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50화
새로운 일상(5)
“하지만… 후발대로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역시,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김현성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이 인선에 포함되어 있어야 마땅하다는 얼굴이다.
“…….”
“…….”
‘아니, 근데 왜 자기가 공화국으로 가는 걸 당연시 여기고 있는 거냐고.’
심지어 김현성은 초대받은 적도 없지 않은가.
진 군사의 의견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것일까. 정하얀과 김현성 둘 다, 초대장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공화국행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진 군사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리 만무, 수행원들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정하얀이나 김현성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저 둘은 진 군사가 꺼리는 인선들이기도 했으니 녀석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을 저택으로 들이는 셈이 아닌가.
“바쁘시다면 굳이 오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요.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니, 무조건 방문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세간에서는 이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세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굳이 네가 거기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제가 함께한다면, 교국민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바 불안해하는 교국민들 같은 건 없다고.’
하지만 이 새끼의 얼굴을 보니 말을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았다. 딱 봐도 고집을 부릴 때의 얼굴을 하고 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은 어째서 녀석이 저렇게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회차 공화국과 제국 사이에 있었던 전쟁을 떠올리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녀석 또한 인지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색안경을 벗어버리기는 힘든 모양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1, 2회차 통틀어 그때보다 참혹한 전쟁을 찾아보기가 힘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후발대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부터가 김현성이 병적인 걱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병적인 걱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김현성뿐만이 아니라는 것.
문을 똑똑 두드리며 집무실을 방문하는 김미영 팀장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니 어디에선가 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부길드마스터를 뵙습니다. 아… 길드… 마스터도… 계셨군요.”
“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 그… 교황청과 교국 중앙에서, 평화사절단을 보내왔습니다.”
기뻐하는 듯한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평화사절단이라니… 잘됐군요!”
그래, 평범한 평화사절단이라면 김현성의 말대로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미영 팀장의 얼굴은 저게 절대로 평범한 평화사절단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저… 규모는 어떻게 되는데요?”
“교황청에서 1만 명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교국 중앙에서는 100기의 그리폰 라이더, 1만 명의 기마병… 3천여 명의 마법사, 2만 명의 병사들을 보내 왔습니다. 더불어 특별히 엄선한 모험가들을 포함해….”
‘시바. 이게 어디가 평화사절단이야. 시바.’
“총합 약 4만 명의… 평화사절단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거 그냥 막말로 시바… 전쟁하러 가자는 거 아니냐고….’
“이미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승인을 받았다고 하며, 공화국에서는 4만 명의 병사들… 아니, 평화사절단을 규모를 축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교국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승인을 받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일축했고… 이에 공화국에서는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4만 명의 평화사절단을 주둔시킬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하며… 추가로… 바젤 교황님께서는 부길드마스터께서 평화사절단과 함께 공화국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하시면 직접 공화국을 방문하겠다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환장하겠다. 진짜….’
김현성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고, 김미영 팀장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 그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자너.’
심지어 믿고 있었던 오스칼 마저 바젤 교황에게 손을 보탠 것 같았다. 혹시나 바젤 교황이 교국뽕TV나 공화국뽕TV 같은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김현성보다 더 문명에 동떨어져 있는 바젤 교황이 직접 그런 영상들을 찾아볼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당황스러운 소식이 아닌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교국의 최상위층 지도부들 역시, 공화국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대륙민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융통성이 있었던 오스칼마저 말이다.
“여론은… 어때요?”
“공화국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사절단의 규모가 규모인 터라….”
‘그렇게 양국이 같이 사업을 하고, 작전에 참여해도….’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미묘한 증오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모험가들이야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 같기는 했지만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공화국과 제국의 경쟁을 몸소 느껴야 했던 대륙민들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양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다 보니, 평화의 시대로 진입한 지금도 그 앙금이 가실 리 만무.
물론 공식적으로는 서로를 응원하고, 믿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지만 바젤 교황도, 오스칼도, 쉽사리 공화국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물리기가 어려웠던 것 같았다.
아마 함정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 평화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진 4만여 명의 병력들은 결국 상황이 터졌을 시에 목숨을 걸고 이쪽을 교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자살특공대원들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시바 평화사절단인지 뭔지가 도착한 것도 모르고 있었자너.’
그럴 만하다. 창밖을 바라보니, 파란 길드의 앞, 심지어 린델을 꽉 채운 병력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잡담조차 나누지 않는 이 병사들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다물고 있는 입에는 목숨을 걸고 교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결연한 표정이 비친다. 절대로 평화사절단이 짓는 표정들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는 김현성의 얼굴을 보니 오랜만의 놈의 뺨을 때리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공화국뽕TV 반응은 안 봐도 뻔하자너….’
후안무치한 교국 놈들이 4만여 명의 병력을 공화국 안방에 주둔시키려고 한다느니,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이 아니라, 공화국을 급습하기 위한 위선자들의 행태라느니 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공화국민들은 내게는 꽤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교국이 희생과 부활의 성자를 이용해 작전을 펼치려고 한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준비시켜야… 될까요?”
김미영 팀장도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쩐지 잠을 한숨도 못 잔 것처럼 피곤해 보이더라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요. 바젤 교황님께서 직접 공화국으로 가시는 것보다는 나아요. 대신 규모를 반으로 줄이는 것으로 합의를 보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애초에 교황님과 오스칼 님께서도 평화사절단 모두를 데리고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 그쪽도 2만여 명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숫자를 크게 부른 걸 테니….”
‘애초에 하얀이가 있는데 저런 병력들이 뭐 의미가 있다고….’
“네. 그럼…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출발은… 후… 병력들… 아니, 평화사절단과 같이 들어가려면 여기서 쉬고 있을 여유도 없겠네요. 지금 곧바로 출발한다고 하얀이에게 말 좀 전해주시겠어요?”
“네. 다른 길드원분들에게도 말을 전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요.”
“세 명 정도는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
“…….”
“…….”
“아니요. 굳이….”
“그래도….”
한숨을 크게 쉰다. 김현성이 잠깐 움찔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최근 김현성이 자신이 은근히 밀어붙이면 내가 사소한 부분에서는 양보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역시 1회차에서 돌아온 이후에 생겨난 변화였다.
‘그래… 네가 또 이겼다. 시바.’
“네.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곧바로 인선을 둘러본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조혜진이나 선희영은 길드를 봐야 하니 제외, 언론담당관 스미스 대령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으니 계속해서 길드에 처박혀 있는 것이 맞다.
알프스나 벨리에 같은 신입들은 1회차에서 고생하기도 했으니 구태여 공화국으로의 여정에 함께할 필요는 없다.
물론 본인들은 선희영 밑에서 길드 업무를 배우느니 공화국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병아리들을 데리고 가서 얻다가 쓰겠는가.
다른 의미로 유아영과 김창렬에게도 휴가 아닌 휴가를 주고 싶다. 특히나 여러 가지로 고생했던 김창렬은 조금이라도 유아영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판단이 선다.
황정연 같은 경우에는 1회차에서 함께 고생하지는 않았지만 연구할 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차출하는 것이 손해. 엘레나도 지금은 에베리아 왕국에 머무르고 있다.
‘한소라는 당연히 갈 거고….’
매번 이쪽의 뒤를 봐주느라 고생했던 박리안을 부르는 것도 왠지 모르게 탐탁지 않다. 굳이 길드원을 데려가야 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선은 세 사람이다.
1기영과의 이별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최근 지나치게 침울한 모습을 보였던 녀석.
1회차에 다녀오지 않은 인선이면서도, 박리안이나 김창렬 못지않게 뛰어난 능력으로 김현성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녀석.
그리고, 그냥 노는 게 꼴 보기 싫은 새끼.
“박덕구, 김예리, 안기모에게만 전달해 주세요.”
모아 놓고 보니 박기리 삼 남매였다.
“부길드마스터. 안기모 님 같은 경우에는 오늘 오전에 21일까지 휴가를….”
“특수한 상황이나 휴가 반납하고 복귀하라고 전해주세요.”
“네.”
‘분명히 상황 터진 거 알고 휴가 쓴 걸 거야.’
왠지 모르게 안기모 이 새끼가 꿀 빠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다.
아무튼 간에 김현성의 반응을 보니 김예리가 인선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유사시에 훌륭한 암살자와 레인저의 존재는 언제나 듬직했으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박덕구까지 들어가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안기모가 들어가 있다는 소리에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쓸 만했으니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고기 방패 하나가 함께 가 기쁘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저도 준비할 테니 현성 씨도 업무 보세요.”
“네. 기영….”
“인사는 굳이 안 나오셔도 돼요. 저도 준비한 직후에 곧바로 나갈 테니… 출발하고 나서 연락드릴게요.”
“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직후에.
“오, 오빠… 오, 오랜만에 함께 여행이네요. 정말 오랜만에요… 혹, 혹시 화나신 거 아니죠?”
정하얀.
“정하얀 님. 잠깐만요. 모자에 뭐가 달라붙어 있어서요. 아! 내 정신 좀 봐… 제가 챙기라고 한 건 전부 다 챙기신 거 맞죠?”
한소라.
“크으… 공화국이요? 이번에는 공화국으로 간다 이 말이요!? 세상아 박덕구가 간다!”
박덕구.
“오랜만이네. 이렇게 어디 같이 어디 가는 거. 현성이 오빠도 오는 거 맞지?”
김예리.
“부길드마스터… 제가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오늘 휴가를 쓴 게 아닙니다. 정말로 선약이 있었다 이 말입니다. 오늘부터 여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그게 마침 오늘이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공화국에 도착해서는 자유 시간 좀 가져도 되는 겁니까?”
안기모.
5명의 파란 길드원과, 시바 약 2만 명의 평화사절단과 함께 공화국으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대륙민에게는 대륙의 완전한 평화를 알리는….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출정식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책상을 쾅쾅 내려치고 있는 진 군사에게는 결코 영광스러운 출정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이기영… 이기영… 이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