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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화 (2/346)

2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떠 보니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전신 거울. 연습실이구나.

연습실? 어째서? 분명 나는 형의 병실 앞에서 기절했을 텐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익숙한 별무늬 블라인드가 눈에 들어왔다. 절로 재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하필이면 VM 연습실과 같은 패턴이라니. 함께 연습하던 연습생 동기들이 하나둘 데뷔의 꿈을 이루고 연습실을 벗어나는 동안, 나는 지겹도록 저 별무늬 블라인드를 보며 연습을 했다.

아직 꿈인 건가. 당연히 안 아플 거라 생각하며 왼쪽 볼을 강하게 내리쳤는데.

“아!”

아프다? 아무리 방금 정신을 차렸다지만 너무 분명하다. 아프다, 얼얼할 정도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쪽 볼을 좀 더 세게 쳤다. 연습실 가득 짝 소리가 퍼졌고, 역시나

“아파…….”

그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래서 고인물 되면 안 되는 건데- 드디어 돌았어요? 연습은 안 하고 뺨이나 때리고 앉아 있고-”

고인물? 저 재수 없는 얼굴과 목소리는 김병대가 분명한데. 저 녀석이 데뷔 이후에 흑발을 한 적이 있었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화장실을 핑계로 급하게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정신 차리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단 매니저 형한테 연락을 하고…….

“여기서 뭐 하냐?”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강도현?”

X발 너는 또 왜 여기 있는 건데?

강도현. 한때 VM소속사에서 같이 연습했고, 나 혼자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 데뷔에 성공해서 승승장구한 그놈이 왜 내 앞에 서 있냔 말이다. 그것도 4년 전 모습으로.

강도현은 곧 월말 평가인데 시간이 없다며 나를 연습실로 끌고 들어왔다. 노트북에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유행했던 드라마에 빙의해 제발 좀 그만하라고, 나 무섭다고 외칠 뻔했다.

[기회를 붙잡아

너에게 한 걸음 close to you

놓치지 않을 거야 오늘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노래, [Last Chance]. 데뷔조 확정 직전 마지막 월말 평가 곡이었다. 이 노래 하나로 강도현, 김병대, 그리고 내 운명이 결정 났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강도현에게 물었다.

“강도현, 혹시 지금이 몇 년도야?”

“지금? 20**이지. 근데 너 왜 성 붙여서 부르냐 서운하게?”

“20**? 20XX년이 아니라?”

황당하다는 녀석의 얼굴을 무시한 채 핸드폰 전원을 켰고, 또다시 기절할 뻔했다.

화면에는 20**년이라 적혀 있었다.

* * *

X됐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폭풍같이 몰아치는 연습생 스케줄을 헐레벌떡 따라가기 바빴다. 그래도 아이돌 연습 3년, 활동 2년의 짬밥 어디 안 간다고 얼추 기억이 나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월말 평가 미션 곡을 따라 추면서도 거지 같은 기분을 숨기기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몸이 안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비참했다. 그래,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했었는데…….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보니, 룸메이트인 연습생은 본가에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여전히 달력은 4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이건 기계가 고장 난 거일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 희망으로 나는 내 이름을 검색했다. 원래라면 내 프로필과 ‘To My World’로 가득했을 화면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티벡스를 검색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 세계엔 대세 배우 문승빈도, 티벡스 출신 ‘To My World’ 엠시 문승빈도 없다.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이번엔 ‘To My World’를 검색했다.

나온다.

나오긴 나오는데…….

‘To My World 시즌 2 제작 확정. 시즌 1의 명성을 이어 갈지?’

시즌 4가 아니라 시즌 2. 무려 4년 전. 지운이 형이 참여했던 바로 그 시즌이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노트북을 닫았다. 정신 차리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X발, 그게 쉽게 되냐고!”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4년 전으로 돌아왔다.

그걸 깨달은 순간, 바로 지운이 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지난 일주일간 지겹도록 걸어서 이제는 외워 버린 형의 전화번호.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

그럼 그렇지. 4년 전 나와 형은 연결점이 없는 생판 남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형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노트북 화면 가득한 ‘To My World 시즌 2’ 홍보 기사가 보였다. 저거다, 분명 형은 이번 시즌에 참여할 거니까.

그래, 서바이벌에 나가서 형과 함께 데뷔를 하는 거다. 반드시 데뷔시켜서 그 좆소 소속사에는 발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지금 소속사가 문제였다. 월말 평가 준비도 거의 다 되어 가고, 이번 월평만 잘하면 데뷔 조가 확정 날 텐데. 하지만 금방 생각을 바꿨다. 고작 4년 지났다고 데뷔조에서 떨어진 이유도 까먹었구나, 실력 때문에 안 된 게 아니었다. 문어대가리의 X 같은 정치질 때문이었지.

문어대가리에 이 회사에 남아 있는 이상 나는 데뷔할 리가 없었다. 데뷔할 가능성도 없는 소속사에 남아 봤자 과거를 리플레이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는가. 다행히도 연습생 계약 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무난하게만 가자. 과거의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도 떨어졌는데, 무난하게만 가면 자연스럽게 잘릴 거다. 어떻게 돌아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간절함이 빚어낸 기적이니 그 보답을 해야지.

* * *

며칠 뒤, 연습실에 신인 개발부 이 실장이 방문했다. 오랜만이다, 문어 대가리. 이마를 가리고 있는 저 머리는 사실 가발이다.

그동안 성실하지 않다, 간절함이 없다, 데뷔하면 문제를 일으킬 거다. 지가 밀던 김병대 데뷔시키려고 데뷔조 최종 평가에서 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몰이를 했던 인간. 결국 저 인간이 바라는 대로 우리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3년의 연습이 저 새끼 때문에 물거품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들어오자마자 김병대를 향해 아주 꿀이 뚝뚝 떨어졌다.

“병대는 그새 키가 더 컸네. 연습 잘하고 있지?”

“네!”

하하 호호 신나셨어. 속에선 울화통이 터지고 있었지만 굳이 티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떠날 소속사에 미련 남겨 봤자 내 손해니까.

“다들 좀 모여 봐라. 안 그래도 오늘 중요한 얘기 하러 왔으니까.”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문어 대가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했다. 그러고는 연습생들을 불러 모았다.

“월말 평가 열심히들 준비하고 있지?”

“너네도 느꼈겠지만 이번 월평은 특히 중요해. 이번에 못 보여 주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거 같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걸 노리고 더 분위기 잡은 거겠지, 문어 대가리 새끼. 어린애들 인생 저당 잡아 놓고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게 만연한 판이라지만, 그 책임 소재마저 연습생들에게 전가하는 저 뻔뻔함이란.

“잘들 해 보자. 특히 문승빈, 네가 제일 아슬해.”

“3년 동안 어떻게 발전이 없니.”

저런 말에 상처 받았던 적도 있었다. 정말 내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까지 생각했다. 그게 몇 년간 이루어진 문어대가리의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꽤 오래 지나서야 깨달았지. 미성년자한테 잘 하는 짓거리다. 이제는 그냥 좀 우스웠다. 저 나이 먹고 제 감정 하나 숨기지 못하는 한심함이.

하지만, 어찌 됐건 지금은 4년 전 과거였고 다른 연습생들은 고작 10대였다. 문어 대가리가 실컷 분위기 잡고 나가니까, 다들 공포감에 연습을 이어 갔다. 느긋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오히려 내게는 기회였다. 절대 튀지 말고 무난하게만 가자, 승빈아.

강도현 역시 거울 앞에서 춤 동작을 맞추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이다. 그러니까 월말 평가 1위로 데뷔했던 거겠지.

“승빈아, 얼른 와서 연습해. 농땡이 칠 시간이 없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강도현이 저렇게 친숙하게 나를 부르다니. 티벡스 해체 이후로는 마주친 적도 없었으니 거의 2년 만인가. 하, 근데 이걸 2년 만이라고 하는 게 맞나? 아직도 가끔 내가 진짜 회귀한 게 맞나 적응이 안 됐다.

그래도 강도현에 의해 반쯤은 강제로 연습을 하는데 뭔가 벅찼다. 땀이 비처럼 흘러서 옷이고 얼굴이고 푹 젖었는데도 상쾌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더 이상 아이돌에 미련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길은 이 길이 맞았다.

“방금 그 동작 할 때 어깨 조금 더 써 봐.”

“이렇게?”

“아니, 조금만 더-”

“으악!”

유연성의 한계치를 벗어난 동작에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강도현은 시범을 보여 주겠다며 춤을 춰 보였고, 정말이었다. 어깨를 더 넓게 돌리니 동작이 더 커 보이고 춤 선이 살아났다.

과거에도 가장 부러워했고, 질투했던 부분이다. 피지컬도 비슷하고 노력은 내가 훨씬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저 녀석은 항상 저 ‘한끝’을 아는 놈이었다.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건가 싶을 정도로 세상은 불공평했다.

왜 저렇게 잘하는 건데? 쟤는 도대체 능력치가 어디까지야. 그렇게 한탄 아닌 한탄을 하던 중, 거울 너머 강도현 머리 위로 반짝- 무언가 나타났다. 저게 뭐지?

[이름: 강도현]

외모: A

끼: A

보컬: B-

댄스: B+

프로듀싱: C+

헛것을 보는 건가, 눈을 연신 비볐지만 강도현 머리 위 투명한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환장하겠네. 회귀하더니 이젠 헛것을 보는 건가?

그때, 강도현이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됐다!”

뭐가 됐다는 거지?

“뭐가 됐어?”

“이거 봐 봐. 이 동작이 진짜 안 됐었는데 드디어 마스터함!”

정말로 방금 전까지 어색하게 넘어가던 발 스텝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내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강도현이 기뻐하는 사이, 머리 위 상태창이 변했다.

[이름: 강도현]

외모: A

끼: A+

보컬: B-

댄스: B+ → A-

프로듀싱: C+

뭐야, 달라졌잖아. 설마, 포인트가 오르면 그만큼 성장하는 건가? 진짜 게임처럼?

그럼 혹시 나도…….

부푼 기대감을 갖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미친, 내 앞에도 상태창이 생겼다.

[이름: 문승빈]

외모: B

끼: ??

보컬: B

댄스: B-

프로듀싱: ??

?

???

?????

“미친, 장난하나?”

“응?”

아무리 그래도 연예인 인생이 몇 년인데, 프로듀싱은 그렇다 치고 끼가 ‘물음표’라고? 장난해? 회귀하면서 끼만 리셋시켜 놓은 건가.

아 씨X, 나 안 해.

* * *

연습을 이어 가려고 해도, 갑자기 등장한 상태창 때문에 하나도 집중이 안 됐다. 과거로 돌아온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긴데,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상태창까지 나올 줄이야. 그리고 끼가 물음표인 것에 충격을 받아 깨달았다. 내가 데뷔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

애매함.

춤도 노래도 평균은 하는데 특출난 것이 없다는 말을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문어 대가리가 나를 몰아내기 딱 좋은 핑계였다. 너는 메인 보컬을 하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서브를 하기엔 아까워. 메인 댄서 하기엔 너~무 부족하고, 잘생기긴 했는데 메인 비주얼급은 아니다- 따위의 말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반대로 내가 모든 분야를 두루 잘한다는 소리였다. 유달리 돋보이는 포인트가 부족했을 뿐. 그 수많은 말보다도 상태창 하나가 지금의 내 상태를 더 정확하게 보여 줬다. 강도현의 보컬이 B-라면, B-만 되어도 평균 이상의 실력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나는 외모와 보컬, 댄스가 모두 B영역에 속했으니 모두 수준급에 속했다. 심지어 지금 내 얼굴은 회귀 전 모습에 비하면 훨씬 못한 정도였다.

궁금했다. 이 상태창은 어떤 프로세스로 이루어져 있는지,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습실에 모인 다른 연습생들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그러자 열댓 개의 상태창이 보였다.

[이름 : 이혁주]

외모: C

끼: ??

보컬: C

댄스: D

프로듀싱: B

“쟤도 나처럼 끼가 물음표네…….”

개중엔 외모가 물음표인 연습생도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하다 싶었는데, 다시 열이 올랐다.

‘그러니까 내 끼가 쟤 얼굴 정도라는 거잖아?’

그렇다면 이 상태창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는 거지? 게임이라면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레벨이 있을 텐데, 만약 그 포인트를 다 채운다면? 그때가 되면 원래 시간으로 회귀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미래가 바뀌게 되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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