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41화
조우, 해후(19)
김현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내가 알고 있던 그 김현성이었다.
2회차의 김현성 말이다.
“…….”
조심스레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마치 처음 연결되었을 때와 같이 선명한 금색의 눈이 시야에 비쳐왔다.
당연히 내 눈도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순히 빛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 공명, 마치 서로 공명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계속 빛을 내뿜고 있던 빛들은 내가 녀석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히 가라앉았다.
이상하게도 안개가 낀 듯이 흐릿해진 머릿속이 점점 명확해진다.
김현성의 눈을 보자마자 모든 것이 확실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표정 관리를 하고 싶었지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야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당연할 것이다.
‘시바… 성공했구나….’
도박 아닌 도박이 제대로 된 성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물론 계산된 행동이었고, 후회하지 않을 행동이기도 했지만 불안함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시스템이 이쪽에게 손을 들어 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유치했고, 감정적이기도 했고, 일방적인 거래이기도 했으니 더욱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잃는 건 싫었다는 거지?’
어쨌든 간에 대륙은 나와 김현성을 공동양육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둘 다 남지 않을 거라면,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고 배짱을 부린 게 먹혀든 것이다.
물론 놈이 내 거래에 응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놈이 그리고 있는 결과와 설계에 내가 놀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두 양육자가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 튜토리얼을 함께 완료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 모두 서로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대륙을 양육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정답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답을 찾은 것인지….
답안지가 없는 문제였으니 답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내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현성이 눈앞에 있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녀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눈이 계속해서 빛나고 있다.
둘 중 하나 그 누구도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
김현성 역시 그 사실에 안심한 것인지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네.”
“얼마나 기다리셨는데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기영 씨를 기억한 이후에, 어느새 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 자신을 인지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분명히 기영 씨 역시 저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군요.”
“네.”
“사라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나요?”
“눈이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제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영 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시험이었네. 재미도 없었고.’
마지막에 와서는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신체를 되돌려 받는 조건이었단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실로 어처구니없는 조건이 아닌가. 정말로 두 양육자가 서로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기 위해 개수작을 부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물론 겨우 그것으로 이 모든 일들을 설명할 수는 없다. 1회차에서 녀석과 내가 봐왔던 것들, 그리고 느꼈던 것들, 이곳에 있었던 이들과 함께 호흡했던 것들을 겨우 그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 와중에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녀석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언제 기억하셨나요?”
“1회 차의 기영 씨를 본 이후에 곧바로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좀 늦기는 했네.’
사실 이 머리 나쁜 녀석이 곧바로 나를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니, 기억하더라도 분명히 내가 놈보다 놈을 빨리 기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반대가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졌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김현성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정리해야 했었으니 말이다.
괜스레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금 나를 마주하는 김현성의 얼굴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그 얼굴에는 약간의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혼란과 의문, 심지어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야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응당 마땅했다. 사실 이 난리를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되돌아온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얼굴로 나를 마주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하겠지. 심지어, 무슨 생각으로 1회차 이기영을 흉내 냈었던 것인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손을 잡고 노을 속으로 뛰어들었는지에 대해 따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 녀석이 나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더라면 감정적으로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감정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리를 치며 개소리를 지껄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조금 찡찡거리는 정도겠지 뭐.
물론 그마저도 하지 않고 나를 마주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 놈의 모든 감정들을 아우르는 것은 안도감이었으니까.
‘그것뿐만도 아니자너.’
아직 이쪽을 마주할 수 있음에 대한 안도감이 가장 크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재미있게도 그 속에서는 감히 자신이 안도해도 되는지에 대한 자기혐오도 섞여 있었다.
당연히 자신의 죄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녀석이 책임을 진다고 해서 녀석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김현성 또한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겠지만 김현성은 노을이 되는 것으로 최소한의 속죄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바보자너.’
딱 김현성이 할 법한 멍청한 생각이었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김현성이 나름대로 진지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름대로 큰마음을 먹고 행한 행동 이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마주 보고 있었으니 여러모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결론적으로 현재의 자신이 이런 작은 기쁨을 누려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아직도 부채감이 있을 게 뻔하고 뭐….’
이제 전부 끝났다느니, 너는 괜찮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는 없다. 그게 허울뿐인 위로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김현성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고, 아무리 달콤한 말로 녀석을 구슬린다고 해도 녀석의 부채감이 사라질 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저… 기영 씨.”
“…….”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새끼가 인간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회피하지 않고,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을이 되는 게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속죄가 아닌 회피이며,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 물음표인 것 같았지만… 앞으로의 김현성의 삶은 그 답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는 과정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아이러니하지만 나 역시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소였다면 아마… 아니, 지금까지의 나였다면 내가 놈의 답을 찾아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장담하건대 김현성이 스스로 판단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답답할지언정 녀석이 답을 찾는 것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성장과 변화가 내게 있어서 긍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 뭐… 이런 것까지 통제하려 들면 안 되니까.’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양보할 수 있는 부분도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자너.’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쪽씩 떼어간 건가 보자너.’
지금 녀석과 내 상태에 대한 이야기였다.
돌아간 이후에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봐야겠지만 2회차를 시작하는 대가로 갈려 나간 것은 김현성의 반과 이쪽의 반인 모양, 그래도 재료가 필요하기는 했을 테니 한 사람에게서 반씩 떼어간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기능이나 부작용이 있는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거 이 새끼가 뒈지면 나도 죽겠는데?’
디아루기아와 함께 하고 있는 영혼의 계약과는 종류가 조금 다르다. 이건 계약이 아니라 마치 자연현상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가장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녀석과 반과 내 반이 합쳐져 하나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예 신체가 합쳐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혼이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의 영혼에 어떻게 두 개의 육체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았지만 이렇게 떡하니 내가 당사자가 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김현성도 자세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영 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라고 했더랬다.
아마 녀석이 확신을 얻은 곳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영혼이었을 것이다.
“저… 기영 씨.”
“…….”
“…….”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이제 그 말 지겹자너.’
“현성 씨 혼자만의 잘못도 아니었으니까요.”
‘근데 네 잘못 지분이 한 90% 정도 되는 건 인정해야 돼.’
“그냥 조금 오해가 쌓여 있었던 것으로 해요. 현성 씨가 숨기고 있었던 일도, 제게 말하지 못했던 일들도 전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고요.”
“…….”
“더불어, 지금 현성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도 알아요.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안에 있는 부채감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이렇게 되돌아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도 당연히 알아요. 또, 제가 그 부채감을 지워드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
“하지만 현성 씨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언제나 널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한다. 라는 말을 살짝 흐린다.
아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녀석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구태여 내뱉지 않을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편이 더 나아 보였다.
녀석의 뜻을 더 존중하겠다는 의도가 있기도 했고 너무 뻔한 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금의 김현성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판단한 이유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저것 봐.’
평소였다면 이기영 지지 선언을 받고 기뻐 미쳐 날뛰었을 새끼가 기쁨을 숨기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봐도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네….”
“밀린 이야기는 돌아가서 나누도록 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녀석도 깨닫고 있고, 나도 깨닫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하늘이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아주 미세하고 알아차리기 힘든 변화였지만 아마 1회차의 이기영은 이런 변화들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노을 위로 해가 뜨고 있다.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기영 씨.”
“조금 있다가 봬요.”
“네.”
‘별로 성과는 없겠지만….’
녀석은 1회차의 이기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1회차의 김현성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페이지에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1기영 일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