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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11화 (1,50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11화

소실(21)

‘저 습관 아직도 못 버렸자너.’

그야말로 미친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흥분한 상태라는 걸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을 정도.

단언하건대 저건 연기가 아니다. 핏발이 선 눈, 고통을 잊을 정도로 흥분한 얼굴, 붉은색으로 얼룩져 있는 허벅지, 그나마 옷에 가려져 있기에 망정이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면 왼쪽 허벅지 전체가 엉망이 된 모습이 그대로 눈에 비쳤을 것이다.

지금 저 모습이 징그럽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미친놈마냥 계속해서 허벅지를 찔러대고 있으니 단순한 자해의 수준을 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어느덧 왼쪽 하의 전체가 붉게 물들고 있다. 펜촉이 이미 구부러져 더 이상 박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화를 풀어내고 있는 모습, 펜을 쥔 손아귀가 찢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진짜 사람 참 없어 보이기 해.’

추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성을 잃은 인간이 얼마나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맛이 있다.

‘허겁지겁 먹게 되자너.’

아마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지 않았을까. 사실 녀석이 틀린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갑작스레 튀어나온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물론 녀석도 병신이 아닌 만큼 어느 정도 변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만 갑작스레 류한이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막말로 이 정도면 천재지변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기영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내가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와 퀘스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정보도, 소득도 얻을 수 없었던 셈이다.

그나마 공화국으로 향하던 병력을 회군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도 있었겠지만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너무 크다.

장담하건대 박덕구를 잃은 이래로 가장 큰 실패였을 것이다.

그게 순전히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었으니 저렇게 미치고 팔짝 뛰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거기에 팩트로 제대로 후드려 맞고 있으니, 고삐가 풀리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나는 타격감 없죠?’

타격감은 너만 있죠?

‘나는 다 극복했죠?’

혼자인 너만 마음 아프죠? 아무 것도 안 남은 너만 아프죠?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너 그거 병이야. 흥분해서 날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그딴 식으로 자해를 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네 그 폭력적인 성향이랑 자기 파괴적인 성향, 그것도 전부 유전인가 봐. 그렇지?(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구역질 나는 새끼가.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앞에서는 가면 쓰고, 뒤에 가면 혼자 분 풀 곳을 찾아다니면서 개지랄해대는 거, 네가 생각해도 누구랑 참 닮았다고 생각하지?(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웃기지 마.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네가 괜히 갇혀 있는 게 아니라니까. 쓰고 있는 가면이 깨지니까 바로 망가지는 것 좀 보라고, 넌 결국 여기에 떨어진 다음에도 제자리걸음을 한 거야. 전혀 성장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한 거라고.(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그 입 닥쳐.

[어째서 네가 직접 회귀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변명거리가 필요했던 걸지도. 스스로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아서, 돼지 새끼를 지키지 못한 게 결국 자신의 실수라는 걸 깨달아서, 처음으로 되돌려도 반드시 실수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짐을 맡겨 버린 걸지도. 끝끝내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인정한 거네. 이걸 성장했다고 말해야 될까. 아니면 병신 같다고 해야 할까.(0/1)]

-…….

[스스로가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 거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시바 어릴 때부터 다져온 그 낮은 자존감이 어디로 갈까. 하기사 자존감이 낮은 것도 당연하기는 해. 그 비루한 인정욕구에서 나오는 부풀리기도,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발버둥도, 너무 추악해서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야.(0/1)]

-…….

[네가 왜 시바 김현성한테 뒤통수를 처맞은 다음에도 김현성을 동경하는 줄 알아? 왜 김현성을 증오하면서도 김현성한테 끌렸는지 아느냐고. 새끼야.(0/1)]

-…….

[넌 성공한 척만 했을 뿐이지, 성공한 적이 없어서 그래. 언제나 뭔가를 성취한 척만 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성취한 척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보면 네 애비가 너를 사람 취급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가. 우리 솔직해지자. 네 애비 눈에는 네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겠어? 산전수전 다 겪은 네 애비가 보기에는 가면 쓰고 있는 네가 얼마나 웃겨 보였겠느냐고.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버리고 간 거, 그거 다 너 때문이라는 거.(0/1)]

-…….

[넌 다시 일어서 본 적도 없어. 겉으로는 언제나 꼿꼿하게 서 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 있고. 고집이랑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새끼라고. 그런 네가 보기에 김현성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겠어. 결국에는 일어나잖아. 결국에는 성장하고, 이겨내잖아.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잖아. 너랑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건, 그간 김현성을 봐왔던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0/1)]

-지 얼굴에 침 뱉고 있네. 병신 새끼가. 나랑 똑같은 주제에.

[난 너랑 본질적으로 달라. 병신 새끼.(0/1)]

조금은 더 흥분해 주기를 바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하… 시바… 이미 제정신으로 돌아왔나 보네.’

머리를 차갑게 하기 위해서 허벅지를 찌른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완전히 전황을 뒤집을 수 있었겠지만 녀석 역시 현 에베리아 전선이 신경이 쓰이기는 한 모양이다.

언제 찾아왔냐는 듯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비둘기들이 시야에 비쳐온다.

도미니온스가 끌고 온 병력들을 이끌고, 다시금 에베리아 쪽으로 병력을 돌린 것이 분명하리라.

지난 손해를 메우기 위해 세라핌까지 함께 데려간 것도 옳은 판단, 그 와중에 공화국의 메슬라 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니, 공화국 쪽을 신경 쓰기보다는 세계수와 린델에 더 집중할 요량인 것 같았다.

이건 아마….

‘찾아오라는 거지?’

애초 공화국의 멍청이들을 메슬라 성으로 옮긴 이유가 비둘기의 둥지로 향하기 용이한 전초기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메슬라 성은 공화국 최북단에 있었고, 놈들의 둥지는 공화국 바로 너머에 존재했으니 말이다.

1기영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 보면 속이 뻔히 보이는 개수작이었으니까.

정말로 둥지 안으로 오는 길을 완전 차단하고 싶었다면 도미니온스와 세라핌, 아니, 최소한 세라핌은 메슬라 성으로 보냈어야 한다는 거다.

‘무조건 찾아오라는 거 맞지?’

둥지에 오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용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 얼굴을 직접 보고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은 모양이다.

함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뻔히 보이는 수였으니 함정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도미니온스와 세라핌의 합류로 어차피 밀릴 에베리아 전선에 집착하는 것은 하책, 지금은 메슬라 성을 안정화 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높은 확률로 김현성 역시 둥지로 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최단 시간, 최단 루트로 둥지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놔야 한다.

‘그 와중에 이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은 신났자너.’

아직도 저쪽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라는 걸알까. 만약 세계수 전선을 밀어내지 못했더라면 단언하건대 지금 이곳에 있는 놈들의 반절 이상이 뒈졌을 것이다.

“갔다… 비둘기 새끼들이 갔어!!”

“제기랄! 우리가 해냈어!! 으아아아아아악! 살았다!”

“대협! 대협!!! 우리가 해냈습니다요!”

“비둘기들이 후퇴했다! 도미니온스와 세라핌이 꽁무니를 뺐다고! 제길! 이게 캐슬락이다! 퉤!”

“살았어… 흐으으으으윽… 살았다고!”

“캐슬락이 또 버텨냈다! 하핫! 이 더러운 비둘기 새끼들!”

‘서로 얼싸안고 난리 났자너.’

당장은 죽은 자들에게 애도를 보낼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압도적인 전력차를 극복했다는 기쁨과 결국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전투가 끝날 때마다 매번 보이는 풍경이 시야에 비쳐온다.

그 와중에….

‘이 새끼는… 미동도 없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류한이 눈에 띈다. 다시 한번 놈을 살펴봐도 여전히 눈에 띄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얘 아무래도, 이거 그냥 넋 놓고 있는 것 같은데.’

“모두가 대협의 은덕입니다!”

겁 없는 캐넌이 녀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텐션을 올려도 녀석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있었다.

‘이거 의식 없는 것 같은데?’

살짝 한 걸음을 옮기니,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다가오는 녀석.

‘확실하자너.’

이유는 모르겠지만 류한이 지금 의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녀석은 지금 그냥 몸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깨어날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뭐 시바 영혼약탈자에게 영혼이라도 약탈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게 반응한다는 것.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자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따라오기 시작하는 류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 캐넌, 조지 3인방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듯했지만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임무를 잊지는 않았는지 떨떠름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알렉스. 저… 대협이랑 저분이랑 아는 사이셨어?”

“일단 입 좀 닥치고 있어 봐. 캐넌. 나도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조지, 네 생각은 어때.”

“내가 무슨 답을 알겠나.”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

“…….”

“방, 방금 신의 목소리 들었어? 알렉스?”

“…….”

“…….”

“그래, 나도 들었다. 캐넌. 아무래도 우리가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린 모양이다.”

“조지 너는 어때?”

“나도 들었네.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뭘 어떻게 해? 신의 목소리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일단은 가서 아까 그 지하실에 있던 사람들한테 알려. 안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달라고.”

“그런다고 지켜지겠어? 그러니까… 대, 대협이 싸우는 걸 본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아마 그들에게도 따로 신의 목소리가 도착했을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러니까. 저 대협의 존재를 비밀로 해야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분도 단순한 공화국에서 온 권력자 같은 느낌은 아닌 것 같고….”

“그럼 뭔데?”

“내가 이유를 알면 이러고 있겠어? 잘, 잘은 모르겠지만 신의 목소리가 저분을 따르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젠장!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직까지 신들이 대륙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데.”

“그… 그건….”

“…….”

“…….”

“조지 네가 설명해 줘.”

“명확하지는 않지만 윗분들이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맞, 맞아! 갑자기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만 봐도 그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인류는 기적처럼 잘 버티고 있다고, 곳곳에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말이야. 나는, 어쩌면 지금 이게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말 그대로야. 캐넌. 우리의 관점에서는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거야. 현재 인류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는 영웅들은 모조리 퍼즐이고, 각자 할 일이 있다는 거지. 당연하지만 저분 역시….”

“퍼즐 조각 중에 하나라는 거구나?”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와 저분이 만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봐. 저… 대협도 말이야. 어쩌다가 캐슬락 피난민들과 함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봤잖아.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을….”

‘얘네 운명론자였자너. 아무튼 간에 낚기 쉬워서 좋을 것 같기는 해.’

“그럼 우리는?”

“우리 같은 놈들이 뭐 따로 맞을 중요한 일이 있겠어? 그냥 중요한 순간에 고기 방패라도 되어주고, 뒤치닥거리나 해주라는 거겠지.”

“…….”

“어… 알렉스….”

“봐. 내 말이 맞지? 신의 목소리가… 메슬라 성으로 향하란다.”

‘진짜 단순한 게 좋기는 해.’

그리고.

[에베리아 전선이 후퇴하고 있다. 도미니온스와 세라핌까지 돌아왔더군. 이쪽 역시 병력을 돌릴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모든 걸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진 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슬라 성으로 갈 거예요. 아니, 정확히는 둥지로 가서 1기영이랑 접선할 테니까 군사님도 준비해 주세요.]

[…….]

[그리고.]

[…….]

[류한 이거 완전 속이 비었어요. 튜토리얼 때 던진 멘트 정리 가능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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