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63화
대륙전쟁(43)
“용사님. 준비하세요.”
“뭐?”
“지금 움직여야 해요.”
“어… 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유리엘… 아니, 진유, 지… 지금 이거 무슨 소리야?”
허겁지겁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성지훈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성지훈뿐만이 아니라, 팔레트와 함가르디아, 루스빌라 역시 절벽 위에서 아래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딱히 망원경이 없어도 워낙 규모가 큰 탓에 녀석들의 눈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폭발, 지반이 무너지며 병사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희미하지만 비명 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저 폭발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
1지혜와 여단 놈들이 준비한 선물이었으니 사실 구분을 짓지 않는 게 당연했다. 보이는 것은 오롯이 인간에 대한 악의와 조롱뿐이었다.
본래 여단이 미친 집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벌인 일들을 보고 있노라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 녀석들의 목적은 그냥 이 대륙의 혼란을 불러오는 것뿐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진짜로?’
퍼엉!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꺼지는 지면,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한 양 진영의 병사들이 어떻게든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빠져나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방금 전까지도 지옥이었던 전장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지옥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병사들, 잔해에 깔려 죽어버린 소년병,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이들, 저 재해가 만든 먼지와 연기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그러지는 성지훈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덜덜 떨리는 손. 그리고 갈 곳을 잃어버린 눈동자.
“저건… 뭐야.”
‘보고 있잖아.’
“저… 저러면 안 되는 거잖아.”
“…….”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저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저렇게 사람이 어이없게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
‘마음씨는 따뜻하죠.’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 있는 영애들 역시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한 채로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류한….”
‘아니. 걔가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절대로 용서 못 해. 류한만큼은 절대로….”
‘그래. 그런 분노도 좋기는 한데. 그래도 평정은 챙겨야 하는 거 알지?’
슬쩍 녀석의 손을 꽉 잡은 것은 당연지사. 혹여나 또 분노에 미쳐 잔뜩 흥분해 칼질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꽤 진정한 듯한 모습이 눈에 띈다.
보름달 아래에서 생쇼를 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성지훈이 분노하고 있는 사이에도 병력은 출진 준비를 하고 있는 중, 페인트 영애 역시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순식간에 죽어버린 피해자들에게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쪽은 여단의 덕을 본 셈이었다.
사실 딱히 어려운 작전도 아니었다. 여단이 무너뜨린 지면의 아래로 이동하면 끝. 위에서 낙하물이 떨어질 위험은 있겠지만 병력을 보존한 채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연하지만 결단은 빠르다. 혹시나 모를 2차 폭발을 대비한 이후에는 곧바로 출정 명령을 내리는 페인트 영애가 시야에 비쳐왔다.
회의를 하거나, 작전에 대한 브리핑도 없다. 지금은 조심조심 발을 디디는 것보다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훌륭한 결단이자너.’
다시 한번 그녀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함이 옳을까. 물론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지금이 막차일 가능성이 높았으니 앞뒤 따질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이미 레인저 부대는 앞서 길을 떠나고 있다. 본대가 지나갈 땅굴에 다른 함정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미리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좋아.’
갑작스러운 출진에 혼란을 느낄 만도 하건만,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은 없다. 그야 방금과 같은 큰 소리를 모두가 들었을 테니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대충 눈으로 땅이 내리 꺼지는 장면을 확인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훌륭히 세뇌된 우리 병사분들은 더 이상 병사들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지휘부와 성자가 결단을 내리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진입하기만 하면 느낌 올 거야.’
“…….”
“…….”
“후우… 후우… 후우….”
“후우….”
투구를 낀 채로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친다. 페인트 영애와 브러쉬 영애와도 눈을 마주친다.
딱히 다른 말을 건네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준비가 되었다는 걸 전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부터 땅굴까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지라, 행군을 하는 내내 병력들 사이에 긴장감이 나돌고 있는 중.
이미 여러 차례 전투를 거쳐 온 병사들인 만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전 연설을 하는 게 좋을까 싶기도 했지만 구태여 긴 말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사실 이쪽은 곧 떠날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달빛을 따르는 자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성검용사.
정신을 차린 성검용사 녀석도 멀뚱멀뚱 날 쳐다보고 있던 터라, 유리엘을 꺼내줘도 멀뚱멀뚱 이쪽을 쳐다보고만 있다.
‘하. 시바. 한마디 해야지, 이 새끼…. 아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성검 들고 있는 것만 해도 반은 한 거니까.’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봐도 성물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다는 것은 도움이 된다.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홍보하는 것은 우리가 옳고 적들이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마치 성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을 떠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혹시라도 이 전투에서 죽더라도 신이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 믿는 녀석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안은 채로, 병력들은 조심스럽게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그리고 하나둘, 어두운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페인트 영애를 비롯한 지휘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은 레인저들이 찾아놓은 길로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먼저.
마치 어두운 동굴이나 협곡을 지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와 꽂힌다.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 자연스럽게 아까 전에 있었던 참상들이 시야에 비친다.
‘하… 시바… 기분 나쁘자너.’
“우욱… 우웨엑.”
누군가 구토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딱히 이상하게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바위와 잔해에 깔려 죽은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솔직히 내가 지금 뭘 밟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철퍽철퍽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다.
‘아… 방금 머리 밟은 것 같은데.’
“성자님.”
“계속 전진해 주세요. 혹시 모를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 주시고요.”
당연하지만 생존자 따위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있는 게 신기하자너.’
단순히 지면이 무너지기만 했다면 몇몇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큰 폭발과 함께 지면이 무너졌던 터라, 온몸이 터져 죽은 놈들이 바닥에 덕지덕지 깔려 있다.
박덕구 정도의 내구 수치와 체력 수치를 가지지 않고서야 이런 곳에서 살아 있을 수 있을 리 만무, 사실상 아군 병력은 시체가 쌓여 있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솔직히 길이라고 부를 수도 없기는 해.’
이런 곳을 지나가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영애들 역시 할 말을 잃은 얼굴들.
심지어 아까 전에 분노했던 우리 성검용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곧바로 오바이트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전쟁의 참상을 두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유….”
“네. 용사님.”
“전쟁이라는 건… 뭘까.”
‘이 새끼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시바. 닥치고 걷기나 하세요. 용사님.’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째서… 이 사람들이 여기서 죽었어야 하는 걸까.”
“저도… 그런 거… 잘 몰라요. 용사님.”
“…….”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건 잘못되었다는 것뿐이에요. 옳은 전쟁이라거나, 필요한 전쟁 같은 건 없어요. 그 누구도 이토록 많은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똑같이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에요. 이런 곳에서… 이런 곳에서 아무 의미 없이 죽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요.”
“진… 진유.”
‘눈물 한 방울 떨궈주고.’
“저는 전쟁이 싫어요. 용사님. 이런 건 너무… 끔찍하다고요.”
‘그러니까 빨리빨리 걷자.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
녀석의 걸음이 천천히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병력들의 행군도 점차 빨라진다.
중간에 구토를 하거나 패닉에 걸리는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발걸음을 나아간다.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닥에서 생존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음들은 위쪽에서 들려온다.
분쟁지역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위에서는 치고받고 싸우고 난리났자너.’
“이 공화국이 개새끼들!!”
“연합의 쥐새끼들이!”
“죽어! 이 개새끼들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죽어! 죽어! 전부 다 죽여!!!”
“아아아아악!”
철퍽!
하며 목이 잘린 시체 하나가 위에서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전황이 잠깐 소강상태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전장은 기름이라도 부은 듯이 펄펄 끓고 있었다.
“이 역겨운 새끼들!!!! 죽어!!”
‘당연한 반응이야.’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왕국연합과 제국이 천인공노할 함정을 판 것이고, 반대로 왕국연합과 제국의 입장에서는 공화국 놈들이 비열한 함정을 파 놓은 셈이었으니 말이다.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분노밖에 없다.
병사들 하나하나가 완전히 광란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놈들, 무작정 칼질을 하는 놈들, 고함을 내지르며 저주를 내뱉고 죽어가는 놈들, 아군과 적군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놈들까지.
침묵이 드리운 아래쪽에서는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들려온다.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대충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게거품을 물면서 검을 휘두르고 비명을 내지르고, 붉어진 얼굴로 피눈물을 흘리며 동료의 죽음을 복수하겠다고 소리친다.
더 이상 마법이 떨어지는 소리는 들려오지도 않는다. 마법사들의 마력이 다한 것이다.
‘처절하네. 처절해.’
그리고,
우리 성검용사는 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이쪽의 손을 꽉 부여잡으며,
눈물을 꾹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고,
수많은 죽음을 듣고 바라보고, 밟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후우… 후우….”
녀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들려온다.
“용사님.”
몇 시간을 그렇게 걸으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녀석은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토해내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다른 것도 토해냈다는 것이었다.
오랜 행군 끝에 지상에 다다른 성검용사. 녀석은 광란에 빠져든 전장을 확인한 이후에, 피를 토하듯이 커다란 소리를 내질렀다.
“멈춰!”
“…….”
“전쟁을 멈춰!!!!!!!”
“…….”
“…….”
‘이 새끼… 진짜… 너 바보야?’
멈춰 하면… 애들이 멈추겠어?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던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