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501화 (1,49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01화

소실(11)

‘너….’

“…….”

‘한번 놀아보자 이거구나?’

“…….”

“성문을 열어라!! 캐슬락 백작이 귀환했다!”

“성문을 열어!! 성문을 열어!!!!”

“성문을 열어라!! 캐슬락 백작의 귀환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여기 환자 있나!”

“병동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의 안내에 따라 움직여 주십시오!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우측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우측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추가로 전설 등급 이상의 직업, 혹은 무구를 가지고 계신 모험가, 혹은 특수능력이나 특수병과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서는 따로 말씀해 주십시오!”

“지휘관들은 어디 있나! 나는 공화국의….”

“일단 움직여 주십시오!”

“내 말 못 들었나! 나는….”

“이곳은 공화국이 아니라 제국의 캐슬락입니다. 일단 병사들의 안내에 따라 움직여 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뭐… 뭣?”

“움직여 주십시오! 병사들의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신분이나 계급에 관계 없이 무기를 들어봤거나 들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우측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바… 벌써 도착했자너….’

까마귀가 불러들인 비정상적인 행군속도가 한몫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히 방금 전에 미카엘 녀석이 캐슬락이 눈앞에 있다 말한 걸 들은 것 같았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캐슬락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당황스럽다.

물론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었으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처럼 느껴진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활동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기영까지 설치고 자빠지고 있자너.’

녀석이 내게 볼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당연히 아직까지 이 까마귀가 1기영이 보낸 것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가능성이 결코 낮지는 않다.

만약 까마귀를 1기영이 보낸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 존재를 알고 있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갑작스레 나타나 현자의 돌이니 뭐니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사실 신경 써야 할 게 1기영뿐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현 상황을 정리하기 어려운 배경 속에 있다는 것이 굉장히 짜증스럽다.

자주 쓰는 표현이었지만 실타래가 엄청나게 꼬여 있다. 이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각 집단과 개인이 서로의 이익과 서로의 목표를 위해 질주하고 있었다.

가만히 놔둬도 풀기 힘든 실뭉치를 여러 방향으로 미친 듯이 잡아당기고 있었으니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퀴즈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이정표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물론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본래의 이정표에서 몇 가지가 더 추가됐을 뿐이다.

김현성을 막는 것.

미카엘과의 일을, 미카엘을 처리하는 것.

진청과 합류하는 것.

카스가노 유노가 이곳에 온 목적을 알아내는 것.

어떤 식으로든 1회차 이기영과 접촉하는 것.

현자의 돌이 무엇인지, 그게 정말로 실존하는지, 무슨 역할인지 정보를 모으는 것.

쉽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었지만 정한다는 게 사실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한들, 실행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언젠가는 퍼즐들이 전부 모인다. 끝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퍼즐들을 맞추는 것이 조금 더 용이해진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하면 돼.’

아직 여유 있어.

‘내가 가진 패도 많아.’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목표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아직 눈에 보이는 결과물과 달성률 따위가 보이지 않아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뿐이다.

작게 보면 현시점의 캐슬락으로 도달한 것 역시, 스타트 라인에 발을 디딘 셈이었다.

막말로 웬 오지에 떨어지거나, 비둘기들의 영역에 떨어졌었다면 이곳에 오는 것까지 몇 달이 걸렸을지 누가 알겠는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뚫리지 않을 전초기지로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은 셈이었다.

‘여기가 가장 나을 것 같자너… 성벽 웅장한 거 봐. 캐슬락은 캐슬락이기는 해.’

“계속 이동해 주십시오!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어마어마하구만… 캐슬락. 옛날에는 이 미친 성벽을 어떻게 공략하려고 했었던 건지… 막상 안에 들어와서 보니까 더욱더 터무니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군….”

“여기를 기어 올라갈 생각을 했다는 게 미친 거였지. 괜히 지금까지 버티고 있겠어?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해서 비둘기들도 영 접근을 꺼리고 있으니까. 그 금발 비둘기는 이곳 근처도 안 오려고 할걸.”

“글쎄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파손된 성벽들 안 보여?”

“저건 예전에 몬스터 웨이브 때 파손된 거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곧바로 보수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성벽 자체에 걸려 있었던 효과들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면 알겠지만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야. 듣기로는 하루 두 번 정도는 공습이 있는 것 같고….”

“그래도 살 수 있는 확률은 더 올라간 것 같은데. 대공 방어도 확실하게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 물자들도 엄청 많이 쌓여 있잖아!”

‘공략하기 까다로울 것 같기는 해.’

마법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성벽, 그리고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자욱한 안개, 그나마 안에서 보면 시야가 트여 있기는 했지만 성벽 바깥으로만 나가기만 해도 정말로 뿌연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관리도 잘되어 있다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봤기 때문에, 현재 캐슬락의 상황이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수 있다.

차곡차곡 쌓아온 물자, 잘 관리된 성벽,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병사, 마탑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심지어 조금이었지만 안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도 시야에 비쳐온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거기에….

‘행정 체계도 지금까지 봐왔던 거랑 너무 다른데?’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이쪽으로… 부탁드립니다!”

“빨리 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원이 순식간에 캐슬락으로 쏟아진 상황이다. 내가 알던 1회차였다면 아마 인원 파악에만 일주일 이상 걸렸을 게 분명할진대,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전투 인원과 비전투 인원이 순식간에 분류되고 있었고, 동시에 새로 들어온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도 제공되고 있다.

심지어는 병과 별로 분류하기 시작하고, 한쪽에서는 캐슬락 백작과 함께 공화국 지휘관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만간 연설도 할 것 같은 모양새에 놀라움이 앞선다.

‘손거울도 없어서 전부 다 수작업으로 하는 중이자너.’

심지어 피난민과 부상자들을 위한 장소도 무척이나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퀄리티는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현재 대륙이 처한 환경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1기영이 내 존재를 깨닫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려고 해도, 이쪽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거다.

나 역시 녀석에게 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녀석 역시 내게 닿을 수 없다.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위험하지 않다 장담할 수 없었지만 현시점의 캐슬락은 안전하다.

하지만 안전한 장소가 살기 좋은 장소라는 것은 아니다.

‘시바. 그래도 더럽기는 더럽자너… 하… 진짜….’

“환자분 상태가 어떻게 되시나요?”

‘최대한 위생에 신경 쓴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불결하기는 마찬가지자너.’

“그러니까… 두통이….”

“오랜 행군으로 인해 지치신 것 같은데… 제가 따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쉬시면서 차도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요.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제 인력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라… 아무래도 전투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주로 배정되어 있는 터라….”

“그렇다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배정받을 순 없겠습니까?”

‘그게 가능하겠냐고. 미카엘 이 새끼는 진짜 아직도 현실을 모르자너.’

“이곳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예요. 사실 캐슬락은 이미 포화상태라… 그나마 이곳에 계시는 게… 환자분께 도움이 될 거예요.”

“하아… 하아… 흐윽… 하아….”

“괜… 괜찮으십니까?”

“하아… 하아… 하아… 으윽… 하악….”

‘아니, 안 괜찮아. 여기서 지내면서 젠이랑 살던 것마냥 꿀꿀이죽 처먹을 생각 하니까 갑자기 안 괜찮아졌어.’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저는 사제도 아니고… 관련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에요. 그냥 병동을 관리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인데… 제게 방법을 물으셔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일단 사제님께 최대한 빠르게 와달라고 부탁을 드려보겠지만 그것마저도 언제 오실지 알 수가 없어서… 확답을 드리기가 힘드네요. 많이 힘드실 텐데… 죄송합니다.”

‘사실 사제가 온다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자너.’

신성력이라면 미카엘 녀석도 사용해 본 전적이 있다. 장담하건대 여기서 사제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녀석들보다야 미카엘의 것이 훨씬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니, 아마 자기 자신도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가 와도 당장 이기영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필멸자에게 상태를 봐달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전의 큰 이벤트들이 효과가 있기는 한 모양.

“조금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내 손을 꽉 잡았다 놓은 녀석이 어디로 향했을지도 사실 뻔하다.

‘곧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될 것 같자너.’

아니나 다를까 뭔가를 결심한 듯, 성큼성큼 바깥으로 향하는 녀석.

이윽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병사들과 함께 미카엘이 병동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

“…….”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미카엘이 특별한 방법을 쓴 것도 아니었다.

능력이 있으면 대우받는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특히나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말이 필요가 없다.

아마 근처의 지휘관에게 자신이 마법사라거나, 혹은 특수병과를 가지고 있는 능력자라 이야기한 뒤에, 윗놈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거겠지.

당연히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겠지만 아마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대륙이 완전히 망가지게 되면서 신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미카엘은 멍청하지도 않고, 우리 대륙의 상황에 사정이 밝기도 했으니 적당히 잘 둘러댔을 것이 분명했다.

‘방부터 옮길 것 같자너.’

“제가 들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숨을 헐떡이는 이쪽을 공주님을 안는 것마냥 들어 올리는 녀석,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을 한 번 훔쳐준 이후에는 조심조심 이동하기 시작한다.

아마 캐슬락 쪽에서 따로 마련된 거처로 이동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 방을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아마 두 분이 머무르시기에는 충분하실 겁니다. 혹시나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저를 불러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

“…….”

“그럼, 편히 쉬십시오.”

“네.”

‘상태 좋네.’

룸 컨디션이 아주 훌륭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지낼 만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한테 치이면서 하루 온종일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혼자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얻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만약 김창렬이 창설한 정보 길드가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쪽에 접촉하려고 시도할 테니까.

결코 내가 편해지고 싶어서 미카엘에게 무언의 압박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그 이유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일단 이 새끼부터 빌드업 해야 되니까.’

초반에 큰 이벤트들을 몰아치기는 했지만 불쌍해 보이면 불쌍해 보일수록 좋다. 이미 낚싯바늘을 문 것 같으니 수면 위로 올리기 전에 계속해서 줄을 당겨야 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눈을 뜨자.

“정신이 드십니까?”

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곧바로 누운 상태로 눈물을 주르륵 흘려 버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혼자… 있고 싶어요….”

“혹시….”

“혼자… 있고 싶다고….”

“…….”

“…….”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다.

이기영이 또 다른 하나의 기억을 잃었다.

김현성과 관련된 또 다른 하나의 기억을 잃었다.

“흐윽… 흐…으으윽… 혼자… 있고 싶다고….”

‘불쌍해 보여야 돼.’

“…….”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 돼…’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이미 예상했겠지만,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 같은 미카엘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문밖으로 나가버린 녀석, 이윽고 문 앞에 털썩 주저앉은 녀석이 망원경 속에 비쳐왔다.

‘뭔 영화 찍냐고 이 새끼는….’

미카엘은 문밖에서 내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계속해서 문밖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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