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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1화 (11/346)

11화

시그널 송 촬영 다음 날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공개하는 이른바 ‘공개 대면식’의 날이었다. 100명의 연습생이 시그널 송 의상을 입고, 씨넷 방송국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팬들과 마주하는 자리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초반 관심도와 코어를 결정하는 파급력 있는 행사였다. 이날 사진 하나만 잘 찍혀도 방영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고, 방송 분량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거다. 부디 간잽하기 위해 모인 삼천 홈마들 눈에 들어가기를, 그들의 대포 카메라에 내가 찍히길 밤새워 기도했다.

아직 추위가 가지 않은 날씨임에도 방송국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 사람들이 다 우리 보러 온 거냐며 주변 연습생들이 잔뜩 들뜬 게 보였다. 회귀 전에도 꽤 인기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어색한 편은 아님에도 놀라운 수준의 인기였다.

“S등급 연습생부터 입장하겠습니다!”

스태프들의 안내와 함께 일렬로 선 연습생들이 방송국 밖 포토존으로 향했다.

“와아아아!!”

“도현아, 여기 봐!”

“유현아!!”

“쟤 누구야?”

“잘생겼어, 미친!”

함성 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미 투마월 시즌 2에 출현한다는 소식이 SNS에 퍼진 강도현, 정유현과 같은 유명 연습생들은 어느 정도 팬층이 형성된 듯했다. 아, 이럴 거면 나도 VM 전 연습생으로 출연한다고 SNS에 몰래 흘릴 걸 그랬나?

흡사 영화제 포토 라인에 선 기분이었다. 기자들보다도 성능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가드 라인 뒤로는 아수라장이었다. 네임드 자리를 선점하려는 홈마들의 몸싸움과 기 싸움, 안 보이니 비키라는 욕설도 간간이 들렸다. 어차피 상큼한 비지엠과 함께 묵음 처리될 소리지만.

저들도 누구를 찍을지 오늘 정하러 왔을 테니 일단 카메라가 보이는 곳마다 온갖 포즈를 취하고 끼를 부렸다.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찾는 능력, 지난 연예계 생활로 얻은 강점이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카메라들을 향해 브이를 하던 중, 익숙한 얼굴과 카메라에 달린 키링이 보였다. 설마……?

“얘들아, 여기도!!”

세상에,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기서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고 있는 여자는 티벡스 시절 나를 찍었던 홈마였다. 티벡스는 언제나 팬 사인회 미달인 그룹이었다. 그 말인즉슨 오늘 오전에 본 사람이 오후에 또 오고, 어제 본 사람이 오늘 오고 내일도 온다는 뜻이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루에 세 번이나 팬싸를 와서, 세 번째로 사인했을 때는 팬도 나도 도저히 더 할 말 없어 죽을 뻔했던. 이틀 후가 키우는 강아지 생일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팬 페이지 ‘샤이닝문’를 운영한 그녀는 정말 거짓말 안 하고 티벡스의 모든 스케줄에 참여했다. 비공식 스케줄일 때도 어김없이 프리뷰가 올라왔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오지에 갔을 때의 사진도 올라올 정도였다. 해체가 결정된 이후에 했던 마지막 행사 날에는 오열을 하면서도 카메라 연사를 멈추지 않았던 홈마였다.

예사롭지 않은 사진 실력과 보정으로 분명 내가 처음은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저 사람은 이번에도 나를 알아보고, 나의 팬이 될까?

* * *

공개 대면식은 처음으로 팬들을 마주하며 연습생들 간의 케미를 보여 주는 시간이기도 하므로 여러 곳에서 엉겨 붙는 연습생들이 속출했다. 저러다가 벌써부터 노림수 쩐다고 욕먹을 텐데- 나는 시작부터 옆구리에 붙어 있는 박재봉과 선우 형, 그리고 지운이 형하고만 붙어 있었다.

연습생만 해도 백 명인데, 수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방긋방긋 웃어 보이면서도 뒤로는 그래서 이거 언제 끝나냐고 귓속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행사의 마지막 코너, 비행기 날리기 타임이 되었다. 이번 투마월 시즌 2의 컨셉이 항해사인 만큼, 종이비행기 안에 ‘팔로워’들을 향한 멘트를 적어 날리는 이벤트였다. 참고로 팔로워는 투마월 시청자이자 투표하는 팬들을 의미하는데, ‘To My World’라는 제목에 충실한 호칭이었다. 1인 1종이비행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의 비행기를 얻기 위한 팬들의 신경전도 어마어마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팔로워분들. 이제 새로운 세계로 따라올 준비되셨나요?”

“네!!”

“자, 그럼 여러분들을 향한 연습생들의 마음을 받아 주세요!!”

윤승철의 멘트와 함께 백 개의 종이비행기가 하늘 위로 날았다. 개중에는 힘이 부족해 안전을 위해 세워 둔 가드 앞에 고꾸라진 비행기도 있었다.

“헐, 내 비행기!”

하지만 가드도 최애의 편지를 향한 팬을 막을 수 없었다. 가드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주워 가는 팬을 보고 나서야 연습생이 안심했다.

“아, 진짜 다행이다… 엄청나게 길게 쓴 거란 말이야.”

그리고 예상한 대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아, 꺼지라고!”

“미친X아, 내가 먼저 주웠어!!”

“밀지 말라고!!”

그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찌익- 완벽하게 가드를 넘어간 종이비행기 하나가 허공에서 찢어진 거다. 같은 종이비행기를 노리던 두 사람이 양쪽에서 낚아채느라 발생한 일이었다. 종이비행기의 주인공은 강도현.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앤데, 놀라서 벌어진 입이 닫힐 생각을 안 했다. 심지어 맨 앞줄에서 발생한 일이라 너무 완벽하게도 카메라에 잡혔다. 저거 무조건 방송에 쓰일 거 같은데. 쟤는 저런 운도 타고나나, 내심 부러웠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격해지자 제작진들은 급하게 연습생들에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기하라 공지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저 난리가 나는데 모른 척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밀지 마세요!”

“내가 안 밀었다고!”

“악!!”

“여기 누구 다쳤어요!!”

부상자까지 나왔다는 말에 연습생들이 더욱 동요했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행사를 종료했다. 방송국으로 들어오는 내내 연습생들은 혼이 나간 듯했다. 하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은 처음이겠지.

행사가 끝나고,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바로 현장 반응을 확인했다. SNS에 ‘투마월’, ‘To my world’ 따위를 검색했고, 최신 글부터 훑어 갔다. 역시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모두 프리뷰를 올리고 있었다. 벌써 반응이 뜨거웠다.

[박재봉 사진]

이 토깽이 이름 아시는 분!

-미친 얘 누구냐 이번 시즌은 너다

┕하씨 이번 시즌 안 보려고 했는데;;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가득했다.

-ㅈㄴ 평범하게 생겼는데 착즙 오지네

┕ㅇㅇ 밍밍하게 생기면 다 귀여운거에 비비넼ㅋㅋㅋㅋ

-키가 너무 작아ㅠㅠ

┕요정님이신데 무슨 문제?

┕ㅈㄹ

[차지운 사진]

야, 확신의 양아치상이다. 춤 ㅈㄴ 잘 출 듯?

-얘 차지운 아님?

┕ㅇㅇ 차지운 맞음.

-나 날티나는거 좋아하네...

-인성논란 백퍼 날 듯, 관상이...

┕관상가 납셨네.

┕이런 애들이 뭐 터지면 내가 먼저 알아봤다고 댓글 달고 다니는 거지?ㅉㅉ

다양한 유형의 반응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 대형 커뮤니티에서는 To my world 시즌 2 나오면 본다, 안 본다를 두고 투표도 한 적이 있다. 과반수가 안 본다고 답했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문승빈 사진]

하얀머리 얘 누구임...?

햇빛에 머리 반짝이는데 요정님인줄ㅠㅠㅠ

-아니 백발이 어울릴 수가 있는 거임?

┕저정도면 걍 백발로 태어난 거 같은데

-눈치껏 뿌리 백발로 자라라ㅡㅡ

-돌판 유구한 수요상... 완전 강쥐 아니냐...

다행이도 나와 관련된 언급도 꽤 보였다. 다시 한번 백발을 선택한 과거의 나를 칭찬하며 서치를 이어갔다.

그리고 글 중간중간에는 역시나 종이비행기 교환, 구매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비행기 사진]

투마월 박재봉 종이비행기 강도현 종이비행기와 교환 구합니다. 반쪽도 ㄱㅊ

#투마월 #강도현 #박재봉 #투마월시즌2 #종이비행기 #투마월교환

[비행기 사진]

정유현 종이비행기 판매합니다.

구매X 판매O

하자 없고요, 가격 제시받습니다.

#정유현 #투마월 #투마월시즌2 #종이비행기거래 #판매 #정유현_짹친소

종이비행기 이벤트에 대한 갑론을박도 뜨거웠다. 이미 실시간 트렌드에는 종이비행기가 트렌딩되어 있었고, 각종 커뮤니티에 종이비행기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갈 데까지 간 오늘 자 투마월 시즌 2]

-야, 종이비행기 저거 사람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거임?

┕이미 다친 사람 나왔음 (영상 주소)

┕미친 완전 좀비소굴 아님?

-나 현장이었는데 진짜 전쟁이었음 비행기만 날아다닌 게 아니었음, 사람들도 일제히 달려드는데 압사당하는 줄?

┕ㅈㄴ 할 짓 없는 애들이나 저런 데 가는 거 아님?

┕니는 할 짓이 넘쳐서 여기서 댓글 달고 있냐?

┕이 새끼는 왜 시비야 너 친구 없단 소리 자주 듣지

┕돌팬 ㅈㄴ 만만하게 보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보고 놀란 연습생의 기사 사진이 웃긴 짤로 돌아다녔고, 벌써 짤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돌판 현실을 마주한 투마월 연습생.jpg]

-표정 봨ㅋㅋㅋㅋㅋㅋ

┕애가 많이 놀랐나봐...

-현실의 쓴맛 미리 보고 가는 거지 뭨ㅋㅋㅋㅋㅋ

-얘네는 처음이지만 저기 사람들은 처음이 아닐테니깤ㅋㅋ큐ㅠㅠ

[오늘 자 투마월 레전드_찢어진 종이비행기]

-아니 어떻게 저렇게 반쪼가리가 나냐

┕ㅁㅊ;; 소리 완전 적나라한거봐

┕쟤누구얔ㅋㅋㅋ 입 찢어지겠넼ㅋㅋㅋㅋ

-도현이 놀란거 처음봨ㅋㅋㅋㅋㅋ

┕아 쟤가 강도현이야?? 귀엽네

┕ㅇㅇ 많관부~

-개웃곀ㅋㅋㅋㅋ 정작 저 두사람은 겁나 만족한 표정인데??

┕뭐라도 가졌으니 다행이라 이건가,,,,,

[박선우 사진]

-헐 요정님

-아기 고양이 아님?

-최애야 미안! 나 잠깐 바람 좀 피고 올게.

┕헐 00님 안돼요ㅠ

-누가 To my world 봄?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누입니다.

[차지운 & 박재봉 투샷]

-뭐야 이 완벽한 와꾸합은??

-저는 이 주식에 배팅하겠습니다ㅇㅇ

┕같이 가시죠

-여우랑 토끼 그자첸데??

-완전 다른 그림첸데 어떻게 어울리는거지?;;

재봉이랑 지운이 형의 투샷이 예상보다 인기가 많았다. 인기 애니메이션 토끼와 여우 캐릭터 사진과 둘의 사진을 붙이고 벌써 ‘폭빗즈(폭스래빗즈)’라는 조합명도 나왔다. 그리고 나, 선우 형, 박재봉, 지운이 형 넷이서 찍힌 사진은 ‘동물농장즈’로 소소하게 반응이 오고 있었다.

내 단독 사진은 더 없나 하고 스크롤을 내리던 중,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23분 전

깜짝 놀란 갱얼쥐 (강아지발바닥 이모티콘)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27분 전

아직 사람이 낯선 댕댕이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32분 전

승빈이 하얀머리와 자연광 조합 완전 최고잖아♡

분명 ‘샤이닝문’의 사진이었다. 놀란 모습부터 웃는 표정, 선물을 나눠 주는 전신샷까지. 언제 계정을 판 건지 제법 본격적이었다.

이분 취향 한번 소나무네 싶다가도, 뭔가 울컥했다. 매번 팬 사인회에서 만날 때마다 이번 앨범 노래 너무 좋았다고, 무대 위에서 항상 빛나는 사람이니까 꼭 성공할 거라고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은 팬이었다. 해체하고 배우 생활을 하던 때에도 시상식과 행사마다 사진을 찍으러 온 진성 중의 진성 팬이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음 깊은 곳이 뭔가 뜨거워졌다. 꼭 데뷔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망돌 덕질 청산하고, 이번에는 꼭 1군 아이돌 팬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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