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화 (1/346)

1화

“지금, 당신의 별은 누구인가요?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가시죠.”

‘To My World’

아이돌 서바이벌의 시초이자, 100명의 연습생을 모아서 합숙시키면서 극한까지 몰아가기로 유명한 씨넷의 간판 프로그램.

이후 수많은 아류작이 앞다퉈 나왔지만, 원조의 그 매콤함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여자 편으로 시작한 시즌 1부터 초대박이 났기에 바로 시즌 2를 가져올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To My World’, 속칭 ‘투마월’은 2년을 주기로 시즌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 시즌마다 기록을 갈아 치웠다. 다른 서바이벌과 비교가 안 되는 화려한 참가자 풀과 기가 막힌 편집은 모두를 투마월에 과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렇게 모두가 기다리는 ‘To My World’ 시즌 4의 홍보 영상을 촬영 중이다.

“수고했어요, 승빈 씨. 역시 대세 중의 대세는 다르네.”

“나 진짜 배우님 따라갈 뻔했잖아.”

“우리 괴물 신인 문 배우님 덕분에 첫 화부터 든든합니다.”

대세 중의 대세, 배우님, 괴물 신인. 질리도록 들었지만 아직도 민망한 수식어들. 나를 지칭하는 그 무엇도 아이돌과 관련된 건 없었다. 그런 내가 아이돌 서바이벌의 MC를 맡게 되다니.

처음 캐스팅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냥 황당했다. 누구 놀리나? 지금 나보고 아이돌 서바이벌 MC를 하라고?

망돌 이미지 빼는 데 일 년을 꼬박 다 썼다. ‘티벡스’. 내가 속해 있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대형 기획사 VM에서 3년간 연습을 했지만, 데뷔조에서 최종 탈락하고 멘붕이었던 나의 구원자라고 생각했던 전 소속사. 당장 데뷔시켜 준다는 말에 혹해서 사인했던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음악 방송은커녕 행사를 전전하던 망돌 중의 망돌. 팬 사인회를 하면 응모자가 100명도 되지 않아서 같은 팬에게 하루에 세 번까지 사인해 준 적도 있었다.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그룹이었다. 메인 보컬이었던 나와 메인 댄서였던 지운이 형을 제외하곤 그저 얼굴 하나 믿고 연예인 되고 싶어 하는 애들이었으니까. ‘자체 제작돌’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냥 ‘너네가 다 만들어라’ 이거였다.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는 새벽, 우리를 스치는 바람에는 언제나 짠내가 났다. 그런 순간에도 형은 긍정적이었다. 데뷔하면 성공할 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대표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터무니없어졌다. 다음 미니 앨범 수록곡을 전곡 자작곡으로 해라, 안무도 짜라, 콘셉도 준비해라 하다 하다 세계관까지 짜 오라니. 좀 더 했다가는 우리보고 지구도 지키라고 했을 거다.

그렇게 아이돌 생활 꼬박 2년을 채우고도 미래가 막막했던 그때, 우연히 본 독립 영화 오디션이 내 인생을 바꿔 놨다. 연기는 VM 연습생 시절 기초 수업으로 배웠던 게 다였지만, 그때의 나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숙소와 연습실만 전전하는 내 모습이 끔찍했다. 마냥 밝았던 주인공이 사기를 당하면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아낸 대본을 읽자마자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와- 무슨 20살이 이렇게 얼굴에 사연이 그득해.”

“승빈 씨, 사기당한 적 있어요? 뭐가 이렇게 리얼해?”

“감사합니다!”

18살에 티벡스로 데뷔한 게 희대의 사기였지, 뭐.

그렇게 나는 독립 영화 ‘어쩌면 그날’의 주인공 ‘지석’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말 그대로 초대박이 났다. 그다음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유명 OTT 오리지널의 주연으로 발탁되었고, 예상된 흥행 성적이 그 뒤를 따랐다. ‘어쩌면 그날’이 개봉하고 아직 2년도 채 안 되었지만 내 위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문승빈.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천재 연기자.

그게 지금의 나였다.

* * *

선뜻 위약금 전액을 물어내고 나를 데려온 이번 소속사는 상당히 유능했다. 가장 핫한 배우만 한다는 ‘To My World’의 MC를 맡게 되었으니까. MC로서 마주한 첫 촬영은 100명의 연습생을 처음 소개하는 대면식.

“다음은 소다 엔터테인먼트 준비하겠습니다!”

“3번 카메라 보고 입장-”

“이 작가 어디 갔어! 다들 정신 안 차려?”

촬영은 연습생들이 한 명씩 세트장에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됐다. 다 내보내지도 않을 거면서 100명을 다 찍고 있는 제작진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안 나올 수 있는데도 매 순간 리액션하는 연습생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정말 더럽게 오래 걸리긴 했다. 촬영 중인 미니 시리즈의 다음 화 대본을 거의 다 외울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작진이 나를 불렀다.

“승빈 씨, 이제 세트장으로 이동하시면 되세요.”

시즌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이 세트장. 예전에는 나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상상했다. 그랬다면 우리 팀이 그렇게 망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그 팀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을지도. 한때 나를 괴롭게 하던 투마월을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인생은 역시 살아 봐야 아는 건가.

“문 앞에서 대기하실게요.”

“저희 시그널 송 인트로 나오면 문 여시면서 멘트 해 주시면 됩니다!”

“쓰리, 투, 원. 메인 카메라 줌 인!”

피아노 버전으로 잔잔하게 깔리는 시그널 송.

손잡이에 손을 얹고 카메라를 향해 지긋이 고개를 들었다.

“팔로워 여러분, 따라올 준비 되셨나요?”

2초간의 아이 컨택. 그리고 흥미롭다는 눈빛으로의 스위치.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가시죠.”

잡았던 손잡이를 돌리고 마침내 그 커다란 문을 열었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메인 카메라에 손짓하며 자연스럽게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두 걸음 뒤에 스탑.

순위석을 등지고 마침내 앞을 향해 섰다.

“이곳에는 여러분을 자기 세상으로 이끌 100명의 연습생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별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이제, 당신의 별은 누가 될까요?”

무난한 거 같지만 대놓고 갈아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자극적인 멘트. 투마월의 시그니처였다. 지금 네가 뭘 좋아하건, 여기 있는 애들 중 하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자칫 들으면 오만하기까지 한 멘트가 내 입에서 나올 줄이야.

“To My World 시즌 4, 지금 시작합니다!”

마지막 멘트 뒤에는 팡 하고 터지는 꽃가루와 함께 엄청난 데시벨의 박수 소리가 뒤따랐다.

“컷! 너무 좋습니다!”

“승빈 씨, 엠시 처음 보는 거 맞아요?”

“진짜 무대 체질인가 봐. 한 번을 안 떠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추켜세우는 말들이 난무했다. 100명이 아직 그대로 서 있는데도, 모두가 오직 나에게만 집중한다.

“일단 다들 앉으시죠.”

한마디 내뱉었을 뿐인데, 이미 제작진들 시선에 나는 둘도 없는 천사가 되어 있었다.

“어머, 우리 배우님, 세심하기까지-”

근데 뭔가 이상했다. 순위석에 앉은 연습생들 사이에서 작지 않은 웅성거림이 퍼졌다.

“진짜 문승빈이 나온 거야?”

“어떻게 둘을 같이 내보낼 생각을 하지-”

“이거 다 짜고 치는 거 아냐?”

여자 연예인도 아닌데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라니, 모르는 사이에 남자들한테도 인기가 생겼나. 아니면 진짜 자리에 앉혀 줬다고 이러는 건가. 얼마나 오래 애들을 세워 둔 거야-

살짝 안타까운 마음으로 순위석을 올려다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 자리에 절대 있을 리 없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지운이 형.

형이 왜 거기 앉아 있는 건데.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살짝 더 마른 모습. 분명 실력은 더 좋아졌는데, 형답지 않게 안무를 실수했다. 아마 그 이유는 나겠지. 주먹 쥔 손끝의 손톱으로 살을 꾹 짓눌렀다. 차라리 피라도 났으면 싶었다.

이후 녹화는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잠시 쉬는 시간 가지고 녹화 이어 가겠습니다.”

그래도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 예의겠지 싶어 다가갔다.

“지운이 형-”

하지만 완벽한 나의 착각이었다. 멋쩍게 손을 내민 나를 그대로 지나친 형은 세트장을 나갔다. 명백한 무시였다.

씨X, 내 실수였다.

이 순간에도 촬영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다.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연습생들의 웅성거림이 세트장을 가득 채웠다. 다들 속삭이고 있었지만, 그 소리가 100명이 되니 시끄러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생긴 것도 양아치상인데 성격도 장난 아니네.”

“데뷔하고 싶어서 나온 거 아니야? 저래서 좋을 거 없을 텐데…….”

* * *

겨우 녹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형의 이름을 검색했다. ‘차지운 투마월’, ‘차지운 재데뷔’, ‘차지운 티벡스’. 녹화 중에 이미 보도 자료를 뿌린 건지 연관 검색어가 벌써 온통 서바이벌 관련이었다.

그중 기사 하나를 눌렀다.

[티벡스 출신 차지운 서바이벌 재도전, 문승빈과의 재회?]

5인조 남성 아이돌 ‘티벡스’ 출신 차지운이 서바이벌 ‘To My World’에 출연한다. 시즌 2 최종 데뷔조에서 8위로 아쉽게 탈락한 후, 4년 만의 재도전이다. YJ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티벡스의 해체 이후 아이돌 활동을 이어 가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여 출연을 결정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형은 알고 있었어요?”

“당연히 몰랐지, 씨넷 놈들 악독한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망돌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은 매니저 형 하나뿐이었다. 멤버인 나에게도 그룹의 미래가 안 보였는데, 잘될 거라고 응원해 주던 유일한 사람. 그래서 지금 소속사로 이적할 때, 계약 조건에 가장 먼저 매니저 형 영입을 넣었다. 그런 형도 몰랐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꽁꽁 숨겼던 건지.

하여간 답도 없는 방송국 놈들. 사람 간절함 팔아서 돈 벌어먹는 버릇은 여전했다.

“얼마 만이지? 해체하고 나서 다른 멤버들이랑 거의 생깠잖아.”

“그렇죠. 진짜 오랜만이네.”

“근데 지운이 녀석, 아이돌이 정말 하고 싶었나 봐. 그 정도면 연예계에 신물이 나서라도 그만둘 텐데. 기억나냐? 너네 해체할 때 걔만 울었잖아. 그때 걔가 너 노려보는데, 막 살기가 느껴지더라니까. 너 아니라도 어차피 해체했을 그룹이었는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형의 투마월 출연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잘 안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에게 나의 등장이 얼마나 더 큰 패배감을 주었을까.

“씨넷 씨X것들…….”

* * *

지난 일주일간의 통화 기록은 전부 지운이 형으로 가득했다. 충격적이었던 첫 녹화 이후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끈질기게 씹혔다. 예고편이 나간 이후에는 차단을 했는지 아예 신호음도 들리지 않았다.

‘문승빈을 경악케 한 주인공은 누구?’ 따위의 자막으로 시작된 예고편에는 결국 문제의 그 장면까지 나왔다.

‘문승빈의 손길을 거부하는 차지운 연습생’

‘순식간에 얼어붙은 촬영장’

‘급기야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차지운 연습생’

두통이 밀려왔다. 실시간 반응 댓글창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차지운 인성보소;;

-저런 정신머리로 무슨 아이돌 한다고 기어나온거임? 어이없네

-와중에 승빈이 웃는거봐ㅠㅠ 애 상처 받았을까봐 걱정이네

-망돌이 괜히 망돌이냐? 망하는데엔 다 이유가 있는거임

우려한 것보다 더 여론이 나쁘게 흘러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내일이 드디어 두 번째 촬영 날이었다. 내일은 억지로라도 형을 붙잡고 얘기를 좀 해 봐야겠다. 그런 굳은 결심과 함께 이른 잠에 들었다. 잠결에 휴대폰 벨 소리가 두어 번 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나를 깨운 건 매니저 형의 다급한 손길이었다.

“승빈아, 지운이가…….”

그다음 말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차에 올랐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남겨져 있었고, 전부 지운이 형의 이름이었다. 벌벌거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을 리가 없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이 온통 형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티벡스 출신 차지운 의식 불명. 아이돌 산업 이대로 괜찮은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은 문승빈?’

사람 생사가 걸린 문제에도 하나같이 클릭 수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딴 연예계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버텨 온 걸까 형은.

무슨 정신으로 병원에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투명 문 너머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 있는 형이 보였다. 데뷔 날이 떠올라 울컥했다. 열심히 해서 최고의 아이돌이 되어 보자고,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던 형의 눈은 무척 빛났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대로 형이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뒤늦게 올라온 매니저 형이 무너진 채 오열하는 나를 부축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다면, 전화라도 받았다면, 시간을 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는, 다시는 이런 끔찍한 결말을 마주하지 않을 텐데-

“승빈아!”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매니저 형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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