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21화
대륙전쟁(1)
“이 시간대 어딘가에 있나 보네요.”
“…….”
“우리 현성이가.”
위치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녀석이 이곳에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불빛이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하고 있는 중, 병아리들은 그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선희영이나 김창렬, 하연수도 마찬가지. 그야 사람 눈이 깜빡깜빡거리고 있으니 신기할 만도 하겠지만 무안할 정도로 빤히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물론 내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이윽고 그 빛도 점점 바래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허겁지겁 방 안에 있던 거울로 다가가 눈을 살펴보자 희미하지만 색이 조금은 달라져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아….’
이전의 황금색과는 다르게 구리색보다 못한 탁한 빛깔이었지만 여전히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다는 것이 꽤 고무적이다. 녀석이 이곳에 있었거나, 존재한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새끼 도대체 여기서 시바 뭐 하고 있는 거야?’
모르긴 몰라도 목적은 이쪽과 비슷하지 않을까. 애초 이 육망성의 목적이 1회 차와 2회 차를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이었으니까.
이전에 베니고어가 말했던 것처럼, 이 대륙은 희생과 부활의 신이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을빛의 검신과 희생과 부활의 신이 만든 서사로 만들어진 대륙이라 인식되고 있는 만큼, 녀석 역시 비슷한 짓거리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물론….
‘나랑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지.’
2회 차의 대륙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꼭 개연성을 구겨 넣는 것만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놈은 지금 육망성 빌런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으니 다른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박사 놈인지, 아니면 그 조수인지, 그 새끼들이 김현성한테 무슨 바람을 불어 넣었는지도 모르니까… 시바.’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놈이 빌런 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요 어딘가에 있다는 거.’
“…….”
“…….”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을 때, 진 군사 녀석이 말을 이어왔다.
“그래서. 위치는? 그리고 언제 왔는지도 확인할 수 있나?”
‘이 새끼. 열정적이자너.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자너.’
“그건 몰라요. 연결되 어있는 상태가 그렇게 또렷한 것도 아니고요. 눈 보면 대충 아시잖아요. 통신장애라도 걸린 것처럼 노이즈가 잔뜩 껴 있어서… 알 수 있는 건 같은 시간대에 있다는 것 하나예요. 마찬가지로 현성이가 언제 찾아왔는지 확인하기도 힘들겠네요. 우리가 아공간에 있었을 당시에 진입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전에 진입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전에는 분명히 놈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거리가 너무 멀었을 수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뭐?”
“아공간에 들어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건….”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 군사님이 할 수 있는 일을 적들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현성이도 아공간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상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죠.”
“그럼 길드마스터께서 적들에게 붙잡혀 있다는 겁니까?”
가능성은 적지. 물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간에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해야겠네요.”
“…….”
“…….”
“대륙에서 김현성 찾기.”
“…….”
“평행세계에 통로인 육망성 게이트는 각기 다른 목적이 있어요. 이번 게이트의 목적은 아마도 대륙전쟁으로 보여서… 현성이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요. 꼭 한 번에 한 가지 사건만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고, 변곡점도 하나는 아니겠죠. 전쟁 내 외부적으로 사연도, 사람도 많을 테니까.”
‘지난 게이트에서 주인공이 김현성 백작이 아니었던 것처럼.’
“일단 대륙 전체가 전쟁 중이기는 하니, 전체적으로 상황을 둘러보고 그중에 중요한 후보를 추리도록 하죠.”
“네.”
“창렬 씨는 계속해서 그랬던 것처럼 여단을 추적하면 될 것 같….”
‘아니, 아니야. 그건 너무 가혹해. 그래도 시바 4년 만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또 혼자 보내. 죽어도 못 보내. 따뜻하게 대해줘야 되자너.’
“아니, 취소. 여단은 연수 씨가 맡는 것으로 하죠.”
“네.”
“진 군사님은 컨트롤타워.”
“웃기지 마라.”
“네?”
“나도 현장으로 가겠다.”
‘이 새끼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당하기 싫다 이거자너.’
“그럼 희영 씨한테 부탁드려야겠네요.”
“네. 이기영 님.”
‘선희영이면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
딱히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전달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어차피 크고 작은 일들은 전부 이쪽에서 처리할 테니 그녀라면 충분히 믿음직스럽다. 거기다 완전히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김창렬이 요 4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리 만무, 말이 그냥 4년이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기본이 전투 암살 직군인 터라 검은백조에서 활동하던 하연수보다 첩보전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파란에서 활동하는 인선이 아니었던가.
그냥 멍청한 무력캐였다면 이렇게까지 신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얘 똑똑하자너.’
눈치도 잘 보는 것도 잘 보는 거지만, 얘는 본인이 자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안다.
만약 벨리에가 홀로 떨어져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살아남는 게 한계였을 테니까.
일단 멍하니 1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거나, 아니면 이미 이 세계에 녹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괜히 병아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창렬이는 다르다.
‘임무 포기 안 했죠?’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바로바로 잽싸게 움직였죠? 빠릿빠릿하게 빈틈없이 하루도 허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겠죠?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4년이죠?
우리 창렬이 말도 없고, 간혹 존재감도 없고, 때때로 암살자로서 실격해서 그렇지 완전 A급, 아니, S급이죠? 차라리 김창렬이 회귀자가 되는 게 나을 뻔했을 수도 있었죠?
단언하건대 얘라면 내가 다시 이쪽에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파티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기를 쓰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이쪽을 맞을 준비를 전부 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김창렬 개인에게는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했지만 우리 쪽에서는 호재인 셈, 심지어 녀석도 그다지 아파 보이지 않는다. 본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기도 했지만 4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좀 악마 같은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냥 창렬이를 아예 1회 차에 박아놓고 활동하면 이렇게 발버둥 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외신전까지 몇 년이 남아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딱 외신전까지만 보험으로 들어놓으면….
‘아니, 안 될 일이자너.’
그래도 한번 물어볼까 싶기도 했었지만 4년을 날려버렸는데도 충성을 보내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시바 멍청한 라파엘 파티가 아니라 창렬이가 있었어야 되는 건데.’
진 군사도 슬쩍 김창렬을 바라보고 있다. 혹시 더 말할 게 없냐는 듯한 표정, 혹시 4년간 머저리처럼 있었냐 묻는 표정이었다.
‘시바 창렬이 상처받자너.’
물론 나도 묻고 싶다. 4년간 뭐 했냐고… 뭐 물어온 거 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빠꾸 없이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쪽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는 법, 아무리 그래도 생고생하다 귀환한 애한테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볼 수 있겠는가.
이기영은 악마이기보다는 천사이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하나가 입을 여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4년이나 이곳에 있었다면 이야기할 게 많은 것 같은데. 설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우리를 기다린 것은 아니겠지.”
“아니… 군사님. 그게 지금 무슨….”
“어처구니가 없군. 네놈도 궁금한 것 아니었나?”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어야죠. 어떻게 이렇게….”
“…….”
“창렬 씨 괜찮으시겠어요?”
“염려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길드마스터. 당연히 말씀드려야 하는 것들입니다.”
“창렬 씨….”
“…….”
“…….”
“부길드마스터의 성에 차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창렬 씨가 무사히 이곳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인데….”
“일단 제 산하로 정보길드 두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규모가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만….”
‘시바!’
“인원은 두 길드를 합쳐 약 200여 명입니다. 점조직으로 구성해 꼬리를 자르기 용이하고, 핵심 인원 셋만 제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명령은 편지로 전달하는 터라, 부길드마스터께서 활용하시기에 좋으실 겁니다.”
‘창렬아!’
“더불어 레벨이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만 훈련된 암살자 넷이 있습니다.”
‘아니! 넷!?’
“하지만 기대하시는 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키워보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기척을 숨기는 데 뛰어나지 않는 이들이라… 중요 암살 임무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시바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런 게 있는 게 어디야.’
창렬이의 기준이 높은 것뿐이다. 그래도 본인의 입으로 훈련된 암살자라고 이야기한다면 적어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어디 전쟁고아들이라도 주워서 훈련시킨 모양, 정보길드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놀랄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거기에다가 규모가 200여 명이란다. 물론 조직의 최하위에 있는 녀석들의 수준이야 안 봐도 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륙전쟁이라는 배경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돌아오실 것을 대비해 신분도 몇 개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정확히 어느 쪽에서 활동하실지 예상이 되지 않아서 각 국가별로 신분을 준비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전쟁용병이나, 부길드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높은 직위의 신분으로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냥 척척이자너. 척척박사자너. 얘는 그냥 1회 차가 체질이자너.’
“창렬 씨 생각은 어떠세요? 어느 쪽에서 활동하는 게 유리할까요?”
“감히 첨언해 보자면 일단은 공화국에서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 현재 여단이 제국에 붙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벌써 소재도 파악하고 있는 거냐구.’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창렬이가 큼지막한 지도를 꺼내 든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전체적인 전황이 한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 아마 선희영 일행과 먼저 합류한 이후, 내가 돌아올 거라 생각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전장이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변하다 보니 약간의 오류가 있기야 하겠지만 대처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공화국을 붉은색으로 제국을 파란색으로, 왕국연합을 초록색, 연방을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공화국이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 훌륭히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애초 공화국이 이 왕성의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게 놈들이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약 4년 동안 이어진 전쟁, 그리고 수세에 몰려있는 제국, 그 와중에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붉은색의 파도다.
‘감정적이자너.’
이런 표현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진 군사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다가 이렇게 개판이 됐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김창렬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
“…….”
“공화국의 군사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