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15화
아이나 페넬로티(6)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페넬로티이이이이이!!!!”
아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중, 마치 블랙홀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뭐야. 이거. 시바.’
뭔데.
‘지금 이거 뭔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소리를 치려고 한 것도 잠시,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마력의 갑옷을 벗고 있는 진 군사가 시야에 비쳐왔다.
허겁지겁 사방을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아까까지만 해도 수상한 지하공간에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 보는 곳에 자리해 있다.
당연히 텔레포트를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윽고,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올라온다.
아직까지 주문이 완전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는 종류의 주문인 모양, 머리가 어지럽고,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어 갓 태어난 사슴마냥 중심을 잡으려다 휘청거린다.
심지어 탈진한 것 같은 느낌. 온몸이 기분 나쁠 정도로 땀에 젖어 있는 터라 꼴사납게 나자빠지기 직전이었다.
누군가가 뒷목을 턱 하니 잡아챈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곧바로 몸이 뒤로 당겨지며 안착한 곳은 무척이나 부드러운 소파.
‘이거 완전 고급이자너.’
그 부드러운 촉감에 몸을 맡기자 점점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숨을 쉬기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한 번 더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자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들어온다.
시야에 비쳐온 것은 비좁고 밀폐된 방, 그리고 몇 개의 문, 딱 보여도 고급스러운 가구들, 왠지 모르게 진 군사의 취향이 잘 반영된 것 같다.
벽에는 커다란 동양풍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인테리어 소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장식장에 걸려 있었다.
“여기 어디예요? 우리 텔레포트 한 거 맞아요? 군사님 이런 마법도 쓸 줄 알았어요?”
“텔레포트 같은 게 아니다. 내 아공간 안으로 들어온 것뿐이지.”
‘아니, 그게 더 신기하자너.’
“아공간이요? 그거 물건 담아놓는 거 아니었나. 이런 게 가능했던 거였어요?”
“…….”
“비밀의 방 뭐 이런 거였어요? 아니 이런 곳이 있으면 뭣 하러 컵케이크 테러당하면서 집무실에서 업무 봤어요? 나 같으면 여기 박혀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조금 좁기는 좁네.”
“아직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네놈이 가장 잘 느끼고 있을 텐데.”
말하자면 육체에 부담이 간다는 뜻이다. 본래 아공간이라는 게 인간이 들어오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다. 공기도 뭣도 없는 오롯이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진 군사는 이곳에 인간이 체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 아닌 개조를 시도한 모양, 숨을 쉬기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고, 아공간 안으로 진입할 때의 후유증이 조금 크기는 했지만 이 정도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완전히 독립되어있는 공간이다.
진 군사가 지 꼴리는 대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라는 거다. 지금은 겨우 방 하나의 크기이기는 하지만 이 공간이 더욱더 커져서 왕성, 더 나아가 대륙 정도의 크기로 넓히고 생태계를 만들어 놓는다면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를 창조한 것인 다름이 없다고 느껴진다.
내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은 녀석이 그 첫 시작을 끊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거 조금만 더 연구하면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겠는데요?”
“네놈이 마음껏 헤집고 활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마법도 아니고 말이다. 당장 몸을 피할 장소가 필요해서 억지로 들여왔을 뿐이야. 경고하건대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그 소파에서 벗어나지 말란 말이다.”
“어. 진작 말을 했어야죠.”
“제기랄! 남의 물건이면 만지지 않는 게 상식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
“아니, 우리가 어떻게 남이에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제자리에 올려놔라. 제길.”
‘이 새끼… 이거 마음에 도피처 같은 거 아니야.’
만지작거리던 아티팩트를 냉큼 뺏은 이후에 제자리에 올려놓는 녀석, 그 와중에도 정확한 자리에 놓고 싶었던 건지 계속해서 물건을 움직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모든 소품들이 각이 잡혀 있다.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말이다.
‘이 양반 이거 정신병 확실하자너.’
“이 공간은 또 뭐예요?”
“멋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이기영!”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까칠해요? 온 김에 여기저기 둘러볼 수도 있는 거지. 여기 혹시 화장실이나 침실 같은 것도 만들어 놓은 거예요?”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군사님이 모은 아티팩트랑 아이템들도 다 여기에 있겠네. 창고도 있어요?”
“제기랄… 제길… 네놈을 이곳에 들이다니….”
“제가 처음이죠? 집들이 선물이라도 챙겨왔어야 했나.”
“미친 자식.”
마치 더러운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 얼굴만 보면 세균이 침투하는 것을 확인한 결벽증 환자처럼 보인다.
내가 이 공간을 벗어난 이후에 대청소라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모습인지라 괜스레 더 헤집어 놓고 싶은 상황.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이곳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
허락된 공간은 오롯이 붉은색 소파,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째려보는 탓에 괜스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시바 너무하자너. 더러워서 빨리 나가고 만다.’
“아. 엄청 눈치 주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데요?”
“일이 일단락될 때까지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네놈을 여기서 내쫓고 싶은 심정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기는 싫으니 참는 것뿐이야.”
“…….”
“일단락된 거겠지?”
“그야 모르죠.”
“뭐?! 또 무슨 개 같은 소리를!”
“아니, 진짜 모른다고요. 군사님이 육망성이 처음이라고 뭘 모르시나 본데 여기는 대륙처럼 그렇게 친절하게 퀘스트 창 띄워주고 그러지 않는다고요.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야 돼요. 그게 1회 차의 행방을 지켜보는 것일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저 같이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명백한 목적이 있었단 말이에요.”
“…….”
“그나마 군사님에게 희소식이라 할 만한 건, 대략적인 목표를 전부 달성했다는 것밖에는 없겠네요.”
“일단은 김현성이 죽지 않게 하는 것이었나.”
“그게 가장 중요했죠. 아마 다른 곳에 흘러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딴 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는 이곳에 찾아올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간에 이건 어디서든 최우선 사항이에요. 그럴 일이 희박하기야 하겠지만 갑자기 김현성이 어디서 뒈져버리면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으니까요. 사실상 1회 차는 망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겠죠. 그리고 두 번째가 여단이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왕성을 빠져나가는 것이었을 것 같고… 세 번째가 데뷔탕트 무도회를 대륙전쟁의 시발점으로 이끌고 가는 것, 1군사님이 죽지 않는 것도 중요했고… 다섯 번째가….”
“왕국연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지.”
“잘 알고 있네요. 아 근데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어요? 아니면 여기에 주방도 있나? 군사님 뭐 먹을래요?”
“제길. 넌 절대로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 간단한 걸 준비해 줄 테니.”
“…….”
“…….”
“식탁에 앉는 걸 허락해 주지.”
“퍽이나 고맙네요. 그냥 소파에 뭐 떨어뜨릴까 불안한 거면서 선심 쓰는 척.”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야기나 계속하지. 아무튼 네 말대로라면 조만간 이 짜증 나는 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군. 그 영애들 제법 쓸 만하게 변한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긴 하죠?”
슬쩍 놈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페인트 영애라고 했던가, 그녀가 꽤 마음에 들더군.”
“다른 영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음… 걔네들 입장에서야 진 군사님이 외신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마지막에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거 봤어요? 그것만 봐도 미래 외신전에 활약할 인선들이라고 볼 수 있죠. 두려움도 이겨냈고, 정신적인 성장도 꽤 크게 한 상태였으니까요. 본래 능력치는 다들 괜찮더라고요. 적당한 계기만 주어지면 알아서 쑥쑥 클 인재들이니까. 대충 일이 마무리됐다고 봐야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걔네….”
“크게 다친 이들은 있을지는 몰라도 죽은 이들은 없을 거다.”
“언데드들은요?”
“아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 전부 태워 버렸지.”
“말 안 해도 척척이네요?”
“감히 누굴 바보 취급 하는 거냐. 이기영.”
‘진짜로 말 안 해도 척척이기는 했어.’
녀석이 만들어 온 마파두부를 입에 넣으며 그윽한 눈길로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해줬자너.’
단언하건대 처음부터 마지막 연출까지 완벽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지막 대사를 치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본래 구질구질하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보다 이런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아이나 페넬로티는 계기였다. 강해져야 할 이유가 되는 계기, 그간 갇혀 있던 영애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녀들이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해야 할 이유였다.
모든 것을 정리해 보자면 신화적인 성과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 뒈져버린 왕국연합의 귀족들을 지키며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핑크레인 공작을 필두로 한 쓰레기 집단은 도저히 고쳐 쓸 수가 없는 놈들이었다.
아마 1년, 아니,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왕국연합은 다시 태어난다. 대륙전쟁을 거치며 영애들은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고, 마지막에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으로서 외신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진 군사님 덕분이네요. 솔직히 불응할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
“아니,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기는 하지만, 임무였으니 말이다. 그 거지 같았던 진영 때와는 조금 다르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인간의 의지는 생각보다 더 나약하지. 그녀들에게 계기가 필요했다는 것은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네놈의 퇴장시기도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돌아갈 수 없었겠지.”
‘그래. 그래야 돌아가는 거자너.’
“벨리에와 알프스에게는 페넬로티 가문을 정리하라고 해 놓겠다.”
‘이 새끼도 은근 만족하는 것 같자너.’
좀 얼렁뚱땅 허겁지겁 넘어간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고, 놈의 입장에서는 열 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과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 것이 분명, 하지만 결과 그 자체로만 본다면 제대로 된 마무리였다. 본래 거지 같은 팀원들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해도, A+를 받는다면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이 과제를 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던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하나로 성과금 두둑하게 챙겨 가면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들도 여간해서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퇴사를 앞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모든 게 전부 추억이 되어버린다는 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름 중요한 역할로 활약도 하고, 전부 다 끝나고 나니, 하나하나 전부 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뿐이고, 다시는 1회차로 들어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지라고 넘길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한 것 같았다.
‘그래. 진 군사 고생 많이 했어.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고생하셨어요. 군사님.”
“웃기는 소리.”
“근데 여기 시야 막혀 있어요?”
“원한다면 열어줄 수도 있다. 애초에 망원경이 있는 네놈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기능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시야를 열어주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아공간 안에 있는 터라 화면이 좀 일렁거리고 있었지만 틀림없이 바깥이 보이고 목소리도 들려온다.
페넬로티의 희생을 계기로 하나로 똘똘 뭉친 영애들이… 우리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네가 죽였어! 흐윽… 흐으으으윽… 흐어어어어엉… 네가 죽였다고….
-그만하십시오. 파스텔 영애. 페인트 영애도 힘드실 겁니다.
-네가 처음에 길을 열어준다고 했잖아! 네가 가라고 했잖아!!!! 네가! 전부 다 너 때문이야!!!!! 죽어! 죽어버리라고! 슬퍼하는 척하지 마!!
하나로 똘똘 뭉친….
-네가 가지 말라고 이야기 했어야 했어! 흐윽… 흐으으윽… 네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야 했다고… 흐으으윽… 살려내! 살려내라고! 페넬로티를… 살려내라고….
1군사도 각성….
-군사님….
-아… 핫… 하하… 하….
-군사님?
-돌아… 갑시다.
왜 눈이 죽어 있어?
이 새끼 왜 감정을 잃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