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24화
대륙전쟁(4)
“진유야?”
“…….”
“얘. 너… 아무래도 조금 지친 것 같은데… 역시 힘들지?”
“아니요. 괜찮아요. 누나.”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일단 재우고 창렬이한테 수거해 달라고 이야기해 놓는 게 맞겠지?
“빨리 옮기자.”
“네.”
‘얘는 왜 갑자기 나타나 가지고. 시바.’
“후우….”
“…….”
‘언젠가 한 번 만나긴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게 이런 형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사실 녀석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2회 차에서는 성검용사의 자리는 우리 회색빛의 용사 파엘이가 대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까 라파엘 걔는 가짜 용사였자너.’
아쉽게도 2회 차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성검용사 프로젝트가 실행된 적이 없었다.
당시 외신전을 대비해 새로운 전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것이 바로 가짜용사 라파엘, 김현성이 1회 차의 성검용사를 찾기 위해 튜토리얼 던전까지 전부 뒤져봤지만, 결국에 녀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안으로 생각했던 프로젝트였다.
애초에 소환이 된 것은 맞는지, 아니면 튜토리얼 던전에서 운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1회차와는 다르게 2회차에서의 성검용사는 완전히 삭제되어 버린 인물이었다.
김현성, 차희라, 정하얀과 비교되는 네임드, 중요도 SSS급, 성검의 선택을 받고 경천동지할 무력을 선보였던 또 하나의 치트 캐릭터.
김현성의 말에 의하면 가면쓰레기에 의해 미치광이가 되어 죽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녀석은 1회차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패였다.
무려 북서부 지역을 통째로 맡기는 게 좋겠다는 녀석의 추천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무력뿐만이 아니라 지력도 겸비하고 있다 판단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녀석은 처음부터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튜토리얼에 입장했을 때부터 성검을 가진 채로 입장했었고, 튜토리얼을 최단 시간으로 클리어했으며, 떠밀려 대륙에 입장한 우리들과는 다르게 초대를 받아 입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거다.
라파엘을, 심지어 쓰로누스도 어중간한 재능이라고 평가했던 그 김현성이 인정한 진짜배기 강자.
대륙의 관리자들이 제대로 신성을 투자해 벌였던 사업의 수혜자.
솔직히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이런 종류의 이 세계에서 용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추앙을 받아야 하는 것이 옳다.
이미 미국 간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지라, 애초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있었던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놈의 존재 자체를 아쉬워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녀석의 모습이 전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이 핏덩이는 뭐야.’
“…….”
‘도대체 이 새끼는 왜 여기서 죽은 척하고 있는 거야?’
실눈을 뜨고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는 녀석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마저도 수면 가루를 살살 뿌려주자 저항하지 못하고 곧바로 잠드는 꼴은 가관, 물론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던 것이 저항력이 내려간 것이 원인이었겠지만 시체 더미에 누워 기절한 것마냥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은 어처구니없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러면 대충 마무리된 건가. 오늘 안에 일이 끝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어영부영 마무리가 되고 있는 것 같네.”
“…….”
“조금은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네 막사까지 데려다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누나.”
“아. 응. 뭐… 그럼 어쩔 수 없고. 혹시나 힘든 일 있으면 누나한테 와.”
“네… 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 힘든 사람들끼리 도와야지.”
나를 도와준 옥사나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비좁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알프스가 시야에 비쳤다.
그녀의 인사를 받아준 이후에는 괜스레 초조하게 막사 안을 돌아다닌다.
고생하고 돌아온 창렬이가 막사의 문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자연스럽게 녀석의 어깨 위에 업힌 채로 잠들어 있는 아까 그 성검용사도 시야에 비쳐온다.
곧바로 성검용사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폭도들의 손에서 기영이를 구출해 준 녀석의 공을 치하해 주는 시간을 먼저 가져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창렬 씨. 괜찮아요?”
‘일단 이게 먼저자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아무렇지도 않긴요. 내구 능력치도 높지 않은 사람이… 일단 웃통 벗어보세요. 포션이라도 발라드릴 테니까.”
“괜찮습니다.”
“아니, 잔말 말고 여기에 앉으시라니까요. 그러니까 왜 끼어들고 그랬어요. 그냥 가만히 지나가면 몇 대 맞고 끝났을 텐데… 휴… 기본 회복력이 좋고 저항력이 뛰어나서 감염되고 이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참고로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빨리 벗으세요.”
‘명령이면 군말 없이 따른다니까.’
“죄송해요. 선배님. 제가….”
“괜찮다.”
‘스윗하기까지 하자너. 진짜 암살자로서는 실격이자너.’
그 와중에 좌불안석이었던 알프스를 위로해 주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어째서 유아영이 얘한테 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웃통을 벗은 채로 슬쩍 알프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다. 언제나 재수 없는 복면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다니고 있었지만 까놓고 보면 분명 수요가 있을 정도로 괜찮게 생긴 만큼 왠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은 상처 입은 충신의 등에 포션을 처바르는 중, 옥사나가 말한 것처럼 상처가 그리 크게 남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원래 잘하는 애들에게는 사소한 걸로 내가 널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국룰이었다.
충신의 상처를 직접 치료해 주는 주군이라니. 창렬이의 입장에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물론 시선은 김창렬이 데려온 성검용사에게로 향한다.
‘성지훈?’
아까 봤던 것처럼 고등학생 1학년, 2학년처럼 보이는 얼굴과 체격, 전체적으로 보자면 꽤 생긴 것처럼 보였다.
대륙의 관리자들이나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에서는 외모에 가산점이라도 붙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나름 생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 구역 최대존엄인 김현성을 따라오기에는 역부족, 물론 이 새끼도 잘 관리하고 잘 성장한다면 언젠가 김현성의 아성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직은 고딩이라는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피지컬 딸리는 거 봐.’
아직 근육이 전부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키도 딸린다. 물론 또래와 비교한다면 평균보다 큰 편에 속하기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아 보이기는 마찬가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부 성장한다면 라파엘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외적뿐만이 아니라 능력치로도 그렇다.
어디서 주워온 가짜 성검 가지고 용사행세를 하고 있는 비둘기보다는 아무래도 능력치 면에서 근본력이 조금 더 느껴진다. 특성도 괜찮고, 체력과 마력의 성장한계치가 전설 이상이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기야 했지만 무엇보다 짜가가 아닌 근본성검 보유자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아무렴 재능이 어디 가겠는가. 무려 이 당시 대륙의 관리자들이 머리를 모아 뽑은 인재일 텐데 말이다.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어딜 봐도 성검처럼 보이는 검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흔한 단검이나 부무장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기절해 있다.
“창렬 씨 혹시 쟤 근처에 검이나 다른 무기들은 없었나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요?”
“네. 혹시 다시 한번 확인을….”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창렬 씨가 없다고 했으면 없었던 거겠죠. 그게 평범한 물건도 아닐 테고… 혹시 어디 따로 숨겨 놓은 건가….”
“…….”
“…….”
“부길드마스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째서 저 소년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 숨길 일도 아니고 당연하죠. 아마 평행세계에 성검 사용자처럼 보여요.”
알프스가 깜짝 놀란 듯이 말을 이어온다.
“이곳에 용사님은 라파엘 님이 아니었군요.”
‘걔는 가짜야.’
“네. 그것보다….”
“네?”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슬쩍 녀석의 몸이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지금 막 깨어났자너.’
녀석의 움직임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김창렬이 녀석의 미세한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시 한번 곁눈질로 이쪽을 바라보는 꼴은 가관, 막사 안에 있는 것은 고작 3명,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곧바로 검을 꺼내 드는 알프스, 파란에서나 병아리 취급을 받았지 엄연히 대륙 탑 티어로 성장한 그녀다.
비록 흰둥이의 휴업으로 전투력이 반으로 줄어버리기는 했지만 녀석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다.
성검용사 역시 위험을 감지하기는 한 모양, 무기가 있는 적을 상대로는 불리하다고 생각한 성검용사가 목표물을 김창렬로 바꿨지만 늑대를 피하자고 호랑이 굴로 들어간 셈이었다.
김창렬이 놈의 주먹을 잡고 돌리자 휘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성검용사의 몸이 공중에서 도는 것이 눈에 비쳐왔다.
놈이 땅에 처박히기 무섭게 김창렬은 놈의 팔목을 돌리고 곧바로 다리로 목을 누르며 제압에 성공한다.
“으아아악! 제길!”
‘뭐야 이 새끼.’
“너! 단순한 병사 NPC가 아니었구나! 제길!”
‘뭐야? 이 또라이는.’
“성검만 멀쩡했어도!”
‘뭐야 얘? 도대체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다리에 목이 눌린 채로 발버둥 치는 꼴은 가관이다.
‘뭐야. 이 새끼.’
“유리엘! 유리엘!! 나와! 성검이여!!”
‘저건 무슨 꼴이야. 시바.’
웬 고딩 새끼가 시바 떼를 쓰고 앉아 있어.
다시 한번 확인을 해봐도 황당한 순간이었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 발버둥 치는 힘이 무슨 코끼리를 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김창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조금 더 녀석의 목을 확실하게 누르거나 어디 한 군데를 부러뜨리지 않고서는 제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상황, 김창렬이 허락을 구하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당연히 녀석을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해요! 형!”
“…….”
“죽겠어요!”
“…….”
말없이 슬쩍 몸을 일으키는 김창렬, 그리고 누워 있는 채로 당황스러워하는 성검용사.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생각할 지능은 있었던 것 같았다. 어째서 버려진 자신이 이곳에 멀쩡히 있을 수 있게 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어…! 어잇!”
하는 병신 같은 추임새는 가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도 폐급처럼 보인다.
이쪽이 자신을 구해내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는 답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분 정도, 화들짝 몸을 일으킨 녀석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선 채로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날 살렸지?”
“…….”
“…….”
“그… 그야…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까…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 말에 녀석의 눈빛이 반짝반짝해진다.
“너… 착한 녀석이었구나.”
거기에 다시 한번 나와 김창렬, 알프스를 둘러본다.
“흠… 흠… 자기소개부터 해야겠네. 내 이름은 성지훈.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라고 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
“…….”
“좋아! 너! 내 동료가 돼라!”
“…….”
“…….”
“…….”
‘시바….’
“…….”
‘시바…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