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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4화 (14/346)

14화

대충 감이 왔다. 시그널 송도 공개되었고, 드디어 첫 번째 경연을 할 순서였다.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이었다. 기억대로라면 같은 노래로 두 팀이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회귀하고 난 후 서바이벌의 흐름이 조금씩 변했지만, 이번에도 큰 변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촬영장에는 등급별 운동복을 입은 연습생들이 모였다. 무슨 운동회라도 하려는 건지 앞에는 스티커가 붙은 풍선과 장난감 활이 준비되어 있었다. 연습생들 모두 의도를 알 수 없는 아이템들에 어리둥절했다.

그때, 엠시 윤승철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To My World’ 시즌 2 100명의 연습생 여러분! 다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바로 첫 번째 경연 미션 때문입니다!”

예상한 대로군. 이제 팀원을 정하겠지.

“센터의 특권, 이미 모두 예상하시죠?”

“네~!”

모두 부러움 섞인 목소리였다. 팀원 우선 선택권. 센터가 가지는 막강한 특권 중 하나다. 매 시즌 센터가 뽑는 그룹은 그 경연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기도 했다.

“센터는 원하는 팀원을 선정할 수 있습니다. 단!”

단? 뒤에 무슨 조건이 붙는다는 소린가? 쉽게 쉽게 좀 가자…….

“한 명의 팀원만을 고를 수 있습니다!”

맞다, 저게 있었지. 방영하던 당시에는 무슨 기차놀이 하냐고 비웃었던 기억이 났다. 뽑힌 사람이 순서대로 다음 팀원을 고르고, 인원수가 다 차면 다음 팀을 뽑을 사람을 고르는 형식이었다. 그 결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조합들이 탄생했었지.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되려나.

“그럼, 박재봉 연습생 나와서 팀원을 호명해 주세요.”

“저는… 윤빈 연습생을 뽑겠습니다.”

윤빈? 의외의 선택이었다. 해외파여서 특유의 긍정 바이브가 느껴지는 연습생이었다. 소속사 평가 때도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연습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쟤, 시즌 2로 데뷔했었다. 과연 박재봉이 윤빈에게서 어떤 잠재력을 본 건지 궁금해졌다.

“아쉬워?”

“뭐가?”

“재봉이가 안 뽑아 줘서.”

“에이, 선우 형이 아쉬워하는 거 아니고?”

귀가 간지럽다 했더니, 어느새 박선우가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는 저 표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저거 또 나 놀리려고 하네. 원래는 내가 2살 더 많은데, 무슨 나를 애 취급하고 있어. 말 못 할 억울함에 혼자 열이 올랐다.

그러던 와중에도 첫 번째 팀이 꾸려졌고, 역시나 실력파 연습생들이 초반 대거 유출됐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팀 구성. 이번 팀도 조금 전 연습생이 강도현을 호명하면서 S급만 2명이다. 어느덧 마지막 연습생을 호명할 차례가 되었고, 제발 나만 아니길 빌었다.

“A등급 문승빈 연습생을 뽑겠습니다.”

하마터면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힐 뻔했다. 거기서 나를 왜 뽑아 새끼야… S등급 2명에 A등급 2명 B등급 2명? 모두 20위권 내에 속한 연습생들이다. 거기다 지금 인지도 제일 높은 강도현에, 조랭이 어쩌구로 나름 인지도를 얻고 있는 나까지? 어벤저스네 어벤저스.

잘하는 애들끼리 팀을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식을 안다. 바로 [어벤저스 팀은 반드시 패배한다.]이다.

다 실력 좋고 인지도 높은 애들인데 왜 패배하냐고? 일단 기대치가 너무 높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잘하는 애들끼리 모아 놨으니 웬만한 무대 퀄리티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대 준비에도 차질이 생긴다.

새로운 걸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당연히 중간 평가쯤 되면 완전히 어그러지고 트레이너들한테 살벌하게 까이는 거지. 그러면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칭찬만 듣고 살던 애들이라 작은 비판에도 쉽게 흔들리는 거다. 자연스레 팀 분위기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지겨워지는 거다.

인기가 많으니까 무대 경연 자체는 이길 수도 있다. 근데 이기면 더 문제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못 할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상대 팀은 어벤저스 팀을 만나 좌절하지만, 결국 무대에 집중하자는 결심을 하고 최고의 무대를 해낼 거다. 그러면 진짜 끝나는 거다. 무대도 못 했으면서 인기로 이겨 먹은 놈들, 누가 좋아하겠냐고.

씨넷의 기가 막히는 편집까지 거쳐서 방송된다면 결과는 뻔했다. 내리막길 예약인 거다. 그렇게 해서 순위가 떨어진 어벤저스 팀 연습생이 매 시즌 수두룩했다.

두통이 밀려왔다. 걱정으로 가득한 나와는 다르게 다른 연습생들은 모두 신이 나 있었다.

“우리 팀 완전 어벤저스 아니에요?”

“그니까~ 다른 팀들한테 조금 미안할 정도임.”

시시덕대고 있는 꼴을 보자니 벌써 고생길이 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강도현이었다. 얘랑 붙어 있으면 분명 전, 현 VM 연습생 서사로 어그로 끌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첫 방송 나오고 나와 강도현, 김병대를 두고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는 반응들이 많았는데 아주 불난 곳에 기름 뿌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혼자 머리 빠지게 고민하는 사이 모든 팀의 멤버가 정해졌고, 경연곡이 공개됐다. 1군이란 1군은 모두 모은 라인업이었다. 우리는 무조건 ‘알파’의 [킬러]를 고르기로 했다. 그나마 인기가 덜 높은 그룹의 곡이니 원작자와 크게 비교될 일도 없고, 적당히 대중성도 얻은 곡이기 때문이었다. 칼군무를 보여 줄 수 있고, 랩, 보컬 파트 분배도 적절한 곡이었다. 근데 풍선에 곡 이름 붙여 놓은 걸 보니, 역시나 활 쏘겠네.

“이번 단체 미션 곡 선정 방식은, 바로 양궁입니다!”

“양궁?”

“무슨 소리야?”

여기가 아이돌 운동회도 아닌데, 고작 곡 뽑기에 양궁까지 시킨다고?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초등학생 이후로는 보지도 못한 장난감 화살대를 잡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돈 좀 썼는지 추억 속 그 앙증맞은 모습은 아니고, 제법 실제 활과 그 크기와 모양새가 비슷했다.

다행히 티벡스 시절 ‘아이돌 운동회’ 양궁 대결 때문에 한동안 양궁 연습을 했었다. 망돌에게는 예능 프로그램 나가서 한 컷이라도 얻는 것이 필사적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메달권에 들어야 했다. 그래서 정말 무대 연습보다 더 목숨 걸고 연습했었다. 그리고 그해 금메달을 획득하고 겨우 인터뷰 컷 5초 얻어 냈다. 근데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 팀이 투마월 시즌 2로 만들어진 그룹 ‘투샤인’이어서 욕만 엄청나게 먹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상대가 바로 저기 있는 윤빈이었지.

그래도 덕분에 원하는 노래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래, 기왕 어벤저스 팀이 된 거 레전드 무대를 만든다면 오히려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 문승빈 연습생 자세가 남다른데요?”

“형, 양궁 했었어요?”

“아, 제가 양궁 경기 보는 걸 좋아해서. 하하-”

그런데 또 골치 아프게 됐다. 하필이면 김병대가 속한 팀이 같은 곡을 뽑았다. 안 그래도 센터 후보에 혼자 못 들어서, 경쟁심이 더 강해져 있을 텐데 상대 팀이라니.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거기다가 저 팀에는 원래 시즌 2 센터였던 정유현까지 있으니 더 큰일이었다.

곡 선정도 마쳤으니 슬슬 팀별 연습 시간을 가지겠다고 예상하던 찰나, 엠시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뭐야, 또…….”

“자, 모두 자신의 팀과 미션 곡에 만족하나요?”

“네!”

“네…….”

원하는 곡을 뽑은 팀과 그렇지 못한 그룹의 온도 차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조금 아쉽겠죠?”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 나오는 건가.

“이제 아이돌이 춤과 노래만 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아이돌의 또 다른 덕목, 바로 프로듀싱이죠!”

“프로듀싱?”

자체 제작 아이돌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자체 프로듀싱을 하는 신인 아이돌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투마월 시즌 2 역시 그 흐름에 완벽하게 편승해, 모든 경연마다 연습생의 무대 구성 능력을 그렇게도 강조했었다.

“여러분들의 컨셉 짜는 능력을 보겠습니다. 아이돌이라면 노래와 의상에 맞는 컨셉을 짜고,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겠죠?”

이쯤 되니 해탈하고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하는 연습생들도 보였다. 얘들아, 너희 이제 의상 뽑기도 해야 한단다.

역시나 제작진들은 각각 [교복, 제복, 운동복, 한복, 슈트]라고 적힌 공들을 가져왔다. 엠시는 하나씩 들어서 키워드들을 보여 주더니 상자 속에 집어 넣었다.

“여기, 여러분이 무대에서 입을 의상들이 적힌 공이 있습니다. 각 팀의 조장들은 나와서 공을 하나씩 꺼내 주세요. 그리고 그 의상에 어울리게 노래를 편곡하고, 안무를 구성하면 됩니다!”

엠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습생들이 동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잔잔한 노래에 운동복을 뽑거나, 알앤비인데 한복을 뽑는 등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무대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박재봉 연습생 팀, 조장 나와 주세요.”

“네!”

박재봉이 팔랑이며 뛰어왔다. 센터에 조장까지 하다니, 보통 애가 아니다. 상자 안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재봉이가 공을 꺼냈고, 표정이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무슨 일이냐는 연습생들의 물음에,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카메라에 공을 보였다.

[한복]

“아…….”

다들 탄식했다. 그 이유는 재봉이네 팀 선정곡 ‘달려갈게’가 극강의 청량을 자랑하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컨셉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한복은 다루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한복 가지고 장난친다’는 평가를 받기도 쉽고 말이다. 팀에 돌아가서도 미안하다며 울상인 재봉을 윤빈이 특유의 쾌남 바이브로 위로했다.

“괜찮아, 재봉! 한복 아주 좋아, 걱정하지 마!”

역시 ‘에브리띵 윌 비 올라잇’을 좌우명으로 적었던 사람다웠다. 나름 효과가 있는지 재봉이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지운이 형이 속한 상대 팀에서도 조장이 나왔다.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에 공을 뽑았고, 재봉이네 팀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운동복]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떤 운동복이다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농구복, 야구복 등 선택의 폭이 넓다. 게다가 운동복 컨셉에 청량은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었다. 적어도 1차 경연은 무난하게 통과하겠네.

축제 분위기인 상대 팀을 보며 재봉이네 팀 분위기는 더 침울해졌다. 그 와중에도 윤빈은 다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은가 혼자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상황 판단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최강의 긍정맨인 건지.

곧이어 우리 팀 순서가 왔고, 조장인 강도현이 공을 뽑았다. 다행히 무난한 [슈트]였다. 아주 귀여운 것만 아니면 웬만한 컨셉과 다 잘 어울리는 의상이기 때문에 한숨 돌렸다. 이거마저 이상한 조합이었으면 파업 선언할 뻔했다.

“그럼 상대 팀 나와서 공 뽑아 주세요.”

김병대네 팀의 리더는 정유현이었다. 기왕이면 다른 의상을 뽑길 바랐다. 안 어울리는 의상이면 더 좋고.

“유현군, 발표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 줄 수 있나요?”

갑자기 스태프가 엠시에게 신호를 보냈고, 윤승철이 급하게 정유현의 공을 가렸다. 그리고 몰래 확인을 하더니, 씩 웃는 거 아닌가.

“와- 이거 재밌는 대결이 되겠는데요?”

그리고 공개된 공에는 우리와 똑같이 [슈트]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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