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2화 (22/346)

22화

“그게 뭐냐면-”

“배고픈데 빨리 갈까요? 하하^^”

‘투빈’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삔이’며 ‘삔즈’며 별명이 붙는 건 아직 좀 민망스러워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투마월 촬영 환경은 전반적으로 열악했지만, 식사 메뉴만큼은 훌륭했다. 시즌마다 입소 후에 더 살이 쪘다며 조롱당하는 연습생들이 나오기도 했다. 나도 마음만 같아선 두 그릇씩 먹고 싶었지만 체중 관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 그런데 박재봉의 식판이 부쩍 간소해졌다.

“요즘 양이 줄었나 봐?”

“저 다이어트하거든요.”

“굳이?”

“볼살 때문에 완전 찐빵같이 나오고, 사람들도 자꾸 통통하다고 하니까-”

고작 열여섯이니 볼살이 있는 게 당연한 건데. 댓글이나 대중 반응에 크게 신경 안 쓰는 거 같아 보였는데, 비주얼적인 부분은 확실히 신경 쓰였나 보다. 아무래도 센터이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많은 거겠지.

“너 그러다 키 안 커.”

“아, 진짜 전부터 맨날 키 안 큰다고 하고! 형은 클 만큼 컸다 이거죠?”

“재봉아, 네 나이 때는 최대한 많이 먹고 키 커야 한다니까?”

뒤에서 배식받던 박선우가 한마디 거들었다.

“형은 먹어도 잘 안 찌잖아요!”

“애초에 저 형은 밥을 잘 안 먹어.”

“승빈,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저도 딱히 알고 싶진 않았는데요.”

저 형은 하루 삼시 세끼 중 두 끼를 군것질로 채우는 사람이다. 볼 때마다 양 볼 가득 우물거리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너 지난번에 윤빈이 같은 몸 갖고 싶다며.”

“…….”

“그런 말을 했어? 재봉, 나처럼 되고 싶으면 밥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

“백날 그래 봐요. 내가 많이 먹나.”

박재봉이 단호하게 말했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쟤 저러고 저녁에 우리 방 와서 과자 받아 가잖아.”

과자만 받아 가나? 젤리랑 빵이랑 다양하게도 가져간다. 하루는 선우 형이 웃는 얼굴로.

“이럴 거면 밥을 더 먹는 게 어떨까, 재봉아?”

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양이 적으니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마친 박재봉은 아무리 봐도 배가 덜 찬 얼굴이었다. 우리 식판을 힐끗힐끗 보기에 나는 밥 한 숟가락, 박선우는 고기 한 점, 윤빈은 나물 한 젓가락을 넘겨주었다.

“아 안 줘도 돼요! 저 배불러요!”

“진짜?”

“거짓말.”

“줄 때 먹어.”

“어, 영상 떴다. 저 이거 볼 거니까 안 먹어도 돼요.”

씨넷 홈페이지에 홍보 영상이 올라왔고, 나도 핸드폰을 꺼내 영상과 함께 게시판 반응을 확인했다.

[눈부셔 축구장ver.]

-와 앞줄이랑 뒷줄 실력차이 봐라...

-뒷줄은 안무를 배운 거 맞지?

┕같은 안무 배운 거 맞는지도 의심스러움.

-근데 센터 잘하네.

┕재봉이 완전 갓기에다가 춤도 잘 추고 완전 천상 센터임.

┕뒤에 강도현한테 시선 다 뺏기는 데 무슨...

┕울지 말고 말해...

-내 새끼는 얼굴도 안 보이네...

┕있기는 한건지 모르겠네.

┕머리카락도 안 보일 수 있음? 내 최애도?

연습생들이 넘어져서 아수라장이 된 부분도 편집 없이 공개됐다.

“진짜 그대로 올라갔네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미 숟가락 위에 밥이랑 고기랑 반찬 다 올리고 있는 박재봉이었다. 편집 없이 영상이 올라온 것에 대한 팔로워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대환장 파티네.

-ㅁㅊ 다친 사람 없어?

-이걸 그대로 내보내네...

-도미노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부셔 도미노ver.

┕진짜 우르르 넘어지넼ㅋㅋㅋㅋㅋㅋ

┕별 모양으로 넘어진 거 실화냐고

SNS에 들어가 보니 해외 팬들은 이미 연습생들이 넘어지는 장면을 도미노 영상과 편집해 숏 비디오 플랫폼에 올리고 있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몇 백만 조회수를 찍었고, 댓글과 하트 수도 어마어마했다.

“이걸 노린 거구나.”

일종의 ‘밈’이 되어 프로그램 화제성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하긴 잘 만든 밈 하나가 열 광고, 방송보다 더 파급력 있지.

“와, 그새 썸네일도 바뀌었어.”

확인해 보니 정말 도미노와 함께 넘어진 연습생들의 모습이 썸네일에 대문짝만하게 보였다. 그리고 [눈부셔 도미노 ver]이라고 더 큰 글씨로 쓰여 있었다.

-도미노 버전 돌았나ㅋㅋㅋㅋㅋㅋ

┕이게 공식영상이라고??

┕ㅁㅊ 눈을 의심함;;;

-씨넷 막나가네 진짜

┕아니 이럴거면 위튜브랑 방송국이랑 뭐가 다른거임?

지독한 방송국 놈들 같으니라고.

* * *

2화가 방영될 시점에는 이미 [눈부셔 도미노ver]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화제의 중심의 선 투마월 2화의 초반 분량은 나머지 대면식 무대였다. 1화에서 어그로 잔뜩 끌고 끝났던 정유현의 무대가 처음으로 나왔다.

“화면보다 실물이 더 잘생겼네.”

다시 봐도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호불호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얼굴이다. 특히 특유의 안광이 있어서, 무대 위에서나 카메라만 켜지면 세상 그렇게 반짝일 수가 없다. 온·오프 버튼이 있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연예계 생활하면서 웬만큼 잘생긴 연예인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꿀리지 않을 외모였다.

사실 티벡스 시절, 활동이 겹칠 때 몇 번 실물을 본 적은 있었다. 그때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연예인물 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완성형 외모였을 거다.

“올해 21살, 1년 2개월 차 연습생 정유현입니다.”

정유현이 준비한 무대는 지금 봐도 완벽했다. 의상부터 무대 위 제스처까지, 모두 철저하게 준비한 무대라는 게 느껴졌다.

[기다림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두 눈이 마주친 순간

네 마음 속 울리는 사이렌 소리]

정유현의 무대에 감탄하는 연습생의 반응도, 오글거리는 자막과 더불어 여과 없이 방송되었다.

[완벽한 외모만큼이나 완벽했던 무대]

[눈을 떼지 못하는 연습생과 심사 위원]

게시판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주에 맛도리 무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번 편이 찐맛집이네.

-유현이 진짜 못 하는 게 뭐야...?

┕못하는 걸 못하는 듯?

-아니 저런데 왜 유현이가 센터가 아니냐고;;

“정유현 연습생, S등급입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유현의 무대 뒤에는 다른 연습생들의 대면식 무대가 10초씩 빠르게 지나갔다. 그중엔 꽤 잘했다고 생각한 무대도 있었다.

“역시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분량 따기 힘들구나.”

대면식 무대가 모두 끝난 후에는 연습생들의 1화 리액션이 나왔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연습생들] 따위의 자막을 보니 촬영 날이 생각났다. 저마다 자신의 분량이 어느 정도 나왔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현장에서도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1주차 순위 발표]

지운이 형은 예상보다 높은 순위에 얼떨떨해하는 모습이 잡혔고, 박재봉 역시 3위라는 순위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1위 강도현과 2위 정유현의 소감이 이어졌다.

“강도현 연습생, 1위 한 기분이 어때요?”

“아, 솔직히 진짜 ㅉ, 쬐고입니다.”

-쟤 지금 째진다고 하려 한 거 아니냐?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다음에 삐소리 나도 인정.

“얼굴에도 나 기뻐요- 라고 쓰여 있어요.”

“당연하죠! 팬분들이 만들어 주신 1위인데요~”

특유의 익살스러운 여유로움을 가진 강도현의 소감이었다.

“정유현 연습생, 조금 아쉽게 2등인데 소감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2위도 정말 높은 등수라서 기분 좋습니다.”

“1위의 강도현 연습생에게 한마디 한다면?”

“2위도 꽤 좋은 숫자인데, 한번 경험해 보는 게 어때, 도현아?”

정유현의 당돌한 대답에 촬영장이 술렁였다. 당황할 법도 한데, 표정 하나 굳지 않고 맞받아치는 강도현.

“아직 내려오긴 아쉽고, 좀 더 즐겨 보고 생각해 볼게요!”

-벌써 견제 오지네.

-도현이 웃으면서 멕이넼ㅋㅋㅋㅋ

정유현은 별말 없이 은은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둘 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팽팽한 기 싸움이 오갔다. 옆에 앉아 있던 박재봉도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둘 사이 안 좋아요?”

“잘 모르는 사이 같은데.”

“둘 다 조심해야 할 거 같아요.”

박재봉에게는 요주의 인물들이었다. 강도현은 물론 나 때문에, 그리고 정유현은 지난번 1차 경연 때문에. 물론 저 둘은 박재봉한테 별생각이 없을 테지만.

* * *

중간 광고 타임이 끝나고, 시그널 송 연습 장면으로 전환됐다. 100명의 연습생이 등급별로 형형색색 옷을 맞춰 입고 서 있는 모습은 티비로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됐다.

“와, 징그럽다, 진짜.”

물론 나는 대면식 다음에는 시그널 송 공개와 연습을 할 순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연습생은 무슨 촬영인지도 몰랐다. 두둥! 요란한 효과음에 어리둥절해하던 연습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시즌 1의 시그널 송 무대 VCR이 먼저 나오면서, 작곡진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이번에도 스타메이커였냐?

┕어쩐지 가사에서 싼마이가.

┕근데 한국인들 저격하는 뽕삘은 쟤네 따라올 작곡진이 없음ㅋㅋㅋㅋㅋㅋ

┕자존심 상하지만 ㅇㅈ

[눈부셔]

마침내 시그널 송 제목이 공개되고, 가이드 버전이 플레이됐다. 연습생들의 다양한 반응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중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연습생도 있었다.

-강제 웃참챌ㅋㅋㅋㅋㅋ

-하는 애들도 웃는데 나도 마음껏 웃어야지.

-가이드 누가 했냐? 스타메이커 중 한 명이 한 거 아님?

┕ㅈㄴ걸걸한 목소리로 눈부셔 거려서 징그러워...

┕저 가이드 듣고 연습한 내새끼가 레전드다.

뒤이어 시그널 송 안무 시안이 나왔다. 최성재 안무가가 직접 추는 영상이었다. 몇몇 연습생들은 이미 안무를 따고 있었고, 낮은 등급 연습생들은 우왕좌왕하거나, 멀뚱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습생들은 대부분 코믹한 편집으로 소비됐다.

-난리 났네;;

-천하제일 뚝딱이 대회임?

-그래도 서로 열심히 하려는 게 기특하지 않냐?

┕부족한 사람끼리 모이면 더 부족한 거 아님?

-저 실력으로 아이돌하겠다는 패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임?

-잘생긴 뚝딱이는 없나?

┕감전좌가 그나마 호감형 아니야?

┕감프는 꺼져.

“반응 한번 살벌하네…….”

그리고 이어지는 엠시의 폭탄 발언.

“이번 시즌에는 등급 재조정이 없습니다.”

뒤이어 전광판에 나온 피라미드와 센터 선정 방식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는 반응과 쓸데없이 힘 뺀다는 반응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저게 뭔 소리임?

-모든 등급에서 센터 후보가 나올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이 말인 듯?

-걍 평범하게 가지 또 꼼수 부리네.

-아니 그럼 S등급 1명은 S등급인데도 센터 지원 못 하는 거야?

┕ㅁㅊ 이게 김병대였나보네.

┕병대 기분 나쁠 만 했네ㅋㅋㅋㅋㅋ

이제 대망의 등급별 연습 분량이었다. 여기서 데뷔권의 절반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서사를 잘 받아 먹는다면, 한 회차의 주인공이 될 기회이기도 했다.

역시 센터인 박재봉의 서사가 먼저 나왔다. 정작 1, 2화에서는 거의 나오지도 않았던 박재봉의 대면식 무대와 C등급에 충격받은 모습이 연달아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재봉의 연습 장면. 간간히 박재봉과 마지막까지 남아 밥 먹듯 새벽 연습을 한 정유현의 모습도 보였다.

-센터 서사 몰빵은 여전하네.

┕마음에 안 들면 니 최애가 센터 해보던가.

-재봉이 ㅈㄴ 노력충이었네.

-애기 저 시간에도 안자고 연습한거야?ㅠㅠ 키안커ㅠㅠ

┕님이 제일 못됐음ㅠ

-아니 그래서 어떻게 센터가 된건데??

┕그니까;; 연습을 쟤만 한 것도 아니고

-아직 다들 씨넷 모르냐고. 센터된 이유는 백퍼 담주각이다.

┕ㅇㅇ 저렇게 빌드업 치고 담주로 넘길듯

“역시 내 분량은 기대할 게 못 됐나-”

방송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30분가량 시간이 남았지만, 다른 주요 연습생들을 보여 주지 않을까 예상했다. 아쉽긴 해도 시그널 송과 첫 방송 임팩트가 강했으니, 1차 경연 때 서사를 받아도 늦지 않는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연습생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자막과 함께, 익숙한 장면이 나왔다. 모여 있는 연습생들 사이에 있는 사람…….

저거 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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