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2화 (12/346)

12화

그로부터 일주일 뒤, 드디어 씨넷 공식 홈페이지에 시그널 송 영상이 올라왔다. 공개와 동시에 우리도 숙소에서 몇 명씩 모여 영상을 시청했다. 다행히도 카메라가 꺼지는 자유 시간대였다. 실시간으로 반응 좀 볼 수 있겠네.

“지금 여러분의 별은 누구입니까?”

핀 조명 아래 윤승철이 나타났다.

“이제, 누가 당신의 별이 될까요?”

“To My World 시즌 2 이제 시작합니다!”

멘트를 마치고 화면이 전환된다. 센터인 박재봉이 나타나고, 그 뒤에 놓인 거대한 문을 반쯤 열고 따라오라 손짓한다. 시즌 4에서는 저 문을 내가 열었는데 말이지. 어두웠던 세트장이 밝아지고, 박재봉의 뒤로 99명의 연습생이 등장한다.

“어휴, 진짜 많긴 많다…….”

“다시 봐도 무대 진짜 크네.”

박재봉이 센터 자리로 걸어가고 그의 시선이 카메라 정면을 향하는 순간,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무대가 시작됐다.

“오~ 역시 센터!”

“화면 잘 받는다!”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지면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는 실시간 반응을 확인했다. 씨넷에서는 아예 ‘To My World 시즌 2’만을 위한 시청자 게시판을 개설했다. 커뮤니티처럼 실시간으로 달릴 수 있는 불판 형식이었다. 시즌 1이 인터넷 영업글로 초반부터 흥했던 걸 보고 아예 판을 깔아 준 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화력은 자연스럽게 커질 테니까.

-제목이 눈부셔?

-눈부셬ㅋㅋㅋㅋㅋㅋㅋ벌써 망삘임

-ㅁㅊ 재봉이 센터

-으아아아아아아!!!!!!!!

-헐 귀여워

-쟤가 센터라고? 뒤에 있는 애들이 훨씬 잘생겼는데;;

‘뒤에 라면 혹시 나?’

-아 왜 강도현이 센터 아님?

┕도현이 견제당한게 분명함

┕잘생긴애가 센터까지 하면 데뷔 확정이니까ㅡㅡ

그래, 아직은 강도현의 인기가 월등하다. VM 내에서도 유명했던 연습생이었으니까.

[네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

따라와 오직 너만을 위한 곳]

-와, 애네 이 악물고 안무하는 것 봐라. 이래서 신인이 좋다니까?

┕ㅇㅇ진심 이래서 신인때 파야함.

고조되는 음악에 맞춰 안무도 점점 격해졌다.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춤추는 게 눈에 보였다. 하긴, 안무에 쉴 구간이 거의 없고, 장시간의 녹화 동안 무한 반복했으니까. 모든 연습생의 머릿속에는 그냥 빨리 베스트 컷 따서 촬영을 끝내 달라는 바람뿐이었을 것이다.

-근데 중간에 아저씨 뭐임? 아저씨는 꺼져

-뒤쪽에 계속 뚝딱이는 애는 누구냐

┕제페토 할아버지 불러야할 듯

┕잃어버린 피노키오를 찾았어요

┕시즌1 양철나무꾼 이번 시즌 나왔으면 완전 실력캐였을 듯?

역시 대놓고 판을 깔아 주니 필터 없는 발언들이 난무했다. 그사이 불판은 여러 번 갈리고 있었다. 공개된 지 몇 분 만에 만 단위의 댓글이 올라오는 데에서 일단 프로그램 화제성은 최고였다. 제작진들이 신나할 게 눈에 빤해서 괜히 재수 없었다.

-아 근데 세라복 좋다. 오디션 프로그램들 맨날 교복 입혀서 지겨웠는데

-견장 달고 있는 애들이 S등급인가?

┕센터 후보들이래

-반바지 최고다 진짜

-센터 독기봨ㅋㅋㅋㅋㅋㅋ반바지에 니삭스에 이가리 메이크업까지 함ㅋㅋㅋㅋㅋ

┕수박에 줄이라도 그어야죠

┕프로그램 시작도 안했는데 견제하는 거 보면 우리 재봉이 벌써 슈스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노래가 끝났다. 엔딩과 함께 아련한 피아노 버전 시그널 송이 깔리면서 한 명씩 원샷이 잡혔고, 뒤쪽에 배치돼서 내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지운이 형도 다행히 원샷을 얻었다.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잡히자마자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옆에서는 선우 형이 더 호들갑이었다.

“봤어? 지운이 진짜 잘생기게 나왔네!”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귀가 벌게진 게 기분 좋다는 신호였다. 물론 나도 나왔다. 열심히 기도한 대로 처음에 준비한 제스처가 나왔다. 다만, 거의 막바지 촬영본이 쓰인 건지 볼이 잔뜩 벌게진 상태였다.

“승빈이 좀 귀엽네.”

선우 형이 옆에서 놀리기 시작했다. 또 한동안 피곤해지겠군.

-방금 전에 볼따구 집어먹은 애 이름 뭐냐?

┕승빈이!

-쟤 볼 빨개진 것 봨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장 다지워졌넼ㅋㅋ

-저거 계속 한건가봨ㅋㅋㅋㅋㅋㅋㅋ

-저정도면 진짜 볼따구 뜯어지는거 아니냐고ㅠ

┕무슨 호빵맨이냐곸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오히려 열심히 준비한 연습생 이미지로 먹힌 거 같아 다행이었다.

역시나 마지막은 박재봉의 머리 위로 꽃가루가 날리면서 센터의 특권인 단독 컷으로 마무리됐다.

-오프닝이랑 엔딩 다 센터 주네

┕역대급으로 센터 밀어주는 것 봐;;

┕어느 소속사임?

-센터 별론거 같은데

┕진심;;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은거냐

┕딱봐도 미자인데 악플달고 싶냐

-마지막 애깅이 귀엽네ㅠㅠㅠㅠ

-울 재봉이 천재아이돌이야...

시그널 송 영상의 조회 수는 무섭게 올랐다. 공개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10만 조회 수를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프로그램의 팬이 되려고 본 것은 아니겠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인 사람이 절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번 시즌의 성공을 본 사람이고, 장담하는데 저들 역시 전전긍긍하며 자기 픽을 살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홍보하는 애청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 * *

연습생들과 같은 시간, 시그널 송을 확인하는 여자가 있었다. 2년 뒤 문승빈의 지독한 팬이 되어 있을 그녀, 문스트럭이었다. 영상이 재생된 순간부터 승빈이 컷을 따느라 3분짜리 영상을 30분 동안 보는 중이었다. 센터 후보 11인에 뽑혀서 비교적 잘 보이는 자리였지만, 앞에 위치한 센터 리프트 때문에 애매하게 가려진 컷이 많았다.

“하, 원샷 하나 나오면 딱인데-”

구석에 잡히거나, 저화질로 나온 장면도 콩알딱지라며 귀여워할 만큼 그 흔한 입덕 부정기 하나 없이 문승빈의 팬이 됐다. 문득, 대면 행사 날이 생각났다. 사방이 잘생기고 귀여운 연습생이었는데 그녀의 심금을 울리는 연습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인기 있어 보이는 연습생 사진이나 찍어서 팔까… 낙담하던 찰나, 운명처럼 놀란 강아지 눈을 한 문승빈을 만난 것이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핸드폰 배경 화면은 오직 그 사진이었다. 하얀 머리가 빛을 받아서 반짝거리는 게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잘 찍은 사진이었다. 그 어떤 색 하나 없이 새하얀 머리카락이 저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나. 얼굴이 허여멀건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타쿠 머리라고 생각했던 백발이 승빈이한테는 그냥 찰떡이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 단체복인 세라복 의상과도 너무 잘 어울렸다. 하얀 머리에 하얀 얼굴, 하얀 옷, 그리고 그 사이에 돋보이는 짙은 파란색 리본. 쟤는 어쩜 저렇게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핑크색인 건지, 그냥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특히 놀라서 벌어진 입속으로 똑 떼어먹고 싶은 앞니가 최애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찰나를 담아낸 순간이 너무 드라마 같았다고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덕통사고’ 이 말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춤도 이 정도면 괜찮고, 목소리도 좋을 거 같은데-”

어느덧 시그널 송이 끝났고, 엔딩에 한 명씩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쟤가 걘가, 차지운? K가 그날 쟤 종이비행기 받았던 거 같은데.”

그녀의 지인이자 함께 공개 대면식에 갔던 K의 손에 쏙하고 들어왔던 종이비행기의 주인공. 대놓고 양아치상인 얼굴과 다르게 글씨체가 꽤나 앙증맞아서 한참 웃었던 둘이었다. 물론 그녀의 서랍에도 문승빈의 종이비행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직접 받은 건 아니고, 교환에 교환을 거쳐 겨우 얻어 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올해 가장 잘한 일이었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기도 잠깐, 그녀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승빈이가 붉어진 볼을 잡아 늘이고 입에 넣는 장면이 나왔다.

“됐다! 효자다, 효자야!”

그녀는 바로 동영상을 따서 움짤로 편집하고 보정을 했다. 최대한 말랑하고, 볼 부분은 발그레한 정도로.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3초전

[움짤]

이 조랭이떡이랑 거래할 거 있나요?

아직 팬층이 두터운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1n년간 건재한 자신의 감을 믿었다. 분명 얘는 무조건 데뷔할 거라고, 그것도 센터로.

그리고 그녀가 올린 움짤의 반응은 뜨거웠다. 평소보다 배의 속도로 하트와 리짹이 눌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물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온갖 커뮤와 SNS를 돌며 반응을 확인했다. 벌써 ‘투마월 조랭이 걔’로 반응이 왔다. 물론 보정 사기라며 까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또한 인기를 위한 액땜이다- 하고 즐겼다. 이런 거로 멘탈이 흔들린다? 그럼 아이돌 덕질하지 말아야지. 울 애깅 벌써 핫하네~

* * *

“조랭이 안녕?”

선우 형의 아침 인사에 내 귀를 의심했다. ‘조랭이?’ 내가 왜 조랭이인데?

“조랭이? 내가 떡같이 생겼다는 거야?”

“떡은 떡이긴 한데-”

지금 완전 인기몰이 중이라며 보여 준 것은 어제 내 엔딩 움짤이었다. 내 피부가… 이렇게 하얗던가? 움짤 밑에 작게 박힌 아이디는 역시나 문스트럭이었다. 이분 움짤 계정도 같이 하시려나 보네. 티벡스 시절에는 하도 팬이 없어서 자급자족하려고 홈마며 움짤계며 보정계며 일당백을 하는 줄 알았는데, 원래 대단한 분이셨구나.

방송 시작도 전에 애칭이나, 들으면 바로 알 만한 별명이 생긴 건 좋은 소식이었다. 이름은 몰라도 ‘조랭이 걔’로 불리면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니까. 근데 나는 정작 ‘하얀 머리 걔’를 노렸는데, 조랭이가 더 임팩트가 컸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살짝 아리까리했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뭐.

다행히도 우리 방 멤버들은 다들 한 번씩은 원샷이 잡혀서 아침부터 분위기가 훈훈했다. 투마월 시즌 2는 숙소에서만 핸드폰 사용을 허용하고, 숙소 밖에서는 소지 자체가 금지였다. 그래서 다들 숙소에 있을 때는 열심히 핸드폰을 했는데, 연습이 빡세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더니 상당수가 눈 밑이 퀭했다. 아마도 어제 잠 안 자고 인터넷 반응을 찾아본 거 같았다. 울었는지 눈이 벌건 연습생도 여럿이었다. 시즌 1 때 합숙 기간은 핸드폰 사용이 아예 금지였는데, 연습생 인권 침해라는 비판에 시즌 2부터는 숙소 건물에서라도 그 제한을 풀어 줬다고 들었다. 근데 어찌 된 게 핸드폰 사용이 더 연습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 같았다. 아마도 다들 처음 맞이하는 날것의 반응일 테니 충격이 크겠지. 좋은 말 백 마디를 들어도, 한 마디의 나쁜 말이 가슴에 박히게 되니까.

“승빈이 형!”

“재봉이, 안녕-”

예상은 했지만 역시 박재봉은 보통 멘탈이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텐션으로 이쪽 테이블을 향해 달려오는데, 쟤는 아예 핸드폰을 안 본 건가 싶었다.

“형, 형 완전 조랭이 됐다면서요?”

아니네. 봤네, 봤어.

“너도 잠 안 자고 핸드폰만 봤냐? 어떻게 벌써 알아?”

“에이- 잠깐 보고 잤어요. 누가 저한테 키.커.야.한.다 그래서요.”

“어휴, 됐다. 근데 너희 방은 왜 셋이서만 왔어?”

“아… 성재 형은 밥 안 먹겠다고 그래서요.”

“왜 밥을 안 먹어? 어디 아프대?”

박재봉과 룸메이트인 이성재는 나도 F반 연습을 도와주면서 얼굴을 익힌 연습생이었다. 밥을 거를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그게 성재 형도 별명이 붙긴 붙었는데…….”

차마 자기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는지, 핸드폰을 꺼내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댓글 9백 개가 넘게 달린 게시글 하나가 떠 있었다.

[눈부셔_레전드_감전좌.gif] (928)

감전당한 듯 화려한 춤사위, 그를 담기엔 투마월은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저 정도면 신내림 받은거 아니냐

┕연습해도 저렇게는 못출듯

아, 밥이 안 들어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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