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03화
피의 무도회(13)
-흐…우욱… 으… 흐흐…푸흐헤하하하하하하!
‘이 새끼 어떻게 봐도 제정신 아니자너.’
절대로 상종하면 안 되는 종류의 인간이라 표현할 만했다.
‘저거 그냥 완전히 미친새낀데?’
단언하건대 어쩌다가 마주치더라도 말도 섞지 말고 떠나보내야 할 종류의 인간이었다. 논리나 협상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다.
본래 한 가지 목표에 매몰되어 있는 인간들이 저런 눈을 하고 있었지만 이 새끼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태가 심각하다.
복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니 저렇게 행동할 만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그야 어떻게 저 모습을 보고 놈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미 인간의 형태를 잃어버리는 고깃덩어리를 계속해서 도끼로 찍으며 광대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놈을 어떻게 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1기영은 이미 체력이 다해 후들거리는 팔로, 잘 들어 올려지지도 않은 도끼를 들어 올려 계속해서 놈을 찍어 나가고 있다.
힘이 전부 다 빠져 도끼의 무게에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녀석은 그 단조로운 작업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는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눈과 얼굴에 미약한 흥분이 감돈다. 누군가 복수가 허무하다고 말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녀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을 게 분명.
1기영의 표정에 깃들어 있는 것은 희열과 기쁨, 그리고 성취감이었다.
무척이나 긴 시간 동안 갈고 갈았던 칼날을 드디어 놈의 목에 쑤셔 넣었다는 종류의 성취감이다.
이미 한참 전부터 송정욱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네놈 역시 자신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것이 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친새끼는 도끼를 내려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퍼억! 퍼어억! 퍼억! 하는 소리와 철퍽 철퍽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상황, 거친 숨을 몰아쉬던 녀석이 손으로 땀을 훔친다.
마치 힘든 작업을 끝낸 것 같은 얼굴. 당연하지만 1기영의 온몸은 송정욱의 피와 혈육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놈의 육편이 입안으로 튀었는지 계속해서 퉤! 하는 소리로 그것들을 뱉어내고 있었고, 옷에 묻어 있는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떼어내고 있었다.
-너무… 열 낸 것 같은데.
‘열 낸 정도가 아니자너.’
이윽고 녀석은 고깃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들어올리기 시작,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치 작품 활동이라도 하는 예술가 마냥 녀석은 놈의 신체 일부분 일부분을 벽에 고정시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뒤로 물러선 이후에는 혹시나 삐뚤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감상하는 모양새가 무척 괴상하게 느껴진다.
‘취향 봐.’
마치 바늘에 박힌 곤충 표본이라도 된 듯, 송정욱은 멀쩡한 벽에 팔을 활짝 벌린 모양새로 전시되어 있었다.
하체는 제대로 된 모양을 찾을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전부 다 걸지도 못했을 정도, 그걸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심지어 녀석의 옆에 피로 글자를 적어 나가기 시작, 작품명은….
[제국을 구한 17인의 영웅.]
이었다.
‘너무 옛날 감성 아니냐구….’
나름대로 클래식하게 느껴지기야 한다. 제국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였으며, 사건의 생존자, 혹은 관련자가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청소에 동의한 17명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는 적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문제라고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 표현 방식이 너무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점.
물론 그것마저도 놈이 의도대로였을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일으키는 방식이었으니, 적어도 그들이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이 새끼가 이후에 김현성을 회귀자로 선택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야?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청소 사건의 주도자 중 한 명이었던 김현성을 선택했던 걸까.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시간이 지나자 녀석의 복수심도 풍화되어 버린 것일까.
카스가노 유노를, 이지혜를 잃은 과정에서 뭔가 깨달은 게 있는 것일까.
‘아니야. 그냥 단순하게 그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 그런 거일지도 몰라.’
스쳐 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상태로 보였지만 그렇지 않다.
이 미친 도끼 살인마 새끼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잔인함도, 포악함도, 어떤 맹목적인 일념도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정상인처럼 행동하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평범하고 이성적인 걸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바로 가장 소름이 끼치는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점점 가면을 쓰기 시작하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더 이상 도끼질을 할 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표정이 점점 본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까 그 광대처럼 웃고 있었던 미친놈은 이미 자리에 없다. 대신 침착하고 조용한 남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질려 버릴 정도, 힘든 작업을 하느라 땅바닥에 떨어졌던 가면을 주워 얼굴에 쓰는 모습조차 이질적이다.
옷에 묻은 뭔가를 한 번 더 탁탁 털어내고는 조용히 방문을 연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볼일은 끝나셨습니까?
녀석에게 말을 건넨 것은 피투성이가 된 정진호, 녀석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녀석의 말에 대답해 왔다. 평소처럼 호감을 얻기 위해, 환심을 사기 위한 목소리였다.
-네.
-기분은 좀 어떻습니까? 기영 씨.
대답하는 대신 녀석은 가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웃고 있는 가면을 가리켰으니 아마 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끈 것은 아닌가 걱정인데… 상황은 좀 괜찮은 겁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침 이쪽도 막 볼일이 끝난 터라… 딱 적당한 시간에 마무리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
-…….
‘정진호랑 친구 먹을 만하자너.’
저걸 만든 놈이나 작품을 바라보며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는 녀석이나 둘 다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훌륭하군요. 이건….
-…….
-정말로 훌륭합니다. 기영 씨. 하하하하… 하하… 하하!
‘시바 나까지 정신병 걸리게 생겼자너.’
-하하하… 하하하! 제국을 구한 17인의 영웅이라니 작품명도 그럴싸한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니야. 그거 아니야. 걔는 그냥 비꼬려고 적어 놓은 거고, 실제 작품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저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요.’
-최근에 본 것 중에 가장 멋진 작품이로군요. 모두에게 이걸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정말 아쉬울 정도입니다. 무척 만족스러워요. 네. 당신을 여단에 들일까 말까 고민했던 제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훌륭합니다. 단순히 이 작품 때문이 아닙니다. 기영 씨. 이번 일과 향후의 계획까지 모든 게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지 뭡니까.
-고맙습니다. 진호 씨.
-당신을 강력하게 추천했던 지혜 씨와 희영 씨에게 감사해야겠군요. 물론 당신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예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더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걸 완벽하게 수행했으니까요.
‘이 새끼 지금 좋은 거 봐서 흥분했자너.’
-저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기영 씨에게 지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런 건 져도 돼. 이 새끼야. 왜 이상한 걸로 이기려고 그래?’
-기영씨. 혹시 김현성이 아직 성에 머무르고 있다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아직 탈출하지 못하고 4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더군요. 미처 대피하지 못한 귀족들을 보호하고 있나 봅니다.
‘기영아 시바.’
-참 황당하지 아닙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손에 피를 묻힌 주제에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는 꼴이라니….
-…….
-계획을 조금 수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무대가 쉽게 오지는 않는 터라. 기영 씨도 김현성에게 볼 일이 더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원하신다면 제가 이번에도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
-…….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합니다. 진호씨. 계획에는 변함이 없어요.
사이코패스 살인마 새끼는 마치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부모에게 조금 더 놀자 조르는 표정으로 이기영을 응시하고 있는 중, 나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딱 표현대로였다.
이 이상 적절하게 놈을 묘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굳이 김현성 이야기를 꺼낸 것도 녀석을 도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방법이라면 기영 씨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심지어 떼를 쓰고 있다. 놈이 그 커다란 덩치로 1기영의 앞에 몸을 가까이 붙이자 그게 반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1기영이 좋은 걸 보여준 부작용이 아닐까.
몸이 달아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놈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다.
히죽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손으로 내리고 있었고, 괜스레 검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묘한 기싸움, 1기영은 그런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머리는 접니다. 진호 씨. 제 계획에 분명히 따라주신다고 약속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곤란해요.
-계획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바뀔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단이 당신이 움직이기 편한 장기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여단에 머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예요. 기영 씨. 당신은 아무 말 하지 말고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거야.
‘저러니까 손절당하지. 시바.’
-그래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변수가 생겼습니다.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요. 밑에서부터 계속해서 불빛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이곳을 탈출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
-소모품을 버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성에 깔아놓은 착란과 혼란도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선택하는 건 단장이지만,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는 단장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잖아?
-…….
-…….
-어쩔 수 없겠군요.
물론 선택의 여지는 없다. 놈 역시 기껏 깔아놓은 판을, 앞으로 더 즐길 수 있는 판을 발로 차버릴 이유는 없을 테니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큰 사건들의 시발점일 뿐이다. 대륙전쟁과 복수에 고작 한 발자국을 올려놓은 것뿐이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욕구에 뒤집혀 일을 망치려 한다는 것은 녀석답지 않다.
물론 그만큼 흥분했다는 표시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정진호는 천지 분별을 하지 못할 멍청이는 아니었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 그 옆과 뒤로, 피로 흠뻑 뒤집어쓴 여단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익숙해져 내적 친밀감까지 생기려고 하는 쌍둥이와 키 큰 멀대, 그리고 선희영까지.
어린 죽음 때 보지 못했던 멤버들 몇몇도 눈에 보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그 시기까지 닿기 전에 죽은 단원들처럼 보였다.
-다음은 뭐야!
-다음은? 어? 다음은 뭐야!
-후우… 이, 이제 돌아가는… 겁, 겁니까? 아직… 조금 부족… 한데….
-조금 더 있으면 안 될까요? 단장님? 아직도 올라오고 있는 놈들이 있는 것 같은데.
-진정하세요. 여러분들. 기영 씨가 판단하기에는 지금이 가장 몸을 빼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소모품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아래층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터라.
-이 방에는 뭐가 있어?
-하하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모처럼 멋진 작품이 나왔으니까요.
그 와중에 선희영은 뭔가에 꽂힌 듯이 송정욱이었던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쟤는 또 왜 저래.’
마치 감동이라도 한 듯 조용히 손을 모으는 모습은 가관,
-희영 씨도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군요.
심지어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시바 교수님들 진도가 너무 빠르잖아요. 나까지 정신 나갈 것 같잖아요.’
-처절하고 숭고하지요? 아름답고도 진취적입니다. 고결하고 추악하고 신성하게 느껴집니다.
‘몸 떨지 마. 시바 소름 끼치니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단장이 그렇다면….
-하하하하. 언젠가는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정진호는 자리를 떠나기 싫다는 듯 작품을 눈에 담은 이후에 다시 한번 모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가도록 하죠. 기영 씨의 김 백작님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시바 내가 이 새끼들 이럴 줄 알았어.’
당연히 뭔가 더 저지를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