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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78화 (1,47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78화

대륙전쟁(58)

당연히 선수를 쳐야만 했다.

“린델의 김현성이… 무슨 뜻인가요… 현성 씨.”

“…….”

“기영… 씨?”

김현성이 정확히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내렸던 선택이었다. 물론 1회 차 가면쓰레기에 대한 것은 암묵적인 합의가 들어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상태로 진입한 것이 정설이기는 했지만… 어렴풋이 확신하고 있는 것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쳐 버려 다시 한번 배때지에 칼빵을 놓을지… 그때의 숨 막혔던 공기와 분위기, 갑작스러운 돼지우리 발언과 배 속을 헤집었던 이물감이 아직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상황.

회사설이라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했겠지만, 녀석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널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김현성이 혼자 있었다면 조금 더 부드럽게 상황을 지켜보는 선택지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옆에 붙어 있었던 쥐새끼가 문제, 무슨 감언이설로 녀석을 흔들어 놨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조심스럽다.

만약 녀석이 적이라면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큼 멍청한 행동은 없을 테지만… 녀석의 목적이 김현성인 이상….

‘비이성적인 행동을 해오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이쪽을 공격해 오는 짓거리를 할 확률은 희박하다. 아니, 만약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타이밍이다.

차라리 이쪽이 공격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김현성과 미켈레 박사가 저 장면을 단둘이 확인하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다.

슬그머니 녀석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어떻게 할래? 너는… 어떻게 할래? 차라리 때려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

‘여기서 한번 할래?’

아니나 다를까 내 모습을 확인한 이후,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녀석, 공을 들인 만큼 들인 걸 쉽사리 망칠 수는 없다는 표현일까. 마치 김현성과 내가 대화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것처럼 보여 심사가 뒤틀려왔지만 일단은 놈의 뜻대로 현성이와 대화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니 굳이 내려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일단 선빵 때렸으니까.’

“…….”

언제나 그렇듯, 먼저 때리는 놈이 유리하다. 이미 김현성은 반쯤 멘탈이 나간 듯한 모습, 이제 쥐고 흔들 일밖에 남지 않았다.

“…….”

‘너도 유책 있자너. 너도 원죄가 있자너. 그렇지? 내 잘못만은 아니지?’

“…….”

‘이건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이야.’

김현성과는 다르게 이기영은 1회차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청… 청소라는 건 또 뭔가요….”

‘너 설마… 죄 없는 사람들 학살하고 막 그런 거 아니지?’

“그… 그리고 지금….”

‘그냥 밀어버린 거 아니지? 아무 죄책감 없이 그냥 밀어버리고 백작 먹어버린 거 아니지?’

“저건….”

‘나 아니지? 내가 이 지옥도를 만든 가면쓰레기… 아닌 거지? 거짓말이지?’

오히려 위로를 받아야 함이 옳다. 내가 더 혼란스러워해야 함이 옳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기영에게 네가 1회차 때 쓰레기였다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당황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김현성과는 당연히 차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새끼는 1회차 때 본인이 청소 사건에 동의했다는 것조차 내게 알리지 않았다. 은근히 영악한 것인지, 아니면 잊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썼었던 김현성이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가끔 급발진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녀석은 착한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성향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어느 정도 선이 있기는 하지만 1회 차의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김현성에게도 당연히 폭력적인 성향이 존재한다.

아니, 폭력적이라기보다는 냉정하고 차갑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까.

‘배때지 때 말고는 본 적도 없자너.’

아마 녀석이 지금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들켜 버렸기 때문이리라.

“현성 씨?”

“…….”

‘꿀 먹은 벙어리 되어버렸자너.’

“뭐… 뭐라고 대답 좀 해주세요.”

“…….”

“현성 씨… 아무거나 좋으니까. 뭐라고… 대답 좀 해보시라고요. 저한테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가요…?”

“저… 저는….”

“그… 그리고 제가 왜….”

역시 선빵을 때리는 게 맞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 김현성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창백해진 것 같은 얼굴,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 원죄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한 표정.

‘이거 됐다. 시바 됐다.’

물론 1기영에 대한 복수심이 더 컸다면 원죄가 본인에게 있든, 가면쓰레기에게 있든 상관하지 않았었겠지만, 지금은 복수심보다 이기영에 대한 소중함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불어, 미켈레 박사 또한 나와 김현성을 이간질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

물론 시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적이 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김현성은 이기영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되는 게 맞지.’

김현성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결과적으로는 이기영 때문이라는 것 또한 깨닫는다. 진실을 확인하려고 하고 싶은 이유도, 1회차를 방랑하고 있는 이유도, 제각각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이기영을 위한 선택이었다.

물론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기는 했지만 괘씸한 현성이가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

“…….”

압박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당연히 들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죄 없는 이들을 청소하는 데 동의했다는 걸, 아무 죄 없는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착해빠진 이기영한테는 이야기 못 하자너.’

심지어 내가 가면쓰레기였다는 것도 말 못 하자너.

지금 이 순간, 나는 강자였고, 녀석은 약자였다.

“지금까지 뭘 감추고 있었던 건가요?”

“저는….”

“그… 그것 외에 또 뭘 숨기고 있었던 건가요. 아직도… 아직도 숨기는 게 있었나요?”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숨기는 게 많은데?’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건가요.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저도….”

‘뭐라고 좀 말 좀 해봐. 시바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왜 이렇게 비밀이 많냐구. 내가 시바 백번 양보해서 회귀자라는 것도 시원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줬자너. 근데 왜 또 숨기는 건데.’

“저는 전부 받아들일 수 있어요.”

‘청소 사건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자너. 형은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자너. 모든 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자너. 네가 뭘 하든 다 받아 주자너.’

녀석의 옆에 있는 미켈레 박사도 딱히 아무 말도 해오고 있지 않다.

눈치가 있는 건지 끼어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 지금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길드원들은 초긴장 상태로 현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김현성이야 둘째 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내가 함께 있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손을 검에서 놓지 못하는 알프스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미켈레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옆에 계신 분은 도대체….”

‘재는 도대체 누군데? 시바. 왜 같이 다니고 있는 건데? 왜 시바 네 인생에서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김현성의 입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설명해도… 이해하실 수 없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이 새끼 지금 멘탈 나갔다.’

본인의 청소 사건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만 해도 심란할 텐데 이기영까지 마주쳐 버린 상황, 거기다 갑자기 젊어진 미켈레 박사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했으니 정신이 없을 만했다.

당연히 모든 걸 고백할 거라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

“…….”

“지… 지금은 당장은 기영 씨에게 드릴 말이… 없… 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아 진짜. 시바.’

“그게….”

“지금 보신 것도… 미켈레 박사에 대한 것도… 제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그리고… 저는… 제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과 함께 헤쳐나갔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저도…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저도 아직은 뭐가 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성 씨도… 물론 말씀해 주시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하고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대화가 필요해요. 저분이 미켈레 박사라면 더욱더요. 어째서 저분이 지금 현성 씨와 함께 있는 건지, 어째서 젊은 모습으로 있는 것인지, 어째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건지… 제가 저분을 적대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고요. 혼란스럽단 말이에요.”

“적… 적대할 필요는 없….”

“저는 알 자격이 있어요. 모든 걸 알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성적으로, 최대한 이성적으로. 지난번에는 흥분해서 개판 났었으니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화내지 말자. 오늘은 화내지 말자. 기영아.’

“…….”

‘더 따지고 들지 말고,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기영아.’

“아니, 그것보다 일단은 돌아가요. 돌아가서….”

‘어르고 달래야 돼. 지금 현성이한테는 이게 맞아.’

“천천히 알아보고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어요.”

“아니요. 저… 저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러니까. 모든 걸 확인하기 위해서… 저는… 해야만 하는 일이….”

‘응 한 번에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어.’

“뭘 확인하고 싶으신 건지, 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랑 같이 이야기해요. 제가… 제가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고는 있으신 거죠?”

“해야만 하는 일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김현성에게 다가간 건은 당연지사.

도대체 뭘 확인해야 하고, 뭘 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세뇌당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놈을 데리고 귀환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병풍마냥 계속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쥐새끼도 신경 쓰이고, 김현성도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은 머뭇거리고 있는 중. 손을 꽉 잡자 문뜩 정신을 차린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괜찮아.’

괜찮다고, 전부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눈빛과 행동.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이 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흔들리고 초점도 맞지 않았던 동공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하고, 호흡도 제대로 돌아온 것 같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문제가 있었다면….

‘아… 씨….’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김현성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리기 시작한다.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당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의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몸 곳곳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망토 하나로 몸을 가리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단장한다고 몸을 깨끗이 닦기는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어디서 구르다 온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오히려 김현성이 더 깔끔하게 보일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녀석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기영 씨야말로 도대체 어째서 제게… 이걸 숨기고 있었던 겁니까.”

“숨기다니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

“도대체 어째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아니… 언제부터 여기에 계셨던 겁니까. 처음부터… 이곳에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그럼 도대체 뭐가 중요한데요.”

“…….”

“…….”

‘이 새끼 지금 목소리 깐 거야? 왜 무표정이야. 왜 차가워?’

“지금 그 꼴을 하고 있는데… 제길…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습니까?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기영 씨는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요… 제…길…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제기… 랄…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저도 여기가 어딘지 알….”

“알기는 뭘 알아! 제길! 이곳은… 이… 곳은… 제길. 저희가 있던 곳과는 다르단 말입니다. 까딱하면 실험체가 돼서 짐승처럼 살아가거나 노예로 팔려나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정말로… 현실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란 말입니다! 수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곳인데… 도대체 뭘 믿고 이곳에 온 거냔 말이야!!! 제기랄!!!!! 너는… 너느은… 너는!!! 매일 매일 그렇게…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건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도대체 뭘 믿고! 제기랄!!!! 가진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뭘 믿고 있는 거냐고!!!!!!”

“아… 아파….”

“뭐….”

“어깨… 아파요… 너무 세게… 잡으셔서….”

깜짝 놀란 녀석이 손을 뗐지만 시퍼런 것으로 모자라 검붉은 멍이 든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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