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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19화 (1,41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19화

아이나 페넬로티(10)

“너흰 또 뭐야.”

“…….”

“페인트 그 역겨운 년이 보냈니?”

‘이게 시바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곧바로 진 군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 분명 아공간에 있었던 시간은 일주일 남짓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곳은 몇 년이나 흐른 것처럼 되어 있다.

창문이 열리지 않던 날에 무슨 변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녀석의 얼굴을 보니 딱히 그런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녀석 역시 바깥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겠지만 내가 알기로 분명 3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종종 찾아오는 파스텔 영애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 군사 역시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혹시나 사고를 치고 숨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놈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 깃들어 있는 것은 짜증과 당황, 기다리고 기다리던 귀환 대신 갑작스레 다른 사건에 휘말려 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같이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현시점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추측은 아마도….

‘아공간의 오류 때문인가?’

중간에 생긴 사고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물론 일반적으로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공식이 꼬이는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찾아왔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의도치 않게 시간 축을 비틀어버리는 마법을 발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지만 본래 어떤 발명이나 발견이 실수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 새끼가 학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선희영이나 창렬이, 혹은 병아리들이 육망성을 직접 발동시킨 것일 수도 있다. 의도치 않게 마법진을 발동시켰고, 순식간에 이쪽 시간 선으로 이동되었다는 가설도 나름 합리적이다.

이 거지 같은 마법진이 워낙 지 마음대로이기도 했고, 2회 차로 곧바로 이동되지 않았던 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정하얀 때를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걔네들이 왜? 무슨 이유로?’

이 마법진을 발동시켰을까. 심지어 어떻게 발동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녀석들은 촉매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발동시킬 이유도 없다.

함께 온 이들은 우리를 기다리는 입장에 있었으니까. 알프스와 벨리에는 페넬로티 가문을 뒤처리하느라 바빴을 것이고, 당시 김창렬도 1회 차 여단을 추적하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빠져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시간이 남았던 것은 선희영과 하연수, 아니, 선희영은 병아리들을 감독해야 했으니 논외, 결국에 여유가 있었던 것은 하연수 정도다.

지혜 누나에게 따라 언질을 받아서 마법진을 발동시킨 것일까. 아니, 그녀도 아니라면 완전히 제3자가 육망성에 손을 뻗었던 걸까.

어쩌면….

“군사님 이거….”

“쉿. 입 다물어라. 이기영.”

‘아 맞다. 시바.’

“…….”

“…….”

그제야 파스텔이 이쪽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지금은 성장한 파스텔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먼저.

그렇지 않아도 이쪽을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진 군사 이 새끼가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고 숨긴 것 같았지만… 파스텔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례를 용서하시기를….”

“…….”

‘뭐야. 쟤네들은 또.’

지금 보니 이쪽의 몸에 투명한 마력의 장막이 걸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몸을 숨기는 종류의 마법을 빠르게 사용했던 모양, 계속해서 내 입을 막고 있는 것을 보니 소리나 기척은 차단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력방벽을 세울 수 있었겠지만 간단한 방벽으로는 그녀의 기감을 피하기 힘들 거라 판단한 것이리라.

아무튼 간에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조금 더 주변을 살피기가 편해진다. 그만큼 파스텔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쏠릴 테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왕성에, 용병 차림을 하고 서 있는 파스텔과 그녀를 찾아온 두 명의 다른 여인들. 당연하지만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다른 귀족 영애인지, 아니면 평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도 보통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는 것.

전형적인 암살자나 레인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정황상 파스텔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한 전령처럼 보였다.

불청객들을 확인한 파스텔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가 분명히 그년한테 경고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 어차피 또 쓸데없는 이야기겠지. 병신 같은 작전 이야기나, 공화국의 병력들이 염병을 떨고 있다거나….”

“페인트 님께서 직접 뵙고 싶어 하십니다. 파스텔 님.”

‘이제는 영애라고 안 부르자너.’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면 되는데 말이야. 참 걔도 웃겨. 엉덩이 무거운 것도 여전하신 것 같고 말이야.”

“페인트 님께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생각 없으니까. 꺼져.”

“파스텔 님의 힘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꺼지라고 말했어.”

“정확한 사항은 보안에 걸려 있지만 근 시일 내에 작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파스텔 님. 이번에는 분명히 불리한 전황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을 겁니다. 왕국 연합 내에 있는 모든 병력들이 힘을 합치기로 결의하였으며 김현성 백작님과 안개 소환사 역시 작전에 힘을 보태주시기로….”

“김현성 백작? 아. 그랬어? 그럼 중요하겠네. 사모해 마지않는 김현성 백작님께서 직접 힘을 빌려주신다고 하셨으니, 걔 입장에서도 애가 탈 만하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마무리해야겠네… 응? 그래야지. 잘나신 페인트 님께서 인정받으실 거 아니야. 그래야 걔도 고대하고 고대하는 걸 얻을 수 있지 않겠어?”

‘쟤 아직도 꼬여 있자너.’

쏟아지는 말들이 악의적이다.

“그걸 얻기 위해서 이번에는 몇 명을 사지로 보내버리실까. 또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올라가시려고. 함가르디아는 괜찮지? 페인트 때문에 반병신 됐다고 들은 적 있는 것 같았는데… 다른 애들은 전부 다 잘 지내나 몰라. 걱정되네… 욕심이랑 출세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기적인 년 믿고 설치다 골로 간 애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

“내가 하나 알려줄게. 멍청이들아. 전쟁은 걔한테는 수단이야. 자기 몸값을 더 올릴 수 있는 수단, 그리고 너희 같은 바보들은 쓰고 버릴 말들이지. 꽤 신뢰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더 빠르게 버림받을걸.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데… 최대한 빠르게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좋을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너무 대놓고 극딜하자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소리다. 대충 보기에도 저 둘은 페인트에게 꽤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사실 이쪽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한때 똘똘 뭉쳤었던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아직까지 이렇게 대립하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가 악의적으로 쏟아내는 말에서 추측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소식은 페인트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 정도였다.

‘당연히 한자리하고 있었자너.’

물론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아마 배경은 진 군사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대륙전쟁, 거기다가 꽤 오랫동안 전쟁이 지속되었던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당장 파스텔의 모습만 보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선을 거쳐 왔는지 눈치챌 수 있다. 전투에 의해 한쪽 눈이 실명된 것도 그렇고, 온몸에 가득한 상처도 그렇다. 능력치 자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단순히 용병 복장이라 표현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품질이 좋은 아이템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칭호들도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

‘페넬로티 용병단장? 너 용병단 세웠어? 근데 왜 용병단 이름이 페넬로티야?’

“…….”

“…….”

‘왕국연합의 분홍귀신? 이건 또 뭐야.’

“…….”

“…….”

물론 1티어 네임드는 아니었을 것이다. 능력치도 최상위라고 하기에는 살짝 무리가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천관위 같은 대륙 탑티어, 김현성이 찾아 헤맸었던 김예리 같은 이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거기에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거라고 판단한다면 외신전에 한 축을 담당해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영애들 중에서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었던 팔레트 영애는 그보다 더 성장해 있겠지.

‘상상만 해도 든든하자너.’

“그분도… 많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힘들어? 힘들다고 해? 염치없는 년. 지가 힘들어할 자격이나 있어?”

“…….”

“아무튼 난 대답했으니까. 이만 돌아가. 우리는 때려 죽어도 그쪽에 합류할 일 없으니까.”

“파스텔 님. 계속해서 여기에 계시는 게 위험하시다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장 눈앞까지 공화국의 병력들이 들이닥친 상황입니다. 이미 폐허가 된 왕성에….”

“더 이상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으니까. 꺼져. 페넬로티는 왕성을 지킬 테니까.”

‘이미 망해버린 곳을 뭐 그렇게 지킨다고 난리야.’

이미 성으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곳이다. 성벽은 이미 없는 것처럼 보였고, 사실 뼈대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심지어 거점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에도 힘들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 아마 밀고 밀리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본래 전쟁이라는 건 땅따먹기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왕성에서도 많은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슬쩍 망원경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성 밖도 폐허가 되어 있는 듯한 모습, 실제로 멀지 않은 곳에 공화국과 연방의 병력들이 자리해 있다.

빡세게 행군하면 사흘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 페인트는 파스텔을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그녀를 이곳에서 빠져나오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왕국연합과 페인트의 입장에서는 이미 놓아버린 전선에 병력을 투자할 수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토록 어이없게 그녀를 잃고 싶지는 않을 테니… 그녀를 설득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파스텔의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전령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파스텔 님.”

“꺼지라고 이야기했어.”

“…….”

“…….”

“하지….”

“꺼지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난 너희가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쾌하니까. 마지막 경고야.”

“…….”

“꺼져.”

그리고 장내를 꽉 채우는 폭발적인 살기. 전령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시바 몇백 명은 때려죽여 본 것 같자너.’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다리,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나는 이들이 시야에 비친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을 응시하던 파스텔이 품에 있는 꽃을 꺼내 작은 비석 앞에 놓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아이나 페넬로티를 기리며.]

“…….”

“…….”

“미안해. 페넬로티. 무서웠지?”

“…….”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절대로 널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

“…….”

“절대로 널 남겨두고 떠나지 않을게.”

‘얘… 이거 미친 것 같은데?’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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