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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01화 (1,39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01화

피의 무도회(11)

가면을 벗고 놈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1기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는 웃음이었다.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입만 웃고 있는 새끼들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지만 녀석은 정말로 입꼬리만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동자에서는 놀라운 만큼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가지 감정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기쁨과 환희, 증오와 분노, 상반된 감정을 담았기 때문일까.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예의 그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살면서 최저 몸무게를 찍었을 때보다 더욱더 마른 것처럼 보였다.

피부는 창백했지만 눈 밑은 어두웠고, 입술도 칙칙하게 말라 있다. 손과 발도 떨리고 있었는데 미약한 기대와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무언가의 부작용이나 중독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 심적으로 지쳐 있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청소 사건 때와 현시점의 공백이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숨죽이고 있지 않았을까.

카스가노 유노에게 구조를 받은 이후에, 여단에 가입하고, 단원들의 신뢰를 얻은 이후에 본격적으로 칼을 갈고 있었을 시기, 단언하건대 놈의 머릿속은 복수하겠다는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의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시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녀석이 마주한 상황을 떠올린다면 겉모습이 망가진 것은 딱히 이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저 정도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놈이 송정욱과 이미 안면을 트고 있었다는 것.

‘뭐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지나….’

생각해 보면 송정욱은 캐슬락의 블랙마켓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의 1기영과 1덕구는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생존하고 있었던지라 그게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송정욱 역시 이기영을 기억하고 있다. 가면을 벗은 1기영을 바라보는 송정욱의 얼굴이 놀란 것처럼 보인다.

-너… 너… 이기영? 네가 여기에 왜? 아니, 정말… 이기영이 맞는 거냐?

-아직 잊지 않으셨나 봅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걸로 꽉 찬 머리도 쓸데가 있나 봐.

-네가 어떻게… 아니… 그전에 어떻게 살아 있는….

-왜 그게 신기합니까?

-…….

-분명히 뒈졌어야 하는 얼굴이 여기 네 앞에 나타난 게 신기하게 느껴집니까? 멀쩡히 살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게 믿기지가 않나? 새까맣게 타서 익어버렸어야 하는 새끼가 네 앞에서 조잘조잘거리고 있으니까 그게 신기해? 응? 거기서 어떻게 살아서 나왔는지 궁금해?

-너….

-근데 그게 중요한가? 지금 당신이 궁금해해야 하는 건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고, 당신이 거기에 찌그러져 있는지인 것 같은데 말이야.

녀석은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다. 언뜻 보면 멀쩡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녀석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딱히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으니 블러핑을 할 필요도,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송정욱은 이미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모두 부서져 있었고, 마력회로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라 말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그 와중에 재미있었던 것은 송정욱 녀석이 묘하게 침착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놈은 눈앞에 있는 녀석을 우습게 보고 있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눈앞에 선 게 이기영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네.

-…….

-포션 가진 거 있지? 빨리 가져와 봐라. 이리로 와서 나 좀 일으켜 세워줄 수 있겠냐? 응? 물이라도 좋으니까 마실 것 좀 가져다주고… 씨발 이게 무슨 개 같은 꼴인지. 큰 건 하나 잡으러 왔다가 엿 되는 줄 알았네. 제기랄.

‘와. 쟤 분위기 파악 진짜 못 하네. 지 죽이러 온 저승사자인 줄도 모르고.’

-뭐해? 이기영? 시발놈아. 내 말 못 들었어!?

‘와….’

-빨리 이리로 오라고! 새끼야!

‘이 새끼 눈치 더럽게 없자너.’

-또 두들겨 맞고 싶어?!

‘…….’

-귓구멍에 쳐 막혔나! 저 기생충 같은 창놈 새끼! 빨리 여기로 안 기어와?!

억지로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마치 이러는 게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녀석을 보고서는 저게 그냥 습관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겁니까. 1기영좌.’

송정욱에게는 정상적인 행동이었고,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 둘의 관계는 아마 압도적인 갑과 을의 관계였을 것이다.

당시에 아무 능력도 없는 1기영이 살아남기 위해서 취해야 했을 행동이라면 뻔하다. 박덕구라는 딸린 짐까지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꼬리를 흔들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송정욱 역시 1기영이 가지고 있는 끈 중 하나였다는 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블랙마켓에 물건이나 정보를 주고 있었던 거였나?’

간단히 말해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였다는 거다.

돼지 새끼 하나 먹여 살리겠다고 참.

물론 그걸 치욕스럽다거나 굴욕적이라고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 매번 웃으며 바보같이 놈의 비위를 맞춰 줘야 했고, 놈의 병신같은 행동들을 모두 눈감아줘야 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꽤 길었다 가정한다면 송정욱의 저런 언사와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얼굴에 위기감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이기영이라는 것을 확신한 이후에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1기영 역시 그런 송정욱의 행동에 별다른 의문을 표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기영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네. 내가 너 같은 병신한테 뭘 기대했을까.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새끼야! 그 거지 같은 가면은 또 뭐고, 새끼야.

-기억은 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마지막에 내가 했던 이야기 기억하고 있냐고요.

-말을 알아듣게 해야지. 이 새끼야!

-왜. 약속 안 지켰어. 송정욱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무… 어?

-왜 약속을 안 지켰냐고! 이 개새끼야!!!!! 안 한다고 했잖아!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청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 그게 거래였어! 이 개새끼야! 그게 거래였다고!!! 너는 그냥 시발 반대한다고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고! 그걸로 모든 게 끝나는 거였단 말이야! 이 찢어 죽일 새끼!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어. 이 역겨운 짐승 새끼야! 다른 건 시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고! 네게 피해가 가지도 않잖아! 새끼야! 그걸 반대한다고 해도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잃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럼 전부 다 잘될 거라고 이야기했잖아! 개새끼야!

-……

-그게 시발 내가 너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빌었던 거였다고!! 콜록! 콜록! 제기랄!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악에 받친 듯이 목소리를 내뱉는 녀석이 시야에 비친다.

‘시바 살벌하자너.’

순식간에 온도가 끓어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꾹꾹 담아두었던 분노가 쏟아진 것 같은 느낌,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것은 이쪽뿐만이 아니다.

그걸 정면에서 받아내던 녀석이 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실감하고 있을 터였다. 언제나 실실 웃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념이 없었던 녀석이 저렇게 변해버렸으니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던 이기영이 확실한지부터 시작해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어….

놈은 멍청하지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모지리는 아니다.

-너… 너 도대체….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병신은 아니다. 분명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콜록! 하아….

-…….

-하아… 씨발… 짜증 나게. 제길! 병신 새끼가!

-너… 너….

-우욱! 우우우윽!

-어… 어?

-씨발!! 제기랄! 짜증 나게! 이 역겨운 새끼! 우우욱! 콜록! 콜록! 씨발! 씨발!

-…….

녀석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인다.

‘뭐야. 쟤. 시바… 무서워. 시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느껴진다. 송정욱의 눈에 언뜻 두려움이 감돈다.

-이… 이기영.

-…….

-혹… 혹시 그 일 때문에 그래? 응? 그, 그래서 그래? 그래서 이러는 거야? 응?

-입 닥쳐. 입 닥쳐! 이 새끼야!

-나… 나는 어쩔 수 없었어. 응?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고. 미, 미안해.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응? 나는 네가 이미 지역을 빠져나간 줄로만 알고 있었지! 내, 내가 제정신으로 너를 그냥 저버리려고 그랬겠어? 우리 좋았잖아. 응? 좋은 파트너였잖아. 네가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면… 내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저질렀겠어?! 어?!

-……

-전부 정치적인 이유였다는 거 너도 알잖아! 응? 이해해 줄 수 있는 거잖아. 그 정도는… 원래 큰일을 하다 보면 가끔은 그런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네, 네가 멍청한 나보다는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너는 살아 있잖아. 일이 조금 꼬이기는 했지만 멀쩡해 보이네? 응? 우리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어! 너, 너만 좋다면 말이야. 뭐가 가지고 싶어? 어? 가지고 싶은 거라도 있나? 블랙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거라면 당장… 지금 당장 구해줄 수 있는데.

-…….

-그, 그러고 보니까. 방패… 그, 그래. 방패! 방패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 그거랑 쓸 만한 갑옷들이 장물로 들어온 것 같았는데 말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야. 응? 그거 줄게. 어? 그냥… 공짜로 넘겨줄게. 내가 캐슬락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네가 필요하다고 했던 장비들이랑… 어? 소모품까지 전부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 괜, 괜찮은 클랜, 아니, 길드도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던전도 몇 개 구해줄게. 우리 길드 이름으로 받은 던전들 전부 양도해 주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래! 그 돼지 새끼… 그… 네 동생한테 필요한 영약들도 찾으면 아마!

-…….

‘아이고 벌집을 건드리셨네.’

-…….

-…….

-이제는… 필요 없어졌어.

-어?

-이젠 그런 거. 아무 의미도 없다고.

‘걔 미국 갔어. 거기 없는 거 보면 몰라? 진짜 멍청하기는 하자너.’

본인 역시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실컷 지껄이고 나서야 그걸 깨달은 모습, 애초에 왜 같이 있지 않은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정신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만큼 이기영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자신이 지뢰를 밟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함께 이 자리에 없는지, 1기영이 어떻게 살아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지 깨달은 것이다.

녀석 역시 넋이 나가 있다.

-하… 하하… 하…하하….

-…….

-내,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러니까… 그… 네가… 나는… 그렇게 될 줄… 모르고… 하…. 그… 내가….

‘이 새끼 바보 됐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못했었는데….

시선을 마주치기가 힘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1기영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1기영이 한 발자국 다가서면 녀석은 한 걸음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내가… 전부 보상해 줄 수 있어… 내가… 이기영….

-뭘로.

-네가… 네가 원하는 걸로 뭐든지.

-그럼 데리고 와.

-…….

-돼지 새끼… 데리고 와.

-…….

-그럼… 콜록! 그럼… 용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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