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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86화 (1,58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6화

새로운 일상(41)

별호도 간지나고….

“…….”

“…….”

예상외로 좀 생긴 녀석이었다.

흑발에 살짝 날카로운 듯한 인상.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피부에는 잡티 하나도 없었고, 누가 봐도 이성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을 종류의 얼굴이었다.

물론 김현성의 아성을 위협하기에는 역부족, 살짝 기생오라비 같은 느낌이 강하다. 몸에 있는 근육량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육체 단련을 너무 게으르게 한 거 아니냐고.’

아무래도 내공이라는 것을 중점적으로 연마했기 때문일까. 체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온다. 검사라기보다는 암살자 체형이라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몸을 만들 때 식단까지 조절하는 이쪽과 차이가 있는 건지, 벽곡단 같은 걸 먹으면서 수련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하다는 느낌도 없다.

‘그러게 닭가슴살 좀 먹지.’

바하무트 혹은 발렌틴 알렉산드로나 박덕구처럼 무식하게 근육만 키운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김현성이나 정진호 옆에 세워놓으면 매화검룡은 멸치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물론 무인인 만큼 저 도복 안에는 극한으로 단련되어 있는 몸이 자리해 있을 것이 분명, 일반적인 검사치고는 마력량도 꽤 높은 것이 눈에 띄었는데 확실히 상태창에서도 마력 카테고리가 내공으로 치환되어 있는게 시야에 비쳐왔다.

‘재미있네.’

마음의 눈으로도 놈의 단전 쪽에 이형의 기운이 뭉쳐있는 것이 보인다. 공화국 쪽에서 멍청한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사실 관계를 굳이 더 따지고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정말로 타 차원에서 온 게 맞구나?’

마음의 눈으로 보여지고 있는 상태창이 정말 놈이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벽에 몸을 기대 팔짱을 낀 채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진 군사의 얼굴도 살짝 일그러진다.

나처럼 마음의 눈으로 녀석의 정보를 읽은 것은 아니겠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일단 스스로를 매화검룡이라고 소개했으니 그에 걸맞은 대접을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보통 별호에 용자 들어간 놈들은 꽤 기대받는 루키이거나 이름이 알려진 놈들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럴듯한 실력도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갑작스레 타 차원에 빨려 들어와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데도 불구하고 당황한 기색이 없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본인이 완전히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갖 서브컬쳐와 게임에 절여진 현대인들보다 더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명상 같은 걸 많이 하다 보니까 이런 건가 몰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살짝 대치하고 있던 녀석을 향해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친절한 얼굴로 말이다.

“아. 매화검룡 운현 님이라고 하시는군요.”

“예.”

“일단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이런 곳에서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당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물며 저와 함께 이곳으로 넘어온 흡성마군의 모습을 보시기까지 했으니 저를 경계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침착하시네요.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통인데 말이에요.”

“빠른 시일 내에 오해가 풀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 처우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여러분들의 통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제가 살고 있던 세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제가 있었던 곳과는 모든 게 달라 처음에는 제가 사후세계에 와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토록 많은 색목인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거니와… 건축물이나 복식도, 또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계시는 미지의 힘도, 제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 말입니다.”

“…….”

“물론 처음부터 이리 담담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던전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지냈을 때, 제가 다른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평범한 범부에 불과했던 이들이 갑작스레 손에서 불길을 쏘아 보낸다거나, 내공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서는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흐음… 혹시 시작의 방에서 다른 설명을 듣지는 못하신 건가요?”

“설명 말입니까?”

‘못 들었나 보구나.’

“이미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륙은 지구라고 부르는 차원에서 손님들을 받고 있어요. 본래는 시작의 방이라는 곳에서 모여 여러분들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대륙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에요. 아이템의 등급이나 상태창의 사용법, 그리고 튜토리얼 던전의 공략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말이에요. 혹시 듣지 못하셨나요?”

“제가 떨어진 곳은 작은 틈 같은 곳이었습니다.”

“게임 초대… 아니, 혹시 서신 같은 것을 받지는 않으셨고요?”

“제가 어떻게 이곳으로 떨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분명 화산을 거닐고 있는 도중에 눈을 감았다 뜨니 장소가 바뀌어 있었지요.”

‘정식으로 초대된 게 아니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베니고어가 어거지로 차원의 문을 연 건 아닌 모양이다.

말 그대로 그냥 갑자기 서버에 버그가 생긴 것마냥 튀어나왔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처럼 보였다.

“게다가 설명이라니… 따로 설명을 하는 사람까지 있단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에요.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신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신… 말입니까?”

마치 미친놈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곳에는 신이 실존해요. 실제로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이들은 신의 힘을 빌려 사용할 수도 있고요.”

다시 한번 미친놈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 눈에 띈다.

“믿기 어려우실 거예요. 하지만 매화검룡님께서 가지고 계신 상식은 대륙에서는 거의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거예요. 이곳에서는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수만 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거나 하늘에서 불덩이를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능력자도 있으니까요. 운현 님께서 지금 보고 계시는 제가, 아마 신이 실존한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네요.”

“네?”

“제가 바로 대륙의 주신인 베니고어 여신님의 대리인이니까요.”

“…….”

별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곧바로 날개를 모두 펼친다.

어두운 지하감옥에 순식간에 빛이 가득 채워진다. 빛으로 만들어진 깃털들이 흩날리고, 신성함으로 가득 찬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내고 있는 매화검룡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금방이라도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평정을 유지하던 얼굴에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아예 사전 정보가 없는 녀석이 이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녀석이 이해하고 이해하지 않고는 별 상관이 없다. 어차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 초월자에 근접한, 아니 신의 존재를 말이다.

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말… 말도 안 돼.”

‘그래…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어… 어찌 이토록 정순하고 맑은 기운이… 아니… 이… 이건….”

‘정순하고 맑아? 내가 좀 맑은 사람이기는 해.’

“허….”

“…….”

“…….”

꿈뻑꿈뻑 두 눈을 비벼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날개를 펼치고 있는 내 모습일 터, 감히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고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상황이 뭔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아 슬쩍 날개를 집어넣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매화검룡이 시야에 비쳐왔다.

방금 전까지와는 사뭇 이쪽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 것은 당연지사. 어떻게 이쪽을 대해야 할지 답을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을 것 같아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이해가 되실까요?”

“…….”

“…….”

“…….”

“네.”

“그리고 제가 이곳을 직접 찾으신 이유도 이해가 되실까요?”

“네….”

“시작의 방을 거치지 않고, 이 대륙으로 소환되셨다는 건… 매화검룡님께서 이곳에 계신 것이 어디까지나 예기치 못한 사고라는 것을 뜻해요. 만일 이 모든 것이 여신님의 뜻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매화검룡님이 어째서 이곳으로 빨려 들어오게 된 것인지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거든요. 이 대륙을 이루고 있는 조화가 깨어지기 전에요.”

“제 존재가 이기영 님이 계신 세계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래요.”

“어렵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매화검룡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여겨지고요. 세계의 조화가 깨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들께서… 그러니까 흡성마군 같은 이들이 저희 세계에 끼칠 악영향도 걱정할 수밖에 없겠죠. 무림인들은 정파와 사파로 나뉘어 있다고 들었거든요.”

“예. 맞습니다.”

“협과 정의를 중요시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존재할 테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저희 세계에서도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가 오기 전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그렇기에 지금 손에 넣은 평화가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 있어요.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어렵게 놓은 이 평화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거든요.”

“…….”

“운현 님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에요.”

“응당 협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아! 아마 돌아가실 수는 없으실 거예요.”

“예?”

“본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 거예요. 당장 저희조차도 저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절대로 단기간 내에 해결되는 일은 아닐 거예요. 무척이나 많은 시간과 인력을 들여야겠죠.”

“그럴 수가….”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납득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제… 제가 어떤 부분에서 협조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을 이어온다.

“일단은 몇 가지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셨으면 해요.”

“…….”

“그럼 첫 번째.”

“…….”

“왜 거짓말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

“…….”

“어째서 매화검룡 인가 뭔가 하는 놈 행세를 하고 있는 거냐고요.”

앗 하는 사이에 갑작스레 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놈의 손이 내게 닿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곧바로 땅바닥에 처박혀 버리는 녀석. 살짝 고개를 돌리니 진 군사가 팔짱을 낀 채로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있다. 이미 주문을 걸어둔 것이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매화검룡 행세를 하던 녀석이 일그러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살해요. 군사님. 소중한 샘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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