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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47화 (1,54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47화

새로운 일상(2)

“무시당할 게 뻔한데?”

“그건 모르는 일이죠.”

‘모르는 일이긴… 이 누나가 뭘 몰라서 그러자너.’

진 군사와 내가 함께 식사하는 것만큼 어색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진 군사의 은밀한 안식처에서 함께 마파두부를 먹은 전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고 같은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불편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낯짝이 두꺼운 이쪽이야 나름대로 편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바이러스와 함께 있는 것처럼 극도로 조심하던 진 군사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이쪽이 병균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음식을 쉐어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결벽증에 걸린 녀석답게 침이라도 튈까 전전긍긍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새끼 도대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고.’

심지어 이지혜도 녀석과 함께 겸상한 적이 없다고 했더랬다. 그나마 베니고어와는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베니고어가 녀석의 집무실을 찾아가 멋대로 활개 치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베니고어와의 일방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위쪽 동네에서도 전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 않은 셈. 벨 이사와는 업무적으로 나름 죽이 맞는 것 같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과는 말을 섞는 걸 보지도 못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들이 이 새끼를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모두를 따돌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다른 이들이 이 새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게 더 말이 되기는 해.’

누가 보더라도 친해지기 싫은 관상이다. 재수 없고, 짜증 나기 짝이 없다. 솔직히 말해 누가 이 새끼랑 친구를 하고 싶을까.

베니고어의 오른팔 로렌은 둘째 치거니와 리무르아나 로노베 같은 악마 라인마저 이 새끼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을 것이다.

그야 이지혜가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평소에 다른 이들에게 멸시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필멸자에 국한된 것만이 아닐 것이다. 나름 성골 출신인 이들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위로 올라온 진 군사가 자신들의 업무능력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공적으로는 몰라도 사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공적인 관계로 들어간 진 군사는 나름대로 존댓말도 해주고,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성격이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악마 라인들도 본인들이 진 군사에게 원숭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 정도는 옛날 옛적에 깨닫고 있었겠지.

‘컵케이크 이벤트도 그래.’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컵케이크 테러 이벤트 참가자는 베니고어와 이지혜뿐이다. 집무실이 난리가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구경을 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떠들썩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다른 사내직원들은 놈에게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다.

베니고어가 녀석의 집무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사실상 마음씨 착한 베니고어가 녀석을 가엽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새끼… 좀 불쌍한 건가?’

물론 본인은 본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니 슬픈 것은 왜일까. 놈의 집무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쓸쓸하게 보일까.

“…….”

“…….”

“아무튼 간에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하기는 하는데. 뭐 같이 조금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지 모르겠네.”

“뭐 제 생각도 그렇기는 하지만 솔직히 극적인 효과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기본적인 업무라도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 달라 이거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까 말했다시피, 저 정말로 힘들다고요. 위쪽뿐만이 아니라 아래쪽도 할 일투성이잖아요.”

“아. 그렇지. 아래쪽 하니까 물어보는 건데… 걔네들 일은 잘 처리했지?”

“당연하죠. 아마 연수랑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 처리하고 있을 거예요. 팔레트, 브러쉬, 파스텔, 페인트 4인, 그리고 함가르디아… 루스 어쩌구였나. 아무튼 간에 오빠가 확인한 왕국연합의 영애들은 신원 확인한 이후에 교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에는 전부 다 집어넣었어요. 우연일지는 모르겠는데, 흑장미 살롱 영애들은 낙오자의 거리에 있었더라고요?”

“낙오자의 거리?”

“네. 빅보이네 가게에 녹아든 모양이에요. 어디 보자… 걔네가… 어디로 갔었지… 적어놓은 게 있을 텐데…. 브러쉬는 의원들 밑에서 일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 교국 왕성으로 보냈고…. 팔레트는 원래부터 마탑에서 유학하고 있어서 학비를 전면 무료로 지원해 주기로 했어요. 파스텔 같은 경우에는 모험가 길드에서 지원하는 신규 클랜 창설지원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페인트는 상단을 꾸린다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조건으로 지원금도 주고, 대출도 좀 해주고 그렇게 했죠.”

“다들 잘 어울리네.”

“그렇죠? 다른 영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상황이 안 좋은 애들도 있기는 했는데, 대부분은 잘 처리됐고요. 또, 린델 3대 길드를 포함한 대형 상단 8곳에서도 왕국연합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십 년 내로는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연합의 실권을 쥐지 않을까 싶어요.”

“…….”

“그래서, 이 정도면 만족해요?”

“만족하다마다.”

“그럼 오빠도 저 좀 만족시켜 주세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거 아니겠어요? 장담하건대 공화국 상태도 영 말이 아닐 거예요. 그쪽 총통도 여러 가지 걱정 고민거리가 많은 것 같고… 아! 그리고 이건 의외의 소식인데요. 오빠가 말하던 성검용사가 공화국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에요.”

“뭐?”

“사라져 버린 1좌의 행방을 찾느니, 대륙의 위협에 대비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이 동네 저 동네 싸돌아다니고 있던 것 같더라고요.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냥 연수한테 보고받은 거라서… 사실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요. 관심 있으면 오빠가 직접 찾아보든가요.”

“직접 찾아보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한번 알아보기는 해야 될 것 같네. 소환하는 시기가 조금 늦춰진 건지, 아니면 베니고어가 따로 손을 쓴 건지….”

“성검용사 프로젝트는 애초에 2회차에서는 진행되지도 않았던 일이니까… 아마 대기 순번이 밀려서 지금에서야 들어오게 된 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튜토리얼 던전 쪽도 언제 한번 다시 손봐야 되는데 말이야.”

“…….”

“…….”

“그러게요. 하루라도 빨리 손보려면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죠?”

“아니, 알았으니까. 보채지 좀 마. 누나.”

“안 보채게 생겼어요?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어디로 들은 거예요?”

“아니, 나도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게 아니잖아. 누나만큼 나도 바쁜데….”

“누가 오빠 바쁜 걸 몰라요? 진짜로 죽어 나갈 것 같아서 하는 소리죠. 저도 파업해 봐요? 어디 한번? 베니고어 님이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하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시바.’

“아니, 알았어. 알았다니까.”

“지금 당장 가서 말 걸어보라고요. 지금 당장!”

“…….”

“…….”

‘진짜 꺼림칙하자너.’

스스로가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시바….’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운이 샘솟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 군사와 밥을 먹을 수도 있고, 함께 게임을 할 수도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랬던 적이 없지도 않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억지로 이걸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크나큰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뭐라고 말해야 되지. 같이 놀자고 해야 되나?’

같이 시간 좀 보내자고 말하는 것도 처음, 녀석을 도발하고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으로 녀석의 집무실을 찾은 것도 처음이다.

이대로 간다면 정말로 지혜 누나가 윗동네에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으로 베니고어를 추대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옮기기는 했지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히 의식을 하다 보니 더욱더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으로 걸음을 마저 옮기고 똑똑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을 두들겨 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자,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진 군사가 시야에 비쳐왔다.

“저… 군사님?”

“…….”

“군사님.”

“…….”

“군사님!”

“…….”

녀석이 이쪽을 인식한 것은 약 3초 정도가 지난 이후, 깜짝 놀란 녀석이 자세를 바로 하는 것이 보인다.

분명히 업무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세를 바꾼 녀석이 꽤나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무슨 일이지?”

‘이 새끼… 시바… 뭔데. 도대체.’

“아니, 뭐 굳이 용무가 있어야지 여기 들어올 수 있나요? 뭐 이것저것 이야기할 것도 있고….”

“멍청한 놈.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는 걸 모르나? 뭐가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의 장난질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다.”

‘아니,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걸 아는 양반이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건데?’

“제가 뭐 장난치려고 이 집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네놈이 할 일이야 안 봐도 뻔하지.”

“뻔한 건 또 뭐예요? 그냥 안부 좀 물어보고 그러려고 온 거죠.”

“우리가 안부를 물을 사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말이야. 그것보다 이지혜에게 약속이나 좀 지키라고 해줬으면 좋겠군. 애초에 내가 네놈과 함께 발도 디디기 싫은 1회차로 들어간 것은.”

“아니, 그건 알고 있어요. 받을 게 있다는 것도, 거래가 있었다는 것도 말이에요. 뭐라고 말 안 해도 다음 진 군사님 프로젝트는 군말 없이 팍팍 밀어준다고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에요. 예산도 팍팍. 지원도 팍팍. 문제는….”

‘시바 기획서가 안 올라오고 있다는 거잖아. 이 양반아.’

당연히 그 말은 목구멍으로 급하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게 별로 이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신나게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어야 할 양반이 본래 업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괜한 벌집을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문제가 될 게 있나?”

‘문제 많잖아요. 지금. 왜 문제없는 것처럼 그러고 있는 건데.’

“…….”

“…….”

“내부 사정이… 좀 있어서….”

“엉망이군. 빌어먹을 자식.”

‘진짜 이 새끼 한 대 후려치고 싶네. 시바.’

“아니, 이쪽도 사정이 있는 거죠. 뭘 그걸 가지고 엉망이니 마니 뭐 그런 소리를 해요?”

“사정 하나하나를 이쪽에서 전부 다 봐줘야 하나?”

‘아니, 진짜.’

“…….”

“…….”

“말을 말아야지.”

“내가 바라던 바다.”

‘진짜 이 새끼 사내 왕따 당할 만하자너. 진짜. 한번 제대로 당해봐야 하자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컵케이크를 던지고 싶었지만 일단은 부들거리는 속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여기까지 힘들게 온 이유를 머릿속으로 상기시킨다. 그런 와중에도 놈이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눈에 비쳐왔다.

“용건이 없으면 나가줬으면 좋겠군. 한창 바쁜 참이다.”

“아니, 용건이 있는데….”

“간단히.”

“…….”

‘식사나 같이 한번 하자는 건 에바지?’

“…….”

‘좀 그건 그렇고… 체스나 한판 두자고 하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다른 게임? 그게 가장 무난하고 자연스럽지. 그게 가장 부담이 없지.’

일단은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을 정리했으니, 입을 움직일 차례.

지혜 누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꽤 많이 지났기 때문에 오늘은 일단 말을 꺼내는 것으로 만족해 보기로 한다.

“언제… 게임이나 한판 할까요?”

“…….”

“…….”

“게임이라….”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그것보다는… 식사나 한번 같이하도록 하지.”

“?”

“날짜는 내 쪽에서 보내겠다.”

“?”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 당장 사라지도록.”

“?”

“사라지라는 말 못 들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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