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63화
우정의 도피(1)
녀석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정확히 한 시간 전이었다. 일찍부터 일어나 뽀뽀 세례를 퍼붓는 하얀이를 안아주고, 커피를 들고 아침 훈련을 하고 있는 돼지 새끼와 병아리들을 구경하고 있었을 때였다.
싱글벙글 기대감을 키우는 김예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안기모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저도 모르게 망원경으로 오두막 부근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김현성 이 새끼가 파란 길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신문을 읽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녀석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옆길로 샜어도 되돌아올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난 이후였으니까.
경매장에 들러 가방이라도 사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마저도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 어?”
김현성이 자취를 감췄다.
어처구니없지만 명백한 현실이었다.
“어? 어… 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한순간 정신이 멍해졌을 정도, 순간적이었지만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황스럽게도 녀석의 위치가 회귀자 사용설명서에도 잡히지 않는다. 아직도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황급히 망원경을 열어 오두막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김현성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왜, 왜 그러는 거요? 형님!”
“…….”
“뭐… 왜 갑자기 사람이 바보가 된 것처럼….”
“…….”
“뭐… 뭔 문제라도 생긴 거요?”
‘아니… 시바. 오겠지? 잠깐 다른 데 들렀다가 오는 거겠지?’
훈련장에서 날 보고 뭐라고 소리치는 돼지 새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게 귀에 들릴 리 만무했다.
왕국연합에서 린델로 되돌아오는 루트부터, 녀석이 있을 만한 곳을 전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오두막을 제외한 김현성이 있을 만한 곳에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 새끼… 튄 거야?’
“…….”
‘그냥 튄 거야?’
하기사 김현성이라는 인간이 원래부터 도피성향이 강하기는 했다.
대륙에서의 김현성은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삶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토록 극적으로 숨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예 홀로서기를 하기로 결심한 것인지, 아니면 라파엘의 급발진으로 자기혐오가 새롭게 싹 튼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꺼져 버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야. 시바. 진정하자. 시바. 금방 돌아올 거야. 이것도 잠깐이야. 어차피 다시 돌아오게 될 거야.’
회사설을 지금 당장에라도 끊어버린다면 곧바로 녀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까진 내키지 않는다.
혹시나 한 번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 붙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멋대로 끊어버렸다 나중에는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몰아붙였나? 말만 안 했지 완전히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나? 조금은 보듬어 줬어야 했나? 이 정도면 아예 망가진 거 아닌가? 시바… 그냥… 무승부로 했어야 했나? 자존심을 죽이고… 양보를 했어야 했던 건가?’
어쩌면 중간에 라파엘이 등장한 것이 결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 계산에 없었던 이벤트였으니 말이다.
“형님?”
“…….”
“형님? 형님! 말 좀 해보쇼. 이게 몇 갠지 보이쇼?”
‘아니… 시바.’
“하얀이 좀 불러와.”
“거….”
“하얀이 좀 불러오라고.”
“아… 거, 거 알겠소.”
“…….”
“…….”
“오, 오빠. 부르셨어요? 헤… 헤헤… 오빠… 뽀뽀… 뽀…뽀….”
“…….”
“뽀뽀….”
“…….”
“뽀….”
“…….”
“…….”
“혹시 김현성 위치추적 돼?”
“아, 아… 으… 아, 아… 네. 한번 해볼게요.”
“…….”
“…….”
“누나.”
-네?
“김현성 위치 확인해 줘.”
-왜… 왜요?
“…….”
-또 뭐예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연합 쪽에서 봐.”
-아… 알겠어요. 먼저 가 있을게요.
“…….”
“…….”
“창렬 씨.”
“네.”
“알죠?”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살려놔요.”
“네.”
가라앉힌다고 가라앉혔지만 도무지 열이 내려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김현성 이 겁쟁이 새끼가 사라지든 말든 나와는 별 상관은 없었지만 가슴이 쿵쾅거린다.
‘흥분하지 말자. 기영아. 흥분하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뛰어봤자 벼룩이자너. 그 새끼가 가면 어디로 갔겠어? 오히려 좋아. 시바. 없어진 동안 돌팔이 새끼나 족치고 있으면 되자너.
심장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워프게이트로 몸을 옮긴 이후에 곧바로 김현성이 있던 오두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당연히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로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지혜와 김현성의 오두막을 조사하고 있는 검은백조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하연수를 필두로 한 지혜 누나의 수족들이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흔적이 없어요.”
“그래?”
“네.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가 없네요. 흔적을 지우면서 이동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물론 쟤네들 수준이 김현성 걔보다 낮아서 감식이 안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애당초에 김현성 정도 되는 사람이 사라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연수가 유능한 건 맞지만…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위쪽에서는 확인해 봤어?”
“지금 로렌 님이 확인하고 있는 중이에요.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고, 아무래도 분담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하얀 그 여자도 아네모네의 눈 푼 것 맞죠?”
“응. 지금 한소라랑 작업 중일 거야.”
“워프게이트를 사용한 이력도 없어요. 사라진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보통은 추적범위를 연합 쪽에 국한시킬 수 있겠지만… 김현성한테는 별 의미가 없네요. 대륙 전체를 범위로 수색해 볼까요?”
“응. 그렇게 해줘. 다른 특이사항 있으면 곧바로 보고해 주고. 작은 단서도 놓치지 말고. 도미니온스랑 쓰로누스도 풀어. 막스한테 연락해서 데이터 확인하고,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이름으로 목격자….”
“어련하겠어요. 알아서 잘할게요. 공화국도 진 군사한테 맡겨놓을게.”
“…….”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요. 오빠. 사람 잡겠어요.”
“내가 뭐? 평소랑 똑같은데. 그리고….”
“…….”
“사람은 잡을 예정이야.”
“돌팔이요?”
“응. 저택 확인해 봤어?”
“아니요. 아직이요. 일단 오두막부터 확인하려고 했죠. 주변은 이미 통제해 뒀으니까 빠져나가지는 못할 거예요. 그리고… 저택으로 사람도 하나 들어갔던데요? 오빠가 넣은 거 맞죠?”
“응. 창렬이가 뒤지고 있을 거야.”
“나 참… 그 돌팔이도 참 불쌍하게 됐네요. 아무튼 같이 가 봐요. 나도 이게 뭔 일인가 궁금하니까. 참… 진짜 무슨 애도 아니고, 그 나이 먹어서 무슨 가출을 해요? 진짜 웃긴다.”
“…….”
“그거 다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제발 자기 좀 찾아달라고 시위하고 있을 것 같다니까요. 겉으로는 뭐, 오빠를 위한다, 오빠 때문이다 이러고 있어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지 찾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원래 집 나간 양반들, 바깥에서 오래 못 버텨요. 외도를 하기는 해도 결국 조강지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게다가 김현성 걔는 그럴 깜냥도 안 되잖아.”
“예가 이상하기는 한데…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네.”
‘그럼 해결될 것 같으니까.’
“앗. 창렬 씨네요. 근데….”
“…….”
“혼자네요.”
‘나도 보고 있어.’
이제 막 저택을 빠져나오는 것 같은 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복면으로 입가를 가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눈동자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보고를 위해 내가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놈의 모습이 눈에 비쳤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없어?’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흔적은요?”
“없었습니다.”
“없다고요?”
“네.”
“전부 지워져 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택에서 생활한 흔적들은 남아 있지만, 어제를 기점으로 새로운 흔적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택 내부에서 나간 정황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저택 전체를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조사해 보세요.”
“네.”
“인원은 저쪽에 있는 인원들로 충분할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윽고 하연수와 대화를 나누며 저택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는 김창렬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금 찝찝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지혜의 얼굴도 말이다.
“설마… 데리고 튄 건 아니겠죠.”
‘그럼 시바 진짜 나 죽고 너 죽자자너.’
“만약에 그게 맞다면 찾을 확률이 더 높겠네요. 돌팔이 체력 문제도 있고, 짐이 딸려 있는 이상 이동속도도 더딜 테고요. 솔직히 둘이 같이 손잡고 환자와 의사 간의 우정의 도피를 할 확률은 낮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면… 후우… 오빠, 오빠도 저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죠.”
“아마도….”
다시 한번 천천히 저택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 저택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레인저들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보인다.
지하실부터 시작해 숨겨진 공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흔적을 밟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저택을 뒤지고 있는 이들이 가장 답답할 것이다.
분명히 저택 안에서 생활한 정황들은 눈에 보인다. 결벽증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저택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흔적을 전부 지울 수는 없다.
일류 레인저의 눈에는 놈이 몇 시에 밥을 먹고, 몇 시에 화장실을 다녀왔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저택에 투입된 이들은 대륙 전체를 뒤져도 윗줄에 넣어야 하는 레인저들일 테니 아마 돌팔이의 생활 패턴을 전부 파악할 정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저택에서 갑작스레 사람 한 명이 실종된 셈이다.
누군가 나간 흔적도 없고, 들어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어제를 기점으로 모든 흔적들이 사라진 셈이었으니 레인저들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표현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김현성이라면 흔적이 남지 않게 돌팔이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만, 이런 저택에서 돌팔이의 흔적까지 지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녀석은 검사지 레인저가 아니지 않은가. 템플러 젠 역시, 나를 데리고 도망쳤을 때, 모든 흔적들을 지우지 못했다.
물론 김현성이 그 녀석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유능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한 사람을 더 데리고 도망 다닌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을 때,
문득 생각난 것은….
“여기… 창렬 씨.”
“네. 부길드마스터.”
“다른 흔적들은 없어요?”
“미켈라 박사와 길드마스터의 것뿐입니다. 정황상 상담을 하기 위해 저택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은요. 다른 환자도 출입한 적 없고요?”
“없습니다.”
“확실해요?”
“네. 확실합니다.”
지혜 누나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아마 나 역시 지혜 누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
“…….”
이 저택에는 미켈라 박사 이외에 한 명이 더 살고 있어야 했다.
“…….”
“미안해요. 오빠.”