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14화
아이나 페넬로티(5)
각오가 섰다.
그 말 외에는 지금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두렵고 무서운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아이나 페넬로티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한때는 세상을 저주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마지막까지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세상을 비추는 것이 빛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비추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는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림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우뚝 서 있는 감옥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환한 빛이 비치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밝게 물든 풍경을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 장소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에, 비로소 그녀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칙칙한 것처럼 보였던 흑백의 풍경이 갑작스레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야가 넓어진 것은 당연지사.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이 빛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따위는 던져 버려도 괜찮다.
아이나 페넬로티라는 존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밝게 빛나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페, 페넬로티?”
“고마… 워요.”
이를 악문 것은 당연지사.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파스텔 영애에게서 고개를 돌린 이후에, 곧바로 미지의 괴물을 바라본다.
천천히, 아니, 점점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솔직하게 말하자면 멋있는 장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단순히 달리기를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오히려 만용이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거추장스러웠던 드레스를 찢고, 장신구를 집어 던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웃음을 보내고 있는 미지의 괴물은 코웃음을 치며 화살을 쏘아 보냈지만 겁을 집어먹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보다 먼저 뛰어나간 근위대가 방패를 들어 올린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근위대장이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켜 검은색 번개를 맞이한다.
“이야아아아아아아!”
“감사해요!”
“버텨라! 새끼들아! 조금만 더 버텨!”
“이를 악물고 버티라고! 이 새끼들아!”
“…….”
“…….”
“페넬로티 영애. 무운을….”
“영애가 지나갈 길을 뚫어내라!”
퍼엉 하면서 근위대가 벽에 부딪힌 것은 당연지사.
얼마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진 녀석들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다섯 걸음을 벌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나 페넬로티는 다섯 걸음을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 들어온다. 아니, 그전에 이번에는 모든 공간이 어둠 속에 잠긴다.
위기를 직감한 미지의 존재는 마력의 폭풍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잠깐 동안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아이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빛을 밝히세요!”
“빛을… 밝히세요! 빛을 밝혀요!”
“빛을… 밝혀! 빛을 밝혀요!”
“빛을 밝혀라!!!”
순식간에 환해지는 세상, 피어난 작은 빛들이 마력의 폭풍을 밝힌다. 아니, 정확히는 걷어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더 올바르다.
공간을 좀먹던 어둠이 마치 빛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제나 밝은 것만을 비추지는 않는 법, 마법이 켜지자마자 시야에 비친 것은 쏟아지고 있는 수십 발의 화살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수십 개의 보호막이 눈앞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마워! 페인트!”
언제나 존댓말을 해왔던 그녀가 이를 악물고 외치는 것이 들려온다.
“가! 페넬로티! 빨리 가!”
“응! 으응!”
전격의 비를 뚫고 들어가려고 하지만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만다. 모든 게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다수의 영애들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정확히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근위대들처럼 방패로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영애들이 무작정 자신들의 몸으로 화살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함가르디아 영애.”
“우리 말 놓을래요? 페넬로티 영애?”
“루스빌라 영애….”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요. 페넬로티 영애. 특별히 이번 일이 끝나면 티파티에 초대장을 드리도록 하겠어요.”
“네? 저는….”
심지어 얼굴에 화상을 입은 애가 겁 없이 여기에 행차하셨다.
“라이넬피아 영애.”
“아… 아프겠죠? 아프겠죠? 그렇죠? 이건 진짜로 아프겠죠? 흉터가 안 남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리고.
“브러쉬 영애.”
“이… 이런 것밖에 하지 못하는 바보라서 미안해. 페넬로티. 미안해.”
“아니요. 고마워요. 브러쉬 영애. 정말로 고마워요.”
당연히 그녀들의 몸에 전격이 내리 꽂힌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엄마…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몸을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고통스러운지 서로의 몸을 꽉 잡으며 지탱하고 있다. 계속해서 내리치는 전격을 맞으며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녀들은 절대로 부여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사이에 페넬로티는 열 걸음을 더 옮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녀석은 활을 거둔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녀석은 거대한 전격의 창을 내리찍는다.
이쪽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붕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 희미한 연기가 이쪽의 몸을 부여잡고 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뒤로 돌리자, 연초를 깊게 빨아들이고 내뱉는 팔레트 영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대입니다.”
“…….”
“돌아오면 끊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넌 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녀의 연초가 전부 다 타들어 가자, 자연스럽게 몸이 땅바닥에 내려온다. 그런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흑뢰로 만들어진 병사들이었다.
‘새로운 패턴.’
물론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무장을 한 이들이 이쪽으로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으니 말이다.
뜻밖에도 이쪽을 호위하고 있는 것은 공화국의 병력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녀석들은 마치 이쪽을 절대로 보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물론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이기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꽤 필사적으로 보였다.
“주모님을 보호해!”
‘뭐라고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네… 네?”
“일이 끝나면 공화국으로 오세요. 대접은 섭섭하지 않게 해드릴 테니까요. 다만 군사님과의 혼인은 조금 더….”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라. 장량. 지금은 페넬로티 영애를 저쪽까지 모시는 것이 최우선이니까.”
‘너희들 뭐라는 거야.’
심지어 시바 공화국의 귀족과 영식들도 섞여 있다. 놈들 역시 무기를 들고 몰려오는 전격의 병사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어중간한 녀석들은 실시간으로 떨어져 나가는 중, 그 와중에 커다란 창이 대각선으로 내리 떨어진다.
방패를 든 공화국의 병력들도, 왕국연합의 전투원들도 한꺼번에 휩쓸려 나간다.
많은 이들이 그 커다란 창에 진격을 막아내기 위해 달라붙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창의 속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마치 개미들이 모여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형편없이 튕겨 나가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은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는 소녀다. 본인의 몸보다 더 커다랗게 변해버린 창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파… 파스텔 영애.”
“흐윽… 흐으으윽… 페넬로티… 페넬로티이….”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전격에 의해 격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말 그대로 질질 짜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쪽은 그녀의 뒤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망원경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심지어 계속해서 꺼윽꺼윽거리는 터라 말을 쏟아내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 진심으로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
“가지 마… 흐윽… 안 가면 안 돼? 흐윽… 제발… 제발….”
“…….”
“흐윽… 가지 마아… 페넬로티… 제발… 가지 마… 흐으윽… 나랑 같이 여기 있자. 응? 안… 안 가도 되잖아. 페넬로티가 안 해도 되잖아.”
“…….”
“그냥 여기에 있어도 되잖아. 가지 마. 페넬로티. 흐으윽… 더 이상 가지 마… 흐으으윽… 끄으윽… 가지 마… 흐윽… 제발 가지 마아….”
그녀를 뒤에서 살짝 껴안아 준 이후에….
“돌아올게요.”
라고 속삭인다. 그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그녀는 확인할 수 없었겠지만. 선택지가 없는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꼭. 꼭. 돌아와야 돼.”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그러고는 김현성이 있는 곳에 닿을 수 있었다.
녀석조차 다가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영애들과, 공화국의 병력들과, 왕국연합의 근위대가 만들어낸 틈에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린다. 뒤를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지라 어떻게 아이나가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물론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었겠지만 그게 아이나 페넬로티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의문과 경악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대신 자리한 것은 한순간의 틈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이 영역 안으로 몸을 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존재는 순간적으로 김현성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이나 페넬로티를 바라본다.
그 틈, 불과 몇 초 김현성의 속도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 녀석의 창의 사정 범위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들 수 있는 찰나의 시간, 녀석이 아이나 페넬로티에게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닿을 수 있다는 확신.
틈은 지금뿐이라고 생각했는지 김현성은 발을 박찼지만….
“검?”
이계의 짐승이 선택한 것은 창 대신 검을 꺼내 드는 것. 애초에 근접전이 약점이라는 것 역시 함정, 낭패가 서린 김현성의 얼굴에 놈의 검이 휘둘러진다.
그리고 그 공격범위에는 아이나 페넬로티가 있다.
“페넬로티….”
김현성은 검을 피하지 못했지만, 아이나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검을 피해낸다.
“영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 김현성이나,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모두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적이 일어났다거나,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주.’
정확히 말하면 저주라고 생각했었던 축복.
짧고, 먼 미래를 예지하는 그녀의 능력이 비로소 발현된 것이리라.
아이나 페넬로티의 두 눈이 빛나고 있다. 그녀의 눈에는 녀석이 검을 휘두른다는 것이 보이고 있다.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녀의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그녀는 몸을 숙이며, 슬라이딩을 하듯이 손을 내뻗었다.
흙먼지투성이에 찢어진 드레스 차림으로, 귀족 영애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모습으로,
“닿아….”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닿아라!!”
‘그때 그 감성!’
“페넬로티!”
마침내 아이나 페넬로티의 손이 소환진에 닿았을 때.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터지는 폭음, 당연하지만 페넬로티는 사정거리 안에 있다.
마치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느낀 것도 잠시, 이윽고 환한 빛이 왕성을 감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페넬로티이이이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