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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64화 (1,56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64화

새로운 일상(19)

“이제야 제 가치를 알아주신 겁니까? 부길드마스터?”

“…….”

“…….”

“파란 길드의 사제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죠. 아마 희영 씨나 엘레나 씨도….”

“그분들은 저와 병과가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전투사제고, 선희영 님이나 엘레나 님은 정통사제인데. 엄밀히 말하면 저는 성기사 쪽에 더 가깝단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제한적이지만 전위도 설 수 있고… 수준 낮은 탱커들을 상회하는 방어력과 웬만한 전위들 못지않은 공격력을 갖추고 있는 사제라니… 아마 제가 시장에 풀린다면 억만금을 줘서라도 영입하려는 길드가 한 트럭일 겁니다.”

‘짜증 나지만 부정할 수는 없자너.’

“치유주문이나 다른 신성주문들의 퀄리티도 수준급이니까요. 큼… 방금 제 입으로 말씀드렸지만 7급 정신계열 마법을 디스펠할 수 있는 사제들은 절대로 흔하지 않습니다. 제가 파란 길드에 있으니까 조금 처져 보이는 거지,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소리 듣는 사람 아닙니다. 부길드마스터.”

“그래서요. 뭘 말하고 싶은 건데요?”

“…….”

“…….”

“딱히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부, 부길드마스터께서 먼저 여쭈어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혹시 제 재계약은 언제쯤….”

‘이게 목적이었자너.’

“아. 연봉협상 때문에 그러셨구나. 기모 씨. 기모 씨 7년 계약 하셨잖아요. 재계약은 7년 뒤겠죠.”

“그… 보통 성과에 따라서, 재계약 시기를 조금 더 빨리 잡기도 하고… 그,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있으면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충분히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드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모 씨 연봉은 파란길드 내에서도 높은 편이잖아요. 사실 길드원 하나하나가 연봉이 너무 높아서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라니까요. 오죽하면 파란길드의 길드원 한 명, 한 명이 현금소각로라는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이건 기모 씨한테만 드리는 말씀인데, 길드도 지금 힘들어요. 누구라도 이적을 시켜야 되나…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니까요?”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길드 내에서도 사정이 많아요. 기모 씨 말대로 억만금을 줘서라도 영입하려고 하는 길드는 많겠지만, 실제로 억만금을 낼 수 있는 길드는 없으니 이적시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후우… 사실 기모 씨한테 오퍼가 오기는 했었거든요.”

“…….”

“붉은 용병에서요. 희라 누나가 돈 많이 준다고 하던데… 아마 연봉도 올라갈 거고요… 보내… 드려요?”

“…….”

“…….”

“저, 안기모, 파란 길드에서 분골쇄신 뼈를 묻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절대로 파란 길드를 배신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곳이 제 무덤이 될 겁니다. 부길드마스터.”

“…….”

“아! 혹시 다리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으십니까? 제게 부길드마스터를 업을 영광스러운 기회를….”

“뭐,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요. 이제 다 왔는데요. 뭐.”

‘이야기하다 보니까 금방 오기는 했자너.’

확실히 안기모 녀석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 든다. 의외로 녀석과 죽이 맞는다는 사실이 조금 자존심 상하기는 했지만, 대화가 막힘없이 진행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냥 말이 많은 녀석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벌써부터 또다시 입을 벌리고 있지 않은가.

“그, 그런데, 부길드마스터, 갑자기 정신계열 마법의 디스펠 여부는 왜 여쭈어보신 겁니까?”

“그냥 쓸데없는 걱정이죠. 뭐.”

“뭐, 혹시 지금 우리가 향하는 신전에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는 악당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까 전에 베니고어 넷 탐방하다가 이상한 걸 너무 많이 봐서요. 여론은 정리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과정에서 좀… 심연의 괴물들이 튀어나와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거니까 뭐, 나쁘지는 않은 거죠.”

“그런데… 부길드마스터께서는 딱히 걱정하실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

“…….”

“부길드마스터는 이미 격이 올라간 상태잖습니까? 거의 반신 느낌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실제로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시기도 하셨고 말입니다. 가끔 부길드마스터랑 이렇게 길을 걷다 보면, 사제로서 막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겨난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네가 사제로서 너무 지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저도 마법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정신계열 마법 같은 경우에는 정신력이 강한 대상에게는 통하지 않는 게 조금 상식 같은 거고… 아마 장담하건대 부길드마스터는 웬만한 정신계 마법에는 꿈쩍도 안 할 겁니다. 아티팩트나, 뭐… 저주계열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기는 해.’

아마 색욕과 영면 폼이나, 희생과 부활의 폼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림하는 동시에 별것 아닌 주문들은 전부 튕겨낼 테고, 오히려 시전자가 대미지를 입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을지에 대한 표본이 없다. 어느 정도는 저항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신계열 마법이 메모라이즈 되어 있는 신화급 아티팩트를 저항할 수 있는지, 정하얀 정도의 대마법사가 외우는 8급 이상의 주문을 저항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대륙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하기는 했고, 실제로 이 대륙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이능이나 특성이 모래알처럼 깔려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니고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던가. 신도 완벽하지 않다고, 인간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초월자라고 해서 필멸자를 상대로 무조건 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경우에는, 필멸자들이 초월자들의 파편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정배다.

‘원래 방심하다가 훅 가는 거니까.’

조금 조심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다. 물론 지금 내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에 꽂혀오기는 했지만….

“희… 희생과 부활의 성자시여!!”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인사를 해오는 베넷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침을 삼켜 넘길 수밖에 없었다.

“먼 길 오시느라… 정말… 고생…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 시바 이 새끼… 왜 이렇게….’

“…….”

“…….”

최면 아저씨처럼 생겼지?

물론 나는 최면 아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미지조차 없지만, 아마 누구라도 이 새끼를 보고 있자면 절로 최면 아저씨를 떠올릴 것이 분명했다.

‘너… 너무 최면 아저씨처럼 생겼자너.’

살짝 옆을 보아하니, 안기모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에라도 최면술을 선보일 것 같은 모습에 녀석도 곧바로 철퇴를 휘두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긴 것만으로 어떻게 사람을 평가할 수가 있겠는가. 이미 내가 신전을 찾을 거라는 걸 전해 들었기 때문에 파티 아닌 파티를 기획하며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던 녀석이다.

조금 후덕해 보이고, 기름져 보일 뿐이지, 음습한 녀석은 아닐지도 모른다.

특징이라면 무척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전위를 해도 어울릴 것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지방이다. 살짝 과장해서 말하면 저 살에 파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나이는 50대, 김현성에게 낚여 자신의 개인정보를 충분히 팔 수 있을 것 같은 나이대….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이 모두 나와 있다. 뒤에는 꽤나 요란한 모습의 베니고어 신전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사제들은 하나같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방금 설명한 베넷이라는 남자가 자리해 있었다. 신전에 당도하기 한참 전부터 이 지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성기사들도 눈에 띈다.

‘이거… 교단 지부에서 유지하고 있는 성기사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데….’

마치 공화국민들에게 무력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것으로 녀석이 극단주의자 중에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현성이 보이스피싱을 할 정도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사람 좋은 얼굴로 나를 맞이하는 뒷모습에는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는 거겠지.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오오오오… 희생과 부활의 성자시여.”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자 넙죽 엎드리는 녀석, 심지어 이쪽의 발에 입을 맞추려고 하는 것 같다.

‘하 시바 진짜 개오바하네.’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오바를 하는 새끼들이 있다. 그나마 손에 입을 맞추려고 하는 새끼들은 양반, 그것도 몇몇 노년의 사제들이 극한의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신도들은 내가 다가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적었지만….

‘아. 내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

눈앞에 있는 새끼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교단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발로 놈의 얼굴을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 한 신전의 책임자를 무안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일단은 녀석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먼저다. 살짝 녀석을 일으켜 세우자 인상을 찌푸리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찰나였지만 녀석의 표정이 망원경 속에 담긴다.

“베넷 사제님의 노고에 감사드려요.”

“아…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어떻게 제가 베넷 사제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어요? 교황청 본부에 계시지 않았나요?”

“네… 네.”

“베니고어 교단을 설파하기 위해 이 먼 타지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인사를 드리러 오는 것이 너무 늦은 것 같아 죄송하네요.”

“모, 모든 것이 베니고어 님을 위한 일입니다….”

“분명 베니고어 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사제님.”

“…….”

“…….”

“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날이 춥습니다.”

“네.”

당연히 나와 있는 모든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감사를 표현함이 옳다. 한 명씩, 한 명씩, 눈을 마주쳐주고, 그들의 노고와 희생을 치켜 세워주고, 덕담을 한마디씩 해주고 나면 드디어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타임.

기도회라도 열어줬으면 하는 표정이었지만 여기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안기모 녀석 역시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기는 했는데, 몇몇 사제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교단 내에서는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지 기분에 따라 모시는 신을 이리저리 바꾸는 녀석이었으니, 당연히 평판이 좋을 리는 없겠지. 심지어 이상할 정도로 신성력이 높고, 유능하고, 신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으니 질투하는 놈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벤트라면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작은 환영식이 끝난 이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전의 안으로….

“부, 부길드마스터… 저 사람… 최… 최면 아저씨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라고 중얼거리는 안기모의 귓속말을 뒤로하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여러 신전에 들러봤었지만 언제나 코스는 뻔하다. 신전 내부를 소개받고 그다음은 간단히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그 뒤의 일정은 신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베넷 사제가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이곳이 바로 개인 기도실입니다.”

“아. 그렇군요.”

라고 중얼거리며 살짝 뒤를 돌아본다.

‘뭐야. 안기모 이 새끼 어디로 갔어?’

“…….”

‘다른 사제들은 어디로 갔어?’

길을 잃었을 리가 없다.

‘뭐야?’

곧바로 망원경을 꺼내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동공이 풀린 채로 사제들과 함께 어디로 향하는 안기모 녀석이 눈에 띈다.

‘진짜… 시바… 진짜 최면 아저씨 였어?’

“무얼 하고 계십니까.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개인 기도실에는 맨발로 들어가시는 게 ‘상식’입니다.”

심지어 나한테도 최면을 걸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네?”

“개인 기도실에는 맨발로 들어가는 게 베니고어 교단 공화국지부의 ‘상식’ 아닙니까?”

당연히 그딴 상식 따위는 없었지만… 아마 이쪽에게 최면이 확실히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당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조심스레 신발을 벗으며 말이다.

“아. 그랬었죠. 베넷 사제님. 공화국지부에서는 맨발로 들어가는 게 상식이었죠. 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

“…….”

“…….”

‘이 새끼 시바… 최면 아저씨가 아니라 발바닥 광인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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