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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67화 (1,46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67화

대륙전쟁(47)

-미켈레 박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정이요?

-네.

-미켈레 박사면 미켈레 박사고 아니면 아닌 거지 추정이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저도 정확히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남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미켈레 박사의 젊었을 적의 모습처럼 보였던 터라… 추정이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혼란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요?

-네. 분명히 두 명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차피 질문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박사의 조수, 나 역시 그녀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겨우 김창렬 정도가 그녀를 인지하고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습을 숨기고 있었거나, 진 군사가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아공간 안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지금 이 시점에는 오히려 새로 얻은 정보에 더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그야….

‘젊어졌다고?’

미켈레 자식이 젊어졌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분명히…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 같았는데.’

마음의 눈으로 봤을 때에도 딱히 다른 정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녀석은 분명히 평범한 인간이었고, 심지어 딱히 모난 곳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마음의 눈에 의지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녀석은 마음의 눈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일차적으로는 마음의 눈을 믿는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론은 무언가가 미켈레 박사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을 경우, 녀석이 다른 무언가에 영향을 받고 있을 경우였다.

녀석을 점거하고 있는 게 박사의 조수였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은 당연지사.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 시바 진짜. 김현성도 대충 알고 있을 거 아니냐고. 시바. 이제는 젊어지기까지 하고 뭔 생지랄을 다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슬슬 손절각 안 나오냐고.’

무슨 말로 김현성을 흔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의 목표도 이쪽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어쩌면 김현성 역시 지금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었다면 1회차로 넘어오자마자 여단 놈들을 때려죽이지 않았을까.

필요 이상의 개입이 부적절하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녀석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육망성을 표류하고 있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 진짜 박사든, 가짜 박사든, 박사한테 뭐가 쓰였든, 악마랑 계약을 했든 간에 시바 문제가 생긴 것 같으면 나한테 말하고 상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시바. 애먼 새끼들이랑 같이 대륙팔도유람을 하고 있냐고. 이게 시바 말이냐고 방귀냐고. 도대체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데.’

김창렬이 김현성을 발견했다는 지역으로 망원경을 돌려봤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아무래도 해당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간 모양, 팔 한쪽이 없는 김창렬이 맹렬하게 달리는 모습만 시야에 비칠 뿐이었다.

괜스레 짜증이 치솟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김현성에게 달려가고 싶기는 했지만….

“후우….”

녀석을 쫓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 군사, 희영 씨와 협조해서 작전 진행해 주세요.

-네.

-창렬 씨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마법이나 다른 종류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하고 싶네요.

-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6시간 안에… 아니, 4시간 안에 가겠습니다. 알아서 준비해 주세요.

-네.

일단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체의 후드를 하나 뒤집어쓴 이후에는 올라왔던 땅굴로 들어가 혼란스러운 전장을 빠져나간다.

솔직히 이렇게 한정된 시간에 이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딱 4시간이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시간의 마지노선이었다.

이 이상 늦춰진다면 김현성과 조우할 수 없다.

김창렬이 김현성을 그 이상 잡아놓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튕긴 것을 보면 김현성도 자신의 존재감을 쉽게 드러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창렬로 녀석을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팔 하나가 온전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혹시나 미켈레 박사의 처우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 처리하세요.

-그 말씀은….

-못 알아들으셨어요? 가능하다면…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고요.

-…….

-…….

-네.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딱 4시간. 딱 4시간.’

계속해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며 발걸음을 옮긴다. 황급히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져 버리며 말이다.

대충 붕대로 몸을 휘감는 것도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일단은 가장 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시바 첫 번째는 일단 정진호부터.’

현시점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당연히 프리로 날뛰고 있는 정진호였다. 이 새끼가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균형이 무너진다.

아니, 이미 충분히 날뛰며 전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중, 지금이야 류한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정신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았지만 어차피 여단원들과 합류하기 위해서라면 저 양 떼들 사이를 벗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개 두 장은 괜찮겠지?’

날개 두 장을 조심스레 꺼낸 이후에는 그대로 땅바닥을 굴러버린다. 당연히 땅굴 안에 있던 시체들의 피와 내장 조각들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기 시작한다.

망원경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자, 급조한 것치고는 꽤 괜찮은 비주얼이 탄생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단 날개가 달렸으니까.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일단 날개 달린 게 크자너.’

심지어 그 날개에 피와 혈육들이 낭자해 있다. 붉은 날개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걸치고 있는 것은 새빨간 천과 붕대가 전부, 그 붕대들마저도 군데군데 붉은색을 하고 있었다.

아예 아쉬운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정진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직 조금 더 놀고 있는 것 같자너. 재미있게 즐기고 계시자너.’

비주얼로 부족한 걸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시선이 향한 곳은 정진호와 여단원 사이에 있는 길목이었다.

전장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고, 놀랍도록 조용한 곳이다.

후퇴하는 이들과 마주칠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똥오줌을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빠르게 도착한 이후에는 곧바로 연금소환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 딱히 중요한 촉매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은 붉은색의 바다였으니 말이다.

푸화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것은 둥근 살덩이에서 튀어나온 피와 혈육,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 시바 징그러워. 시바!’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형이 조금 파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운데에는 피의 호수 같은 게 만들어진다.

쓰러져 있는 나무에는 터진 내장 조각들이 걸려 있었고, 기분 나쁜 피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아직 오기 전까지 시간 좀 남았지?’

본래 디테일이 더 중요한 법, 기왕 피에 잠길 거 확실하게 잠기는 게 좋다. 아직 닿지 않은 나무에도, 바위에도, 어느 정도는 영역을 넓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선다.

심지어는 신전 같은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시간이 없으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 불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1회용이기도 했고, 본래 이런 종류의 건축물을 만들 때는 기형적으로, 못 생기게, 쉽게 허물어질 것처럼 만드는 게 근본이 아니었던가.

곳곳에 디테일을 추가하자 더욱더 그럴듯해지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도 정진호 이 새끼는 아직까지 사람들 죽이기 여념이 없는 중, 혹시 내가 지금 뻘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속으로는 계속 투덜거리면서도 행동을 멈추지는 않는다.

날개를 조금 더 붉게 염색하기 위해 한번 확실하게 피의 호수에 담가 버리자 한층 더 몸이 무거워진다.

장담하건대 지금 상태라면 날 수도 없을 게 분명했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니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와. 이건 시바 진호 형 할아버지가 와도 낚이겠자너.’

고여 있는 웅덩이에 몸을 살짝 담그자 왠지 모르게 더 그럴듯해지는 분위기.

시바 이건 누가 봐도 죽음을 형상화한 것 같은 비주얼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팔레트 영애가 깔아놓은 연기의 일부가 스멀스멀 넘어오는 터라 더 그럴듯해진 것 같다.

때마침 정진호도 작은 유희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겨오는 상황.

손을 모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호수의 위에 살살 떠오르고 있는 것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었을 즈음에….

“뭐… 뭐야. 저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긴 뭐야. 어린 죽….’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너넨 누구야?’

나를 첫 번째로 발견한 것이 정진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 뭐냐고… 제기랄… 저건… 저건 도대체… 뭐야.”

비주얼은 먹어주는 게 확실한 것일까.

“씨이발… 흐으윽… 저건… 도대체 뭐냐고!!”

‘아니 시바.’

눈에 띄는 것은 약 30명 정도 되는 탈영병들, 어디 용병단인지 길드인지 클랜인지, 아니면 그냥 탈주하고 있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마주한 게 미지의 무언가라고 확신하는 듯한 모양새.

“씨발… 씨이발! 방금 저 지옥을 빠져나왔는데….”

“흐으윽… 흐어으으으윽… 저거… 저거 내 눈에만 보이는 거 아니지? 대장?”

“…….”

“저거… 내 눈에만 보이는 거… 아니지?”

털썩 주저앉은 이들부터,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들까지 가지각색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공통점은 모두 다 등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혹시라도 등을 보이면 눈앞에 보이는 미지의 무언가가 자신들을 공격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사신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대장… 우리… 우리 이미 죽은 거 아니야?”

“뭐… 뭐?”

“우리… 이미 죽어서 지옥 같은 곳에 있는 거 아니냐고….”

“…….”

“그게 아니면 저건 뭔데… 저건… 저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저런 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아니면… 지금… 하하… 하하하하… 아니면 사신이 우리를 데리러 온 건가… 흐윽… 흐으으억… 하아… 하으으윽….”

“…….”

“…….”

“정신 차려라.”

“어떻게… 정신을….”

“우린 아직 죽은 게 아니야. 눈앞에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우린 아직 살아 있고,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거다.”

“…….”

“다들 정신 안 차려!!!”

‘아니, 저 새끼. 뭔데? 용감한데? 시바.’

“고작 보스 몬스터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수많은 사선을 넘어왔고! 방금 그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이대로 그냥 목숨을 버릴 셈이야! 고향에 남겨져 있는 이들을… 그렇게 내버려 둘 거냐고!!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포기하고 나자빠질 거야!?”

‘아니, 왜 뜨거워지는 건데. 시바.’

“저게 사신이든 갑자기 등장한 이스터 에그든 간에 우린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

“대… 대장.”

“평소와 같이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생각해. 단지 이번에는 정보가 부족할 뿐이야. 우리가 그동안 공략했던 놈들을 떠올려 봐라. 저건 그냥 작은 천사 정도에 불과해.”

‘나 보스 몬스터 아니야. 시바.’

“전원. 전투준비.”

‘나 보스 몬스터 아니라고 이 십새끼들아.’

“내 말 못 들었나!!! 전원!!! 전투준비!!!!”

‘시바 보스 몬스터 아니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놈들이 무기를 들어 올린 그 직후,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제기랄! 누… 아아아아아악!”

양 떼들 사이에 들어온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이들을 도륙 내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눈에 보이는 인형은 당연히.

‘정진호.’

어떤 행동을 첫 번째로 보여야 할지 많은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

“…….”

“…….”

입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는 것보다 더 어울리는 모습을 없을 것이다.

*다음 페이지에 정진호, 애기영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정진호, 애기영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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