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민망함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자투리 코너에서도 분량을 뽑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저게 무슨 동문서답이얔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많이 놀랐구나-

“아, 진짜 웃겨ㅋㅋㅋ”

얼굴을 들지 못하는 내 위로 선우 형이 엎어져 끅끅대며 웃었다.

“배가 그렇게 고팠었냐곸ㅋㅋㅋㅋ아, 배 아파…….”

박재봉은 눈물까지 닦아 내며 물었다.

“아, 형 진짜 연기 배운 적 없어요? 아니, 저걸 어떻게 숨겼어요?”

“즈응히 흐르…….”

하필 내 다음이 윤빈이었다. 비교되어 더 조롱거리 되는 거 아닌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을 뒤엎는 비명 소리가 스튜디오 가득 울렸다.

“악!!!!”

“으아아아아악!!!!”

분명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귀신한테 제대로 때려 잡혔다. 그것도 스튜디오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기는 수준으로.

“뭐야! 빈이 형 완전 겁쟁이였네!!”

“덩칫값 못 하넼ㅋㅋㅋㅋ”

이대로 끝났다면 겁쟁이냐고 충분히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아이돌의 가장 큰 무기인 눈물이 함께 나왔다.

“지인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긴 얼굴에 눈물이 잔뜩 고였다. 그 큰 덩치가 무색하게 한껏 쭈그러든 모습이 마치 겁에 질린 고슴도치 같았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습생이 윤빈이 될 줄 몰랐는데. 이미 상위권 연습생이었지만, 이번 회차가 방영된 후 팬층이 더 두터워질 거라고 확신했다.

* * *

귀신 테스트 VCR이 끝나고, 순위 발표가 다시 진행됐다. 김형석은 첫 순위보다 소폭 하락해 27위에 호명됐다. 무대를 잘했지만, 편집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운이 형은 24위였다. 달려갈게 경연 때 박재봉 팀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일까, 무대 이후 큰 유입을 불러오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20위까지 발표가 되고, 연습생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김형석은 울먹이며 샷건 조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다.

지운이 형의 순위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서서히 올라가는 스토리가 오히려 좋을 수 있으니까. 다음 경연은 무조건 15위권 내로 끌어 올리고 말 테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18위 박선우 연습생.”

“응?”

“선우 형이 18등?”

연습생들도 예상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정작 선우 형만 담담해 보였다. 방송 전부터 비주얼로 유명했고, 경연에서도 승리했기에 적어도 10위권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10위까지 호명 후, 두 번째 VCR ‘비주얼킹을 뽑아라’가 나왔다. 워낙 쉴 틈 없이 촬영한지라 언제 찍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내가 누구 뽑았더라-?”

“형, 저는 형 뽑았었는데!”

“나를?”

“네!”

옆자리에 앉은 박재봉이 웬일로 나를 뽑았단다. 그러자 생각났다. 나는 지운이 형 뽑았었지.

박재봉은 7위로 뽑혔다.

“눈이 엄청 반짝여요.”

“딱 아이돌하기 좋은 얼굴?”

“재봉이 귀엽게 생겼잖아요!”

뽑은 이유를 저렇게 다 공개하는구나- 만약 내가 당사자라면 기분 좋으면서도 민망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박재봉도 부끄러운 듯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기쁜 건 입꼬리에 다 드러났다.

“축하해.”

“저 진짜 순위에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못 쓴다고 했다. 나는 현실적으로 5위 안에 불리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4위부터는 정유현, 윤빈, 강도현, 선우 형이 거의 고정된 자리라-

[5위 개인 차지운 연습생]

5위가 지운이 형으로 정해졌고, 나는 마음을 접었다.

‘외모 포인트를 좀 더 올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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