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투마월 시즌 2는 시즌 1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고, 남자 아이돌임에도 전례 없는 대중성을 기록했다. 그 시작은 바로 시그널 송 ‘눈부셔’부터였다. 한동안 TV만 틀면 ‘눈부셔’가 나왔고, 너 나 할 거 없이 안무를 따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팀에 투마월 출신이 있다는 이유로 커버 댄스나 랜덤 플레이 댄스만 하면 무조건 이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다. 티벡스 노래는 사람들이 아는 게 없어서, 행사 가서도 몇 번을 췄는지 모른다.
대충 눈으로 안무를 스캔하고 몸을 움직였다.
“기존 트레이닝과 연습은 등급별로 이루어지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모든 자율 연습 시간은 등급 상관없이 연습실 사용이 가능합니다.”
지운이 형과는 저 시간을 노려 봐야겠다. 일단 센터에 도전해야 하니,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A등급 연습은 순조로웠다. 다들 기본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런지 안무 숙지도 빨랐고.
“역시 A반이네. 이 정도면 됐다. 오늘 수업 여기서 끝! 나머지는 자율 연습이다. 열심히 하고 내일 보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체 연습은 대강당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지운이 형도 내려왔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대강당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연습생이 모여서 연습하고 있었다. 이 많은 연습생 사이에서 형 찾는 것도 일이다, 일.
처음부터 다가가서 도와준다고 하기에는 너무 접점이 없는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연습생들을 통해서 말을 걸어 봐야겠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다.
“미쳤다. 승빈이 형, 형이 말한 대로 하니까 올라가는데요?”
너무- 잘 가르쳐 버렸다. 어쩌다 한 연습생의 고음을 뚫게 한 것이 입소문을 탄 것이다. 엄청난 걸 알려 준 것도 아니고 옆에서 꽥꽥 거리기에 잠깐 봐줬을 뿐인데, 확실히 다들 아직 연습생이라 그런지 작은 도움도 크게 작용했나 보다. 이러다간 형이고 뭐고 내 개인 연습 시간도 없어질 처지였다.
“형, 이 부분 박자 어떻게 맞춰요?”
“형, 이 부분 고음 할 때 어떻게 해야 삑사리 안 나요?”
“형, 라이브 할 때 호흡 분배 어떻게 하세요?”
형, 형, 형!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다. 이놈들아, 나는 너희 선생님이 아니라 경쟁자라고.
머릿속이 질문들로 터져 나갈 때쯤,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승빈아!”
신이시여. 저에게 박선우를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사이에 박선우가 좋아진 거냐고? 절대 아니다. 내가 기쁜 이유는 인싸 박선우가 지운이 형을 물고 왔기 때문이다. 근데 저 형 낯 엄청나게 가릴 텐데. 아니나 다를까 얼굴에 혼이 나가 있다. 엔프피에게 기 빨린 인프피여…….
“승빈이 좀 빌려 갈게-”
둘은 어떻게 친해졌지? 의문이 들 때쯤 선우 형이 지운이 형을 소개했다.
“여긴 차지운. 같은 C그룹이어서 오늘 막 친해졌어!”
“안녕하세요, 차지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문승빈입니다. 형이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정말 친해진 거 맞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 완전 연습생들 사이에서 보컬 쌤으로 소문났어! 트레이너 쌤보다 잘 가르친다는 애들도 있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근데 지운이랑 연습하다 보니까 얘가 보컬에 고민이 많은 거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데려왔어!”
잘했다고 칭찬 도장 백번이고 찍어 주고 싶었다.
“어느 부분이 고민이세요?”
“어? 음…….”
처음 보는 사람이랑 낯가리는 건 여전하네. 티벡스로 데뷔하기 전에 형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도 그랬다. 데뷔하고 나서야 말 놓았으니 뭐, 말 다 했지.
“여기! 2절 후렴 끝나고 하이라이트 부분에 고음 있잖아. 여기가 자꾸 안 된대.”
지운이 형에게 물으면 절반은 선우 형이 답했다.
“고음이라고 목에 힘주면 오히려 성대가 조여서 소리가 막혀요. 그 부분할 때 음… 완전히 목을 연다는 느낌으로 불러 보세요. 형이 부를 때 제가 목에 살짝 손대서 조이는지 아닌지 확인할게요. 괜찮으실까요?”
“응!”
투마월 시즌 2에서는 원래 랩만 했던 형이라서, 아직 보컬은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부셔-어!”
아니나 다를까 삑사리가 났다. 민망한지 얼굴이 터질 듯 빨갰다.
[이름: 차지운]
외모: A
끼: C-
보컬: C+
댄스: A+
프로듀싱: ??
근데 형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보컬이 C+였다. 지금껏 파악한 바로는 C등급만 되어도 들어 줄 정도의 실력은 되고, B-부터는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 그러니 아무런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C+라면, 보컬에 재능이 있는 거였다.
“…….”
“아직 힘을 주고 있다는 증거예요. 입 조금만 더 크게 하고, 목에 힘주지 말고 복근에 힘을 준다고 생각하고 다시 불러 보세요.”
팁을 알려 주니 바로 성공해서 둘 다 놀랐다. 음색도 괜찮고, 습득력도 좋다. 역시 타고난 게 있었구나. 티벡스로 만났을 때는 이미 보컬 멤이어서 몰랐는데, 잠재력이 상당했다.
“고, 고마워.”
“형, 앞으로 보컬 할 생각 없어요?”
“내가?”
“네, 재능 있어요, 형.”
[이름: 차지운]
외모: A
끼: C-
보컬: C+ → B-
댄스: A+
프로듀싱: ??
[이름: 문승빈]
외모: B
끼: C-
보컬: B
댄스: B-
프로듀싱: ?? → D
순간 지운이 형 머리 위 상태창 속 ‘보컬’ 포인트가 상승했다. 그리고 거울 너머 내 머리 위 상태창 속 ‘프로듀싱’도 처음 등급이 생겼다. 아, 이런 것도 프로듀싱에 포함이 되는구나. 처음 상태창이 등장했을 때는 끼가 물음표인 것에 놀라서 ‘프로듀싱’ 항목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보컬이나 춤처럼 확실한 항목이 아니라, 대체 프로듀싱의 범위가 어디까진가 궁금했는데. 조금이나마 실마리가 잡힌 기분이었다.
“우리 셋 다 센터 선발전에서 만나자!”
의지를 다지고 다시 연습에 집중했다. 여전히 상태창 속 춤 포인트는 그대로였다. 연습생 때도 고민이었다, 유독 안 늘어서.
12시가 넘는 시간에도 대부분의 연습생이 남아 있었다. 대부분 미성년자인데 아동법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모두 개의치 않아 보였다. 하긴, 지금 연습 안 하면 본인만 손해니까.
마침내 새벽 2시가 넘어가자 하나둘 연습실을 떠났다. 사실 1시부터 졸음을 참기 힘들었는데, 적어도 강도현, 김병대보다는 오래 남아 있고 싶었다. 드디어 그 둘이 안 보였기에, 나도 컨디션 조절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연습실에는 박재봉, 그리고 정유현이라는 연습생만이 남아 있었다. 아까 전부터 거울 앞에서 동작 하나를 무한 반복하던데, 엄청 완벽주의자인 듯했다. 시즌 2에서 쟤가 원래 센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럴 만한 열정이었다.
“재봉아, 안 피곤해?”
“아, 괜찮아요! 이거 안무만 조금 더 맞추고 잘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까진 아니었는데.
“그래, 먼저 들어간다.”
“네, 형. 내일 봐요!”
아침에도 느꼈지만, 마냥 어린 애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분명 시즌 2에서는 본 적 없던 연습생이었는데 말이다.
방에 들어오니 모두 잠자리에 든 지 오래였다. 대충 씻고 침대로 직행했다.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래도 4년이나 회춘했으니 이 정도인 건가. 아래층에서는 선우 형이 잠꼬대로 시그널 송을 부르고 있었다. 양팔을 휘적거리며 포인트 안무도 한다. 정말, 재밌는 형이다.
그렇게 선우 형의 목소리를 ASMR 삼아 잠이 들었다.
* * *
[눈부셔 New World
나를 향한 이 시선이 짜릿해
너만의 스타 그게 바로 나야]
어김없이 기상 송이 요란하게 재생되고, 모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시그널 송에 맞춰 눈도 못 뜨고 반사적으로 안무를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겨우 하루 지났다고 노래를 듣자마자 안무가 튀어나온다니.
“앞으로 1시간 뒤 시그널 송 영상 평가를 시작합니다. 모든 연습생은 준비를 마치고 준비된 버스에 탑승해 주세요.”
그래도 이번엔 한 시간이나 준비할 시간을 주네. 꾸안꾸로 가야겠다. 너무 준비하고 가면 인위적일 거 같고, 연습생의 어리숙함도 조금 필요하지. 피부는 나이 버프로 그대로 두고, 혈색 돌 정도의 옅은 립밤에 머리는 일부러 세팅하지 않고 부스스하게 놔뒀다.
등급별로 버스에 탑승하고 세트장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도 마지막으로 손동작을 정리하고, 가사를 외웠다.
세트장에 도착하자 스태프들이 등급별로 줄을 세운다. 그리고 S등급부터 영상 평가를 시작했다. 이전 시즌과 다른 점은, 연습생 혼자 촬영장에 들어가서 영상 평가를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르게 하려고 하는군.’
투마월 시즌 2는 방송으로 본 내용만 알고 있으니, 이런 세세한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S등급이 5명밖에 되지 않아 대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내 차례가 되었고 카메라 앞에 섰다.
“A등급 문승빈 연습생. 영상 평가 시작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준비 자세를 잡았다. 시그널 송 전주가 나왔고, 차분하게 노래와 안무를 했다. 걱정했던 초고음 부분도 막힘없이 해냈다. 안무도 실수 하나 없었고. 엔딩 포즈를 취하면서 생각했다. 이 정도면 승산 있다.
마지막엔 여유롭게 인사하면서 손도 살짝 떨어 줬다. 완벽한 무대를 해냈지만, 사실은 긴장했다는 걸 보여 줄 수 있게. 분명 누군가는 이걸 캐치하고 귀여워하겠지.
평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C등급 줄로 향했다. 마침 재봉이랑 선우 형도 있으니 겸사겸사 지운이 형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와중에도 젤리를 먹으며 여유로워 보이는 선우 형이었다. 아니, 무념무상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박재봉은 언제 옆으로 왔는지 긴장돼서 죽겠다며 칭얼거렸다.
“형, 어땠어요?”
“많이 떨려요?”
“막 카메라들 엄청 많아요?”
“그럭저럭”
“별로”
“엄청 많아.”
지운이 형은 가사를 중얼거리며 안무를 반복하고 있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지운이 형.”
“…….”
“형?”
“어? 응, 승빈이구나.”
목소리도 살짝 떨리네.
“제가 가르쳐 준 방법, 기억하죠?”
“응.”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예요!”
“고마워, 꼭 실수 안 하고 성공할게.”
그때나 지금이나 참 얼굴이랑 매칭 안 되는 사람이다. 시즌 4 때도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싸가지 없을 거라는 편견이 엄청났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부디 형의 진짜 성격을 보여 줄 기회가 많기를 바랐다. 정 없으면 뭐, 내가 만들어 줘야지.
“C등급 영상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조 이제 시작하나 봐요.”
“다들 긴장하지 말고 이따 봐요.”
“으아아아, 잘하고 올게요!”
이번 녹화 시간도 정말 더럽게 길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미 기절 상태였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다들 침대로 뛰어들었다. 입소 후 처음 겪는 정적이었다. 모두 암묵적으로 오늘 영상 평가에 대한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듯했다. 선우 형만이 영상 평가 어땠냐고 물어보기에, 역으로 되물으니 가오리처럼 웃으며 답했다.
“X 됐어^^”
아니, 이 형은 언제 카메라가 돌아갈지도 모르는 곳에서 욕설을… 내가 더 놀라서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하… 형, 농담도 심하시네요.”
“아인데 즌쯘데.”
연예계 생활로 별 독특한 놈들은 다 만나 봤다고 자부했는데, 강적이다. 더 놔두면 저 입에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안대 씌우고 냅다 침대에 밀어 넣었다. 해탈한 듯 까르르 웃던 형도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나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길고 긴 하루였다.
* * *
다음 날 등급별 연습실에 모여서 센터 후보 발표를 기다렸다. 모두 내심 자신이 센터 후보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트레이너들이 큐시트를 들고 연습실에 들어왔다. 긴장감과 함께 A등급 센터 후보를 한 명씩 발표했다. 그리고.
“문승빈 연습생.”
역시나 내 이름도 있었다. S등급의 무대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보컬 연습을 도와주면서 많은 연습생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도 했고, 결과를 기대해 볼 만했다. 다른 등급은 누가 뽑혔을까 궁금증을 가득 품고 센터 투표를 위해 대강당으로 집합했다.
“이제 트레이너들이 뽑은 센터 후보 연습생들의 영상을 보고,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S등급을 시작으로 평가 영상이 공개됐다. 역시 S등급이었다. 보컬이나 안무에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슈가 남아 있었다. 센터 후보에서 떨어진 한 명은 누구일까?
세 명의 센터 후보가 공개되는 순간까지 강도현과 김병대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연습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강도현이야, 김병대야?”
“둘 중 하나가 떨어진 거야, 그럼?”
“완전 예상 밖인데? 걔네 둘은 당연히 될 줄 알았지.”
“그니까, VM인데-”
“S등급 마지막 후보입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위해 카메라 가까이 다가온 연습생의 모습이 나타났고, 모두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