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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42화 (1,54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42화

조우, 해후(20)

녀석은 1회차의 이기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1회차의 김현성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타 온 것 같은 표정이자너.’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다른 생존자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 1현성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

물론 녀석의 노력은 이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소리치던 녀석은 마지막 희망까지 꺾여 버렸는지 어느새 노을이 된 하늘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 건지 방향을 잃은 모습이었다. 터벅터벅 자신의 거처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눈에 비쳐왔다.

‘찾아가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자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뭐라고 해야 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쪽 역시 발걸음을 옮긴다.

왠지 모르게 녀석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계산이나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1회차의 김현성을 마주해야 이 모든 것들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김현성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김현성이 1기영에게 발걸음을 옮긴 것은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사과를 하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직접 마주하러 가는 것인지는 내가 알 재간이 없었지만 놈은 이 얼마 남지 않은 세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그를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2회차로 향하는 열쇠라거나, 혹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었다는 거다.

이쪽 역시 이 사실을 대략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을 굳이 말리지 않았지만….

‘말렸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괜스레 머릿속에 감돌기 시작했다. 내가 1회차의 김현성을 만나는 것과 녀석이 1회차의 이기영을 만나는 것은 천지 차이였으니 말이다.

김현성의 목적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1기영이 김현성에게 우호적일 리는 없다.

‘기껏 봉합해 놨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게 생겼자너.’

독설을 퍼부을 수도 있고, 아예 김현성을 마주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됐든 간에 결코 김현성의 정신에 이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을 제지하지 않은 이유는 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놈을 존중한다고 해서 불안함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시바 다시 불러야 되나 봐.’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 역시 김현성이 감내해야 할 일이다.

‘통제하려고 하지 말자. 최소한 시바 여기에서는 통제하려고 하지 말자. 이 새끼들한테 성장했다는 걸 보여줘야 되는 거니까.’

그저 녀석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시스템 새끼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이제 자격이 있으니 우리를 그만 2회차로 보내 달라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했다. 물론….

‘훔쳐보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거야.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이건 내게 주어진 권리였다. 이제는 영혼도 연결되어 있었으니 응당 누려야 할 권리 말이다. 아니, 사실은 시스템이 뭐라고 하는지는 상관없다.

‘나는 지금 김현성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니까.’

시선은 1기영에게 고정시키고 있지 않은가. 김현성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1기영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뿐이다. 마침 분주해진 녀석이 눈에 띄기도 했었고 말이다.

‘참 눈치는 빠르기는 해.’

누가 봐도 본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곧바로 인지한 모습이었다. 갑작스레 변화를 보인 하늘에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은 녀석은 침착하게 박덕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요. 왜 갑자기 그렇게 느끼하고 그윽하게 쳐다보는 거요?”

“그냥. 돼지 새끼야. 왜. 내가 너 쳐다보면 안 되냐?”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그냥 갑자기 막 그렇게 쳐다보니까 영 어색해서 그렇지.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거요?”

“할 말은 개뿔… 처음에는 많았었는데. 지금은 지긋지긋하다. 새끼야. 매번 매번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할 말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

“그래.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했다. 덕구야. 나머지는 네가 기억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네 기억력이 침팬지 수준이라 걱정되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침팬지가 뭐요! 침팬지가! 이 박덕구 굳이 영장류를 골라야 한다면 고릴라를 선택하겠소.”

“푸핫!”

‘저게 웃겨…? 대체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어?’

“아무튼 간에 집 잘 보고 있어라.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뭐 어디 가는 거요? 식재료 구하러 가는 거면 나도 같이….”

녀석이 괜스레 박덕구의 등을 두들기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딱히 작별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작별 인사라면 지난 몇 년간 매일매일 하기도 했고, 괜히 낯 뜨거워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괜한 울음을 터뜨리기 싫었을 것이고,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후련할 리 없겠지만 녀석은 이 지긋지긋하고 스트레스받았던 생활을 끝낼 수 있다고, 드디어 애 엄마 노릇에서 해방되었다고, 후련한 기분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이 떠난다고 말했을 때의 박덕구의 반응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굳이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덕구는 1기영을 형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받아들이는 녀석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던진 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드디어 진짜 형님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돼지의 얼굴을 보기 싫었겠지.

그 반대라고 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대로 형님을 떠나보낼 수 없다고 울부짖는 이 돼지 새끼를 1기영이 어떻게 말릴 수 있단 말인가.

1기영이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드러눕고 시위할 녀석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픈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1기영은 녀석을 말릴 자신도 없을 것이고, 녀석을 이곳에 남길 자신은 더욱더 없을 것이다.

박덕구가 있어야 할 곳은 이 황량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녀석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혼자 다녀올 수 있다. 돼지 새끼야. 넌 화장실 청소나 다시 해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쇼. 오늘은 화장실이 죽든지, 이 박덕구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니까.”

“그래. 조금 이따 보자.”

“너무 멀리 나가지는 마쇼.”

‘오랫동안 준비해 놓은 거 맞자너.’

박덕구는 혼자 나갔다 들어오는 1기영이 그리 낯설지도 않은 모양이다. 돼지 새끼는 으레 그렇듯이 조금 있으면 1기영이 돌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해 그다지 큰 관심을 주지도 않는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서 말이다. 왠지 모르게 익숙해 보이는 가방이었다.

‘김현성이 튜토리얼 때 메고 있던 가방 아니야?’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히 김현성이 튜토리얼 때 메고 있던 가방이 확실해 보였다.

뭐가 들어 있는지는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초보자들이 쓸 만한 아이템 몇 가지와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 녀석은 내가 2회차에 지금처럼 자리 잡기 위한 개연성을 채우는 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맙기도 하자너.’

이제야 막 집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녀석이 다시금 발을 멈춘 곳은 주방, 녀석은 한참이나 주방을 서성이더니 결국에는 빵 몇 덩어리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저게 아마 김현성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으로 저 빵을 집어넣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옛날 생각이 갑자기 나 감정적으로 변했을 수도 있고, 엇갈린 인연에게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놈은 집 밖을 나서고, 1현성의 거처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녀석이 직접 1현성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던 모양, 아마 저걸 전하는 건 내가 될 것 같았다.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나였다면 모든 게 끝난 마당에 한 번 즈음은 얼굴을 봐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놈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녀석을 찾아간 김현성에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1현성을 보고 싶지 않다는 건, 2현성도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겠네.’

그리고, 조용히 1기영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김현성의 모습이 망원경 속에 비쳤다.

“…….”

“…….”

‘내가 이걸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했자너.’

분명히 김현성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그냥 지나치는 1기영의 모습을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게 된다.

김현성 역시 1기영이 자신을 무시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

“…….”

“저….”

“말 걸지 말고 꺼져.”

“…….”

“너랑은 할 말 없으니까. 죄송하다는 말도 집어치우고, 자기합리화할 생각도 집어치워.”

“…….”

“날 동정할 생각도 집어치워.”

“…….”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난 네 마음의 빚을 지워줄 생각 없고, 너한테 한 짓을 사과할 생각도, 네게 사과를 받을 생각도, 너랑 대화할 생각도 없으니까.”

“…….”

“…….”

‘너무하네.’

진짜 너무해.

“그러니까 비켜. 거슬리게 하지 말고.”

돼지 새끼한테만 따뜻한 거 실화냐고. 김현성한테도 조금만 더 친절해지라고.

조금만 더 따뜻해지라고.

“…….”

“…….”

김현성의 멘탈이 걱정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찾아간 것이었을 텐데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치고는 너무 적대적이자너.’

심지어 대놓고 적대한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은 조금 의아할 지경이었다.

분명히 자신의 입으로 딱히 1현성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 복수심이 풍화된 지 오래라고 놈의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김현성의 행동들은 일부 이해한다고도 했었다. 거기에 가방에 빵도 집어넣어 준 것도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말처럼 마음의 빚을 지우기 싫었을 수도 있다. 최소한 김현성이 이 모든 것을 등에 지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부채감으로 놈을 묶어놓고 싶은 생각일 수도 있었고, 그냥 김현성과 대화하면서 이 실타래들을 풀어나가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녀석이 대외적으로는 김현성과의 소통을 원천차단하고 녀석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었다.

김현성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내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김현성이 1기영에게 가지고 있는 부채감과 빚은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내게 전해질 테니 말이다.

문제는 김현성이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냐는 것. 어떻게든 사과하겠다고, 대화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된다.

내가 1기영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김현성이 괜한 무리수를 던져 더 일을 꼬이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었다.

자신의 무리수가 또 다른 폭력이 될 것이라는 걸 녀석 또한 인정해야 한다.

베스트는 놈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과를 받지 않겠다 선언한 놈에게 굳이 해명하며 사과할 필요도, 말을 걸 필요도, 실타래를 풀려고 시도할 필요도 없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정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했지만,

고개를 꾸벅 숙인 이후에 발걸음을 돌리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마지막 녀석의 시선은 1회차의 이기영이 들고 있던 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1기영 일러스트, 피 안 묻은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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