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52화
새로운 일상(7)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파격 행보, 맨발로 공화국의 국경을 넘다.]
[금일, 역사적인 비밀회담을 3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교국의 희생과 부활의 성자 이기영이 공화국의 국경을 넘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양국 병사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 마차에서 내려 맨발로 공화국의 국경을 넘은 것이다.
사실 교국의 성자가 공화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발로 직접 공화국의 땅을 밟았다는 것에 그 의미가 크다는 반응이다.
그의 모습에 공화국의 국민들은 곧바로 열띤 호응으로 반응했으며, 공화국의 상징 그림자의 영웅 진청 역시 몹시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어째서 그가 직접 공화국 땅을 밟았는지, 어째서 맨발로 직접 자신을 환영하는 인파를 맞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국 병사들의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행보가 교국과 공화국 사이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감을 완전히 지워 버리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 분석하는 한편, 그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새로운 시대, 평화의 시대와 대화합의 시대에 우리 역시 발을 맞추어야 하지 않겠냐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 평화의 시대가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번 회담이 만들어낼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맨발로 내디딘 첫 번째 발걸음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은 우리 대륙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교국일보 배연서 기자.]
“…….”
“…….”
[희생과 부활의 성자와 그림자의 영웅의 역사적인 만남, 공화국도 울고 교국도 울었다. -교국일보 배연서 기자.]
[두 상징의 대담, 특별편성, 정말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두 상징의 만남에도 양국의 지도자들은 묵묵부답. 오스칼과 공화국의 총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교국칼럼]
“…….”
[함께 양국 사이에 놓여 있는 장벽을 바라보는 성자와 영웅, 둘 사이에는 어떤 말이 오갔나. 그들을 주목하는 것은 양국뿐만이 아니야. 왕국연합과 연방, 중립국도 연일 보도 -대륙신문]
‘시바….’
-배연서 기자?
-네. 배연서 기자입니다.
-교국민들 역시 국경으로 모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는데요. 자세한 현장 상황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공화국에서 전해드립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희생과 부활의 성자께서 국경을 넘어 공화국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여전히 인파들이 떠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말씀대로 공화국민들뿐만이 아니라, 교국민들 역시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는데요. 들리시는 것처럼 양 국가에서 모인 인파들은 장벽을 사이에 두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네. 아주 잘 들립니다.
-벌써 3시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마치 축제의 현장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촛불을 들고 있는 이들이 보이십니까? 모두가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양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인파들이 모여든 만큼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네. 교국과 공화국 양측도 이 정도의 인파들이 모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양 국가는 안전을 위한 병력들을 파견하는 한편, 이 회담을 무사히 마무리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하하하. 벌써부터 평화의 시대의 막이 오른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에 대해 새로 들어온 소식은 없습니까?
-아쉽게도 공화국의 상징과의 산책 회담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이 되었는데요. 본격적인 회담을 3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두 상징은 회담에 대한….
“…….”
“…….”
“채… 채널 돌려볼게요.”
“…….”
“…….”
-우리는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네! 평화의 노래를! 그래! 평화의 노래를 부르네!
-그간의 갈등은 모두 잊고 함께!!!
-현장입니다!! 여러분!!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축제를 방불케 합니다!!!! 모든 이들이 모여 함께하고 있습니다!!!
“…….”
“…….”
“한 번 더 돌… 돌릴게요.”
“…….”
-여기는 평화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현장입니다. 수많은 음유시인들이 무료로 공연을 하고 싶다며 기획된 콘서트가 이제야 막이 올린 참인데요.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교국 출신의 아이돌 스프라이트가 메인 무대를 장식한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스프라이트의 리더 렐 씨를 모셔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프라이트의 리더 렐입니다!
-이번 콘서트에 직접 참가하고 싶으시다고 개인 SNS를 통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혹시 어떤 연유로….
-개인적으로도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은 크게 흠모해 왔는….
“…….”
“…….”
“와아… 세상 진짜 많이 좋아졌네요. 군사님 그렇지 않아요? 대륙민들이 지구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건지 모르겠는데… 벌써 아이돌까지 생길 줄이야. 아아… 이게 얘네 노래였구나? 요즘 그렇지 않아도 음반 사업이 유행인가 봐. 저희 파란 길드에서도 한 발 걸치면 조금 이상해 보일까요?”
“…….”
“아, 이거 노래 좋네. 얘들 비주얼도 괜찮고… 어? 심지어 모험가 출신이라는데요? 군사님도 아이돌이 뭔지는 알죠?”
“…….”
“평화 콘서트인가 뭔가 한다고… 어? 이것 좀 보세요. 얘 이거 난리 났네요. 참 재미있지 않아요? 지구랑 돌아가는 게 똑같은 거 같다니까요.”
[경솔의 아이콘 스프라이트의 렐! 비공개 SNS에 명예 추기경님을 비판한 정황이 드러나 충격!]
[누군지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 쓰는 성자님이 한 분 계신다고 발언. 그 정도면 차라리 아이돌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비웃음도… 이에 연예인 R 모 씨를 대상으로 이단 심문관들이 직접 조사를 벌일 예정.]
[스프라이트의 렐 당신이 모르는 48가지 비밀.]
[연예인 R 모 씨, 말투도 복제, 습관도 복제, 패션도 복제, 적어도 희생과 부활의 성자를 흠모한다는 것은 사실일까. 명예 추기경 팬덤은 코웃음.]
“…….”
“아니… 뒤로 넘기지 말고요. 그거 국뽕TV잖아요.”
“…….”
[두 상징의 역사적인 만남에 전 대륙이 발칵 뒤집혀 버린 까닭! 어째서 노을빛의 검사는 공화국을 방문하지 않았나. 파란 길드에는 적신호. 공화국에게는 청신호.]
[두 상징의 산책 회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노을빛의 검사가 거품을 물고 흥분한 연유는?!]
[완전한 평화와 화합의 시대의 도래! 적어도 누군가는 웃지 못하고 있다.]
“…….”
“공화국 애들이… 이상하게 현성이는 싫어하는 것 같네요… 심지어 현성이는 잠깐이지만 여기 머무르지 않았었나….”
“…….”
“…….”
‘이 새끼 시바 한마디도 안 하자너. 속은 좀생이처럼 좁아가지고….’
단언하건대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분위기였다. 이 새끼가 어째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기는 했고, 이쪽도 일부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끼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으니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사실 내 쪽에서 괜히 찔린다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이리라. 그 누가 시바 초대 한 번이 이 지경이 되어버릴 거라 예상했을까. 어느 정도 입질이 올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까지 일이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자너. 불가항력이었자너.’
비공개 산책 회담이라는 말 뒤에 숨어, 녀석과 국경 근처 건물 접견실에서 틀어박힌 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얼이 빠진 듯한 반응이었다.
이를 으드득 간다거나 간헐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화를 내거나 대뜸 개자식이라고 욕을 해오지는 않는다. 평소였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무슨 꿍꿍이냐고 개자식이라 노래를 불렀을 녀석이 말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공화국의 국경을 밟기 전에는 통신채널로 한바탕 욕을 쏟아붓더니 줄곧 저 모양이다.
‘심지어 거기서도 이상했지.’
막상 만나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도 해주고, 어깨도 두드려주고, 대중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철저하게 연기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둘만 남겨지면 잔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으니 불안해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이쪽 역시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군사님도 알잖아요. 이거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니까요. 애초에 하얀이 때문에 순식간에 일이 퍼져서 저도 뭐 어쩔 수가 없었다니까요?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난리가 나 있는데 아무리 저라도 이걸 대처할 수 있었겠어요? 만약에 대처할 수 있었으면 군사님이 대처했겠죠. 근데 군사님도 이거 건드리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 않아요?”
“…….”
“그… 맨발로 걸어 나온 퍼포먼스도 정말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군사님도 봤잖아요. 양 병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누구라도 나와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야죠. 정말로 전쟁 나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안 나왔으면 분명히 무슨 일이라도 터졌을걸…. 아니, 그래요. 맨발로 나온 건 조금 오바한 것 같아. 근데 이게 퍼포먼스라는 게 중요하다는 거 알죠? 군사님도 그래서 마중 나온 거면서….”
“…….”
“저도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뭔 시바 평화 콘서트를 하고, 장벽 사이에 두고 공화국 교국 국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이건 좀….”
“…….”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진 군사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밖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오나 보다.
드디어 생각을 정리했는지 얼굴도 점점 일그러지는 중, 딱 진 군사가 버럭 소리칠 때의 모습이었던지라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거냐는 둥,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런 개 같은 일을 저질렀냐는 둥 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타이밍.
하지만 한숨 소리 외에 다른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슬쩍 고개를 들어 이 새끼를 바라보니, 필사적으로 화를 참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나 화를 참고 있는 것인지, 얼굴이 일그러져 버렸다. 심지어 시바 어색한 미소까지 짓고 있다.
‘이 새끼… 왜… 왜 이래. 정신 나갔나?’
“그래… 이… 이해할 수 있다.”
‘진짜로… 정신 나갔나…?’
“네놈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었던 거겠지… 물론….”
이를 악물면서 말을 이어나가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 정도는 내 계산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전혀 계산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공화국에 온 김에… 공화국을 둘러본다고… 했었나?”
“네? 아… 네….”
“내 저택에 오기 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잡아주지… 여행 경비나… 으득… 혹시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좋… 다….”
“정… 정말요?”
“그래… 공화국에… 온 걸… 환영한다.”
녀석이 내게 잊혀진 것 때문에 갑자기 친절해진 것이 아니다.
“부디 잘 머물다가… 돌아갔으면… 좋겠군….”
녀석의 개인적인 환영 인사를 받은 이후에는 자연스레 지혜 누나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
“…….”
그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초대를 받은 것이,
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이의 손님으로 공화국에 들어온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
“…….”
‘내가… 내가 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