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6화 (26/346)

26화

“우와, 형 머리에 반짝이 뭐에요?”

“그냥 백발이면 허전할 거 같아서.”

“완전 잘 어울려요!”

갑자기 외모 스텟이 오른 거에 위화감이 들지 않게, 정말 역대급으로 화려하게 스타일링 했다. 살짝 볶은 머리와 백발 위에 뿌려진 오색찬란한 반짝이들. 얼굴에다가도 하트 모양 블러셔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해서 내가 봐도 ‘작정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맞아. 그리고 승빈이 뭔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잘생겨지지 않았어?”

“승빈이 형 원래 잘생겼잖아요.”

“아니, 그건 맞는데. 며칠 사이에 더 잘생겨졌어.”

이런 쪽으로도 눈썰미가 좋은 윤빈이었다. 내심 기분 좋았다. 나만 느끼는 변화가 아니었구나.

“센터 후보군 연습생 스탠바이하세요!”

“네!”

촬영이 시작되고 온 힘을 다해 끼를 부렸다. 영상 평가 때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개인 직캠이 나오는 무대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소홀해서는 안 됐다. 쉬는 시간도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 영상 앞뒤에 같이 찍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도 연습하거나, 연습생들과 간단히 대화 정도를 나눴다.

바뀐 동선과 자리 배치에 더불어, 연습생별 원샷 파트가 있었다. 이 파트에선 머리칼을 털어 내는 동작을 넣었다. 머리 모양이 망가지진 않고 반짝이가 자연스럽게 떨어질 정도만 털어 내는 것이 목표였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뮤직 쇼 본방에서 생방송으로 무대 했다면 다른 팬일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무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유 시간을 보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우 형이 먼저 알아 왔다.

“와, 승빈아 이번에 썸네일 미쳤는데?”

“벌써 떴어요?”

“응!”

알림 설정을 분명 한 거 같은데 내꺼만 고장이 난 건가. 썸네일은 내가 봐도 정말 잘 나왔다. 하트 블러셔랑 머리 반짝이가 돋보이게 뽑혔다. 역시 비주얼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문승빈이 이렇게 잘 생겼었나?

-반짝이 날릴 때 심장 터지는 줄...

┕02:30 극락좌표

-무대 화장 때문이겠지ㅋ

다행히 원샷도 자연스럽게 잘 잡혔다. 중간 중간 비듬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조롱 댓글도 있었지만,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댓글창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 *

다음 날, 드디어 놀이동산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모두 평소보다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합숙이 시작되면 기본 2주는 외출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로 높아지는 투마월 시즌 2의 인기 탓에, 놀이동산과 같은 공개적인 장소는 더더욱 접근 불가였다. 제작진이 야간에 놀이동산을 대여해서 촬영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윤빈 형은 오늘 안 보이네?“

”몸이 안 좋아서 숙소에서 쉬고 있대요.“

팀의 승리를 하드 캐리했던 윤빈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자유 이용권이라고 엄청 신났는데, 조금 불쌍했다. 와중에 옆자리 선우 형은 여전히 어떤 놀이 기구를 타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바이킹은 무조건 타야 하고, 자이로드롭이랑 후룸라이드 아! 롤러코스터도 꼭 타야 해!”

“그럼 3개가 넘잖아요.”

“하, 맞다.”

저 형은 1차 경연 팀원 뽑을 때보다, 지금이 더 신중한 듯했다. 무서운 건 하나도 못 탈 거 같은 얼굴로, 하나같이 난이도 상의 놀이기구만 타려는 것도 의외였다. 저렇게 아쉬워하는 걸 보니 차라리 내가 탈 기회를 저 형한테 줄 수는 없는지 생각도 들었다. 난 놀이 기구엔 딱히 흥미가 없어서 말이지.

“도착했습니다. 다들 하차하세요.”

안내 방송과 함께 연습생들이 놀이동산 입구에 집합했다.

“대박- 나 놀이동산 너무 오랜만이야.”

“원 없이 놀다 가야지!”

꼭 3개를 다 써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 그냥 간식 사 먹고 놀이동산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꿈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1등 한 팀은 자유이용권, 나머지는 세 개의 탑승권이 있는 거 모두 아시죠?”

“네!”

“그런데 한 가지 룰이 더 있습니다.”

또 무슨 룰이 있다는 거지. 윤승철이 멘트를 이어 갔다.

“도미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팀워크’ 였습니다. 팀워크로 얻어 낸 보상이니, 모두가 함께 즐겨야겠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시즌 1과는 다른 점들이 많아져서인지, 연습생들도 경계심 가득했다. 이번에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부셔 도미노 버전부터 원래 시즌 2에는 없던 일이라, 연속되는 모든 상황은 나도 모르던 일들이었다.

“팀원 모두가 함.께. 놀이 기구에 탑승해야 합니다. 한 명이라도 이탈할 경우 놀이 기구 탑승은 불가합니다. 무조건 4명이 ‘함께’ 타야 합니다.”

“그동안 고생한 여러분을 위한 선물이니, 맘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유독 ‘함께’에 힘을 주고 말하는 거 보소. 윤승철의 공지에 사색이 된 연습생이 몇몇 보였다. 나도 썩 반갑지 않았다.

“다들 놀이 기구 잘 타지? 못 타는 거 없지?”

“네.”

“저도 막 무서운 거 빼고는…….”

“괜찮아, 괜찮아- 별로 무서운 거 안 탈거야!”

“형, 자이로드-”

“회전목마 탈까? 하하.”

어차피 3개다. 딱 3개만 버티자.

* * *

“하, 진짜 뭐부터 타야 하지?”

“아직도 못 정했어요?”

“바이킹? 롤러코스터?”

들어온 지 30분이 되었는데도, 박선우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하나도 못 탔다는 소리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빨리 정해요.”

“그럼, 바이킹 타자!”

“좋아요, 빨리 가야겠어요. 바이킹 인기 많아서 몰려 있던데.”

겨우 결정을 마치고 바이킹 줄로 가는데, 박재봉과 강도현이 투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형! 딱 한 번만 눈 감고 타요-!”

“아 진짜 이번 한 번만 다른 거 타면 안 되냐?”

아, 맞다. 강도현은 엄청난 놀이 기구 겁쟁이였다. VM 시절 연습생들끼리 놀이동산을 놀러 갔었는데, 그때도 회전목마 외의 놀이 기구는 시도도 못 했다. 대신 줄을 서 주는 역할이어서 욕은 안 먹었는데, 지금은 4명이 아니면 아예 탑승이 불가하니 말이 달라지지.

“형 때문에 롤러코스터도 못 타고, 자이로스윙도 못 타고 겨우 범퍼카 하나 탔어요!”

그와 반대로 박재봉은 놀이 기구 마니아인가 보다. 항상 강도현 앞에서 묘하게 위축되어 보이던 애가 처음으로 기세등등했다. 박재봉이 강도현보다 얼굴 하나는 작은데, 소형견한테 쫄은 대형견을 보는 듯했다.

“바이킹은 양보 못 해요! 그냥 눈 딱 감고 타요!”

“그, 그럼 맨 앞칸.”

“대-박. 그럴 거면 바이킹을 왜 타요? 그렇죠, 승빈이 형?”

“그러게 말이다.”

“아, 너는 다 아는 놈이 진짜 너무하네-”

원망 가득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는데 웃음만 나왔다. 지금까지 깐족거렸던 대가다, 이놈아. 박재봉은 초점 없는 강도현의 눈이 조금 불쌍했는지, 맨 앞줄에 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아, 쫌 잡지 말아 봐요!”

“좀 봐줘-!”

“어휴 진짜 이런 것도 못 타는 사람을 내가…….”

우리 팀도 무난하게 세 번째 줄에 앉았다. 다만 박재봉 팀과 마주 보는 상황이었다.

“바이킹 출-발 합니다!”

“악!”

시작과 동시에 강도현이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건너편에서 보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쟤는. 그 옆에 박재봉은 지루하다는 듯 무표정으로 양손을 들어 만세를 했다. 가장 제대로 즐긴 사람은 말할 필요 없이 선우 형이었다.

“와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너!! 무!! 씬나!!!!”

누가 보면 서로 누가 더 크게 소리 지르나 대결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환희와 절망이 한데 모인 불협화음이었다.

“살, 살려 줘.”

강도현은 거의 팀원에게 업혀 내려왔다. 헛구역질하는 모습에 박재봉은 유난이라며 타박했지만, 손마디를 눌러 주고 있었다.

“하, 너무 재밌었다. 그치!!”

“맞아요. 진짜 오랜만이라서 더 재밌었어요!”

“이제 뭐 탈까?”

다른 놀이 기구 탈 생각에 들떠 있는 선우 형에게 찬물을 끼얹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모든 연습생은 15분 후인 11시 30분까지 놀이공원 광장에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헐.”

“빨리 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뛰어!”

“네?”

아니, 뭐 타는지는 생각하고 뛰어야지. 선우 형은 일단 줄이 짧아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식간에 줄이 몰려서 이곳저곳 뛰어다니느라 1차로 숨이 차올랐다. 그런데 고르는 놀이 기구마다 회전, 회전, 또 회전이었다.

“욱…….”

바이킹만으로도 이미 속이 메슥거리고 있었는데, 아주 좌로 돌리고 우로 돌리고 난리가 났다. 회전컵에서 내려오는데 헛구역질과 동시에 역류한 위액의 씁쓸한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5분 남았어요!”

“마지막은 혜성특급 타자!”

“네?”

내내 빙글빙글 돌다가 부딪히는 혜성특급? 이건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할 틈도 없이 선우 형의 손에 붙잡혀 혜성특급 열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정말 진지하게 비닐 봉지를 빌릴 뻔했다. 돌고 있는 게 놀이 기구인지 내 눈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려오는데 내 얼굴을 본 팀원들이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며 거울 좀 보라는 말을 했다.

“난리 났네, 우욱-”

안 그래도 백발인데 얼굴까지 하얗게 질려서 어디가 얼굴이고 머리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이런 게 팀워크라면 불화설 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놀이동산을 마지막으로 1차 합숙이 종료되었다. 10일 뒤에 있을 1차 순발식 촬영 날까지, 처음 주어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김형석의 애타는 요청으로 5화는 같이 보기로 했지만, 그 외의 시간은 완벽하게 방콕하며 쉴 생각이었다.

“다들 잘 쉬고 보자!”

“형들 5화 같이 보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어휴, 알았어, 형석아.”

각자 캐리어를 끌고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뒷모습을 보자니 괜히 씁쓸했다. 이럴 때면 자식을 너무 독립적으로 키우신 거 아닌가- 아쉽기도 했다. 회귀 전에도 지금도 똑같았다. 좋게 말하면 나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방치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파이널 때는 한번 시간 맞춰서 오시라고 해야겠다.

프로그램은 인기 있더라도, 아직 내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모자는 눌러쓰고 지하철역을 향했다. 역시나 지하철 타고 집 근처 역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막차일 시간대여서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역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무거운 캐리어를 든 여자가 보였다.

“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고 난리야. 후, 겁나 무겁겠네.”

“도와드릴까요?”

“네?”

다행히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네, 감사합니다. 같이 들어요!”

“아니에요. 많이 안 무겁네요.”

사실 꽤 무거웠다. 끌고 오기도 쉽지 않았을 정도의 무게인데, 괜히 객기를 부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자칫하다간 다칠 위험이 있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조심히 끌고 가세요.”

“저, 혹시…….”

설마 알아본 건가 싶어서 자리를 뜨려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네?”

“없으면 전화번호 좀-”

세상에,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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