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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13화 (1,51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13화

소실(23)

‘이게 악마랑 다를 게 뭐가 있겠냐고… 남의 몸에 기생하더니 이제는 빼앗으려고 하고 있자너….’

“…….”

“…….”

‘역시 윗놈들도 다 똑같다니까. 제대로 타락한 거 보라구….’

정확한 내부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미켈레가 점점 미카엘 안에서 죽어간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일격만 날리지 않았을 뿐이다.

미켈레가 저항하려고 하는 건지 저항할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면세계에서 정신력으로 초월자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만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살아온 세월도, 경험도, 깊이도 아득히 다르다. 미카엘과 미켈레의 영혼의 크기와 밀도를 굳이 재단해 보자면 반딧불과 핵 원자로 발전소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평화로운 시대에 넘어와 큰 우여곡절 없이 자리를 잡은 녀석이 우여곡절 다 겪은 미카엘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물론 예외의 경우도 존재하지만….

‘지혜 누나가 좀 이상했던 거자너.’

도미니온스를 잡아 온 것은 절대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미켈레는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좀 불쌍하기는 한데 결과적으로는 잘 처리했자너.’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흐름상 이기영에게 의문을 던졌을 거라고 본다. 굳이 콕 집어서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대사를 치지는 못했겠지만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는 방향으로 녀석을 살살 구슬려보려고 했겠지.

물론 신앙심이 굳건한 우리 미카엘이 사탄의 속삭임에 눈 하나 깜빡할 리 없다. 오히려 녀석을 다그치고 압박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지금 이게 그 결과야.’

방 주인이 오히려 손님의 눈치를 보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상황, 당연히 이쪽에게는 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독기 가득한 표정, 분노와 초조함으로 얼룩진 모양새, 분명 세상의 고단함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이 망가져 있다.

비둘기의 둥지로 향한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방향은 대략적으로 맞추기도 했고, 캐슬락에 결계를 유지시켜주는 대가로 레인저들 몇몇을 지원받은 것 같기는 했지만, 이쪽의 흔적을 읽고 움직이는 터라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거기에 혹시 모를 비둘기들의 습격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녀석이 이쪽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새끼들… 은근히… 쓸 만한데….’

알렉스 3인방.

가진 잡기들이 많다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레인저도 아닌 것들이 지도를 보고, 숲이나 폐허에서 길을 찾을 줄도 안다. 귀신같이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숨기는 것도 수준급, 심지어 전투력도 나쁘지 않았던 터라 지난 비둘기들의 습격에도 훌륭히 대응했을 정도였다.

물론 전투야 류한이 대부분 맡아주기는 했지만 놈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 내에 메슬라 성을 눈앞에 둘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는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협. 그… 그리고 신의 선택을 받은 성스러운 존재시여.”

‘성스러운 존재는 또 뭐냐고. 시바.’

“바로 눈앞인데 그냥 출발해도 되지 않아?”

“멍청한 소리 하지 말게. 캐넌, 이 주변에 몬스터들이 많다는 거 알고 있지 않나? 물론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비둘기들에게 우리 위치가 발각될 염려가 있네. 해가 진 이후에는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아아아. 그런 건가. 어이 알렉스! 식사 준비 좀 해.”

“그래.”

“난 이 주변 좀 정찰하고 올 테니까. 조지, 너는 야영지 세우고.”

“맡겨두게나. 얼마나 머무를 텐가?”

“글쎄?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일단 한숨 때리고 생각해 보자고.”

“음. 알겠네.”

‘업무 분담도 확실해.’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만렙 베테랑 모험가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빅보이 패밀리가 지금 이 시점까지 살아 있었다면 이 녀석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빅보이 녀석들은 조금 더 덜렁거리고, 무식하기도 하고, 음식도 맛이 없기는 했지만 아마 느낌 자체는 비슷할 거라고 본다.

‘그래도 걔들이랑 다르게 요리는 잘해서 나름 마음에 들자너. 햄비어 꼬치가 아닌 게 어디냐고.’

“식사 준비됐습니다.”

“아! 감사해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준비할 시간이 1분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균형 잡히고 먹을 만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 조금이지만 메뉴도 다르게 나온다.

하루 웬 종일 대륙을 떠돌아다니면서 전쟁하고, 야영하고, 노숙하고 한 놈들이라 그런지, 쓰레기 같은 환경에서도 꽤 퀄리티가 좋다.

당장 조지 녀석이 설치하고 있는 야영지도 놀랍기 그지없다.

‘무슨 시바 원터치 텐트가 튀어나오냐고. 저걸 도대체 대륙 놈이 어떻게 개발한 건데?’

이쯤 되면 현성캠핑에서 녀석들을 스카우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전생에 현성캠핑에 직원이었던 것일까. 분명히 개고생할 걸 예상하고 떠난 원정길이었건만 무슨 감성캠핑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 새끼들은….

“전서구 왔어.”

“뭐?”

‘아니, 도대체 전서구는 어떻게 뚫어 놓은 거냐고.’

굳이 분류하자면 모험가들 중에서도 중상위에 있는 녀석들, 여기까지 살아남을 정도라면 몇 수 정도는 숨기고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까도 까도 새로운 게 나오는 것만 같다.

“쓰로누스가 죽었단다.”

‘정말 새로운 소식이 나왔자너.’

“뭐… 뭐?!”

“내 말 못 들었어?! 쓰로누스가 죽었다고!! 하하하핫!”

“쉬잇! 조용! 조용히! 확… 확실한 것 맞아?”

“그래. 캐넌. 비둘기들의 8차 공습으로 린델 방어전에 돌입, 격전 끝에 파란 길드 마스터 김현성이 쓰로누스를 격침. 파란 길드 마스터도 몸이 성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수일 내로 회복될 것으로 본단다.”

“시… 시발 진짜야?! 하… 진짜 뭐가 일어나기는 일어나려나 본데?! 그 비둘기가 정말로 죽은 게 맞아?!”

“시체까지 확인했단다. 드디어… 드디어 이 긴 전쟁도 끝이 보이나 봐.”

“어쩐지 최근에 비둘기 새끼들이 도통 보이지 않더라니… 전부 다 린델로 향한 거였구만… 그러면 당분간 좀 조용해지겠는데? 아니야?”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왕국연합과 연방이 완전히 끝장났다고 하네. 살아남은 병력들과 피난민들이 린델과 에베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고… 두 도시에서도 그들을 위한 병력을 파견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그 말은….”

“전부 죽을 확률이 높겠지. 운이 좋으면 몇몇은 살아남겠지만….”

“에베리아 전선이 그렇게 힘든 상황이라는 겐가?”

“그래. 조지. 세라핌과 도미니온스가 기어코 이 종족 연합을 세계수로 밀어냈다고 하네… 그 과정에서 비둘기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이종족 연합의 피해도 만만치 않은 것 같고….”

“…….”

“캐슬락은 안개 때문에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안개가 깔려 있는 걸 보면 안개 소환사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원거리 저격수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린다는 게 마음에 걸려.”

“놈들이 아주 작정을 했군.”

‘그래. 당연히 작정할 시기지.’

“그래도 쓰로누스가 죽었다는 건 우리 쪽에서는 고무적인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 네임드 비둘기들한테 당한 모험가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야. 그 공화국의 발렌틴 알렉산드로도 케루빔한테 순식간에 목이 잘리고, 힘 좀 쓴다는 놈들 전부 순식간에 쓸려나갔던 걸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인 거지. 그래도, 인류에 녀석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패가 남아 있다는 거니까. 작은 승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발걸음이야. 당연히 사기도 오를 거고, 다른 비둘기들도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지 않겠어?”

“글쎄 복수한다고 설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왜 다른 비둘기들은 몰라도 그 파란색은 조금….”

“그래도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 주겠지.”

놈들의 대화를 들으며 류한의 입에 수저를 들이민다. 반응이 없기는 하지만 조금 더 수저를 몰아붙이자 조심스럽게 녀석의 입이 벌려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럴 게 아니라 바로 메슬라 성으로 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그래? 아까는 쉬었다 가자며.”

“비둘기들이 린델 공습에 집중하고 있다면, 지금이 기회야. 공화국까지 돌볼 여유가 없을 테니까.”

‘얘네는 진짜 우리가 뭐 할 줄 알자너.’

“…….”

“…….”

‘그냥 비둘기 둥지로 박치기하러 가는 건데 말이야.’

마치 인류의 모든 희망이 이곳에 모여 있는 줄 아는 듯한 결연한 표정이다. 물론 현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놈들의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가기야 한다.

“혹시 식사가 끝나시면 곧바로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네.”

점점 인류의 숨통을 조여 오는 비둘기들, 얼마 남지 않은 저항도시, 그 와중에 날아 들어온 작은 희망의 빛줄기까지. 점점 더 퍼즐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메슬라 성에 집결한 모험가들이 인류가 버티고 있는 동안 비둘기 둥지를 급습하고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네.”

내가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타임 어택인 줄 알자너. 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그냥 죽으러 가는 건데….’

당연하지만 미약한 희망을 품고 있는 놈들은 알렉스, 캐넌, 조지 이 새끼들뿐만이 아니다. 녀석들보다 더 한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놈들이 바로 메슬라 성에 집결해 있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공화국의 패잔병들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움직여!!! 들어 올려!! 그래! 들어 올리라고!!!”

“인류의 방주다! 인류의 마지막 방주를 만드는 거라고! 신의 목소리다!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올려!! 올려!!! 이리로!!!”

“자재가 부족한데… 제길….”

“성에 있는 걸 전부 털어도 상관없다! 식기든 무기든, 나무랑 철으로 된 건 전부 끌어모아!”

“밀어! 밀어어어!!”

내가 지시했지만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와… 죽이자너. 진짜. 이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방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방주다. 심지어 1회차에서 돼지 새끼가 몰던 나이스 보트보다 더욱더 규모가 크다.

망원경으로도 몇 번 봐왔지만 실제로 앞에 있는 것을 목도하자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다. 메슬라 성에 도착한 알렉스 놈들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이게… 뭐야….”

“배? 아니, 저걸 배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바… 바다도 없는데 왜 갑자기 배를 만드는 거야? 조지?”

“아마 저걸 타고 놈들의 둥지로 향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그게 가능해?”

“메슬라 성에서 이런 게 만들어지고 있는데… 불가능할 게 뭐가 있을까.”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우리가 캐슬락에서 떠난 지 겨우 한 달이야… 겨우 한 달이라고… 어떻게, 언제부터 도대체 여기서 이런 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야? 어… 어? 이런 게 만들자고 결심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비둘기들은? 어? 이걸 만들면서 비둘기들의 공습도 막아냈다는 거야?”

“…….”

“그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네. 알렉스.”

“뭐?”

“자네가 말한 퍼즐 조각 말이야.”

“…….”

“이제야 모인 거 아닌가?”

“…….”

“…….”

‘슬프기는 한데… 퍼즐 조각 모인 거 아니야. 이거 그냥 자살 특공대 같은 거야….’

“신의 목소리가 들리네.”

“그래. 합류해야겠지.”

이쪽에 목례를 한 이후에 곧바로 작업에 투입되는 세 놈의 모습이 보인다.

자재를 옮기거나 구해오라는 간단한 퀘스트, 그 밖에도 세분화된 퀘스트를 받은 메슬라 성의 온 병력들이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처구니없지만, 돼지 새끼가 매번 보트를 만든 걸 봐오던 게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저건 바다를 지나가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세밀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꾼들이 커다란 배에 달라붙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때마침 반가운 얼굴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창렬아… 팔 제대로 붙었구나!’

김창렬.

그리고 그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녔던.

알프스.

둘 모두 아직 이쪽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을 때, 왠지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훈훈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알프스에게서 훈훈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평소보다 밝은 얼굴,

수줍은 미소,

붉게 물든 뺨.

무심한 김창렬에 손짓 한 번에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까지.

“…….”

“…….”

‘너희 아니지?’

“…….”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 보이는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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