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56화
새로운 일상(11)
‘왜 시바, 정체를 숨기고 다니면 사람들이랑 부딪히는 일이 잦을까.’
분명히 예전에도 비슷한 일들을 겪은 기억이 있다.
“…….”
“…….”
“너… 눈, 눈… 누, 눈, 똑바로 뜨, 뜨고 다녀.”
당연한 소리이기는 하지만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모습으로 거리를 거닐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히는 상황이 일어날 수가 없다.
홍해가 갈라지듯이 사람들이 갈라지고, 먼발치에서 이쪽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거나 무릎을 꿇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어떻게 이쪽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수가 있겠는가.
혹여나 옷자락이라도 스칠까 봐 조심하는 이들이 태반이었고, 간혹 버림받은 자들의 쉼터 같은 곳에 방문해 그들을 위로할 때에도 내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본인이 먼저 더러운 몸이라느니 뭐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며 축복을 받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혹여나 자신이 불경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빛을 보내올 때도 많았다.
퍼포먼스 차원으로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마나 정수리에 입을 맞출 때면 화들짝 놀라며 눈물을 한 바가지 쏟는 이들이 태반이다.
심지어 일반적인 모험가들이나 상류층에 자리에 있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이쪽과 신체접촉을 한다는 것이 죄악이라도 되는 것마냥 화들짝 몸을 피한다.
악수를 건네도 주저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사회적인 위치가 달라진 만큼 이런 종류의 부조리한 일에 말려드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시바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
“눈, 눈… 눈,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진짜 야생이기는 하자너….’
평범한 모험가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걱정이 될 정도, 눈만 마주쳐도 시바 서로 싸울 생각부터 하고 있는 새끼들이 길거리에 깔려 있는 것이다.
사실 교국의 명예추기경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파란 길드의 인장만 가슴에 달고 다녀도 불필요한 시비에 걸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질 것이다.
보통 거리에서 시비를 걸고 으스대는 이들 같은 경우에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납작 엎드리는 경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번 일도 다르지 않았다. 정하얀과 이쪽이 손을 잡고 흔들며 거리의 중앙을 자리 잡고 걷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마 녀석은 충분히 이쪽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나와 정하얀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쪽을 피하지 않은 이유는 뻔할 뻔 자. 본인이 더 서열이 높을 것이 분명하니 이쪽 보고 납작 엎드리라 표현한 셈이었다.
‘진짜 그놈의 가오가 문제야. 가오가.’
이쪽의 빈약한 피지컬이 시비를 부르기에 딱 좋은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흔하게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에 처해진 것 같았다.
평소였다면 그저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갔었겠지만….
“하… 어이가 없어 가지고…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요….”
정하얀 역시 가오에 정신이 침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분노한 모습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 하지만 평소처럼 오금이 저리거나 터지기 일보 직전의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히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처럼 보인다. 물론 화가 나기야 할 것이다. 오랜만의 데이트였고, 이제 막 기분 좋은 데이트를 즐기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침입자에게 공격 아닌 공격을 받으며 맥이 끊겨 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꽈당 넘어져 버렸으니 눈이 돌아갈 만도 했다.
하지만 성장한 정하얀은 이제 이 정도로 이성을 잃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당장 녀석을 불타는 재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겠지만 일단은 참고 있다.
녀석을 구깃구깃 구겨서 동그란 공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정하얀은 참는다.
그래. 이제는 문명인이었으니까. 제멋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화를 참을 수는 없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내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콰당 넘어진 것에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주기를 바랐다.
아마 내게 달라진 정하얀이 상황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심리도 조금은 기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정하얀은….
‘가오에… 지배당하고 있어.’
길거리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혹시 귀… 귀, 귀, 귀가… 안 들리세요? 눈,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세 번이나… 말, 말했잖아요. 오, 오빠가 당신 때문에… 넘, 넘어진 거 안 보여요?”
“하… 어이가 없어 가지고. 참….”
정하얀의 상대가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가던 길을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녀석 역시 자신의 여자친구인지, 썸녀인지, 아니면 동료인지 모를 이와 함께 외출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본래의 인성도 그다지 좋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덩치 큰 녀석 역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
도대체 왜 시바 저렇게 나서는 게 이성에게 어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히려 정중하게 사과하는 모습이 더 어필이 된다는 것을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자너. 진짜.’
“내가 부딪쳤다고? 그쪽이 나한테 부딪친 게 아니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하는 건 그쪽 같은데… 씨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잠깐 놔봐. 미연아. 잠깐만… 너… 좀 치냐? 자신 있어?”
“뭐… 뭐라고요?”
“그러니까. 자신 있냐고….”
“…….”
“딱 보니까. 마법사인 것 같은데… 정말로 자신 있냐고… 어?”
‘자신은 네가 없는 것 같은데.’
무협지에서 보통 노인와 어린아이 여자를 조심하라는 소리가 자주 등장한더랬다.
사실 대륙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특히나 정하얀 같이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가 자신에게 위축되지 않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본능적으로 숨겨진 한 수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질 정도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고 있음이 분명, 하지만 녀석은 생체신호가 보내는 목숨의 위협보다, 자존심이 상처 입는 것을 더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 터는 거 봐.’
“정말로 나랑 한번 붙어보려고? 마법사 주제에 어? 너 자신 있어?! 어?! 시발 자신 있냐고오!!! 아! 이것 좀 놔봐! 미연아! 지금 어?!”
“네… 네가 일, 일, 일부러 오빠 치고 갔잖아아!!!”
“이거 놔봐!”
“그, 그만 가요! 강연 씨! 죄송합니다. 저희가 죄송합니다.”
“아니, 미연이 네가 왜 사과를 해? 우리만 부딪쳤어? 저 남자 구실도 못하게 생긴 새끼가 살짝 스친 것 가지고 종이 인형처럼 풀썩 쓰러진 걸 왜 우리가 사과를 하냐고!!”
“우, 우, 우, 우리… 우리 오빠 남자 구실 잘해!!!!!”
‘아니, 이건 또 무슨 대화야.’
“진짜 얌전하게 살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 이거…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인마! 시발!”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 법. 장담하건대 저 덩치 큰 새끼는 겁을 집어먹었다. 아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만난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가오에 육체가 지배당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상태로 진입한 것뿐이다. 아니, 심지어는 생긴 것과 덩치답지 않게 영악한 녀석인 모양이다. 일부러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고래고래 크게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든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 와중에 미연이라고 불리는 녀석의 일행은 그를 필사적으로 말리며 정하얀이 아닌 이쪽을 바라보는 중, 틀림없이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표정이었다.
당신도 고생이 많네요.
라고 말하고 싶은 얼굴이다.
‘아니야. 우리는 그런 거 아닌데.’
당연히 이쪽도 벌떡 일어나 정하얀의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스위치가 눌린 그녀를 말릴 수 있을 리 만무, 정하얀의 팔을 몸으로 붙잡았지만 정하얀의 파닥거리는 손짓에 오히려 내 몸이 흔들린다.
“어휴! 씨발!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휴!!! 확 죽여 버리고 싶은데 진짜!!!! 한번 붙어볼까? 어?!”
그중, 가장 최악인 것은….
‘시바 이거 교국 놈이잖아.’
녀석이 교국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비자를 받아서 공화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춤에 무기를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모험가 비자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에게나 발급되지 않은 비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허세를 부릴 만큼의 실력은 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인성을 실력에 비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다. 이 수치심도 없는 새끼가 커다랗게 소리를 내지르며 정하얀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두뇌 싸움이냐고 이거 뭐냐고 도대체.’
하지만 정하얀은 멈칫거릴 뿐 일단 물러서지 않는다. 점점 더 고함 소리는 커져가고, 언제라도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시바 평소에 공화국이 자랑하던 공안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공안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사태가 쉬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여기저기에서 혀를 차는 소리와 수군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교국에서 온 모험가 같은데?”
“쯧. 쯧… 쓰레기 같은 새끼… 저런 놈이 어떻게 무기를 들고 여기를 활보할 수 있는 거야?”
“소란스럽네요. 교국 모험가들은 다 저런가….”
‘아니야. 그거 일반화의 오류야. 교국에도 착한 모험가들 많아.’
“중재를 해야 할까요?”
“아니, 괜히 불똥 튈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
“소란스럽게 뭐 하는 짓인지 몰라.”
“…….”
“…….”
금방이라도 진 군사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얼굴들, 물론 별것 아닌 사건일 수도 있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시비가 걸려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교국뿐만이 아니라 공화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을 터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했고, 마침 운 나쁘게 교국에서 온 녀석과 이쪽이 시비가 붙었을 뿐이었지만 시기가 민감한 시기이지 않았던가.
진 군사가 공식 입장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사고가 터진다면 분명히 여러 가지 기사가 나갈 것이 분명했다.
‘시바 이거 진 군사 이 새끼가 셋업 한 거 아니야?’
물론 녀석이 이런 유치한 짓거리를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 이쪽이 뭐라고 추궁하면….
‘수준 떨어지는군.’
따위의 말로 오히려 이쪽을 나무라지 않을까. 그만큼 눈앞에 있는 녀석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다. 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용기만 빼면 말이다.
자신이 범의 아가리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더욱더 기세등등해지는 중,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신과는 다르게 정하얀이 점차 대중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한번 붙어볼까? 어?!”
“이… 이이이익….”
“호박같이 생겨 가지고 어디서 창놈 새끼 하나 구해서 데리고 돌아다니는 모양….”
“…….”
“…….”
“우리 오빠 창놈 아니야!!!!”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하얀이 내지른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리는 것 같다. ‘우리 오빠 창 놈 아니야’라는 목소리에 메아리가 쳐서 다시 되돌아온다. 자신도 모르게 마력을 실었는지 고막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인식할 시간도 없다. 얼굴이 시뻘게진 정하얀이 숨을 쉬익쉬익 몰아쉰다.
그녀의 주변에 마력이 요동치며 대기가 떨린다. 지면이 흔들흔들거리며 그녀가 밟고 있는 타일들이 지면에서 분리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상황이다. 방금 전까지 상황을 관망했던 이들은 공포에 질린 것처럼 보인다. 인간을 초월한 어떤 압도적 존재의 편린을 엿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정하얀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정확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이 생각한 대로 사태가 흘러가지 않자. 언제나 그렇듯이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인 것 같았다.
이제 막 분노에 몸을 맡길 것 같은 느낌, 곧바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녀가 내뿜었던 마력이 순식간에 갈무리 된다.
이유인즉슨.
짜악!
내가 놈의 뺨을 쳤기 때문이었다.
“어… 오, 오빠…?”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을 줄은 몰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덩치, 반응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정하얀이 뿜어낸 마력에 몸이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영화처럼 멋있게 주먹으로 녀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주먹을 쥐었다가는 손가락이 전부 다 부서질 것 같아 손바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등을 돌려 얼어붙어 있는 정하얀의 손을 잡았다.
“가자. 하얀아.”
“오, 오빠….”
“…….”
“…….”
“하얀이, 호박 아닌 거 알지?”
“…….”
“…….”
“오, 오, 오, 오빠도 창놈 아니에요.”
“…….”
“…….”
‘너 이름 기억해 놨어. 강연아.’
살짝 고개를 돌리자 아직까지 굳어 있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똑똑히 기억해 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