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6화 (6/346)

6화

“뭐야?”

“무슨 소리지 저게?”

예상치 못한 굉음에 다급한 스태프의 컷 사인과 함께 노래가 멈췄다. 예상보다 더 큰 반응이어서 나도 순간 놀랐다.

“아, 미안해요. 내가 이 노래는 너무 오랜만이라-”

“오랜만이요?”

“이거 제 곡이거든요. 근데 10년은 더 된 노래라서.”

“와, 10년 전이면 재인 씨 대체 몇 살 때예요?”

“그러게, 승빈 씨는 10년 전이면 초등학생 아니었나?”

“진짜 어리긴 어리다. 부럽네.”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트레이너들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다들 방송쟁이들이구만. 내가 선택한 노래는 10년 전쯤 발표된 서재인 트레이너의 데뷔 앨범 수록곡으로, 잔잔하고 기교 없는 중저음의 발라드곡이었다. 정통 발라드를 선곡한 것에 트레이너들과 연습생들 모두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다시 시작해 볼래요?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노래가 시작됐고, 노래의 주인이 밝혀지자 연습생과 트레이너들이 더욱 집중하고 듣는 듯했다. 특히 김유진 트레이너는 내 프로필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을 돌려 우리 함께했던

겨울에 마주한다면 말하고 싶어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이라이트의 유일한 고음까지 깔끔하게 성공했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걱정한 파트들을 다 잘 넘어가 놓고, 노래가 다 끝나 갈 때쯤 울컥하고 말았다.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을 줄 알았어.

꿈에만 그리던

네 앞에 내가 서 있어]

하필이면 가사가 지금 내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지운이 형을 다시 만나고, 아이돌 인생을 다시 살 일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이런 기묘한 기회로 다시 시작하게 될 줄이야. 결국 마지막 가사는 거의 흐느끼며 끝이 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심사할까요?”

김유진 트레이너가 조심스레 물었고, 급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치겠네,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꼴사나운 짓이냐고.

“승빈 연습생, VM 엔터 출신이라 그랬죠?”

“네, 맞습니다.”

“제가 제일 놀란 건, 대형 소속사 연습생들은 그 특유의 소속사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게 춤이랑 노래에도 있어요. 일종의 쿠세? 버릇이라고 하죠? 그런 게 있기 마련인데, 승빈 군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신기했어요.”

“…….”

“아, 좋은 의미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하하, 평가 곡으로는 고음만 봐서 실력 좋은 건 알겠는데 다양한 음역대가 가능할까 궁금했거든요. 근데 이번 노래로 저음이랑 중저음도 좋은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기교 없이 청아하게 노래 끌어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속으로 백번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집 각 제대로 잡히겠어요. 이 정도면 그래도 예상한 것처럼 A등급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그런데 전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서재인 트레이너의 말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지막에 감정에 완전히 휘둘렸죠?”

“네.”

“가수는 무대 위에서 노래에 잡아먹히면 안 돼요. 아무리 노래에 몰입했다 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감정에 휩쓸려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 주지 못하는 건 무대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실수도 실력입니다.”

하나하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하지만 틀린 말 하나 없었다.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네, 다음 무대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뭐라 변명하거나, 자기변호해 봤자 고집 센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다. 내 사연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울컥한 이유 역시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승빈 연습생에겐 꼭 고맙다고 하고 싶네요.”

이어진 서재인 트레이너의 발언에 모두 의아해했다. 도대체 뭐가 고마운지 궁금하겠지.

“이 노래를 이렇게 담담하게 해석한 사람은 승빈 군이 처음이에요.”

“제가 십 년 전에 이 노래를 처음 불렀을 때, 이것보다 더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없을 거 같네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의도한 대로 전달되었구나 안심했다. 이 노래는 서재인 트레이너가 가장 아끼는 곡이었다. 원래 투마월 시즌 2 중반쯤이었나, 보컬 트레이닝 시간에 서재인 트레이너가 발성 예시로 이 노래를 한 소절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짧게 나온 한 소절이 너무 좋아서 방송 후 서서히 역주행하게 되는 노래였다.

그런데 한 잡지사 인터뷰에서 이 노래는 헤어진 연인에게 담담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곡인데, 후반 초고음만 이슈가 돼서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반년 후에 투마월 시즌 2 다 끝나고 한 인터뷰였기에 대부분 모르는 내용일 거다.

그래서 일부러 고음 부분은 힘을 뺐다. 연기 경험을 활용해서 노래에 더욱 풍부한 감정을 실어 넣었다. 다시 생각해도 연기했다가 아이돌 하는 거 너무 좋은 거 같다니까? 내가 나중에 소속사 사장이 된다면 아이돌 후보로 아역 배우들부터 눈여겨볼 거다, 진심.

“노래를 제대로 파악해서 부를 줄 아네요.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쯤 되면 끝나나 했는데, 엠시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 가사에 문승빈 연습생이 유독 공감이 갔나 봐요. 무슨 사연이 있나요?”

무의식중에 튀어나올 뻔했다. 다행히도 그 순간, 바로 앞에 앉은 강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내내 고개 숙이고 있던 애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원망의 눈은 여전했다. 순간적으로 이유 모를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꾹 참았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서 터질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에 불어 보이게 나오면 안 된다는 걱정을 했다는 게 더 서글펐다.

“아닙니다. 그냥 가사가 슬퍼서… 그랬습니다.”

다행히 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하긴, 몇 편에 걸쳐 뇌절할 떡밥인데 1화에 다 써먹을 순 없었겠지.

“개인 연습생 B조 등급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S등급… 없습니다.”

서재인 트레이너의 말이 영향을 주었나 보다. 연습생들이 술렁였다. 간간이 저 정도 실력이면 S일 줄 알았다는 말들이 들렸다.

“A등급. 문승빈 연습생.”

드라마틱한 성장 서사를 가져올 등급은 아니지만, S등급으로 올라갈 기회는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낮은 등급을 받길 바랐지만, 그래도 A등급을 받았다는 거 자체에 만족스러웠다.

의도한 실수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시즌 4 MC에 발탁되고, ‘To My World’ 지난 모든 시즌을 정주행했다. 특히나 대면식이 첫 촬영이었기에 몇 번을 돌려 봤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바로 방송은 후보정이 들어간다는 점. 라이브긴 하지만 일부라도 후보정이 된 채로 방송에 나갔기에, 실제 연습생들의 실력보다 좋게 들릴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방송 기준으로 이 정도면 A나 B 정도구나 생각하고 준비를 한 거였는데도, 실제로 현장에서는 그게 S를 받을 만한 무대였던 거다.

게다가 웃길 정도로 못하지 않는 이상 어중간한 무대는 애초에 방송에 나오지도 않았다. 나보다 먼저 무대를 한 상당수의 연습생이 처참한 실력이었지만, 저런 애들은 다 통편집될 거니까 이번에도 방송만 보면 대부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앞으로도 방송에 나왔던 내용들을 실제 상황과 비교해서 적용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돌아가니 박재봉이 호들갑을 떨며 팔에 붙어 왔다.

“대박. 형, 완전 실력자였잖아요! 근데 형이 A면 전 어쩌죠? 저 막 F 나오는 거 아니에요? 큰일이다.”

나보다 한 뼘은 작은 애한테 종이 인형처럼 흔들리고 있을 줄이야. 이제 무대도 끝났다. 목 아껴야 한다는 핑계도 먹히지 않았다.

다음으로 여러 연습생의 평가 무대가 진행됐다. 사실 다 무난한 무대였다. 그나마 눈에 띈 연습생이라면 박선우. 얼굴이 너무 작아서 실눈 뜨고 봐야 할 정도였다. 얼굴은 딱 요정 같은 정석 아이돌상에다가 웃을 때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입을 여는 순간 모두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안녕하십니까. 트로피 엔터테인먼트 1년 2개월 차 연습생 박선우입니다.”

“올해 20살이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동굴을 넘어서 지하 암반수급의 저음이었다. 거기에 스무 살이라곤 믿을 수 없는 동안이었다. 저 얼굴이 지금의 나보다 2살이나 많다니. 와 진짜, 별의별 캐릭터가 다 나오는구나-

얼굴만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목소리 들으니까 바로 기억났다. 원래 시즌 2에서 데뷔했던 연습생이었다. 목소리가 워낙 특이해서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들으니 더 낮게 느껴졌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얼굴이랑 매칭시키기가 쉽지 않은 목소리였다. 마치 인형극처럼 뒤에서 누가 대신 말해 주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저 정도는 되어야 데뷔를 하는 건가, 회귀도 안 한 놈이 대단하다 싶었다.

* * *

장시간의 녹화에 모두 지칠 때쯤 휴식 시간이 생겼다. 모두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드러눕고, 필터링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말이 휴식이지, 휴식 시간이랍시고 풀어진 연습생들 찍으려고 만든 시간이다. 그놈의 리얼리티.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던 중 박선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지, 이놈은.

“저…….”

언제 들어도 적응 안 되는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이거 드세요.”

다짜고짜 사탕을 내민다. 홍삼 캔디? 입맛 한 번 독특하네. 그리고 가까이 와 보라는 손짓에 다가가니, 대뜸 귓속말했다. 자존심 상하게 무릎 살짝 구부리더라. 저 요정 같은 얼굴에 키는 또 왜 이렇게 큰 건지.

“저, 승빈 씨랑 베스트 프렌드 할 거예요.”

“네? 왜요?”

뭐지, 이 미친놈은? 너무 당혹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이유를 묻는 말이 튀어 나갔다.

“그건 비밀. 베스트 프렌드 되면 그때 알려 줄게요.”

아니, 얘 분명 과묵한 이미지 아니었나? 분명 시즌 2에서 과묵하지만 의문의 인싸 롤이었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적극적이라고? 너무 해맑게 웃어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잖아. 그냥 ‘아, 네. 네.’ 하고 얼빠진 채 서 있었다. X발… 여기 다 이상한 놈들뿐이야.

“녹화 재개하겠습니다!”

아직도 베프 선언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던 정신을 겨우 차렸다.

“다음은 VM 엔터 강도현, 김병대 연습생 무대 준비해 주세요.”

드디어 다가온 VM 엔터 차례에 모든 연습생의 이목이 쏠렸다. 나 역시 너무 궁금했다. 어떤 무대를 준비해 왔을까.

“안녕하세요! VM 엔터테인먼트 2년 6개월 차 연습생 강도현.”

“1년 3개월 차 연습생 김병대입니다!”

걱정 가득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둘 다 당당함이 가득했다.

“V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다니, 깜짝 놀랐어요.”

“아, 여기 전 VM 엔터테인먼트 출신 연습생도 있는데, 현 VM 엔터 연습생으로서 각오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냐 악랄한 놈들아. 김병대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진짜 VM의 실력이 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누가 보면 힙합 서바이벌에 나온 줄 알겠다. 멋쩍게 웃어 보였다.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기회를 붙잡아

너에게 한 걸음 close to you

놓치지 않을 거야 오늘은]

익숙한 멜로디와 도입부.

강도현과 함께했던 마지막 월말 평가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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