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큰일 났네…….”
“죄송해요.”
“괜찮아, 우리 그래도 경연 이겼잖아?”
아니, 경연을 이겨서 더 문제였다. 만약 우리 팀 편집이 여기까지고, 정유현 팀에서 으쌰으쌰하는 모습이 나오면 여론이 더 악화될 거였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메인 보컬 파트를 부르는 부분이 나왔고, 웃음으로 분위기가 상쇄되었다.
-야시꾸맄ㅋㅋㅋㅋㅋ
┕트레이너 얼굴 빨개진 거 봨ㅋㅋㅋㅋ
-승빈이 저런 창법도 잘 어울릴 줄 몰랐어...
-승빈이 대깨메(대가리 깨져도 메인보컬)야.
┕ㄹㅇ비주얼 메보가 얼마나 희귀한데.
┕그냥 메보지 뭔 비주얼이야.
“야, 진짜 다행이다.”
“승빈이 형, 진짜 고마워요”
갑자기 냅다 절을 하는 김형석에 다들 배를 쥐고 웃었다. 민망함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일어나, 인마. 무슨 절을 하고 있어!”
“진짜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을게요!”
“또 오버한다.”
누굴 죽이려고 절 두 번 하려던 거 식겁해서 말린 후에야 자리에 앉는 김형석이었다.
다행히 이후에 메인 보컬을 바꾸고, 김형석도 진심으로 팀원들에게 미안해하는 모습과 다 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다 저러면서 크는 거지.
┕형석앰들만 그렇게 생각할 듯.
-샷건조 서로 엄청 애틋해보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네ㅠㅠㅠㅠ
-애가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 날서있는 거 같네.
[승리는 샷건이 가져가겠습니다.]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형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긴장하지 않겠습니다.]
무대 밑에서 대기하는 모습에 각자의 각오가 담긴 나레이션이 깔리고, 드디어 무대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느꼈던 짜릿함이 떠오르면서 무대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후보정이 들어가면서 무대 완성도가 업그레이드됐다. 편집 걱정을 하던 팀원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대에 집중했다.
-ㅁㅊ 안무 도랐나.
-승빈아 여며!!!!!
┕단추 하나 안 풀었는데 저기서 어떻게 더 여며요?
-테크웨어 문승빈 아이디어였냐? 고맙다 승빈아.
┕강도현 허벅지 터지는 거 아니야?
┕몸도 좋으면 어쩌라는거임?
대망의 하이라이트, 전신을 쓸어 올리는 웨이브에 무대를 보던 모두가 감탄했다.
“야, 됐다.”
“저기 안무 진짜 잘 바꿨어.”
-야, 현장 후기 개쓰레기였네...무대 찢은게 아니라 갈아버렸는데?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무대였음...
┕그렇다면 ㅇㅈ
-테크웨어가 신의 한 수다.
-강도현 큐트파였는데...오늘부터 섹시 민다.
-형석이도 저 파트가 훨씬 낫네
여기까진 좋았는데 결과 발표 후 단체로 끌어안다가 강도현이 흠칫하고 떨어지는 모습이 잡혔다. 빨리 지나갔지만, 찰나를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도현이랑 문승빈 아직도 내외하냐곸ㅋㅋㅋㅋㅋ
-쟤네 꾸준히 뚝딱거림
-사이 안 좋은 티를 저렇게 내네...
┕이간질하는 패턴 지겹지도 않냐?
“다들 진짜 수고 많았다.”
“그니까, 다시 봐도 벅차네.”
“베네핏이 꼭 도움됐으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요, 형! 우리 모두 1차 통과할 거예요!”
긍정적인 분위기는 샷건 조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처음엔 다들 견제하고 자기 할 일만 하자 주의였는데.
다 같이 시청해서 그런지, 방송이 평소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이제 슬슬 가 볼까?”
“형,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치킨도 잘 먹었어. 순발식 때 봐!”
“다들 잘 가.”
* * *
띵동-
그렇게 다들 집으로 돌아간 후, 뒷정리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 집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하고 문을 열었더니 강도현이었다.
“뭐야?”
“할 말이 남은 거 같아서.”
“뭐래, 얼른 가라.”
“넌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냐?”
뭐야, 이 대화의 흐름은? 내가 널 뭐로 생각해야 하는데? 옛 동료? 설명 못 할 이유로 사이가 틀어진 사이? 앙숙? 어색한 사이?
“그래도 우리 3년을 같이 연습했는데.”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나한테는 말도 없이 이사 갔으면서. 고작 몇 주 같이 한 애들은 너 자취하는 것도 알고, 집 초대도 하고.”
“그건 자취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어떻게 된 게 내가 얘를 달래고 있지? 하, 이걸 술을 먹일 수도 없고. 이럴 땐 술 한잔하면서 취중진담으로 푸는 게 제일인데. 회귀하고 한 번도 성인이 아닌 거에 아쉬운 적이 없었는데, 미성년자인 게 제일 한스러운 순간이었다.
“저 과자는 왜 사 온 거냐?”
“그야 애들이랑 너 온다니까.”
“내가 저거 좋아하는 거 알고 사 온 거다?”
“그럼 싫어하는 거 사오리?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의미 좀 부여하지 마.”
연습생 내내 손에 달고 다니던 과자여서 모를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나도 모르게 카트에 담았더라고. 하지만 ‘이거 사면 얘가 감동하겠지’ 따위의 기대로 산 건 맹세코 아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얘기 좀 해 보자. 너, 내가 진짜 깽판 친 거라고 생각해?”
“어.”
“야, 문어대가리가 나 얼마나 싫어했는지 너도 알지.”
강도현은 내 눈을 피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언제나 모른 척 외면했었지.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뭔 줄 알아? 평범해, 무난해, 성장이 없어-야. 넌 매번 칭찬받고, 성장한다는 말만 들었으니까 월말 평가 때도 부담감보다는 잘하는 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겠지. 하지만 난 아니었어. 전날 연습을 완벽하게 하고도 확신할 수 없었어.”
“…거기까진 몰랐어.”
당연히 몰랐겠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내가 저런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까.
“나 혼자서 실력이 늘었다고 착각한 거면 어쩌지? 다른 사람 눈에는 안 그런 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뿐이었다고. 그래서… 월말 평가 때 연습만큼 보여 주지 못했던 거야. 너로서는 깽판으로 보였겠지. 하지만 난 그게 최선이었다고.”
임기응변도 이런 임기응변이 없었다. 뭐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회귀 전 문승빈은 정말 그랬으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도 평가 직전 문어대가리가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잔뜩 긴장해서 무대를 망치고는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작 18살이었다. 저보다 두 배 이상은 더 먹은 어른을 감당하는 법을 그때는 몰랐다. 강도현은 목이 타는 듯 연신 물을 들이켰다. 전부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이제 그것도 어려워졌으니 머리가 복잡할 거다.
그런데 그때, 강도현이 갑자기 격양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근데 너, 우리 엿 먹이려고 투마월 나온 거잖아!?”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뭐? 내가 뭘 먹여?”
“엿 먹이려고 투마월 나온 거 맞잖아!”
“미치겠네. 야, 내가 투마월 나오는 거랑 너희 엿 먹이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사님한테 다 들었어. 네가 VM이랑 나, 김병대 이름 팔아서 투마월에서 데뷔하려고 한다고!”
문어대가리 새끼가 중간에서 이간질했구나. 둘이 오해할 만했네.
“하, 넌 그 얘기를 믿어? 내 입장에서는 생각 안 해 봤냐?”
“네가 입장이랄 게 있어?”
“넌 내가 나오는 거라도 알았지, 난 아무것도 몰랐다고.”
“…….”
“전광판에 VM 뜨고 너네 나올 때, 내가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모르지?”
아까만 해도 노려보던 눈이 확연히 유해졌다.
“난 이미 데뷔조 탈락했고, 당연히 통과한 연습생끼리 데뷔할 줄 알았지. 근데 나 연습 말고 해 둔 거 아무것도 없었어. 다른 거 시작할 엄두가 안 나서, 이거 아니면 안 돼서, 그래서 투마월 나온 거야.”
“…….”
“근데 너희 엿 먹이려고 나왔다 그러면,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할 거 같잖아. 그게 더 비참하다고.”
이쯤에서 약간 글썽이기까지 하자 강도현이 놀란 눈을 했다. 태생이 남 미워할 성격이 못 되는 애였다. 눈물 연기쯤이야 밥 먹으면서도 가능하니 더 감정적으로 가 볼까 싶었지만, 오늘은 이쯤하기로 했다. 애 울라.
“아무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는데 너무 큰 오해는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우리가 오해한 게 각자 다른 거 같긴 하지만-”
“…….”
“벌써 새벽이다. 이제 들어가 봐.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어, 그래.”
한참을 멍 때리던 강도현이 떠나고, 냉장고에서 콜라 한 캔을 꺼내 마셨다. 맥주가 이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꼬인 실타래가 어디였는지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 * *
[투마월 연습생들의 놀이동산 정복기]
문승빈과 강도현이 청춘영화 한 편 찍고 있을 그때, 씨넷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도미노 후속 콘텐츠가 올라왔다. 기대에 가득 찬 채로 영상을 클릭한 문스트럭은 썸네일 가득 하얗게 질린 문승빈의 얼굴에 충격을 받았다.
“승빈이 얼굴이 머리색이랑 똑같잖아……?”
그녀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오갔다. 한쪽에서는 뭘 시켰기에 애가 저렇게 겁에 질린 것인가, 다른 한쪽은 그래서 놀라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울까-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승빈아, 누나가 이런 팬이라 미안하다.
-승빈이 무슨 일이야...?
-아 ㅅㅂ 나 저날 저기 갔었는데.
┕어차피 문닫고 야간에 대여한거인 듯ㅠ
-썸네일 역대급 엉망진창인데? 승빈이 옆에 선우도 엄청 신나보이고 앞에 도현이는 거의 우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승한 팀 위주로만 진행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문승빈의 분량은 넉넉했다. 놀이동산의 묘미는 역시 캐릭터 머리띠 아니겠는가. 문스트럭은 승빈이도 머리띠 한번 써 주길 바랐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문승빈은 음식 코너에서만 배회하고 있었지만.
“승빈아, 이거 써 봐!”
그런 아쉬움은 박선우 덕에 해소되었다. 양손 가득 팀원들에게 씌울 머리띠를 바리바리 싸 온 박선우였다.
“잘한다, 선우야!”
문승빈의 머리 위에 이것저것 올려 보던 박선우가 선택한 것은 하얗고 둥근 강아지 귀 머리띠였다.
“강아지 귀요?”
“왜? 너 강아지잖아!”
“전 백호하고 싶은데…….”
백호라고 조용히 말하면서도, 강아지 머리띠를 씌우는 박선우의 손을 피하지 않고 얌전히 서 있었다.
-고양이랑 강아지넼ㅋㅋㅋ
-아 ㅁㅊㅋㅋㅋㅋㅋ문승빈 걍 강아지임?
-승빈이 백호하고 싶었나봨ㅋㅋㅋ
-머리 하얗다고 다 백호냐고 바버야ㅠㅠㅠㅠ
-쟤 입 삐죽이는 것 봨ㅋㅋㅋ
“미친, X나 귀여워!”
문스트럭은 재빨리 승빈의 움짤에 백호 귀를 그려 넣어 새 움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움짤계에 업로드했다.
@TomyMoon_gif 30초 전
투마월 놀이동산 콘텐츠
[gif]
승빈이는 백호에오 어흥 (호랑이 이모티콘)
문승빈 다음으로 박재봉과 강도현의 앙숙 케미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놀이공원 입장 때부터 표정 차이가 극명했던 둘이었다.
-도현이 놀이기구 못 타?
┕이것보다 박재봉이 놀이기구 마스터인 게 더 어이없음;;
┕역시 사람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거 아니랬음.
“하나도 안 무섭다니까요?”
“나 이거 타면 진짜 토한다니까?”
“타고 토해요, 그럼!”
“야!”
-타곸ㅋㅋㅋ토하랰ㅋㅋㅋㅋㅋ
-재봉이 그런 줄 몰랐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네;;
-도현이 덩치값 못하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박재봉 연습생.]
[우승 팀인데 왜 타지를 못하니…….]
영상을 즐기던 중, 덕친인 K에게서 연락이 왔다.
[ㅅㅂ 차지운은 여기서도 분량이 없어]
안 그래도 대면식 이후 차지운 분량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3화는 10초, 4화는 경연이 전부였던 것에 충격이 커 보였는데.
[도미노에서 차지운이 제일 웃기지 않았냐?]
[근데 왜 없어?]
“얘 언제 이렇게 진심이 됐지?”
어느 순간 비행기를 핑계로 차지운 덕질에 스며들고 있는 게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얘 이러다가 순덕되는 거 아닌지 몰라.”
[차지운의 진가를 몰라 주는 씨넷 언젠가 ㅈㄴ 후회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