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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49화 (1,54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49화

새로운 일상(4)

“네. 현성 씨. 오늘은 일찍 출근하셨네요.”

“공화국으로 향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

“…….”

“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평소와 같은 아침 루틴이었다. 길드로 출근한 직후에 집무실로 찾아온 김현성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각자 업무를 보내는 그런 아침 말이다.

정말로 평소였다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한 김현성의 빌드업이 시작됐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스케줄에 대해서 묻는다거나, 따로 점심 약속이 잡혀 있는지 확인한 다거나, 혹시라도 일이 너무 바빠 간단하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아마 녀석의 머릿속에는 이쪽의 새 일정에 대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공화국 방문 소식에 대해 곧바로 물어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갑… 갑자기… 왜.”

‘사람은 잘 안 변하자너.’

1회차에서 꽤 많은 일들을 겪은 이후의 귀환이었지만, 여전히 김현성은 김현성인 모양이다.

실제로 영혼이 완전히 합쳐져 있다는 것은 녀석도 인지하고 있었고, 둘의 관계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관계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예전에 사이가 좋을 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전히 김현성은 김현성이었고, 이기영은 이기영이었다.

물론 예전보다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거나,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의식하거나 하고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눈에 띌 정도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녀석은 혼자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쪽은 또 이쪽 나름대로 바쁜 일정 때문에 녀석을 마주할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거 보면 진짜 도돌이표 같자너.’

이 새끼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1회차에서의 일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뭐가 어째서야, 이 새끼야.’

반응을 보아하니 공화국뽕티비 시리즈라도 정주행 하고 온 모양이다. 단순히 식사를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공화국으로 귀화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런 애들은 진짜 베니고어넷 접속을 아예 막아버려야 돼.’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오해… 말입니까?”

“네. 공화국으로 귀화한다거나, 뭐 교국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다거나 하는 일들은 전부 날조된 이야기예요. 공화국에 방문하는 건 진 군사님의 저택에 초대를 받아서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가 전부예요. 물론 공화국에 가는 김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할 계획이기는 하지만… 기사나 영상 채널에서 떠들어대는 일들은 대부분이 그냥 날조된 이야기예요.”

“아!”

‘뭘 또 ‘아!’야? 시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불안해하는 얼굴이 눈에 보인다.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새끼 알고리즘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애초에 김현성은 여신의 손거울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 SNS도 주변 사람들이 이용하니, 소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 정도였다.

현대에서 넘어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쪽 문화에 문외한 이다. 당연히 밈을 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그로성 기사와 게시물에 쉽게 낚이기도 한다.

본래는 아예 그런 것들을 멀리해 왔던 녀석이었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너무 세상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서치를 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놈이 세상을 공부하는 방향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이 너튜브 같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자극적인 컨텐츠들을 정말로 믿어버리는 것처럼, 김현성 역시 그런 자극적인 컨텐츠들에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추측이기는 했지만 놈의 손거울을 확인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여신의 손거울 좀 줘보세요.”

“아… 네.”

“비밀번호 걸어놨네요?”

“아… 비밀번호….”

“비밀번호 뭐예요?”

“비밀번호는….”

“뭐예요?”

“2714입니다.”

‘진짜 구독 목록 가관이네. 시바.’

“이런 것들은 왜 구독했어요?”

“구독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닌데 도대체 왜 구독을 했냐고요.”

“그냥… 조회수도… 높고… 구독자 수도 많아서… 댓글에 보시면, 이 채널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어떤 언론보다 투명하다고 합니다. 요즘 언론사들은 중앙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는 소식, 듣지 못하신 겁니까? 저와 동년배들은 전부 구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륙을 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이라면 꼭 구독해야 한다는….”

전형적이자너. 시바.

동년배란다. 당연히 김현성과 동년배인 이들은 동년배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는다.

이 새끼가 어디서 저런 말을 듣고 써먹는지는 뻔했다. 서둘러 놈이 시청한 영상을 확인한 것은 당연지사.

[명예추기경의 방에서는 어째서 매일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가.]

‘이건 또 뭐야. 시바. 무슨 매일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기도회에 숨겨진 비밀?! 비공개 기도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당신이 경악할 만한 94가지 비밀.]

‘무슨 경악할 만한 비밀이 94가지나 돼?’

[정말로 대륙은 평화로운 걸까. 수수께끼의 예언자가 전하는 또 다른 대륙전쟁, 멸망은 다가오고 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대륙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숨겨진 정황!]

‘유해하다. 유해해. 진짜.’

[전 대륙이 놀란 파란 부길드마스터 이기영 님의 한마디. 파란 길드에게는 적신호? 노을빛의 검사의 치명적인 실수! 공화국은 웃는다!]

‘너 실수한 거 없어. 이 새끼야.’

안 그래도 걱정이 많고 이리저리 잘 휘둘리는 녀석이 이런 게시물을 봐왔다니 한편으로는 지금에서야 이쪽을 찾았다는 게 대견하게 느껴진다.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꽤 참을성을 가질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아직 김현성이 구독한 영상을 전부 본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명예추기경의 은밀한 사생활에 교황청이 경악한 까닭?’

“…….”

“…….”

‘낙오자의 거리에서 발견된 성자의 타락에 대륙 모험가들이 경악한 이유.’

이 새끼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경악을 많이 하는 걸까. 썸네일도 자극적이기 짝이 없다.

아직 김현성이 시청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타락이라는 자극적인 워딩과 썸네일에 낚여 클릭을 해보니 연방에서 온 다른 성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말로 타락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지만 저 이야기마저 소설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다 경악스럽다.’

심지어는 끝에 가서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낙오자의 거리에서 최근 햄비어 꼬치를 즐겨 먹는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시바 썸네일에 내 실루엣이 담겨져 있었나 보다.

“이런 건 보지 않으시는 게 좋겠네요. 영상 조회수로 골드를 벌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채널이거든요. 아마 곧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도 제재가 있을 거예요. 뭐 물론 이런 채널들은 계속해서 우후죽순 생겨나기 때문에 전부 통제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선을 넘는 사람들은 잡아들여야죠.”

“아….”

‘뭘 ‘아….’야. 시바. 확실히 문명이랑 동떨어진 곳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영 현실감각 없자너.’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은 전부 끊을게요. 그나마 볼 만한 공식 채널들은 제가 구독해 놓을 테니까 대륙 소식에 대해 듣고 싶으시면 이것 위주로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로 공부하고 싶으면 책을 읽는 게 좋아요. 책이요.”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선정적인 옷을 입은 베니고어넷 방송인이 제로투를 추는 채널은 없다. 극단적으로 악질적인 정치 성향의 채널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와중에 그리폰 물품이나 정보에 대한 전문 채널들은 빠짐없이 구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폰 전문 채널들은 남겨 놓을게요.”

라는 말로 녀석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와, 이거 진짜 문제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베니고어넷이 썩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기가 짝이 없다.

그래도 여신의 손거울이 출범한 초창기에는 나름대로 순수한 면들이 있었는데 이방인은 물론이거니와 대륙민들이 썩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아니, 지난번에도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혼돈이나 다름없다.

물론 여신의 손거울의 통제권은 이곳에 있었던지라 마음만 먹는다면 싸그리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완전히 틀어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았고, 틀어막는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뭔가 방법을 찾기는 해야겠네.’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물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은 김현성 계정의 구독 목록을 깨끗하게 청소한 이후에 다시 녀석에게 손거울을 건넨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자너.’

아마 삼 주만 늦었어도, 이 새끼가 교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고,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만든다고 설칠 뻔했다.

어쩌면 SNS 활동을 활발히 하기 시작해서 이상한 개소리들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간 남겼던 메시지들이 다 무색해질 정도로 말이다.

공식적으로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를 비판하거나, 이상한 정치성향에 물들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쏟아낸다거나, 일침충이 되어버려 여기저기에 일침을 날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진짜 끔찍하자너….’

혹시라도 지가 잘생긴 걸 깨달아 버릴 수도 있다. 셀럽이 되어 옷을 골라 입고, 잘생겨 보이는 각도로 사진을 찍고, 이상한 베톡 댄스를 추는 김현성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차라리 감성 사진을 올리거나, 심지어는 우리 아버지의 사진처럼 풍경 사진에 짤막한 글귀를 남겨놓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지금 이 시기이기 때문에 김현성의 교육이 더욱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막 본인의 삶을 찾아 나서려는 시기, 김현성은 오래전부터 세상 속에 나와 있기는 했었지만, 정말로 세상 속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일 것이다. 김현성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지금의 주변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거다.

‘무슨 시바 이상한 공화국뽕튜브나 경악 경악 거리는 채널한테 물들면 안 되자너.’

정말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튼 간에, 뭐 교국 사람들이 무릎을 꿇을 일도, 제가 공화국으로 귀화할 일도, 파란 길드를 떠날 일도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현성 씨는 현성 씨가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열중하셔야 되지 않겠어요?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기영 씨에게 검사받으려고….”

‘무슨 검사야. 시바. 초등학생이 숙제 검사 받아? 그냥 기획서 제출한다고 해.’

“아. 그래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네.”

“…….”

“…….”

“라헬도시계획.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딱 봐도 김미영 팀장 손이 많이 거쳐진 것 같자너.’

하지만 이걸 제출하기 위해 꽤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김현성 나름대로 숙원의 사업이었으니 말이다.

1회차의 쓰레기촌 라헬은 2회차에서는 교국 출범과 함께 근처의 있는 도시와 병합되었지만 아무래도 위치상으로 문제가 있었던 터라 아예 라헬을 독립시키고 새로운 특수도시로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김현성의 아이디어였다.

1회차와 2회차의 라헬은 완전히 그 성격과 구성원들이 달랐던지라 이걸 굳이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김현성이 하고 싶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걸 끝으로 놈이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라헬도시계획은 속죄의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녀석의 눈에 밟혔던 거겠지.

아무튼 간에 시작부터 꽤 괜찮았고, 서류상의 문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인지라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었다.

‘라베하 보면 은근히 소 뒷걸음질 치는 느낌으로 감각적이니까.’

부모님들에게 사업적인 감각을 물려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애매하게 이것저것 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 컨셉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라헬 역시 그러했다.

“곧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네. 한데… 기영 씨 공화국에 방문할 파견 인력은 모두 결정이 된 겁니까?”

‘넌 어차피 못 가.’

“하얀이와 소라 씨는 아마 함께 갈 것 같고… 나머지는 아직 결정이 나지는 않았어요. 현성 씨는 아마 힘들겠죠?”

“…….”

“…….”

“네.”

‘와… 실화냐.’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후발대로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역시,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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