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36화
대륙전쟁(16)
생각지도 못하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터져 버린 눈물샘, 괜스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싶어진다.
“…….”
“…….”
옥사나를 비롯한 아군 지휘관 중 몇몇 놈들은 이쪽을 바라보며 혹시 자신들이 뭘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브러쉬 영애의 수행원들조차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사고가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이쪽이야 그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갑작스레 울음을 참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저… 브러쉬 님?”
물론 지금 이 순간 가장 민망한 것은 성자도, 성검용사도, 수행원들도 아닌 브러쉬 영애 본인일 것이다.
브러쉬 영애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눈물을 뒤집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끝까지 참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야 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꽉 주며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는 전형적인 대사를 칠 여력도 없었던 것일까.
“그… 러니….”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소리나 내뱉으려고 하지만 이미 목이 멘 상태.
한 마디라도 더 내뱉는 순간 울음보가 터질 거라는 것을 직감한 것인지, 다시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이제는 턱도 덜덜덜 떨려오고 있는 중,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 보려는 수행원 중 하나가….
“잠시 일정을 미뤄도 되겠습니까.”
라고 입을 열었지만 브러쉬 영애의 손짓에 저지당한다.
그런 그녀가 진정을 되찾은 것은 약 10분이 지난 이후, 정확히는 내가 손수건을 건넨 이후였다. 아쉽게도 손수건을 쓰지는 않았지만 받아드는 과정에서 감정이 정리된 것이다.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괜찮으신가요? 브러쉬 님.”
“…….”
“…….”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네요.”
“아, 아니요….”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요.”
“아… 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마음에 진 응어리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에요.”
“…….”
“…….”
“너, 너무 개의치 마세요. 브러쉬 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해하고 말 것도 없자너. 사람이 살다 보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여기가 뭐 책잡힐 만한 장소도 아니고… 결정권자가 오히려 감정에 휘둘려 주면 이쪽이야 좋지.’
기대하는 표정을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대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 역력하다. 사실 지금까지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을 테니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시바 장담하건대 진유를 거절할 수는 있어도 아이나 페넬로티를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쪽을 다시 한번 재단해 보려고 하는 브러쉬 영애의 눈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이쪽은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는다. 예의 그 표정을 다시 한번 그대로 선보인다.
‘시바. 한 번 거부해 봐. 거부할 수 있으면 거부해 보라고. 모두를 위해 희생한 아이나 페넬로티의 부탁을 한 번 거절해 보라구.’
이미 입 밖으로는 거절을 해야 함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이쪽을 품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페텔로티… 버려?’
“…….”
‘이대로 버릴 거야?’
이대로라면 침묵만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입을 뗀다.
“…….”
“역시… 힘드실까요?”
“그….”
“…….”
“…….”
“후우… 움직… 이도록 해요.”
“네?”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자너.’
본인이 말을 해 놓고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이다.
막말로 얘는 진유의 뭘 보고 믿을 수 있었던 걸까. 아니,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군 지휘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브러쉬가 데리고 온 수행원들은 도무지 이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나 제약이 있을 거예요…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테고요.”
‘암요. 불편한 게 문제겠습니까.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브러쉬 영애님.’
다행히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없었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꼬리를 밟힐 가능성이 높아질 거예요. 그러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 주세요.”
“네.”
“옥사나 누나.”
“예. 성자님.”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는 옥사나와 지휘관들, 심지어 성검용사 조차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브러쉬 영애는 수행원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물어보고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반기를 들거나 격하게 항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브러쉬 영애도 딱히 할 말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근히 분위기 괜찮네….’
생각한 것보다 분위기가 괜찮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브러쉬 영애가 신 흑장미 살롱의 창시자라고 한들,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정도의 큰 결정을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내렸다고 한다면 창립자가 아니라 창립자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야에 비치는 모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모두가 그녀의 터무니없는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고 있다.
그녀가 살롱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보다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쌓아온 인망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살롱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초기 살롱 멤버들에게 구조된 이들이라고 하니, 그녀에게 충성을 하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살롱의 성격은 그녀의 은거지 안에서도 두드러진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병력들이 도착한 것은 무척이나 넓은 지하터널, 아니 지하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자리 하나는 잘 잡았네.’
살롱의 구성원들은 갑작스레 들어온 이방인들을 경계하기보다는 환영하고 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녀를 마중 나오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
“브러쉬 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놀아줘요.”
“미안해. 언니가 지금은 좀 바빠서.”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있는 경비병들.
“근무 중 이상 없었습니다.”
“바빠지겠네요. 죄송해요. 여러분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흑장미 살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심지어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몇몇 영애들도 시야에 비치기 시작한다.
“브러쉬.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미안해.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함께하자.”
“근데… 저 사람은….”
“…….”
“…….”
“페넬로티 가문의 사람은 아니야. 네가 봐도 조금 닮은 것 같지?”
“으… 응….”
‘얼굴 닳겠다.’
비좁고 기분 나쁜 공간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살롱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지하 특유의 그 꿉꿉하고 칙칙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느낌은 감성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여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이곳 저곳에는 꽤 그럴듯해 보이는 거주지가 자리 잡혀 있었고, 거기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마법사가 상주하고 있었는지 물통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장일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도 시야에 비친다.
지하에 작은 도시 하나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인지라 놀랍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와 꽂힌다.
물론 망원경으로 봤었던 그 벽면도 시야에 비쳐온다.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운 411인의 영애들]
그녀들이 지키고 키워온 살롱이었다. 물론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최소한 이곳에서 411명의 영애가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보지 않아도 전부 알 것 같은 느낌. 곳곳에 그녀들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이 보인다.
이 장소를, 이 도시를 만든 것은 영애들이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마법의 흔적이라든지, 그녀들이 만들고 사용한 아티팩트 같은 것들도 눈에 띈다.
그녀들은 이곳에 전쟁 피해자들이 쉴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귀족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드레스를 벗고 손과 발을 걷어 올렸을 것이다.
길을 뚫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이 작은 지하도시의 시스템을 정립했다.
이후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그녀들은 숨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한다고 느꼈고, 이곳에서 결의한 이후에 전쟁터로 향한다.
페인트 영애는 연합군으로서, 파스텔 영애는 용병으로서, 브러쉬 영애는 흑장미 살롱의 유지를 잇고 약자들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 이 장소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갑작스레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이 은신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손에 의해 쓰였다.
4년이라는 세월 동안 말이다.
영애들에게서 소년병들이, 소년병들에게서 남편은 잃은 여인이, 여인에게서 자식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버지에서 전쟁에서 도망친 병사들이, 도시 안에 있는 구성원들은 조금씩 달라지거나 변했을지는 몰라도 그 유지는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활기가 느껴진다.
가장 지하층이었건만 전쟁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성검용사 녀석이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본다.
‘그래. 시바 너도 느껴지는 게 있을 거야. 이걸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그 시점에서 넌 탈락하는 거지. 뭐.’
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는 듯한 표정이다.
녀석이 이 대륙을 점점 현실이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검용사는 정말로 이곳에 있는,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여기에는 삶이 녹아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전쟁터가 아니라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녀석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은 듯이 주변을 둘러본다.
“아….”
“용사님?”
‘아, 이 새끼 왜 또 울려고 그래.’
갑작스레 본인이 죽인 놈들의 얼굴이라도 떠올랐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 어처구니없지만 녀석은 감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지하도시에, 이들이 만들어낸 에너지에, 은은한 불빛에,
그리고.
소녀들이 투쟁한 증거에.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운 411인의 영애들]
녀석은 뭔가에 홀린 듯이 벽면에 다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이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괜스레 가장 마지막에 적혀 있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또 누가 적었어?’
“…….”
“…….”
[아이나 페넬로티]
“…….”
“…….”
[언제나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