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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67화 (1,56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67화

새로운 일상(22)

‘생각보다 더 빨리 왔네.’

“…….”

“…….”

“기영 씨?”

이쪽의 안부를 묻고 있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쳐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얼굴. 사실 조금은 일그러진 미소이기는 했지만, 다친 곳이나 잘못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경직된 미소가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비교하기 싫어도… 비교하게 되자너.’

최면 아저씨와 비교하니 새삼스레 말끔하게 생긴 얼굴이 더욱더 시야에 비쳐온 것은 당연지사.

조금 생겼다고 하는 놈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김현성 일진데, 저런 놈들 사이에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미안하지만 종족이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최면 아저씨의 믿음이 신실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가자너….’

베니고어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이미 여러 차례 기적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빌런이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 계기가 바로 눈앞에 있다.

어째서 김현성에게는 전부를 주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지.

어째서 시바 김현성에게는 커다란 덩치와 간지 나는 얼굴을 주고, 자신의 커스터마이징에는 이리 공을 들이지 않았는지.

녀석이 베니고어의 제단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고함을 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하지 않은가.

물론 지금 이 순간, 최면 아저씨 본인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것이 시야에 비쳐왔으니 말이다.

아마 방 안의 공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피떡이 되어버린 코가 커다란 아저씨의 모습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 감기라도 걸린 것마냥 온몸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조금 지린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노을빛의 날개는 천천히 이쪽의 몸을 감싸는 중, 이쪽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빛이었지만 녀석에게는 이 노을빛의 날개가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본인의 유일한 장기를 선보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최면 아저씨의 머릿속에는 죽음의 공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제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기영 씨. 사실은 조금 참아보려고 했었는데….”

“아니요. 잘 찾아와 주셨어요. 물론 오시기 전에 연락을 좀 해주셨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요.”

“아.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기영 씨 말대로 여신의 손거울을 꺼놓는 바람에….”

“…….”

“…….”

“아! 일은 조금 어떠셨어요?”

“아직 한창이지만… 남, 남은 업무와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힘드시지는 않으셨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일하는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좋으신 분들이라 큰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너무 많아서 전부 다 수용하기 곤란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열정적인 분들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업체들한테 안겨준 돈이 얼만데.’

김현성이 라헬의 한가운데에 거울호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호숫물이라도 직접 손으로 퍼와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다.

이번 작업이 잘 풀리면 파란 코인에 탑승해 김현성 사단으로 지속적으로 일을 받을 수도 있다는 힌트도 슬쩍 흘렸으니….

‘열정적이지 않으면 곤란하자너.’

“잘 적응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네. 모두 기영 씨 덕분입니다. 그… 그것보다 기영 씨….”

“아아아. 괜찮아요. 현성 씨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마침 베넷 사제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네?”

“네? …네?”

최면 아저씨와 김현성이 동시에 의문을 표시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설마 설마 하니….’

김현성도 이미 최면 아저씨를 빌런이라고 확정 짓고 있었던 모양, 그 어떤 설명도 없었는데 곧바로 최면 아저씨를 적이라고 의식하는 것을 보니 현성이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최면 아저씨가 특이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그래. 악당이 아닌 게 이상하자너.’

당연히 눈에 띄게 당황하는 김현성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혐오스러운 악당인 줄 알고 살기를 있는 대로 뿌리고 위협을 했건만, 오히려 이쪽을 도와준 사람이란다. 심지어….

“아무래도, 지금 누워계신 분이 베넷 님을 사칭하신 것 같더라고요.”

“아아아아! 그, 그렇군요. 실… 실례했습니다. 베넷 사제님… 어, 어떻게….”

당연하지만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웠던 마력과 살기가 사그라든다. 방금 전까지는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이 방안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 하나다.

최면 아저씨는 지금까지 참았던 호흡을 뱉어내는 중, 이제 막 압박에서 벗어난 터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인지하기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그냥 던져 버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살짝 내 쪽을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인자한 미소를 짓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비쳐온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노을빛이시여. 모든 것이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위하신 행동이 아닙니까.”

“아….”

“오히려 감사를 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갑작스레 저 후안무치한 녀석이 개인기도실에 들이 닥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었습니다. 노을빛께서 와주신 것에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제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마음은 꺼내지 말고.’

“오히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 제가 죄인입니다. 그리 고개 숙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을빛이시여.”

‘그래 왜 죄인한테 고개까지 숙이고 그래. 현성아.’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한 게 미안하기는 한 것인지 거듭 최면 아저씨에게 사과를 전하는 녀석. 김현성이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최면 아저씨의 눈빛에는 안도감이 들어선다.

베니고어가 녀석에게 다른 건 주지 못해도 생존욕구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챙겨 준 모양이다.

그래, 다리가 덜덜 떨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사제를 연기하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심지어 제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성에게 최면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 당연히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사실 나도 김현성에게는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통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정신계열의 주문이나 저주는 더 등급이 높은 주문에 파훼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김현성이 최면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색욕과 영면이 등장하는 순간 곧바로 놈의 능력이 무용지물이 될 테니 말이다.

심지어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녀석을 깨우는 것도 가능하고… 운이 좋은 건지, 배짱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베넷 사제는 정답을 찾은 셈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슬슬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베넷 사제님은 본부 이단심문관에게 연락을 좀 해주시겠어요?”

“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후에…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 물론입니다. 당연히 내드려야지요. 제 모든 시간을 가져다 바칠 수도 있습니다.”

‘과잉충성 자제 좀 하고….’

이후에는 허겁지겁 본부에 연락을 집어넣고 있는 베넷 사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김현성은 아직까지도 최면 아저씨를 오해한 것이 미안한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안기모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 새끼 이미 대기하고 있었자너.’

기도실에서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서는 괜스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지쳐 보이는 표정과 얼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희생과 부활의 성자를 지키기 위해 대모험 활극이라도 찍은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내 얼굴을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크게 안심하는 듯이 숨을 들이 쉬는 것도 시야에 비쳐온다. 도대체 땀은 어디서 흘린 것인지 머리카락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땅바닥을 굴렀는지 온몸에는 마치 전투라도 치른 듯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후에는….

“길드마스터를 뵙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인사를 갈기기 까지. 꼴을 보아하니 최면이 풀린 것이 분명했다. 아니, 스스로 풀었을 확률도 높아 보인다.

당연하지만 안기모를 바라보는 김현성의 눈빛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실제로 녀석이 여기에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이 난리가 난 게 맞느냐는 눈빛이었고, 도대체 여기서 이 난리가 날 동안 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안기모도 제법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애초에 호위 자격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거니와 얘는 내가 초월자라는 정보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길드원 중에 한 명이었으니까. 뭔 일이 터지면 색욕과 영면이 출동해 버리면 된다는 마인드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 페널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 모르고 있기는 했지만, 녀석은 은근슬쩍 나를 세계관 최강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기는 했고….’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김현성은 그저 안기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것 같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괜한 성질을 부리기에는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양새. 내가 옆에 있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새끼가 한번 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쪽을 사슴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안기모의 눈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김현성에게 한 번 걸리면 단순히 털리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누울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자너. 은근히 알게 모르게 내가 지 이뻐하는 것도 알아.’

“기모 씨도… 계셨군요…? 이곳에….”

“죽… 죽여 주십시오! 길드마스터!”

‘오늘 진짜 가증스러운 장면 많이 보자너. 사람은 넷인데 진실 된 인간이 둘밖에 없네.’

“모든 것이… 제… 제 불찰입니다! 베넷 사제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저는… 평생을 후회와 자책 속에서 살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베넷 사제님… 흐으윽…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 눈치는 또 빠른 것도 당황스럽다. 베넷 사제와 내가 함께 나온 것을 보고 무언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안기모의 재빠른 태세전환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베넷 사제는 도대체 이 새끼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기모를 바라봤지만, 이내 김현성 쪽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이후에는 인자한 미소를 장착하며 말을 이어온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께 독대를 요청드린 것은 어디까지나 제 자의적인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님께서 제 공을 치켜세워주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야말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제님… 제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아닙니다. 베넷 사제님… 흐윽…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주 둘이서 난리 났네. 시바.’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이 녀석들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을 지경이다.

“기모 씨를 너무 나무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기모 씨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저도 마찬가지고요. 실제로 기모 씨도 여기까지 오시느라 많이 고생하신 것 같고….”

“부… 부길드마스터!”

“그… 그리고 아직 호위 임무에 익숙하지 않으시잖아요. 사실 호위 임무 같은 경우에는 주로 창렬 씨나 리안 씨가 담당해 주시니… 이런 일로 징계를 내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에요.”

“아… 아닙니다! 부길드마스터! 아무리 호위 임무에 무지하다고는 하나 제대로 부길드마스터를 보필하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합니다! 어떤 죄라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부길드마스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 오른팔을 자르라면 자르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를 제대로 보지 못한 이 두 눈을 뽑으라고 하면 당장 뽑을 수도 있습니다. 부디….”

‘아 이 새끼는 왜 또 오바를 해?’

“괜찮아요. 기모 씨… 마음 쓰지 마…세….”

김현성이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렇다면 호위 임무에 대해 제대로, 다시 배우면 좋을 것 같군요. 모르면 배우면 됩니다.”

“아….”

“이번 임무가 끝난 이후에, 붉은 용병 길드의 지옥 6주 프로그램에 함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영 씨와 베넷 사제님의 말씀대로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겠습니다.”

“길… 길드마스터….”

‘김현성 이 새끼… 사실은 누구보다 안기모를 엿 먹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담하건대 안기모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팔이 잘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게 한 번 잘랐다가 다시 붙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붉은 용병의 덩치들과 함께 보내는 땀내 나는 6주라니, 녀석의 눈이 저렇게 커진 것은 나도 처음 본다. 벌써부터 바들바들 떨려오는 사슴 같은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제발 말려달라는 표정이었지만….

‘아니야. 업보야. 이건 받아야 돼. 네가 거기서 한 번 더 오바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있었을 거야.’

“그렇게… 해야겠네요.”

“…….”

“…….”

“추… 추… 충!”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

“…….”

그리고, 여기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

슬그머니 다가온 최면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아 씨발 소름 끼쳐! 좀 저리 꺼져요. 최면 아저씨.’

“…….”

“…….”

“저…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색욕과 영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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