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580화 (1,58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0화

새로운 일상(35)

“정문이… 정문이 뚫렸습니다!”

‘이…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

“?”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숫자는 약 1만 명으로….”

“?”

“현재 저택을 수비하기 위해 왕강 님과 용월 님을 포함한 사용인들 전원이 정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거… 몰래카메라인가?’

어쩌면 진 군사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일매일 본인만 당하는 게 지겨워져서 갑자기 진 군사답지 않은 방법으로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상황을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슬그머니 진 군사를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진 군사를 보고 있자니… 이게 녀석이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이쪽을 의심하는 듯한 표정이다. 정확히는 ‘이기영 이 개자식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라고 묻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당연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이 상황이 의도한 것임이 아니었음을 어필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반 평화협정 시위대를 진 군사의 저택에 불러들인 것은 내가 맞지만 베니고어께 맹세하건대 절대로 이런 상황이 온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윽고 보고를 위해 찾아온 사용인에게 한마디 건네는 진 군사.

“내가 우려해야 할 정도인가?”

라고 말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네?”

“확실하게 이야기하도록. 내가 나서야 할 정도인가?”

“…….”

“…….”

‘아니, 군사님 시바 카리스마는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죠.’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의 전력을 총동원하도록. 중앙에 정식으로 지원요청을 보내겠다. 버티는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테지.”

“추… 충!”

이윽고 손짓으로 사용인을 물리는 진 군사가 눈에 보였다. 그다음은 당연히 이쪽의 차례.

“…….”

“…….”

“네놈이 꾸민 짓이 아닌 게 확실하겠지?”

“제… 제가 미쳤다고 저 시위대들을 군사님 저택으로 보내겠어요?”

“그렇다면 되었다.”

“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겠군.”

“…….”

“…….”

‘아니… 물론 시위대를 모은 건 내가 맞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되는 거예요?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아니, 그것보다 지금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암만 생각해도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저러다가 사람 한둘 죽어 나가면 괜히 구설수에 오르는 건 알고 있죠? 물론 칼… 칼 들고 설치는 게 아니면 사제가 있는 이상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아니, 그거 이전에 저택이 공격받고 있다잖아요! 괜히 말 나오기 전에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마침 하얀이도 있고… 현성이도 여기에 있으니까.”

“그만.”

“네?”

“그 둘을 이 일에 휘말리게 할 생각은 없다. 이유는 네놈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그… 그건 맞기는 해….’

소 잡는 칼을 닭 잡을 때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일어날 수도 있는 만큼 김현성과 정하얀을 출동시키는 건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뭔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뿐이지 않은가.

“거기에 이 저택을 찾은 손님들에게 괜한 잡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 있을까. 그것보다 일정이 많이 늦어진 것 같은데… 어서 식사 준비를 시작하는 게 좋겠군.”

“아니… 당연히 배고프기는 해요. 배고프기는 한데….”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지나치게 권력자 같은 모습인 터라 저도 모르게 진 군사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개들이 짖어대도 달리는 기차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실제로 별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띈다.

‘이질감까지 느껴지자너.’

군중들이 모여봤자 뭘 할 수 있겠냐는 듯한 분위기. 오히려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진 군사가 가지고 있는 이 정체 모를 자신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저택의 전력을 생각해 보면 한낱 시위대에게 겁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꼬맹이도 그렇고, 심지어 왕강, 용월이까지 어지간한 중소 모험가들은 우습게 만들 정도의 실력자다.

특히나 한 노야 같은 경우에는 도대체 이 노인네가 어째서 여기에 처박혀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파란 길드에 들어와도 어지간히 한자리를 차지할 것만 같은 영감. 그것도 즉시 전력으로 사용이 가능한 스탯과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은둔고수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치였다는 거다.

심지어 저 넷이 끝이 아니다. 저택에 있는 사용인들의 90퍼센트 이상이 무력을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 비밀무력집단 같은 것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겨우 이뿐일까. 저택을 방어하기 위한 진 군사의 마법과 진법 따위의 것들이 상시로 유지되고 있다. 어지간한 던전보다 더욱더 공략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다.

진 군사가 던전 보스로 있다면 신화 등급의 던전 그림자 영웅의 저택이라는 네이밍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진 군사가 던전 보스로 활동하지 않으면 등급이 대폭 깎여 나간다는 것. 그래도 전설 등급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박기리가 직접 주도하지는 않았겠지?’

아무리 녀석들이 멍청해도 직접 이걸 주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덕구와 김예리만 있으면 몰라도 안기모가 함께하고 있으니 적당히 선을 지켜주고 있지 않을까.

“…….”

“…….”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바깥으로 나가는 진 군사와 내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호들갑 떠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쳐온다.

“기영 씨. 들으셨습니까?”

“네?”

“반 평화협정 시위대가 저택을 뚫고 들어오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만.”

“?”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저택 방어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니….”

‘아니야. 이거 플래그야. 보통 진 군사가 이러면 결국에는 개 쪽 당하는 게 유구한 역사라고.’

“아니, 군사님 저도 현성 씨랑 같은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도 몰라요.”

“…….”

“…….”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녀석도 뭔가 찜찜한 모양이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그러니까 김현성이 걱정하는 것처럼 혹시라도 내가 잘못될 확률은 없다.

좌현성, 우하얀, 심지어 진청도 함께 있고 한소라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전쟁터 한복판에 있어도 이 조합과 함께라면 태평하게 차 한 잔 마셔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조합이다.

지금 이쪽이 걱정하는 것은 내 안전이 아니라 진 군사의 자랑인 이 아름다운 그림자 저택의 안전이었다.

‘이… 이제 이거 내 건데….’

슬그머니 망원경을 돌려 본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이, 이거 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박… 박덕구님….

-여기서는 바크더쿠라니까! 그런데 당신은 누쇼?

-아 저 사람은 베넷 사제입니다… 덕구 씨. 부길드마스터께서 잠깐 맡겼는데… 후우… 이거 이럴 게 아니라 저희는 슬슬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러다가 저희가 전부 다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 분명 부길드마스터에게 무지하게 꾸중 당할 텐데….

-아니. 지금 여기서 우리만 몸을 내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어쩌란 말이요. 누군가는 이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니냐니까! 한번 일을 저질렀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사나이의 도리 아니요!

-그렇다고 그림자 영웅의 저택까지 쳐들어가는 건….

-각성하라!!!!! 각성하라아아아아아아!!!!!!!!

-거 일단 날아오는 거나 좀 막아보쇼!!! 여기 있는 사람들 다치는 건 내가 죽어도 눈 뜨고 못 보니까!! 계속 버프 유지하는 거 잊으면 안 된다니까!!! 약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무조건 휘말리지 않게 해야!!! 이크!!! 거 치유주문도 좀 팍팍 뿌려주쇼!!

-이… 이거 큰일 날 것 같은데… 예리 씨도… 저랑 같은….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 다치는 건. 아저씨도. 원치 않을 거야. 일단은. 군중들을 조금씩 진정시키면서… 그것보다… 저 사람들… 저기서 소리 지르고 있는 사람들… 기모 아저씨 여자친구들 아니야?

-각성하라!!!! 각성하라!!!!!!! 그림자의 영웅은 각성하라!!!!!!

-평화협정 절대 반대!!! 평화협정 절대 반대!!!!! 교국은 절대로 고개 숙이지 않는다!!!

-각성하라!!!!!

-아… 아니… 도대체 뭐 하고 있는… 큰… 큰일….

‘시… 시바….’

“…….”

“…….”

성난 군중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박기리 일행도 눈에 보인다.

‘시바!’

본인들 역시 이렇게나 분위기가 과열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특히나 당황하는 안기모의 얼굴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속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

그야 본인들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이렇게 그냥 빠져나갈 수 있을 리 없기야 하다.

혹시라도 저 과정 속에서 그냥 휘말려 버린 인원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박덕구라면 절대로 저런 사람들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일단은 시위대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중재하며 끓어오른 온도를 낮추는 느낌의 작전일까.

최면 아저씨도 함께하고 있으니 분명 어느 정도 선에서는 멈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노오오오오오오오옴!!!!! 감히 이 신성한 저택 안에 들어와!!! 무슨 개 같은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냐!!!!!!!!!!!!!!!!

커다란 노호성이 터져 나온 순간 그마저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깨닫는다.

한 노야였다.

도포를 휘날리며 등장한 한 노야가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들을 하늘로 집어 던지고 있는 중, 말 그대로 사람들이 하늘로 휙휙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림자 저택의 하수인들이다!!!!

-막아라!!!! 절대로 저 잡것들을!!! 저택의 안에 들이지 마라!!!! 군사님의 엄명이다!!! 목숨을 걸고 이기영 님을 지키라는 것이 군사님의 엄명이다!!!!!!!! 이번에는 지켜야 한다!!! 이번에는 말이다!!!!!!

-존! 명!!!

-존! 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 기모 씨!!

-알… 알겠습니다! 제길!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례한 놈치고는 제법이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바크더쿠! 바크더쿠요!!!

-본좌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음이로다!!!

‘본좌는 또 뭔데 시바… 진짜….’

결국에 부딪치기 시작하는 한 노야와 바크더쿠. 설상가상으로 용월이는 김예리와 뒤엉킨다.

-주인님들에게는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다!! 계집!!!

-제법이네. 키 작은 만두머리.

-키가 작은 건 너도 마찬가지다!!!

왕강과 꼬맹이, 그리고 몇몇의 별동대는 안기모와 붙어 있나 보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안기모를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기모 오빠는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네.

-응. 그러네.

-도와주러 가자.

-좋아.

쌍둥이들마저 시바 안기모의 옆에 선다. 매치 업 자체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상황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흥분한 박덕구와 한 노야가 생사결이라도 펼치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노옴!! 성취가 제법이구나!!!

-공… 공격이 너무 매서운 거 아니요!! 적당히 좀 하쇼!!! 안 그러면 나도 화낸다니까!!!! 거 허리 조심하쇼!!!!

-지금부터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겠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시위대의 거침없었던 질주가 소강상태를 맞은 것 같기야 하다.

아마 공화국의 지원병력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끈다면 충분히 제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익숙한 인형이 시위대 속에서 빠져나와 전력으로 저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

-지금이야! 누나!

-어? 어?

-빨리 들어가자!!!! 저 사람들이 시간을 끌어주고 있어!!!

성지훈이 마왕성을 향해 돌격하는 용사의 얼굴로 저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넌 또 뭐야…?’

이 장소에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베니고어 님을 위하여!!!!!!

‘시바… 내 저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