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25화
대륙전쟁(5)
“정말이라니까!”
“…….”
“내가 바로 용사라 이 말이야. 소환자! 그러니까 플레이어라는 건 들어봤지? 나는 이 대륙으로 소환되자마자 성검에게 선택을 받았거든. 물론 위에서 보안사항이니 뭐니 해서 자세한 건 설명해 줄 수 없지만 엄연히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위험에 빠진 대륙을 구하기 위해 특별히 초대받았지.”
“…….”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이건 전부 사정이 있는 거라니까? 아니, 그 눈빛은 뭔데! 정말로 사정이 있는 거라니까. 내 힘이 봉인되었다고 말하는 게 편하려나. 아니, 봉인이 아니라 잠깐…. 왜. 혹시 소드 아트 오프라인 봤어? 거기에서 나오는… 아… 봤을 리가 없겠구나. 넌 여기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
‘진짜 개 시끄럽네. 시바.’
그 와중에 가장 치욕스러웠던 것은….
‘시바 아는 애니메이션이잖아.’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 있었을 때 친구 녀석이 추천해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내용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충 눈이 커다란 캐릭터들이 튀어나오고, 우정과 사랑을 주제로 모두와 함께 위험을 헤쳐나가는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녀석이 주인공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 역시 대충 주인공이 마음에 든다고 함께 호응해 주기도 하고, 너와 주인공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조금 닮은 것 같다고 이야기할 때면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했었지.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것뿐이었지만 이걸 지금 이곳에서 다시 한번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시바 이 새끼. 찐이자너.’
모르긴 몰라도 이런저런 컨텐츠의 영향을 받기는 한 모양, 아니, 단순히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그걸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내가 좀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고… 천재 같은 거라나. 천재 중의 천재. 뭔지 알지? 그야 당연히 천재기는 했겠지. 무려 신들의 선택을 받은 용사인데 오죽하겠냐고.”
“…….”
“이 대륙에 찾아오는 위협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진청? 그자도 물론 악당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진짜 배후는 그 뒤에 있어. 너와 내가 집중해야 할 건 그 배후에 있는 녀석들이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의 무리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아 좀 꺼져. 진짜.’
쪽팔리는 갑옷을 입고 행군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조잘거리고 있는 꼴은 가관이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하세요. 혹시 다른 병사들한테 붙잡히고 싶으신 건 아니죠? 아직 여기 공화국 병영이라고요. 안 그래도 불안한데 자꾸 그렇게 시끄럽게 해야겠어요? 이제 좀 조용히 하셔야 해요. 특히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으면 더 조심해야 하고요.”
“너가 못 믿고 있잖아.”
“아니요. 믿어요.”
“안 믿고 있잖아.”
“아니, 전부 다 믿는다니까요. 당신이 용사라는 사실도, 성검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도, 신들에게 초대받았다는 것도,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있게 됐지만, 곧 제 자리를 찾아갈 거라는 것도 전부 믿는다니까요.”
“아니, 진짜라니까.”
“믿어요. 진짜 믿는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이상한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당신을 데리고 온 게 들킬까 걱정된단 말이에요.”
“장차 용사의 동료가 될 사람이 이렇게 담이 작아서야.”
‘시바 용사의 동료는 개뿔… 너도 담 작자너.’
용사의 동료가 되겠다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쪽은 녀석의 동료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과한 호감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물론 내가 녀석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녀석과 내 나이가 비슷하고, 알 수 없는 놈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해도 이 새끼가 내게 보내는 호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내게 찐따를 끌어당기는 아우라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 대륙이 그냥 찐따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김현성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었다.
‘아니면 시바 이 새끼 그냥 심심한 건가.’
“그런데 말이야.”
“…….”
“저 복면 쓴 녀석은… 정체가 뭐야?”
“저도 몰라요. 여기에 와서 만난 사이라….”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야. 물론 내게 성검이 없었기는 했지만 그렇게 쉽게 제압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는데… 게다가 왠지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거든… 내가 장담하는데 저 사람… 옛날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을걸. 특유의 냄새가 나. 비밀의 냄새가.”
‘은근히 감이 좋네.’
“그리고… 혹시 알프스라고 했나?”
알프스도 때려 맞히려나 싶어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왜요.”
“…….”
“…….”
녀석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온 것.
“쟤 남자친구 있어?”
“…….”
“…….”
“직접 물어봐요.”
“내, 내가 여성분이랑은… 말을 잘 못 해서.”
‘아… 진짜 이 새끼 죽여 버리고 싶다. 시바.’
“…….”
“…….”
“혹시 괜찮다면 진유 네가 물어봐 줄 수 있을까?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말고 쟤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슬쩍 떠봐주는 식으로… 솔직히 나 그렇게 비호감처럼 생기지는 않았잖아. 좀… 좀 잘생긴 편이지 않아?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키도 크지? 호감형 아니야?”
“…….”
“선물 같은 거… 전해주면 좋아할까?”
‘아니요? 시바 소름 끼쳐 할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수많은 병신들을 만나보기는 했지만 단언하건대 이 정도의 병신을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지구에 한 명 더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 새끼는 최소한 겉으로는 본인이 병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부류였다.
그 사회성이 없었던 김현성조차 이 정도는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폐급을 선택받은 용사로 선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도대체 시바 용사선별 기준이 뭐였던 건데 이 새끼가 선택된 것일까. 당시의 관리자들이 소드 아트 오프라인이나 그전에 유행하던 갓세계 고등학생 깽판물에 빠지며 살기라도 했던 것일까.
김현성이 이야기했던 지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도대체 이 새끼의 뭘 믿고 북서부 지역을 통째로 맡기자고 했을까. 이 새끼에게 지능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물론 녀석은 고등학생이다. 어쩌면 정신연령은 그것보다 더 어릴지도 모른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아직 가치관이 덜 확립된 시기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시바 고딩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시바.’
인자한 미소로 성지훈 개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 성지훈을 향해서는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거다.
그 와중에 저 얼굴을 가지고 찐따였다는 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저러면 주위에서 시바 가만히 안 내버려 두지 않나. 키도 평균 이상이고… 거지같이 하고 다녀도 와꾸 하나는 볼만한데….’
이 새끼 혹시 소환되는 와중에 커스터 마이징이라도 하면서 넘어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최악의 패션센스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꼬라지를 보니 도저히 현대에서 넘어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머리 스타일, 일본 호스트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것 같은 삐죽머리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그나마 기절해서 정리되지 않았을 때는 차라리 볼만했었는데, 알프스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볼륨을 키우고 키워 기어코 웬투 머리를 만들어버렸다. 장담하건대 이 새끼는 사회부적응자.
“나 남중 다니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거든… 너한테만 이야기해 주는 건데 거기서는 내가 용사도 아니었고… 키도 작았을 때였고… 부모님도 안 계셔서… 아. 여기에서는 아카데미 같은 곳이야.”
아니….
“…….”
‘머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네.’
“…….”
“…….”
얘는… 착한 것 같기는 해….
얘는 착해….
그래.
머리 스타일만 바꿔주면 될 것 같네….
‘찾아보면 좋은 점도 많자너?’
행군을 할 때 손을 뒤로 뻗어 내 가방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다. 애초에 별로 들어가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계속해서 가방을 위로 올려주고 있지 않은가.
종알종알 시끄러워서 그렇지 딱히 모난 소리를 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그래. 재능 하나는 넘사벽이자너.
진짜 재능 원툴로 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자너.
물론 아직까지 제대로 싸우는 법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충 봐도 보이는 게 있는 법이다.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고, 성검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내게 끊임없이 신성력을 보내주고 있지 않은가.
귀가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덕분에 힘든 행군을 이겨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용사님이라시면서 어째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건가요?”
“뭐?”
“용사님은 용사님이시라면서 이곳에 계시잖아요. 지금 소문도 못 들었어요? 진청 군사님께 악마가 쓰였다는 소문이요. 당신은 제국 출신이잖아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제국과 공화국은 전쟁 중이고….”
“아니,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네?”
“어차피 이건 작은 일이거든.”
“네? 이게 어떻게 작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이야 원래 항상 일어나는 법이었어.”
“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제국에서도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들었고 말이야. 공화국도 마찬가지야. 다른 왕국연합이나 연방에서도 전쟁은 계속 일어났었잖아. 내게는 조금 더 큰 목표가 있다니까. 방금 전에 이야기한 거 못 들었어? 나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
“신은 인간을 편애하지 않아. 그들의 선택을 받은 나 역시 마찬가지지. 공화국이나 제국이나 내게는 전부 똑같다는 이야기야. 물론 정말로 진청 군사에게 악마가 쓰였다면 문제가 있겠지. 그가 도덕적으로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건 내 임무와는 별개야. 나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거지. 지금 이곳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별로 문제 될 게 없어.”
“그렇다면 전쟁은 왜 참가한 건가요?”
“전쟁에 참가하라는 신탁을 받았거든.”
“신탁이요?”
“뭐. 자세한 건 이야기해 줄 수 없어. 나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 다만 이 대륙의 주신이 이곳으로 향하라고 말했다는 것만 말해줄게. 훗.”
‘머리 만지작거리지 마. 시바. 쓸데없는 폼도 잡지 마.’
거들먹거리지도 마. 이 새끼야.
아무래도 김창렬이나 알프스도 녀석의 모습이 영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긴 행군을 하는 와중에 큰 한숨을 쉬는 김창렬이 시야에 비쳐온다.
알프스의 얼굴도 만만치 않다. 자신에게 관심을 표한다는 것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과는 절대로 연관되기도 싫고 다가가기 싫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는 녀석은 보급받은 싸구려 철검을 어깨 위에 놓고 퉁퉁 튕기고 있는 중, 똥폼도 이런 똥폼이 없었다.
심지어 얼굴에도 장난기가 보인다. 왠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행동,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녀석의 모든 태도가 그렇다. 아까 전 창렬이에게 NPC라고 외치는 것도 그랬지만… 이 새끼는 정말로 이 모든 것을 게임이나 장난처럼 여기는 듯했다.
‘도대체 뭐야. 이 새끼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새끼 캐릭터가 도대체 뭐야? 일단 찐인 건 알겠는데. 뭐냐구. 대체.’
사실 나 역시 알프스의 마음과 마찬가지. 이 새끼와는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 그거! 네가 그걸 알아? 대륙에서 내 본진인데?”
지구가 아니라 대륙에서 쓰인 소설이었지만….
“당연히 읽어봤지!”
이런 종류의 녀석들을 낚기에는 최고의 주제였다.
‘내가 너 같은 놈을 몇 년을 상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