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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6화 (16/346)

16화

강도현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잘 이해한 거 같다.

“형, 거기서는 다리 좀 더 구부리고!”

“형석아, 표정!”

“형, 삼대 마요가 뭔 줄 알아요?”

“…뭔데.”

“한숨 쉬지 마요, 쉬지 마요, 포기하지 마요!”

지금까지 저 에너지와 깐족거림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연스럽게 하라는 거였지, 저렇게 날아다니라는 게 아니었는데.

남들 다 긴장하는 중간 평가에서도 강도현만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오~ 이번 팀은 완전 어벤저스네?”

“그러게요, S, A, B로만 이뤄져 있네!”

“거기다가 도현이랑 승빈이까지 있으니…….”

예상은 했다만 아예 우리 팀을 이번 경연의 어벤저스 팀으로 점찍은 듯했다. 트레이너들도 앞선 다른 팀들보다 더 과장된 반응이었다.

“자, 그럼 한번 봐 볼까?”

“잘해라~”

“네!”

각자 자리를 잡는데 김형석이 얼이 빠져 있었다. 뭐지?

“형석아, 너 강도현 옆에-”

“아, 네. 네!”

내 자리를 찾는 척 슬쩍 얘기해 주니 그제야 정신 차리고 자리를 찾아갔다.

“샷건 팀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스태프의 말과 함께 노래가 시작됐다. 그리고 결과는 아주 처참했다. 김형석의 실전 울렁증이 도진 것이다. 1차로 음 이탈로 멘붕이 오기 시작하더니 동선까지 꼬이고, 결국 음악이 중단됐다.

연습실의 공기가 무섭게 차가워졌다. 김형석의 얼굴을 보니 멘탈이 완전 나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상대 팀이 눈치 보느라 눈알 굴리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제대로 망쳤다 이거다.

“이게… 대체 뭐지?”

서재인 트레이너의 반응에 백번 공감했다. 나조차도 무대 내내 ‘이게 뭐지?’ 어이가 없었으니까.

“너희 지금 등급도 높고, 벌써 좋아하는 사람 좀 많다고 너무 안심하는 거 아냐?”

“이건 성의가 없는 거지.”

“포지션 어떻게 정했니? 승빈이는 왜 메인 보컬 안 했어?”

“아, 저는…….”

나라도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그래서 트레이너의 질문을 받고, 일부러 더 손을 떨었다. 제대로 당황한 척. 한숨 한번 고르고,

“형석이와 이 노래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노래는 섹시한 보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석이 보컬이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네.”

“그럼 너는 안 섹시하고?”

“아직 섹시 컨셉은, 조금 안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팀 색깔을 위해서 형석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메인 보컬 관련해서 물어볼까 봐 미리 준비했던 말이었지만, 말하다 보니 진심이 섞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분량과 임팩트 때문에 메인 보컬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노래 분위기와 내 이미지가 잘 어울릴까? 하는 의심은 있었다. 상태창에 노래 포인트 팝업이 뜬 이후로는 쓸모없어진 고민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어디 한번 보자. 노래 틀어 줄 테니까 지금 섹시한 표정 한번 해 봐.”

최성재 트레이너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잠시 당황했지만, 분위기를 바꿀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왔고,

[지금 당장 방아쇠를 당겨

네 심장을 향해]

손으로 권총을 만들어 얼굴을 쓸어내리며 최대한 섹시한 표정을 지어 봤다.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제일 섹시했던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니었나 보다. 트레이너들이 하나둘 평가지로 얼굴을 가리거나, 등 돌려 웃음을 참았다.

“너, 섹시는 진짜…….”

“아, 귀여워…….”

“승빈이 너,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되어 있는 친구였구나.”

“섹시한 표정은 연습하면 될 거 같고, 메인 보컬 파트 한번 불러 볼래?”

“그래, 일단 지금은 섹시가 많이 부족하긴 한데 메인 보컬은 노래가 더 중요하니까.”

“…네.”

“고음 부분 말고, 여기 하이라이트 지나고 무반주로 들어가는 부분 불러 봐. 들어 보니까 여기가 제일 섹시한 구간이네.”

역시 김유진 트레이너였다. 모두가 고음 파트에만 집중해서 가장 중요한 파트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잡아 냈다.

[난 한번 잡은 먹잇감은 안 놓쳐

붉게 빛나는 네 심장을 향해]

어제 연습한 것처럼 평소보다 힘을 빼고, 공기를 더 넣어 불렀다. 반응은 의외였다.

“오, 나쁘지 않은데?”

“섹시하긴 한데 약간, 뭔가 좀 그렇다.”

“뭐가 그래요?”

“알겠다. 야시꾸리하다는 거죠, 영빈 쌤?”

“네? 무슨 소리예요!”

야시꾸리하다니, 의도한 대로 되긴 해서 기쁘긴 한데 기분이 묘했다. 내 보컬이 섹시와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다 오늘 새벽에 성공한 퀘스트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한 습득력이 최고치에 가까워졌으니 노래 자체 소화력이 좋아진 덕분 아닐까.

“아니, 근데 진짜 잘 살려 불렀어. 승빈이가 메보 해도 될 거 같은데?”

“맞아. 어차피 선택은 너희가 할 몫이지만 팀을 위해서라도 승빈이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다음 리허설 때는 더 좋은 무대 보여 주길 바란다!”

“네!!”

* * *

중간 평가가 끝나고 연습실에 돌아와서도 김형석은 내내 미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본성 자체가 나쁜 놈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서바이벌에 참여했으니 얼마나 떨리고 정신없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계속 눈치를 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나에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저기, 형…….”

“왜 그래 형석아?”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괜찮아.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오늘 실수했다고 너무 기죽지 말고.”

하지만 다른 조원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하나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메인 보컬 교체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는 승빈이 형이 하는 게 더 안정적이고 좋을 거 같아.”

“맞아. 일단 트레이너 쌤들한테 지적을 당한 이상 그대로 가긴 어려울 거 같다.”

“형석아, 이번에는 네가 포기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잔인하지만 정확한 분석이었다. 어벤저스 거리면서 의기양양하다가, 중간 평가에서 한번 제대로 털리고 나니까 얘들도 정신이 좀 든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김형석도 울먹이며 답했다.

“네, 저도 승빈이 형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타깝지만 어떨 수 없는 일이었다. 무대는 실전이기에 누가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다. 누가 무대를 얼마나 잘했는지-만 보는 게 연예계였고, 그게 당연했다.

김형석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실전에서 발휘될 수 없는 실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작 트레이너들 앞에서도 저렇게 떨면 수십에서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서서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그건 안타깝게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얘기였다. 과거의 내가 그래서 결국 VM 데뷔조에서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메인 보컬을 바꾸는 쪽으로 의견이 쏠리던 중, 강도현이 내게 물었다.

“근데 지금 시간이 얼마 없는데 승빈이 너는 부담 안 돼?”

부담? 섹시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도 들었고, 이 노래만큼은 트레이너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마당에 부담이 있을 리가.

“믿고 맡겨 주면 최선을 다해 볼게.”

이런 본심은 살짝 숨겨 두고, 사뭇 진지하게 답하자 나머지 연습생들도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대신에 기존 내 파트는 형석이가 하면 될 거 같아.”

“네?”

“그래야 파트 재분배할 부담도 없고, 동선도 우리 둘만 바꾸면 되잖아”

“그건 그렇지.”

다들 의외라는 표정 반, 다행이라는 표정 반이었다. 하긴 내가 메인 보컬까지 해 버리면 김형석 파트를 다시 정해 줄 생각에 걱정했겠지. 이 중 누군가의 파트는 뺏기게 되는 게 당연한 순서였으니. 그래서 먼저 선수 친 것도 있었다. 여기서 더 분위기 안 좋아졌다가는 진짜 답도 없었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유독 김형석과 연습하는 시간이 늘었다. 김형석을 보면 자신 없던 과거의 어린 내가 떠올라서일까, 유독 마음이 쓰였다.

“거기 할 때 이 제스처 하면 얼굴선이랑 예쁘게 나오더라.”

“이렇게요?”

“응.”

“진짜 그러네요?”

“그럼. 내가 거울 보고 얼마나 연습했는데-”

파트를 주면서 내가 연습했던 제스처도 같이 전수했다. 부디 경연에서는 열심히 준비한 것을 제대로 보여 줬으면 싶었으니까. 처음에는 민망하고 미안했는지 어색해하더니, 속성 과외가 끝나고 나서는 나에 대한 관심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어쩌다 보니 제2의 박재봉을 얻은 거 같은데 이게 맞는 선택일까.

그래도 정신 차리고 연습에 성실하게 임하니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흐뭇하게 단체 군무를 모니터링하던 중,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윤승철이 들어왔다. 양손에 피자와 치킨, 간식을 들고.

“대박!”

“얼마 만의 피자야?”

“다들 먹고 힘내서 연습하라고 잠깐 들렸어요~”

언제 들어오나 했다. 시즌마다 있는 익숙한 패턴이었다. 그다음에는 다 같이 앉아서 엠시가 조언하고 연습생들은 피자 한 입 먹고, 고개 끄덕이며 호응하는 시간이었다.

“그럼, 남은 연습 잘 마치고 리허설 때 봐요~!”

“네!”

“감사합니다!”

엠시가 떠나고 다들 허겁지겁 피자를 먹는데, 김형석이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저… 여러분, 그동안 죄송했어요.”

“응?”

“제 욕심 때문에 팀에 피해가 간 거 같아서-”

“에이, 아니야~”

강도현이 분위기를 살리려고 몸을 치대며 형석을 달랬다. 잘했다 강도현, 여기서 울기라도 하면 분명 예고편 어그로로 쓰일 것이다.

“그리고 너 연습 때는 정말 잘했어. 우리 다 메인 보컬 하는 거 인정했었잖아.”

“맞아. 더 많은 무대를 하다 보면 점점 덜 떨게 될 거야.”

“앞으로 잘하면 되지~”

이 정도면 방송에서도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훈훈한 마무리~ 정도로 편집될 것이다. 김형석이 완전 나가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애인데 악편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저기…….”

한숨 놓여 이제야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내내 조용히 연습만 하던 양재욱이 입을 열었다.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붙임성 좋은 강도현이랑만 그나마 말을 붙이던 연습생이었다. 나머지 연습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귀가 새빨개졌다.

“무슨 일이야, 재욱아?”

“우리 의상 관련해서 말하고 싶어서.”

그냥 자기 연습에만 집중하는 줄 알았는데 의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솔직히 의외였다.

“의상이 슈트잖아. 근데 그냥 슈트만 하면 조금 밋밋하지 않을까?”

“아, 그런가?”

“응! 사실 아까 다른 팀 의상 입은 거 살짝 봤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조금 걱정되더라고.”

“근데 슈트에다 뭔가 추가해도 돼요?”

“안 된다는 말은 없었는데.”

“한번 물어보지, 뭐.”

강도현이 바로 제작진들에게 물었고,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안 그래도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사실 피지컬이나 외적인 부분으로는 정유현의 팀이 더 유리했다. 아마도 강점인 피지컬을 강조하기 위해 정석 슈트를 선택했겠지. 슈트만큼 아이돌 판에서 확실한 흥행 보증 수표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우리는 컨셉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총을 들까?”

“근데 소품은 상대 팀도 준비하지 않을까요?”

“그러네…….”

머리 싸매고 고민한 지 1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연습이나 더 열심히 해야 하나 했는데, 순간 머릿속에 티벡스랑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인기 아이돌의 의상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테크웨어 어때?”

“테크웨어요?”

“응, 우리 노래도 킬러잖아. 제대로 저격수 느낌 살려서 고글이랑 총을 활용하면 어떨까?”

이때만 해도 테크웨어가 대중적인 컨셉은 아니었지만, 1년 뒤 한 아이돌이 테크웨어를 입으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났다.

“오~ 괜찮을 거 같은데요?”

단정한 수트 위에 반항아적인 느낌의 테크웨어 조합을 상상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남은 건 오직 내 안의 섹시를 끌어 모아서 표정 연기로 방출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게 제일 문제일 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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