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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74화 (1,47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74화

대륙전쟁(54)

스스로 생각하기에, 성지훈의 삶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실패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혐오에 빠져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그러했다.

아마 누구에게 물어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만약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지훈의 삶에 대해 묻는다면, 십이면 십, 백이면 백, 성지훈이 실패한 삶을 살았다 말을 내뱉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성지훈의 삶은, 나의 삶은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릴 때의 자신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이들이 으스대며, 자신을 괴롭혀도,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니까. 내가 작고, 내가 남들과 다르고, 내가 멍청하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게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가끔은 부조리한 상황에 화가 나고 분노한 적도 있었지만 감히 그걸 표출하거나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다. 어차피 달라지는 게 없음을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후우….”

“…….”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모든 것에 점점 더 무감각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견뎌내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버틸 수 있는 수단은 있었다.

네모난 작은 상자.

적어도 망상에 빠지면 그 모든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었으니까. 소설과 만화 속에 있는 등장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만화 속 등장인물과 같은 초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혼내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하늘을 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멋진 모험을 떠나거나, 예쁜 히로인들과 함께 손을 잡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고, 그들의 내뱉는 대사와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퇴한 것도 그것들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어느 소설책에서 읽은 문장이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나는 상처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무기력했었던 이전의 자신을 끊어내야 했고, 자기 자신을 방어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주문은 실패한 삶에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회피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는 무척이나 커다란 변화였다.

물론 그게 마냥 긍정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자신을 지탱해 줬던, 지켜줬었던 그 말은….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그 대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거북이 등껍질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서는 친구들을 비웃은 적도 있었다.

모두가 획일화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쓸모없고 무의미한 일에 열심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에 취직하는 삶을 비웃었다.

자신은 저런 삶을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고 그들을 멍청이 취급했지만… 사실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 동안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 작은 상자 속에 갇혀 있었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믿으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게 거짓이라는 걸 깨닫게 될까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성지훈은 신의 선택을 받아 용사로 추대되었다.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당신은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입니다. 성검의 도움을 받아, 이정표와 퀘스트를 따르며, 이 대륙을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 대륙은 당신의 성장을 위해 모든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신과 대륙의 선택을 받은 용사입니다.]

“…….”

“…….”

[책임감을 가지고 게임에 임해주십시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친구도 가족도 없는 지구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처음에는 이게 꿈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만화 속에서나, 아니, 매번 망상으로 바라왔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다니, 두려움 같은 것도 없었다.

어렴풋이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었으니까.

“후우… 후우… 이야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덤벼! 제길!”

쾅!

“흐윽… 이야아아아악!”

“…….”

쾅! 쾅! 콰아아앙!

현실성 같은 게 있었을 리가 없었다.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틀림없이 이건 게임이었다. 모든 게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좋은 퀘스트, 스릴 넘치는 모험, 화려한 아이템, 즐거운 추억, 웃음 짓게 되는 이야기들, 따뜻한 사람들,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해 준 이후,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용사라고 치켜세워줄 때마다 콧대가 올라갔고, 여행길에 만나는 용병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불렀으며, 초대된 성에서 만난 기사들은 한 수 배우기를 청했다.

퀘스트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기본적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는 했었지만 간혹 만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신을 용사로 여기고 있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자신이 특별하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모두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웨에에엑! 제길! 으으윽!”

기억나는 것은 바닥에 흩어진 피와 내장 따위,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한 감각과 토사물, 이 대륙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성지훈은 예전의 그 겁쟁이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특별한 게 아니라 특별한 척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겁쟁이처럼 숨어버리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가기 싫은 곳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모든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고, 자신은 그저 멍청하고, 바보 같은 놈뿐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자신을 이곳으로 소환한 이들을… 자신에게 필터를 씌운 이들을… 악마라고, 악마들이 수작을 부린다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냥, 그들 역시 자신을 믿을 수 없었을 뿐이다.

이런 겁쟁이에게, 실패자에게 누가, 어떻게 세계의 명운을 맡길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자신을 용사로 추대하고, 대륙에 소환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니…. 내게 도움을 청한 이들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니….

이것보다 더 한심한 인간이 또 어디 있을까.

애초에 성지훈이라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해한 인간들에 대한 속죄 같은 것보다 현재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쓰레기였다. 용사가 될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

“…….”

하지만….

‘용사님!’

자신을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용사님은 용사님이시니까요. 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가 보기에는 절대로 용사님은 멍청이가 아니에요.’

자신을 멍청하다고 부르지 않는 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들보다 더 생각이 많고, 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따뜻하고… 또 어떤 때는 용감하고, 또 어떤 때는 멋진 사람이라고요. 딱히 용사로 선택받은 게 아니더라도 용사님은… 용사님은 보름달 같은 사람이 되실 수 있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비춰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실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자신을 아껴주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의 선택이 필요하신 거라면 딱히 걱정하실 필요도 없어요.’

자신을 선택해 주는 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제가 용사님을 선택할 거니까요.’

“흐어어어엉… 흐으으윽… 흐으어어엉….”

“…….”

“흐으으으으으윽… 흐어어어어엉….”

그 소년이, 처음부터 자신을 믿어주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진유… 흐으으으윽… 유리에에엘… 흐어어어어엉….”

‘용사님! 용사님은 할 수 있으세요!’

“흐어어어어엉… 으으으윽….”

‘보름달이 떴네요. 보러 갈까요?’

“흐으으으으윽….”

‘용사님!’

“흐어어어엉… 흐으윽… 끄윽….”

‘용사님?’

“으… 으으윽… 으윽….”

‘아! 용사니이임~’

“유리에에엘… 흐으으윽….”

‘흐윽… 흐으으윽… 용사님….’

“어어엉… 끄으윽….”

‘하아… 하아… 용사님… 용사님….’

그가 언제나….

“…….”

“…….”

자신과 함께할 것임을 알게 됐다.

‘들… 들켜 버렸네요.’

그렇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도망치고,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엘이 계속해서 빛나는 한.

진유가 자신을 믿어주는 한.

절대로 가만히 멈춰 설 수는 없었다. 그게 지금, 도망치지 않고 녀석에게 맞서고 있는 이유였다.

바닥에 엎어져 울지 않고 똑똑히 류한의 검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으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유였다.

상처를 입어도 아프지 않은 이유였다. 발이 덜덜 떨렸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서 있는 이유였다. 그게 용사로서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나는… 용사야….”

“?”

“나는 용… 흐으으윽… 용사라고!”

“…….”

“너 같은 악당한테 질 것 같아?! 나는 대륙을 구하기 위해… 성검에게, 성자에게, 친구에게 선택받은 용사란 말이야!”

“…….”

“나는 보름달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 언젠가 반드시 보름달 같은 사람이… 흐으윽… 될 거야.”

“…….”

“흐윽… 흐어으으윽… 세상을 비추는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너한테는 절대로 안 져… 절대로 안 질 거야….”

“…….”

검이 날아 들어온다.

‘왼쪽.’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똑똑히 보이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날아 들어오는 참격을 전부 막기에는 검을 휘두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검날로 참격을 쳐내는 대신, 손잡이의 아랫부분으로 참격을 막아내는 것을 선택한다.

어깨와 팔이 찢겨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고통에 주저앉는 것보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커다란 빛이 유리엘에게 담긴다.

“너한테는 죽어도 안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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