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5화 (25/346)

25화

1차 경연 최종 우승 팀이었던 ‘전우치’ 팀의 윤빈과 샷건 조에서 가장 많은 투표를 받은 내가 양 날개 포지션이 됐다. 그리고 내 바로 뒷줄에 송호준이 위치했다. 기분이 묘했다. 쟤랑 같이 뮤직 쇼에 다시 나가다니.

송호준은 투마월 시즌 2 파생 그룹인 ‘히든카드’의 멤버였다. 당시 투마월 시즌 2에서 탈락한 연습생들을 모아서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었는데, 1년이라는 짧은 계약 기간에도 불구하고 꽤 인기몰이를 한 그룹이었다. 티벡스와는 데뷔 동기였는데, 덕분에 데뷔 날은 잊고 싶은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노비도 대감집 노비가 낫다고 하던가? 서바이벌 시절 모든 멤버의 인기를 다 합쳐도 지운이 형만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히든카드는 티벡스보다 훨씬 잘나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소속사 지원부터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 스타일링, 곡, 안무 모두 히든카드가 우수했다. 둘 다 서바이벌 뽕 빠지기 전에 급하게 내보낸 건 똑같았는데 말이다.

데뷔 활동 때 녹화 순서가 연이어 있어서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의상에서부터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는 누가 봐도 싼티 난다고 느낄 법한 은갈치 패션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기실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지운이 형, 오랜만이네요?”

“어? 어, 그러게.”

“와, 근데 의상 진짜… 화려하네요!”

하필이면 히든카드는 데뷔 곡부터 제복 컨셉이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명품으로 휘감긴 모습을 보자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하-”

나였으면 표정부터 구겼을 텐데, 지운이 형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여기까지만이었다면 나도 조금 기분 나쁜 거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들은 말은 가히 치욕스러웠다.

“야, 차지운네 그룹 옷 봤냐? 나였으면 걍 데뷔 포기한다.”

“그니까, 그런 노래로 쪽팔리지도 않나.”

그때는 지금보다 감정이 앞서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먹다짐 한번 제대로 하고 방송가에 이름을 알릴 뻔했다. 물론 나쁜 쪽으로.

대중 반응도 대부분 노골적인 비교였다. 티벡스와 히든카드의 투샷을 캡처해서 조롱하는 게시글이 수두룩했다.

[같은 서바이벌 출신의 다른 운명]

-ㅅㅂ 지운아...

┕탈주 말리네.

-티벡스 흙내 오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위랑 30위랑 바뀐 거 아님?

고로 이번 ‘뮤직 쇼’ 무대의 목표는 단 하나. 무조건 저 X끼보다는 주목받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센터 후보들끼리 모아 두니 아직 내 스텟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여길 봐도 A, 저길 봐도 A였으니 다들 아이돌 하려고 태어났나. 거기다가 라이브도 아니고, 나 혼자 다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래나 춤 포인트를 높이는 것으로는 임팩트를 주기도 부족했다.

‘방송 화면에서 승부 보려면 끼나 외모 포인트를 높여야 할 거 같은데…….’

문제는, 외모는 연습을 통해서 얻기가 힘들다는 거다. 4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를 얻기도 힘들고. 게다가 끼도 최근에 한 단계가 올라서, 여기서 한 단계가 또 바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 거였다. 이럴 때 새로운 방법으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속으로 괜히 ‘외모 포인트 높일 방법 알려 줘’, ‘외모 포인트 상승’ 따위를 외쳤지만 스텟창은 요지부동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외모 포인트를 높여 봐야겠다.

* * *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연습을 끝내는 최성재 트레이너의 말과 함께 모두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박재봉과, 윤빈, 강도현에게 은근히 물어봤다.

“형은 피부 관리 어떻게 해요?”

“재봉아, 표정 연습은 어떻게 하냐?”

“야, 너도 맨날 팩하고 자냐?”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고민을 들어 주는 포지션이어서 그런지 셋 다 내 질문에 처음엔 의아한 듯했다.

“피부 관리? 딱히 안 하는데?”

“저는 선배님들 직캠 엄청 많이 봐요! 맨날 거울 들고 다니면서 표정 연습해요.”

“귀찮게 어떻게 매일 하냐? 한 3일에 한 번?”

‘안 한다고는 안 하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외모, 끼 포인트가 높은 애들한테 괜한 걸 물어봤나 싶었다. 하지만 박재봉의 팁은 꽤 쓸모 있었다. 오늘부터 직캠 정주행 시작해야지.

“아, 재봉아. 너 그, 첫 번째 기상 미션 때 바른 거 뭐냐?”

기상 미션이 방영되고 박재봉이 사용한 틴트가 뭐냐는 질문 글이 게시판과 SNS에 가득했고, 해당 브랜드에서 홍보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색이 인위적이지도 않고, 딱 자연스럽게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탱글체리빛밤이요?”

“탱글… 뭐?”

일반인이었다면 입에서 꺼내지도 못할 상품명이었지만, ‘나는 아이돌이다.’를 세뇌하며 다시 물었다. 메이크업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히 없다. 다만 해 주는 것만 받다 보니 어떤 색인지, 호수별 차이가 뭔지 이런 건 문외한이었다.

“탱글.체리빛.밤?”

“네! 색깔도 적당하고 꾸안꾸 하기엔 딱 이에요!”

“나 그거 좀 빌릴 수 있을까?”

“저 하나 더 있는데 그거 형 써요!”

“고마워.”

그렇게 얻어 낸 탱글체리빛밤을 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비장하게 입술에 바르고 거울을 보는데.

“음, 뭐가 달라졌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텟창을 보니 역시 어림도 없었다. 잘생겨지기는 쉽지 않다 이거지?

“그럼 그렇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마음으로 지식아웃에 온갖 미용 관련 질문 글도 올려 봤다.

[얼굴형 갸름해지는 방법]

4일 안에 얼굴 갸름해지는 방법 없을까요?

내공 냠냠 무시합니다.

ㄴ4일만에 얼굴이 갸름해지는 방법이 있으면 성형외과 다 굶어죽으라고?

ㄴ얼굴을 ㅈㄴ 쳐보세요.

ㄴ얼굴 붓기 효과제거에 최고! (링크)

“오, 뭐지?”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링크에 들어가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누가 봐도 포토샵으로 늘려 놓은 사진을 비포로 해 두고 애프터 사진도 포토샵 때문에 뒤쪽 벽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때 숙소로 들어온 선우 형과 마주쳤다.

“승빈이, 지금 들어왔어? 아침에 왜 나갔다 온 거야?”

“센터 후보 연습생들끼리 뮤직 쇼에서 무대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와, 뮤직 쇼? 대박이다-”

“아, 형. 형은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작은 거예요?”

“갑자기?”

“밤마다 뭐 하는 거 맞죠? 좋은 거 있으면 공유 좀 하자고요.”

“뭐… 그냥 잘 태어나야지.”

악의 하나 없는 미소라 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말을 말자. 그때, 상태창이 요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선우 형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저게 뭐지?

[5번의 도움] +1

“저게 뭐야?”

“응? 뭐가 있어?”

“아, 아뇨? 아무것도.”

“그래?”

여기에 계속 있다간 의심만 받을 거 같아서 근처 화장실로 피했다. 거울을 보니 새로운 창이 보였다.

[제한 시간 24시간]

“하루 만에 해내라고? 뭘 하라는 건지는 알려 줘야지!”

[성공 시: 1포인트 적립]

“도움이라는 게 내가 도움을 주는 거야, 도움을 받는 거야?”

대답할 리 없는 상태창에 전자 시계가 떴고, 이제는 시한폭탄처럼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X발, 항상 이런 식이지!”

몸으로 부딪쳐서 알아내야 하는 게 이 상태창의 법칙인 건가. 뭐 하나 쉽게 주질 않네. 일단 연습실로 향했다. 사람이 있어야 도움을 주건, 도움을 받건 할 테니까.

마침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윤빈 형이 나를 찾았다.

“승빈아! 마침 잘 왔다.”

“네?”

“나 여기 녹음하는 부분 박자가 잘 안 맞는데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좋아요!”

아무래도 연습생 때 녹음까지 해 본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데뷔 경험이 있기에 어떻게 해야 녹음이 잘되는지 알았다. 티벡스 시절 그 구린 장비들로 녹음하면서 터득한 팁이었다. 그냥 귀로 들을 때랑 녹음실에서 듣는 게 또 다르기 때문에 녹음실을 기준으로 윤빈을 도와줬다.

“훨씬 나아졌네. 고마워, 진짜!”

“아니에요. 또 필요한 일 있으면 저 찾아오세요.”

“그래, 너도 도움 필요하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혹시나 하고 상태창을 보니, 변화가 있었다.

[5번의 도움 1/5]

‘역시 내가 도움을 줘야 하는 거구나. 앞으로 4번? 승빈 스쿨 재오픈해야겠다.’

그런데 이 미션창 까다롭긴 더럽게 까다롭다. 같은 사람한테 도와준 것은 중복으로 처리된다.

‘아니, 사람이 자는 시간은 보장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촉박함이 느껴졌지만, 차근차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습생들을 찾아 나섰다.

“이제 좀 이해가 가네!”

“그래?”

“응, 보컬은 진짜 네가 최고인 거 같아.”

처음에는 미션 성공을 위해 조금은 의무적으로 한 건데, 듣다 보니 뿌듯해졌다. 언제 이렇게 노래로 칭찬을 많이 받아 봤지?

[5번의 도움 5/5]

[Mission Clear!]

제한 시간을 7시간쯤 남기고 미션을 마칠 수 있었다. 상태창이 원래 상태로 안정을 찾았고, 포인트가 1 늘었다. 그런데, 이전과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 추가된 포인트가 특정 스텟으로 더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 포인트가 높아졌지만, 포인트가 분배되지 않은 것이다.

‘설마?’

번뜩 떠오른 생각에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맨 끝 칸에 들어갔다. 호흡을 가다듬고 작게 속삭였다.

‘외모 포인트 1 추가해 줘.’

[이름: 문승빈]

외모: B → B+

끼: C+

보컬: B+

댄스: B-

프로듀싱: D

그러자 방금 충전됐던 포인트1이 외모 스텟으로 이동했고, 외모가 B에서 B+로 상승했다. 처음이었다, 상태창이 내 생각대로 변화한 건. 그동안 외쳤던 수많은 민망한 외침을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됐다!”

상태창이 등장한 후로 외모 스텟이 오른 것은 처음이어서 조금 흥분됐다. 진짜 갑자기 잘생겨지고 그런 건가? 거울 앞에 서서 모습을 확인했다.

“뭐지……?”

분명 변했다. 막 사람 얼굴이 갑자기 반쪽이 되고, 눈이 2배가 되고, 코가 오뚝해지고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잘생겨졌다. 피부도 좋아졌고, 이전에는 맹숭맹숭했다면, 뭔가 윤곽선이 보이는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외모 포인트가 높아진 효과는 분명 있었다.

신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차 싶었다.

“이럴 거였으면 끼 포인트를 높이는 데 쓸 걸 그랬나?”

외모는 스타일링을 빡세게 하면 직접적인 포인트 상승 없이도 어느 정도 상승 효과를 얻는데, 끼는 외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 가질 거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외모에 몰빵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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